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단 결말에 그 몰아치는 느낌이 참...좋았거든요 ㅎㅎ 그런데 사실 여러분들께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이 소설에서 누구에게 이입했는지였어요. 저는 독자로서는 거의...은협 정도의 인물이라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 아니 내가 믿어주면 신뢰 받는 화자잖아...? 거의 이런 정도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은협이 아니라 당연히 1인칭 화자인 아랫집 언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모든 마음을 바친다'고 했을 때 그게 아랫집 언니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진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D-29
강보원
소유정
“ 엄마, 지난번에는 미안했어. 하지만 엄마가 '여자답지 못하다'고 평가한 보디빌딩이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 이 대회는 세상과 동등하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젠더를 의식하는 자리다. '여자다움'을 추구하라고 이렇게까지 요구하는 자리를 나는 달리 떠올릴 수 없다. 사람들은 보디빌딩을 '맨몸 하나로 싸우는' 대회라 간주하고, 그 순수성을 칭송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칭찬에 머쓱해지고 만다. ”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 이시다 가호, 『나의 친구, 스미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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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사실 시점 문제도, '사기'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작품의 근거를 무너뜨리는 장치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누구한테 사기를 친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고요. 말하자면 <조커>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가 정신병원에 있는 장면은 '이 모든 게 망상이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는 만드는 장치이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결국 작품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암시가 약간의 도피성으로만 느껴지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아랫집 언니는 '사기'라는 형식 속에서만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삶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이나 자기 자신에게도 위태로운 것으로 느껴져요. 물거품 속에서만 살 수 있고 자신이 딛을 수 있는 땅이 없는 사람인데,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과응보처럼 딱 맞게 처벌자가 나타났다는 해석보다는, 아랫집 언니가 느끼고 있는 그런 항상적인 불안이 형상화된 모습으로 받아들였어요. 물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0이 아니고, 그게 그 환상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슈레딩거처럼 50대 50까지는 아니라고 본 거죠. 저는 그냥 이 소설이 아랫집 언니가 그 죽음의 환상을 맞닥뜨리는 데까지의 여정으로 읽혔고, 그래서 이미 어떤 추락해가는 과정을 보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는 그렇게 읽었네요...ㅎㅎ;
범한소
다 읽은 뒤에 나만의 감상으로 충족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너무 궁금해지는 소설이 있는데 <취미는 사생활>은 정확히 후자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의 여러 해석(?)을 듣고 보니 제가 의아했던 부분이 해소되는 것 같아 즐겁네요. (그런 점에서 독서 토론 대상 도서로 무척 적합한 작품이란 생각도 들고요. ㅎㅎ)
<취미는 사생활>의 ‘이상한 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 나눠 주셨지만 조금 덧붙여보자면 저는 시점 역시 이 소설이 설정한 ‘이상함’의 여러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당황했던 것은 제목이었는데요. ‘취미’는 ‘사생활’이라는 제목에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와 설정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서, 작가가 제목에서부터 어떤 반전을 염두에 둔 걸지 궁금하더라고요.
일단 제목에서 한 번 허를 찔리고, 불륜이나 여장, 탈모, 학폭 같은 ‘매운 맛’ 설정과 작은 반전들이 계속 튀어나오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소설에 완전 휘둘리게 되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결말까지 다 읽은 뒤에는 시점을 헷갈리게 한 것도 이런 반전을 위한 장치 중 하나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범한소
저는 시점과 더불어서 이 소설에서 더 얘기 나눠보고 싶은 건 ‘문체’인데요. 냉소적인 듯 하면서도 은근 유머러스한 게, 뭐랄까 최은미 작가가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특히 육아에 대한 불안과 어린이 존재에 대한 묘사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요.
범한소
“ 은협은 머리핀 코너로 가 선택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기쁨으로 부푸는 게 느껴졌다. 고민하는 딸애의 옆얼굴이 너무 귀여웠다. 빨갛고 뾰로통하고 거의 땀까지 흘릴 기세였다. 작고 무거운, 밀도 높은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릴지도 몰랐다. 아아, 이 애를 괴롭힐 때 은협은 가장 살아 있었다. ”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 장진영 소설 <취미는 사 생활>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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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소
그 외에도 가정 생활을 '조별 과제'로 묘사한다거나, " "너희 아빠는," 나는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소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못생겼거든." 혹은 "집에서 밥도 안 먹으면서 나무 수저는 왜 열 세트나 필요해요?" "대가족을 이루려고요. 폐경 전까지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처럼 괜히 피식거리게 되는 문장이 많았는데, 캐릭터의 성격을 만들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작가님이 기본적으로 이런 농담 같은 문장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ㅎㅎ
범한소
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문장 안에 정치적 풍경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내서 시대 소묘를 한다는 점이었어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YTN 채널에서 양상추 빠진 맥도날드 햄버거 소식이 나왔다"라든가, "갱신할 경우 전세금을 5퍼센트 이상 올릴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미세먼지 없는 가을 하늘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 공장이 멈춘 터였다.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을 규제하기까지 했다. 중국은 동계올림픽 때 전 세계인에게 베이징의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보일 씨는 테슬라 주식을 사서 재미를 보았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가 아니라, 전기차를 만들면 서 획득한 탄소배출권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동료에게 주워들은 것이었다. 탄소배출권으로 전기차 사업의 전자를 메우는 형세였다."
이런 문장들을 보면서 작가님이 저만큼 (ㅋ) 뉴스 되게 열심히 보시나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애초에 전세 사기, 층간 소음, 학폭 같은 소재를 택한 것부터도 그렇지만 작가의 말에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번 더 덧붙이는 것을 보면서, 실제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을 중첩시키는 데 확실히 깊은 관심이 있는 작가구나 싶었어요.
박혜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소설을 다시 읽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제목에 대해서라면 취미는 사생활 특기는 사기, 라고 혼자 되뇌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결론에 대해서라면, 반전의 효과라든지 충격 요법의 차원, 나아가 전세 사기 같은 '국민정서'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한 반면, 결과가 하나의 정보로 주어진 거지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친구, 스미스>와 비교하면 상당히 상반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나의 친구, 스미스>가 예상 가능한 안정적 결말이었다면 <취미는 사생활>의 경우 예측하지 못했던 불안정한 결말이랄까..!
박혜진
그런데 두 작품 중 어떤 작품을 이 계절의 소설로 꼽을지 고민할 때, 소범 기자님의 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네요. <취미는 사생활>이 독서토론하기에 좋 은 소설이라는! 더불어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궁금한 걸 작가한테 물어볼 수 있다는 것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나의 친구, 스미스>와 비교해 인물들이 확실히 더 이상하고 재미있어서 작가한테 궁금한 게 많아지는 소설이었거든요.
범한소
ㅎㅎ 작가한테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다면 전 왜 하필 '새콤달콤' 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그냥 맥거핀인가 싶었는데, 어쩌면 정말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전에 선생님들은 이 '새콤달콤'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도 궁금해요.
박혜진
새콤달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식도 없이 상당히 타당한 군것질거리라고 생각해 버렸어요.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데 한번 생각나면 필사적이게 되는 추억의 아이템으로 무척 적절해 보였달까, 도처에 그런 센스가 있었고, 그게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기도 했어요.
박혜진
그나저나 우리 대화 시간이 5일 남았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네요. 이제 두 권 중 어떤 책을 골라서 독자들과 같이 이야기할지 정해 볼까요?
소유정
새콤달 콤은..약간 학창시절...새학기에 만난 어색한 친구에게 마이쮸 먹을래? 하는 것 같은...사실 없어도 그만인데 누군가 그런 거 하나 내밀면 되게 반갑잖아요. 주거나 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지 않고요. 고마워하는 은협에게 그냥 나중에 새콤달콤이나 하나 사줘~ 하는 식으로 미안함을 덜어 주려는...고도의 안심하게 만들기 수법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건 좀 과한 해석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ㅋㅋ 근데 새콤달콤이 나올 때마다 살짝 무거운 분위기가 환기되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소유정
벌써 7월도 이렇게 끝나가네요... 두 권의 책 중에서 저희 안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 건 <취미는 사생활>인 것 같아요. 다른 독자분들은 또 어떻게 읽으셨을지, 저희와 생각이 다르다면 어느 부분에서 다른지도 좀 궁금하고요!
박혜진
<취미는 사생활>의 아이템들을 두고 이것저것 해석하게 되는 것도 의외의 재미네요! ㅎㅎ 그나저나, 제가 착각한 것이 있어서 정정해요. 저희가 같이 읽은 두 권의 책 중 한 권을 정하는 게 아니었네요 ^^;; 이 계절의 책으로 두 권을 선정해 읽었고, 8월에 진행하는 소전서림 오프라인 현장에서는 이 두 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이에요. 한 권을 또 뽑는 논의는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어요 !!
박혜진
월요일 모두 잘 시작하고 있나요? 느린 듯 빠른 듯, 어색한 듯 익숙한 듯했던 두 달이 거의 다 지나갔네요. 생소한 형식인 탓에 낯설기도 했지만 '책 얘기'라는 단어에 기댄 대화여서 그런지 편안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모두 어땠나요? ^^ 항상 제가 읽은 소설에 대해 판단하지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또 어떤 소설이 한 시대를 견인하는 소설이 되는가, 라는 생각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지속적으로 같이 하는 것의 미덕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대화하면서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취미는 사생활도, 나의 친구 스미스도. '엄청나게 동시대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두 소설이 선택한 상반된 방식을 비교하며 읽는 즐거움이 컸어요. 한쪽이 다른 한쪽의 독해를 자극해 주는 방식이었는데, 시작할 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라 더 재밌었어요.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네요 :)
소유정
어느덧 벌써 두 달이 지났군요! 직업 특성상 언제나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대화라고 할만한 것이었나?를 생각하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는 공감도 하고, 제 생각을 말하기도 하면서 정말 대화를 하는 느낌이라 좋았고요. 온라인 상에서 하는 대화인데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아 좋았어요. 두 달이라는 시간이 그래서 더 짧게 느껴졌는지도요! 지금 이 시대에 가깝게 붙어 있는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범한소
이렇게 편안하게 책 얘기 할 수 있다니,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 사석에서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도 이 대화들이 기록되지 않고 그냥 흩어져버리는 게 아쉽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렇게 활자로 남길 수 있어 무척 소중한 기분이에요.
여러 선생님들의 이야기 들으며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박혜진 선생님 말씀처럼, 의도하진 않았지만 ‘엄청나게 동시대적인 소재’를 ‘상반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두 소설이라서 정말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이야기는 결코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이야기를 읽을 독자 수만큼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희 대화를 함께 봐주셨을 다른 여러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전기화
벌써 두 달이 흘렀다니…! ㅎㅎ 두 소설에 관하여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나의 친구 스미스>는 이리저리 구부러지다가 그냥 튕겨져나오는 경쾌함이, <취미는 사생활>은 화자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경험이 좋았습니다. 대화가 쌓이는 과정에서 더 마구마구 대화를 잇지 못한 것이 스스로에게 아쉽기도 하지만, 아쉬움은 또다른 곳에서의 즐거움으로 바뀔 수도 있을까요^^ 두 소설 모두 여름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도 느꼈는데, 그건 지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까 싶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 두 소설과, 선생님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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