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조혜은 시집 <눈 내리는 체육관>이란 시집을 편집했었는데요, 체육관 안에서는 자기 몸 에 집중하느라 다들 아무 말도 안 하고-실은 몸으로만 말하고- 체육관 밖으로는 세상을 다 덮을 듯한 눈이 조용하게 내리고.. 치열하게 고요한 장면이 정말 좋았거든요. 제가 한때 헬스장 가서 혼자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무리 짓지 않고 혼자 조용히, 옆사람한테 별로 신경쓰지 않고, 개인 운동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롭고 마음에 들 수가 없더라고요. 미학적이기까지 한 풍경이어서 좋아하던 시간이었어요.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D-29
박혜진
박혜진
그런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런 몰입감도 '오염'되기 시작하고, 몸을 향한 단순한 열정도 침해당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헬스와 뷰티, 주체와 객체, 몰입과 방해 등이 서서히 착종돼 갈수록 시작할 때의 깨끗한 고립이 변질돼 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클래식'해서 놀랄 정도였어요. 긴 머리, 좋은 피부, 제모, 12센티미터 하이일.. 계속해서 보디빌더 대회 찾아보며 읽고 있는 중이에요 ㅎ
강보원
말씀하신 '오염'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시다 가호가 소설 속에서 형성시키는 포인트들 중 하나가 저에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어떤 거냐면, 주인공인 'U노'는 어쨌든 보디빌딩을 하고 싶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정진'이 최우선의 가치인 사람이잖아요. 'O시마'는 그런 주인공의 일종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데 귀걸이나 제모 등 사회적 여성성의 압력을 넣는 사람인 E토 역시 주인공의 스승이고, 그 역시 '정 진'이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무엇인가를 해낸 사람으로 묘사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러니까 '육체적 강함을 향한 순수한 정진 vs 그것을 방해하는 외부의 사회적 여성성의 강요'가 아니라, 이 정진 내부에 이미 분열이 있는 점이요. 그래서 U노는 귀걸이 등에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그것도 정진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결정적으로는 '그래도 대회는 나가야 하잖아'라는 코치의 말에 수긍하는 부분도 있고요.
박혜진
보디빌더 출전기를 읽으며 여성의 몸에 대한 클리셰를 이토록 많이 접하게 될 줄은 진정으로 몰랐던 1인입니다..
강보원
그래서 U노가 처한 딜레마는 그가 단순히 보디빌딩에 대한 열정을 밀어붙임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는데, 왜냐하면 '보디빌딩에 대한 열정' 속에 U노가 싫어하는 그런 사회적 여성성이 이미 침투해 있고, 그것도 심지어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침투해 있으니까요. 예컨대 머리를 왜 길어야 하느냐, 라고 하면 '여자는 그래야 하니까'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근육이 단련되지 못한 등 부분을 가렸다가 갑자기 노출시킴으로써 대비효과를 준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거죠. 그렇게 대립의 전선을 꼬아놓은 점이 저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졌고, 주인공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아주 궁금해하면서 소설을 읽어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대립이 심화되어가면서 결국은 '보디빌딩'이라는 것도 하나의 장르이고, 그 자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자율적 대상이라는 점, 순수한 몸의 단련과 보디빌딩의 간극이 점차 드러나는 것도 좋았고요.
강보원
왠지 이 소설에 대해 할 말이 이것저것 너무 많은 것 같은데 ㅎㅎ; 좀 다른 이야기지만 댓글을 쓰다보니 더욱 궁금해진 점이 있었는데요. 왜 이 소설에서 이름들이 다 어떤 가명이나 코드처럼(U노, O시마, E토 등등) 표기가 되어 있는 걸까요? 어떤 라이트한 느낌과 익명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고, 뭔가 허술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까 궁금해요. 이 책에 유독 일본 만화 작품이 많이 인용되는데, 그런 것과도 같은 결인 것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표현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저는 이제 <취미는 사생활>을 읽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박혜진
보원 평론가님이 이야기한 내용을 상기해 가면서 어젯밤에 책을 다 읽었어요. 짧다면 짧고, 또 단순하다면 단순한 소설 같은데, "정진 내부에 이미 분열"이 있다는 그 지점에서, 또 "대립의 전선을 꼬아놓은" 지점에서, 이 소설을 단순하거나 짧은 소설로 정리할 수 없게 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몸을 향한 몰입감과 대화에 대한 위화감 속에서도 대회에 나갔던 선택이 첫 번째 '절정'이었다면, 막상 대회에 나가 새로운 차원의 분열과 마주하게 된 것이 두 번째 '절정' 같았어요.
박혜진
예를 들면, 대회에서 주인공은 3위를 하는데, 1위를 한 선수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실격되잖아요. "근육에서 약간 수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 이 대회에서 가치를 두는 '내추럴한 근육'이나 '클린한 근육', 말하자면 '드라이한 질감의 근육'에 반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 이 대회와 대회를 둘러싼 몸에 대한 인식의 아이러니함을 잘 보여 주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어요. 모종의 인위적인 개입을 거부하는 자연스러운 근육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으로, 억지 미소라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공존하는 현실이 상당히 정확하다, 하면서 읽었어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웃으라는 건 진짜 못견디겠어! 하고 폭발하는 지점이 많이 공감되기도 했고요. 저도 진짜 미소의 세계가 싫거든요..
박혜진
<나의 친구, 스미스>는 보원 평론가님 이야기처럼 정말 할 말이 이것저것 너무 많은 소설 같아요!!
박혜진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되고 싶다."는 것이 저한테는 상당히 심오하게 다가왔어요. 문학과 철학의 차원이 아니라 과학과 체육의 차원으로 인간의 변화에 대해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요.
박혜진
“ 그후 나에게 남겨진 것은 심플한, 그렇기 때문에 구체성이 결여된, 그러면서도 절실한 한 가지 소망이었다. 아아, 다른 생명체가 되고 싶다. 나는 그런 사춘기 같은 소망을 품고서 삼십대에 접어들었다.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보다 약간 더 강한 정도였을지라도. ”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 나의 친구, 스미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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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다른 생명체가 되고 싶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않는, 초연한 생명체가 되고 싶다. 그렇다, 그런 충동이 2년 전 G헬스장의 문을 두드리게 하지 않았던가.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 나의 친구, 스미스,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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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정
여러분들의 댓글을 읽으며 조금 늦게, <나의 친구, 스미스>를 쫒아가는 중입니다! 책장을 펼친 순간 땀냄새가 나는 것 같은..이 느낌 나쁘지 않네요. 잘 모르는 동작들은 유튜브를 찾아 보기도 하고요. 이게 맞나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며 전에 없던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네요. 읽기의 자세부터가 다른 책이랑은 달라져요ㅋㅋ 서둘러 읽고 다시 댓글 남기겠습니다! *.*)...
박혜진
네 저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읽었어요. 약물들도 많이 검색해 보고 ㅎㅎ 그나저나 내내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 하나를 평론가님들에게도 질문하고 싶어요. <나의 친구, 스미스>의 소설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요?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밝히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요. 단순하지 않은 갈등 상황을 단순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데 충분히 동의하면서도, 너무 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묘사의 단순함을 마주할 때마다 음, 쉽게 쓴 소설이군,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또 그 생각을 뒤집기도 했는데, 바로 그 지점이 소설 전체의 문체이면서 나아가서는 소설의 소재와 주제 모두에 부합하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강보원
저도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ㅎㅎ 저 같은 경우에 마음에 걸렸던 건 오히려 어떤... 넷플릭스적인 면모였는데요... 그러니까 소설 완전 초반부에 원래 있던 G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떠드는 남자 세 명이 있잖아요. 그 부분을 읽을 때 그냥 재미있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게 거의 곧바로 주인공이 N헬스장으로 옮기는 계기 중 하나가 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소설에 어떤 전개로부터 자유로운 부분이 거의 없고, 모든 것이 다시 활용되며 연결이 되는...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쉬웠어요. 속도감이 있는 건 좋은데 정말 너무 뼈대만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혜진 평론가님이 지적하신 대로, 그게 소설의 소재와 주제에 부합하는 면이 있어서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강보원
특히 저는 이 소설에서 정말 재미있었던 부분이, 주인공이 추구하는 보디빌딩 종목이 지닌 근육에 대한 '진정성'이 소설 내에서 S코가 매년 참가해온 PP(퍼펙트 프로포션)대회와 대립이 되잖아요. 소설 대목을 옮기면 "PP대회는 우리 눈에는 미인대회의 아류쯤에 해당하는 '느슨한'대회"이고, "우리는 최종적으로 'PP대회보다 BB대회가 한 수 위'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분명 서로의 자기긍정을 보강하기 위한 허세도 섞였겠지만, 대화하는 중에는 자못 그 말이 진실처럼 여겨졌다." 같은 진술도 있고요. 저는 이게 소위 문학성과 대중성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히기도 했어요. 어쨌든 문학성을 추구한다고 말해지는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대중에 인지도가 많이 있지 않고,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는 작품을 보고 '저건 진짜가 아니야'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들을 '분명 서로의 자기긍정을 보강하기 위한 허세도 섞였겠지만, 대화하는 중에는 자못 진실처럼 여겨진다'라고 표현한 게 너무, 뭐랄까... 적확하다고 할까요... 그 말이 실제로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어떤 다른 무언가를 남겨두는...
강보원
그런데 보디빌딩(진정성) vs 퍼펙트 프로포션(대중성)으로 출발했던 주인공의 인식이, 소설이 진행되고 나면 이 보디빌딩 내부가 이미 진정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측면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결말은 오히려 PP에 최선을 다하던 'S코'를 긍정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문학이라고 한다면, 어떤 '걸작'이 갖추어야할 자격 같은 것, 치밀한 묘사나 뛰어난 서술... 그런 것이 '우락부락한 근육'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이 소설이 결국에는 그 우락부락한 근육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동경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요. 우리가 보디빌딩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우락부락한 근육이 없다고 해서 이 소설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적절할까? 같은 의문이 들었던 거죠..
강보원
어쨌든 가벼운 소설에는 가벼운 소설에 투여될 수 있는, 그것에 적합한 진정성이라는 것이 있고 기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나의 친구, 스미스>는 애초에 자신이 목표로 한 부분이 뚜렷하고 그 부분에서 아주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히려 조금만 더 가벼운 부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아쉬움은 조금 남지만요. 그런데 저에게 끝끝내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사실 정말 무거운 주제를, 이 소설이 지닌 가벼움을 통해서만 다룰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아요. 확실히 굉장히 멋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강보원
그리고, 이제 <취미는 사생활>을 다 읽어서 우선 그에 대한 간단한 감상도 남겨둡니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을 요약하자면 초반부가 이상하고, 후반부에 빠져드는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초반부가 이상하다는 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계속 하며 읽어야 했다는 뜻인데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이 소설의 화자인 '김민희'(작가의 말)과 '은협'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었고, 특히 화자가 은협네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서적 거리가 어떤 것인지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우며 읽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뭔가 굉장히 가까운 관계인 것 같은데,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고. 그런데 그 상황을 바라보는 화자는 은협네를 도와주면서도 어떤 차가운 거리감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뭔가 서술이 굉장히 객관적이면서 유머 같은 것들이 섞여 있어서. 이게 무슨 상황일까?? 라고 생각하며 읽어가다가... 후반부에 김민희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는 몰입하며 읽어갔던 것 같아요. 마지막 반전들이야 뭐, 너무 능숙하다고 생각했고요.
앞으로 더 함께 이야기해갈 내용이 많겠지만, 저는 이거 하나가 궁금해서 먼저 좀 여쭤보고 싶어요. 이게 1인칭 소설인데, 마치 3인칭처럼 서술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실제로 화자가 볼 수 없는 일이 그냥 1인칭으로 서술이 되는데... 저는 그래서 소설을 열면 처음 나오는 은협의 병원 장면이 끝나고 나서 서술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그냥 1인칭 화자가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을 모르고 있는 채로 그냥 그 장면을 서술한 것이더라고요. 이게... ㅎㅎ; 이게 맞는 건가...? 솔직히 이런 생각이 좀 들긴 했거든요. 제가 고지식해서 그런 것인지... 초반부에서 느꼈던 혼란은 위에 언급한 장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시점 문제가 사실 꽤 컸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했습니다...
강보원
아고. 소설 화자 이름을 착각했네요 ㅎㅎ; 이름이 안 나온 것 같아서 끝에 작가의 말 읽고 주인공이라길래 민희였구나~ 했는데 은협네 막내 이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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