[문학과지성사] 여름방학 독서모임_<소설 보다: 여름 2023> 함께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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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람 | '번개'와 '높은 산'의 관계는 생각지 못했던 것인데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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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입니다. 제 시간은 여기까지인데요. 미처 답변하지 못하고 빠트린 글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틀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모임장님께서 안내해주신 대로 이제부터는 하가람 작가님의 <재와 그들의 밤>을 읽는 시간입니다. 저도 여러분의 대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가겠습니다 :)
즐거운 주말 아침입니다. 마지막 단편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하나만 남아있네요. 주말에도 『소설 보다: 여름 2023』🌞과 함께-! 마지막 일정 공유드립니다.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22일(토)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단편 읽기 23일(일) 하가람 저자에게 질문 남기기 24일(월) 하가람 저자 질문 답변 10시에 작가님의 인사말과 함께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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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가람입니다. 제가 마지막 차례를 맡게 되었네요. :) '재와 그들의 밤'을 올여름 함께 읽을 수 있어 기쁩니다. 특히나 이번 독서 모임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만큼 여러 지역에 계시는 독자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설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여름,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어쩌면 오늘 읽을 소설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여름보다는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꿉꿉한 여름날에 더욱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와 그들의 밤'을 읽고 마음껏 감상을 나누어 주세요. 소설에 대한 가벼운 단상을 써주셔도 됩니다. 기억나는 옛 추억이나 사람,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 장면을 나누어 주셔도 기쁠 거예요. 독자 분들에게는 고향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하고요. 반대로 저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해주셔도 좋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소설을 마음껏 가지고 놀아주세요. :) 그럼 즐거운 마음으로 댓글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힘내주세요!🍀
나는 바랐다. 바람이 굳게 단힌 투명한 창문을 깨뜨리기를.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이 오래된 발자국들을 뒤덮기를. 깨진 창문으로 걷잡을 수 없이 강한 바람이 불어닥치기를. 또 바랐다. 바람이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 젖히기를. 옷장과 서랍 속을 뒤집고 흔들어 부질없는 내용물들의 무덤이 만들어지기를.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소설 보다 : 여름 2023 150p,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나는 옛 시절을 지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애쓰며 지난 몇 년을 살아왔으나, 그들은 과거의 내 모습만을 기억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나를 평가했다. 몇 번 피우다 버린 담배를 발로 짓이겼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개운치 못한 냄새만 남았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126p,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소설 보다 : 여름 2023 129p,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추자 씨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145p,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안녕하세요, 하가람 작가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번 「재와 그들의 밤」은 제가 처음 읽은 작가님 작품인데요. 울산을 배경으로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저는 종종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서울에 살고 싶지만 서울에 살기 싫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저는 경기도민입니다) 언젠가 제가 사는 이 지역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중얼거리는 말 같다고 느껴요.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마음은 제가 미래에 겪게 될 마음 같기도 하고, 현재 한국을 살아곡 있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 같기도 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며 일상적 상황을 바탕으로 인물 간의 관계와 긴장감을 묘사하시는 것을 보며 정말 많이 놀랐어요. 미야 씨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 식물에 물을 주는 것, 전구를 가는 것, 칫솔을 꺼내는 것•••••• 그 모든 과정이 한 시절이 나에게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조금 먹먹하기도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갈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그 한 문장이 뇌리에 박혔어요. 저는 한울에서의 시간이 모두 불태워지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며, 이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땅에 스며들기를, 공기 중을 부유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질문을 하나 남기자면! 제목에서 ‘그들’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나의 과거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엄마인 추자씨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과거에 대한 나의 감정으로 유추해 보건데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엄마로부터 적절한 돌봄이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엄마와 함께 살았던 울산이라는 곳은 안 좋은 기억만 가진 곳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예 그곳이 재가 되어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럼 찾을 수도 없으니까요. 서울에서도 이방인의 모습을 보였던 나는 다시 찾을 밖에 없는 그 곳이 사라져야 서울에서 안착할 용기를 낼 것 같습니다. 분위기로만 감을 잡으며 읽었습니다. 전.중반은 짙은 구름이 머문듯 어둡고 답답했지만 마지막은 가을이 오려는듯 다소 시원한 바람이 부는듯한 느낌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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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람 눈싸람님, 안녕하세요. ☺️ 저 또한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에 공감해 주셨네요. 미래의 내가 언젠가 겪게 될 마음이라고 느끼면서 읽으셨다는 부분이 인상 깊어요. 그렇게 된다면 먼훗날 눈싸람님이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이 소설 속 화자를 다시 떠올려 주실까요? 눈싸람님의 삶에서 제 소설이 스며드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이 소설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작가로서 무척이나 기쁠 것 같습니다. 화자의 일상에서 변화의 기미를 섬세히 지켜봐주셨다는 말씀도 꼭 제 마음을 이해받은 것처럼 따듯하게 느껴지네요. 제목에서 ‘그들‘이라는 주어를 쓴 건 3인칭 대명사가 주는 모호함 때문이었어요. 사실 초고 단계에서 이 소설의 가제는 ‘재와 나의 하루’였는데요. 소설을 완성한 뒤에 이 이야기의 제목이 ‘나’에게만 초점이 향하기보다는, 추자 씨와 덕미 씨도 모두 포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라는 대명사는 2인 이상이기만 하면 몇 명이든 모두 지칭할 수 있잖아요. 읽기에 따라서 ‘그들의 밤‘을 추자씨와 덕미씨의 밤으로도, ‘나’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 각자의 밤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모호성이 주는 해석의 자유로움이 마음에 들어서 제목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싸람님! ☃️
책을 읽으면서 고향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에게 고향이란, 안식처이기도 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곳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책 속에서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이라는 서술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저는 우연히 기회가 닿아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이 혼란스럽고 혼자서 버티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에는 뒷일 생각 안하고 고향으로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고향과 현재 거주지가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주로 고향은 내가 살았던 곳, 혹은 (보통은) 가족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곳인데, 그 말에 담긴 힘은 더 큰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 혼란과 고민을 모두 담아본 적 있는 장소, 그 무수한 시련들 속에서 성장한 '나'라는 사람이 담겨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주인공에게 다시 돌아 온 고향의 모습은 상상과는 다른 곳이었고, 서울에서도 울산에서도 소속될 수 없는 마음에 더 헤메였을 거 같아요. 저도 가끔 본가에 내려가는데, 너무 오랜 시간동안 본가에 머물면 제가 상상하고 꿈 속에서나마 기대 온 장소와 다르다는 생각에 금방 그 곳을 다시 떠나고 싶어지더라고요 어제까지만해도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다가 오늘 다시 꿉꿉한 여름이 되었는데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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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씨 스마일씨님, 안녕하세요. 😃 왠지 ‘님’을 떼고 스마일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요 ㅎㅎ 써주신 감상을 읽으며, 돌봄과 애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추자 씨가 딸을 대하는 방식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 분명 애정도 섞여 있겠지요? 화자를 차에 태우고 등하교를 함께 하거나, 딸의 식습관을 검열하는 태도 또한 다소 독단적인 부분이 있지만 추자 씨 입장에서는 딸을 위한 애정 어린 행동일 거예요. 하지만 상대방을 위해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사랑해서 했던 행동이 나에게는 강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돌봄과 사랑이라는 건 언제나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날씨의 변화로 표현해주신 게 무척 재밌어요. 다정한 감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마일씨! 🥰
작가님 인터뷰에서 ‘나’는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요. 엄마인 추자를 포함해 타인에게 핸들을 맏긴 채, 수동적으로 살아온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불쑥 찾아오는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이 공감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나를 잃어버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보단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드는 게 좋은 방법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현재 추자의 모습이 그래 보였어요. 고향에 내려왔지만 본가에 가지 못한 설정이 화자의 안식처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서울과 울산, 어느 곳에도 편하게 누울 곳이 없다는 게 화자를 잔잔한 심연으로 끌고가는 느낌이었어요. 물리적인 게 아닌 심리적인 고향이 없어서 항상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추자는 ‘나’의 어린시절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추자와 나는 같은 결핍을 나눠 가졌으며, 그로 인해 섭식장애을 겪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추자는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편하게 식사를 하고 어울리지 않는 타투를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었죠. 화자는 엄마의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재가 되어 사라지는 집(과거)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내가 들고 온 앨범에는 추자의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이 사진을 여기까지 가지고 온 추자 씨는 오히려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화자는 과거는 빠져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언제든 자신을 과거로 옮겨 놓는 울산을 오는 게 버거웠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화자가 이번 일을 통해 엄마처럼 나아질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트라우마와 결핍은 우리의 삶을 잠식시키기도 하지만, 전환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서 뒤죽박죽 섞이고 왜곡된 과거를 힘껏 끌어안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더불어 엄마인 추자 시점에서의 글도 보고 싶어집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가님! 오늘의 여름과 잘 어울리는 글이었어요.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소설 보다 : 여름 202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p.129),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택시를 예약한 사람처럼 여유 있게 차에 올라타면 어떨까. 그녀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줬으면 하고 바랐다. 어쩌면 우리는 도로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내 짐을 찾으러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푹신한 뒷자리에 몸을 기대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택시가 로터리를 한 바퀴 돌고 돌고 돌아서 길을 빠져나갔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p.149),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하가람, 「재와 그들의 밤」 (p.149-150),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고향. 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 쭉 살고 있는 나에게는 몹시 낯선 단어다. 지금 사는 도시가 고향이긴 하지만, 나의 일상이기도 하니까. 🖋️ 울산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은 도시였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p.129) 주인공에게 고향 울산은 애증이 담긴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한때 가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난’ 대상이 ‘추자 씨’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자 씨도 아마 분명히 자신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추자 씨에게서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이라는 표현을 봤을 때 주인공은 추자 씨에게 큰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힘들 때 생각나는 게 고향인 것처럼, 가장 먼저 기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고향에 내려왔지만, 산불 때문에 원래 집이 아닌 ‘덕미 씨’의 집에 머무르게 된 것도 묘하다. 내가 모르는 나날들을 함께 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조금 외로워 보인다. 고향의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춘자 씨는 오랜만에 만난 나와 함께 하기는커녕 덕미 씨와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는 상황. 겉으로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자주 닦아주지 않으면 식물의 숨구멍을 막는 물때와 먼지. 겉보기에 깨끗해 보였는데 막상 닦으니 새까만 먼지와 죽은 벌레들로 더러운 불투명한 형광등판. 어쩌면 주인공의 마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아 쌓인 지도 몰랐던 먼지가 부옇게 부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추자 씨에게 받은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 추자 씨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p.145)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추자 씨가 그 시절을 빠져나온 사람처럼 보였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결국 ’울산의 추자 씨‘도 주인공이 ‘지나가야 할 한 시절’ 같은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p.149-150) 택시를 타고 떠나가는 대신 택시를 떠나보낸 주인공은 자신의 두 발로 걷는 것을 택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떠나보내야 할 한 시절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 나는 바랐다. (...)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p.150-151)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인공은 모든 것을 불태워 재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것을 택하는 사람인 듯하다. 울산과 추자 씨라는 한 시절을 떠나보내고, 주인공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게 될까?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주 새로운 시작을 꿈꿀까? 그의 미래가 어떻든, 후회 없이 두 발로 굳건히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잔뜩 흐린 하늘의 오후에 이 글을 만났어요. 마음이 답답하고, 어쩐지 숨이 좀 막히는 습도와 기온. 날씨와 글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쓸쓸하지만 강렬한 마무리가 ‘재’라는 단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갑자기 스쳐 지나간 그 한마디는 기분을 온통 흔들어놓았다. 다시금 울산에 올 때마다 큰 용기를 내야 했던 이유를 상기했다. 이 도시에서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건물 뒤편 혹은 골목길 모퉁이에서 시시때때로 감시자가 출몰했다. 나는 옛 시절을 지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애쓰며 지난 몇 년을 살아왔으나, 그들은 과거의 내 모습만을 기억했고 그것을 바탕으 로 지금의 나를 평가했다. 몇 번 피우다 버린 담배를 발로 짓이겼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개운치 못한 냄새만 남겼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p126 ,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그 시절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제는 내 두 발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p.149-150,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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