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D-29
잠깐 현생에 정신이 팔려 책을 못 읽고 있는 사이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진전이 되었군요! 혼자 읽을 때는 의뭉스럽게 남아있던 궁금증들이 선생님들이 나눠주신 이야기 덕분에 조금 해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저는 일단 <나의 친구,스미스>를 먼저 읽었는데요.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느낌은 헬스 블로그의 포스트를 읽는 것 같단 거였어요. 왜 블로그 글처럼 읽힐까? 라고 하면, 일단 블로그 글은 그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 정보를 충실하게 전달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잖아요. <나의 친구, 스미스>도 이를테면 <헬스장 처음 가보는 초보들 필독해야 할 기구 이용법>, <나의 첫 보디빌딩 대회 도전기> 같은 제목을 달고있는 포스트 같았달까요. 그리고 보통 그런 포스트들의 특징은 매우 구체적인 정보에 더해 작성자의 적절한 감상과 비평이 중간중간 섞여 있는데, <나의 친구, 스미스> 역시 그런 맥락에서 비슷하게 읽혔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책의 재미와는 별개로 제가 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바를 <나의 친구, 스미스>에서 찾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박혜진쌤 말씀처럼 이게 “소설 전체의 문체이면서 나아가서는 소설의 소재와 주제 모두에 부합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블로그 포스트처럼 읽히는 게 결코 단점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오히려 이런 문체가 이런 주제에 더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보원쌤의 “가벼운 소설에는 가벼운 소설에 투여될 수 있는, 그것에 적합한 진정성”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만약 이 소설이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다른 문체, 다른 방식으로 쓰인다면 어떻게 쓰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저는 권여름 작가의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란 소설이 떠오르더라고요. 단식원을 배경으로 어떻게든 살을 빼고 싶어하는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과, 그들을 성공적 다이어트로 이끄는 코치들이 등장하는데요. 이 단식원이 건강 유튜브 채널과 협업해서 기획 중이던 ‘Y의 마지막 다이어트’라는 영상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주인공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얘기예요. ‘몸’에 대한 솔직한 욕망과 고민들이 교차하면서 뭔가 씁쓸한 맛을 남기는 작품인데요. 여기에 실종된 인물을 찾아가는 여정이 약간 미스터리-추리 소설처럼 펼쳐지면서 ‘소설적 재미’를 충족시켜주기도 했어요.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중에서 이토록 서늘한 절정을 본 적이 없다. 신선한 감수성과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심사위원 전원의 추천을 받은 권여름의 첫 장편소설!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의 첫 대상 수상작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가 출간되었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유리 단식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살을 빼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요즘 시대 ‘몸’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의성 있는 주제로 심사위원
최근 권여름 작가님의 <삽목>을 읽고 다른 소설을 궁금해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이 책이 <나의 친구, 스미스>와 연결되네요! 소범 기자님 말씀을 들으니 더 읽고 싶어졌어요. 장바구니에 담아 봅니다.
권여름 작가님은 “언제나 몸에서 자유롭고 싶었지만 나는 늘 실패했다. ‘과연 몸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가능할까? 그것은 왜 이렇게도 힘들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확실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소설을 읽고 난 뒤에 ‘남는 무엇’, 어떤 ‘교훈’을 찾고자 하는 것도 독자로서의 강박이 아닌가 싶고, 오히려 <나의 친구, 스미스>는 이 교훈에 대한 강박을 떨치는 데 목적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한데, 또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게, 어쨌든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 역시 어떤 자기만의 교훈을 발견하기는 하잖아요? 저는 그래서 오히려 뒷부분 주인공의 각성이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독서를 마친 사이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쭉- 읽어 오면서 많이 고개를 끄덕였네요. 저도 소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보디빌딩 대회 도전기> 포스트를 연달아 다섯 편 정도 읽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작은 성장 스토리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물론 이 책의 U노는 제 살을 깎아..근육을 조각한 몸일지라 작은 성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서인지 가끔 그런 포스트 읽는 걸 좋아하거든요. 운전면허 취득 기록이랄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취득 후기랄지... 다수의 사람들이 도전하는 목표들에서 공감대나 차이를 발견하는 게 재밌어요. 그리고 사실 그런 글들은 본격적인 키워드를 넣지 않아도 자주 걸려 나오는지라 저도 모르게 읽고 있을 때도 있고요. 이 책도 그랬던 것 같아요. 쌤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빠른 장면 전환과 가벼운 문체 같은 것들에 처음에는 저도 당황스러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아니면 뭐가 최선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일단 소설 속의 U노는 첫 보디빌딩 대회 출전이고, 이전까지의 운동이 취미였다면 '본격적'이 되어버렸고, 몸 만들기와 별개로 이전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꾸밈노동을 대회 출전을 위해 하게 되는데요. 이것들이 다 바벨의 무게만큼 U노를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것이었다고 할 때, 이 소설에 속도감마저 없었더라면 읽는 이도 그만큼 무거웠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이 함의하고 있는 시의적인 문제들과는 별개로요.
그래서 독자가 벤치프레스 밑에서 영 낑낑대지 않게 문체가 무게를 덜어주는 느낌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는데요. 이럴 줄은 알았지만(?) 마무리가 좀 아쉬움이 남았어요ㅋㅋ S코와의 재회, 그리고 우린 둘다 멋져-☆ 하는 마지막 대사에서 '맞다, 이거 일본소설이었지..'하고 어떤 전형성을 발견해버렸어요. 저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U노에게 있어 가장 큰 역경이 바로 '웃음'이었다는 거였어요. 스테이트먼트 귀걸이, 왁싱, 반짝거리는 비키니, 하이힐, 태닝, 다카라즈카 수준의 메이크업 같은 것들은 해본 적이 없지만 일단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근데 심사 대상이 아님에도 웃어야 한다는 게, 그것이 U노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 좀 좋았어요. T이와의 대화에서 "그런 건 그러니까, 근육이랑은 상관없잖아요?"하고 마침내, 실토해버리는 것도 후련했고요. 이 장면이 저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저도 <나의 친구, 스미스>에서 결말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일본 소설의 전형성이라는 것도 읽으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듣고 보니 그랬구나 싶네요 ㅎㅎ 지금 댓글을 달면서 든 생각인데, 결국 대회를 준비하는 소설이고 대회가 클라이막스에 들어가는 이상 소설의 전개 방향은 이미 매우 한정되어 있잖아요. 잘 되든가, 안 되든가, 뭐 소설의 방향처럼 포기를 하든가... 몇 개 더 있겠지만 이 정도겠죠? 대회장을 박차고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저는 여기서 어떤... 한국 영화적인...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었고... 아무튼 그래서 결국은 좀, 이 대회라는 것 자체가 마지막에는 비중이 좀 적어지는 식으로 소설이 구성되었어야 더 맞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결국 <나의 친구, 스미스>의 결론은 대회가 아닌 자기 자신만의 운동이 더 중요하다, 인데 소설은 반대로 대회에 모든 하중이 걸려 있게끔 구조화 되어 있어서요...
아마 유정 평론가님이 이야기한 이 지점 때문에, 수상작이 아니라 후보작에 그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부분이 우리가 소설에 기대하는 보편적 깊이가 작동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웃음과 관련해서는 저도 정확히 같은 이유로 좋았어요 ㅎㅎ
<취미는 사생활>는 역시나 시점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올 줄 알았어요*ㅇ*... 저도 3인칭->1인칭으로 변하는 부분에서 잠시 브레이크가 걸렸다가 그때부터 쭉 '이 사람 뭐지?'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가가 의도한 건가? 싶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해도 이 급격한 시점 변화를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히 설득이 되지는 않지만요. 어쨌거나 저는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다가, 목소리를 가진 한 사람에 대한 의심 때문에 중간 이후부터는 거의 잊고 말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좀 압도된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아무 목적 없이 자기 돈과 시간과 노동력을 다 써가며 우호적일 수 있어?' 하며 잔뜩 의심했는데, 이상하게 은협은 '나'에 대한 별다른 의심이 없더라고요? 저는 이게 가장 의문이었는데...생각해보니 은협은 누구를 의심할 조금의 여유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네 아이와 보일 씨만 챙기기에도 바쁘니까. 은협이 누군가를 의심할 여유도 없어서 그냥 '나'를 믿어 버린 거라면,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나'에 대한 의심을 조금이라도 지울 수 있게끔 한 게 이 서술 방식이 아닐까 싶었어요. 기화 평론가의 말씀처럼 "여러 사람의 관점을 드나들면서 그들의 인지 방식을 모두 안다는듯 서술하다가도, 다시 시치미 떼며 ‘나’의 위치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효과"가 독자의 여유를 뺏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전능한 것처럼, 또 '나'의 내밀한 구석을 보여줄 듯 말 듯하며 독자가 지금의 '나' 말고는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만드려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만일 정말로 의도된 거라고 한다면 완전 성공이었어! 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유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튼 저는 화자의 언변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어쩐지 5장에서부터는 약간 푸슈슈-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결말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좀 궁금하고요! 소설의 완성도나 개인적인 만족도를 평가하는 데 있어 결말도 중요한 요소니까요.
저는 일단 결말에 그 몰아치는 느낌이 참...좋았거든요 ㅎㅎ 그런데 사실 여러분들께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이 소설에서 누구에게 이입했는지였어요. 저는 독자로서는 거의...은협 정도의 인물이라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 아니 내가 믿어주면 신뢰 받는 화자잖아...? 거의 이런 정도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은협이 아니라 당연히 1인칭 화자인 아랫집 언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모든 마음을 바친다'고 했을 때 그게 아랫집 언니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진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엄마, 지난번에는 미안했어. 하지만 엄마가 '여자답지 못하다'고 평가한 보디빌딩이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 이 대회는 세상과 동등하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젠더를 의식하는 자리다. '여자다움'을 추구하라고 이렇게까지 요구하는 자리를 나는 달리 떠올릴 수 없다. 사람들은 보디빌딩을 '맨몸 하나로 싸우는' 대회라 간주하고, 그 순수성을 칭송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칭찬에 머쓱해지고 만다.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이시다 가호, 『나의 친구, 스미스』, 134쪽.
사실 시점 문제도, '사기'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작품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장치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누구한테 사기를 친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고요. 말하자면 <조커>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가 정신병원에 있는 장면은 '이 모든 게 망상이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는 만드는 장치이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결국 작품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암시가 약간의 도피성으로만 느껴지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아랫집 언니는 '사기'라는 형식 속에서만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삶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이나 자기 자신에게도 위태로운 것으로 느껴져요. 물거품 속에서만 살 수 있고 자신이 딛을 수 있는 땅이 없는 사람인데,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과응보처럼 딱 맞게 처벌자가 나타났다는 해석보다는, 아랫집 언니가 느끼고 있는 그런 항상적인 불안이 형상화된 모습으로 받아들였어요. 물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0이 아니고, 그게 그 환상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슈레딩거처럼 50대 50까지는 아니라고 본 거죠. 저는 그냥 이 소설이 아랫집 언니가 그 죽음의 환상을 맞닥뜨리는 데까지의 여정으로 읽혔고, 그래서 이미 어떤 추락해가는 과정을 보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는 그렇게 읽었네요...ㅎㅎ;
다 읽은 뒤에 나만의 감상으로 충족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너무 궁금해지는 소설이 있는데 <취미는 사생활>은 정확히 후자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의 여러 해석(?)을 듣고 보니 제가 의아했던 부분이 해소되는 것 같아 즐겁네요. (그런 점에서 독서 토론 대상 도서로 무척 적합한 작품이란 생각도 들고요. ㅎㅎ) <취미는 사생활>의 ‘이상한 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 나눠 주셨지만 조금 덧붙여보자면 저는 시점 역시 이 소설이 설정한 ‘이상함’의 여러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당황했던 것은 제목이었는데요. ‘취미’는 ‘사생활’이라는 제목에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와 설정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서, 작가가 제목에서부터 어떤 반전을 염두에 둔 걸지 궁금하더라고요. 일단 제목에서 한 번 허를 찔리고, 불륜이나 여장, 탈모, 학폭 같은 ‘매운 맛’ 설정과 작은 반전들이 계속 튀어나오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소설에 완전 휘둘리게 되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결말까지 다 읽은 뒤에는 시점을 헷갈리게 한 것도 이런 반전을 위한 장치 중 하나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점과 더불어서 이 소설에서 더 얘기 나눠보고 싶은 건 ‘문체’인데요. 냉소적인 듯 하면서도 은근 유머러스한 게, 뭐랄까 최은미 작가가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특히 육아에 대한 불안과 어린이 존재에 대한 묘사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요.
은협은 머리핀 코너로 가 선택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기쁨으로 부푸는 게 느껴졌다. 고민하는 딸애의 옆얼굴이 너무 귀여웠다. 빨갛고 뾰로통하고 거의 땀까지 흘릴 기세였다. 작고 무거운, 밀도 높은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릴지도 몰랐다. 아아, 이 애를 괴롭힐 때 은협은 가장 살아 있었다.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장진영 소설 <취미는 사생활> 18p
그 외에도 가정 생활을 '조별 과제'로 묘사한다거나, " "너희 아빠는," 나는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소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못생겼거든." 혹은 "집에서 밥도 안 먹으면서 나무 수저는 왜 열 세트나 필요해요?" "대가족을 이루려고요. 폐경 전까지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처럼 괜히 피식거리게 되는 문장이 많았는데, 캐릭터의 성격을 만들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작가님이 기본적으로 이런 농담 같은 문장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ㅎㅎ
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문장 안에 정치적 풍경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내서 시대 소묘를 한다는 점이었어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YTN 채널에서 양상추 빠진 맥도날드 햄버거 소식이 나왔다"라든가, "갱신할 경우 전세금을 5퍼센트 이상 올릴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미세먼지 없는 가을 하늘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 공장이 멈춘 터였다.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을 규제하기까지 했다. 중국은 동계올림픽 때 전 세계인에게 베이징의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보일 씨는 테슬라 주식을 사서 재미를 보았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가 아니라, 전기차를 만들면서 획득한 탄소배출권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동료에게 주워들은 것이었다. 탄소배출권으로 전기차 사업의 전자를 메우는 형세였다." 이런 문장들을 보면서 작가님이 저만큼 (ㅋ) 뉴스 되게 열심히 보시나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애초에 전세 사기, 층간 소음, 학폭 같은 소재를 택한 것부터도 그렇지만 작가의 말에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번 더 덧붙이는 것을 보면서, 실제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을 중첩시키는 데 확실히 깊은 관심이 있는 작가구나 싶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소설을 다시 읽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제목에 대해서라면 취미는 사생활 특기는 사기, 라고 혼자 되뇌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결론에 대해서라면, 반전의 효과라든지 충격 요법의 차원, 나아가 전세 사기 같은 '국민정서'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한 반면, 결과가 하나의 정보로 주어진 거지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친구, 스미스>와 비교하면 상당히 상반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나의 친구, 스미스>가 예상 가능한 안정적 결말이었다면 <취미는 사생활>의 경우 예측하지 못했던 불안정한 결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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