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D-29
걸작들은 많이 탄생하는 시대가 따로 있는 걸까요, 아니면 시간에 따라 꼬박꼬박 일정한 비율로 나오는 걸까요. 고전은 고립된 천재의 머릿속에서 어느 순간 뚝딱 튀어나와 갑자기 불멸의 지위를 얻는 걸까요, 아니면 창작자가 영감을 받고 작품이 발견되는 복잡한 비평공동체 안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요.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답이 명확한 질문들입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은 이렇게 던지게 됩니다. 지금 한국은 시간을 버틸 작품을 풍성하게 탄생시키는 사회인가요? 한국문학 독서공동체는 잠깐의 흥행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목표로 삼는 작가를 응원하고, 그들이 긴 호흡으로 쓴 작품을 시간을 들여 충분히 검토하고 있는지요? 소전문화재단은 2016년 12월 설립 이래 다양한 독서 장려 활동과 작가 지원 사업을 벌여 왔습니다. 특히 시대를 넘어서는 장편소설을 바라는 마음으로 장편을 쓰려는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과 취재비, 특별 고료를 후원하는 〈문학과 친구들〉, 집필 공간을 제공하는 상주작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왔으며, 문학 레지던시도 설립 준비 중입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이 계절의 소설]은 이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을 고르고, 그에 대한 다양한 비평과 논의를 진행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6명의 평론가들이 모여 3개월마다 두 차례씩, 여기 그믐에서 독서모임을 열고 29일간 좌담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발견과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이 모임은 두 번째 모임으로, 지난 첫 번째 모임에서 선정된 2권의 책을 같이 읽고, 그 소설에 대하여 6명의 평론가들이 깊은 비평과 논의를 진행합니다.
다들 주말 잘 보내고 있나요? 드디어 본격적으로 같이 읽는 시간이 왔네요! 이제 두 권의 책을 읽어 나가면서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대망의 '이 계절의 장편소설'을 선택해 보겠습니다^^ 소설 읽기 전에 저는 소전서림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달의 소설 한줄평들도 재밌게 봤어요. 주제의 보편성, 구성의 탁월함, 문체의 예술성, 인물과 사건의 새로움, 해석의 다양성..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서 각각의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정돈된 기준 같더라고요. 한줄평 받은 작품에도 양극화가 좀 뚜렷해 보였는데, <취미는 사생활>은 인기가 상당하더라고요. 반면 <나의 친구, 스미스>는 신청해 읽은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 두 권을 같이 읽는 데 대한 기대가 큽니다.
<취미는 사생활>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독자의 평가에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메시지와 몰입력에 대한 언급이 있더라고요. 이 글을 보고 문득, 저희가 읽을 두 권의 소설이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새로운 인물과 사건들로 그려낸 아시아의 두 소설(?)로서, 미묘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솟더라고요. 몸과 부동산.. 여지없이 힙하거나 보편적인 수 있는 소재니까요!
<나의 친구, 스미스> 3분의 1 읽었는데, 독특하네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투박하고, 또 비소설적인 것 같은데, 계속해서 읽게 되는 매력이. 3분의 1쯤 지나니 몸에 대한 비유나 사색 같은 것도 조금씩 등장하고요. 몸에 대한 담론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근성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니! ㅎ
몸은 가장 정직한 타인이다. 신체를 혹사함으로써 얻어지는 사고의 셧다운. 나는 나날이 강인해져가는 신체는 물론이고, 그 진공지대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이시다 가호, [나의 친구, 스미스], 40쪽.
2016년 한국에 출판됐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편의점 인간>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도 받아요. 사랑을 비롯한 인간 관계의 불안정한 요소들 말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꼈던 편의점 인간의 자기 몰입 같은.
더운 금요일 오전이네요! 한 주가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저희의 선정도서를 아직 펼쳐보진 못했지만 이번 주말에 드디어 읽을 짬이 날 것 같아 기대중이랍니다. 저도 소전서림에서 보내준 뉴스레터를 통해 먼저 <취미는 사생활>과 <나의 친구, 스미스>를 읽어본 독자분들의 반응을 살펴봤는데요, 한줄평을 읽고 나니 저희 선정이 탁월(?)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ㅎㅎ 저는 '취미는 사생활' 한줄평 중에 "내 집 아닌 집에 사는 우리는, 늘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이 인상깊었는데요. 한국사회에서 '집' 혹은 '부동산'은 소설 배경으로 쓰기에 적합하게 기이해진 것 같아요. 더불어서 최근 부동산을 소재로 다룬 다른 여러 소설들도 떠올랐는데요. 2021년에 출간된 최양선 작가의 <세대주 오영선>이나, 2022년도에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서영동 이야기> 같은 책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단편 소설 중에는 창작과비평 2021 겨울호에 실린 김애란 작가의 <좋은 이웃>도 생각 났고요. 이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제가 당시에 쓴 리뷰도 남겨놓을게요 ㅎㅎ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20909300004172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12709270005674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10309370003831
세대주 오영선주인공 오영선(29세). 6개월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동생과 둘이 살면서 세대주가 되었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어느 날, 엄마의 장롱 속에서 16년 전 만들어진 청약 통장을 발견하게 된다. 청약의 ‘ㅊ’자도 모르던 영선은 그 통장은 본인과 상관없는 것이라 여긴다. 아파트를 분양받을 돈도 없거니와, 집을 꼭 사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전세로 살면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삶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영동 이야기“이 소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 _작가의 말 《82년생 김지영》으로 한국 여성 서사의 현대적 반향을 일으킨 조남주 작가의 신간 《서영동 이야기》가 출간된다.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예리하게 파고들며 독자에게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선사했던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오늘날 주요한 화두인 부동산 문제를 통해, 하루하루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현대인의 투명한 분투와 보통의 욕망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책은 2020년 여름 출간
창작과 비평(2021년 겨울호)
책이 도착해서 <나의 친구, 스미스>를 읽고 있는데요 ㅎㅎ 시작이 정말 재밌네요. 소설 시작하고 7페이지 동안 어떤 서사 진행도 없고 대화도 없고 그냥 운동하는 내용만 나오는데, 쇠로 된 바벨이 잡을 때 "손에 선뜩한 냉기를 전해주는" 것을 놓치지 않는 식으로, 헬스를 해본 사람들이면 공감할 법한 디테일들을 가지고 초반부를 끌어가네요. 혼자 헬스장 와서 운동하는 직장인인데 그러면 실제로 말할 일도 거의 없다는 부분, 운동할 때 스스로의 몸이나 자세에만 집중할 때의 묘한 고립감 같은 것도 의식한 서두 같아요. 이 부분이 분량상으로 아주 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 드문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최근에 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도 전반적으로 이런 고요함이 깔려 있었는데(물론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청각 장애도 주요한 이유가 되지만요), 좋았던 영화가 떠오른다는 점도 좋네요..
"저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까요?" 이건 이미 대답이 정해진 유도신문이었다. "U노 씨라면 할 수 있어. 혼자서도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여기서 훈련하면 다른 생명체가 될 거야."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2 <나의 친구, 스미스> 33쪽.
잘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다른 생명체가 될 거라고 말해주는 관장님의 영업방식...
7월에 나누게 될 대화도 기대됩니다+_+ 저도 소전서림의 <이달의 소설 선발대> 독자분들이 작성하신 고전지수와 논평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많은 분들이 함께 장편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저의 읽기와 무엇이 비슷하고 다른지도 견주어볼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고전지수를 이루는 다섯 개의 항목들과, 오각형의 모양과 크기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이 자체만으로도 너무 흥미로운 기획이라고 생각되는데 나중에 이야기해볼 기회가 온다면 좋겠습니다. 혹시 구경하고 싶은 다른 독자분들도 계실까 하여 링크 남겨둡니다^^ https://sojeonseolim.stibee.com/p/1/
보원 평론가님 글 읽고 다시 읽어보니 좋네요ㅎㅎ 담담한듯하면서도 결기가 느껴지고 고독한... 저는 운동하는 신체와 그 감각에 대해 세세하게 언어화하는 문장들을 소설에서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예전에 읽었던 김유나의 소설 <랫풀다운>에서 만난 푸시업에 대한 문장들도, 김화진의 소설 <근육의 모양>에서 만난 필라테스 동작에 대한 디테일한 서술도 떠오르네요. 소범 기자님이 남겨주신 소설들처럼, 다른 텍스트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며 떠오르는 것을 보면 우리가 읽게 될 책들의 현재성이 와닿는 것 같아요. 혜진 평론가님이 남겨주신 “힙하거나 보편적인 수 있는 소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ㅎㅎ
작년에 조혜은 시집 <눈 내리는 체육관>이란 시집을 편집했었는데요, 체육관 안에서는 자기 몸에 집중하느라 다들 아무 말도 안 하고-실은 몸으로만 말하고- 체육관 밖으로는 세상을 다 덮을 듯한 눈이 조용하게 내리고.. 치열하게 고요한 장면이 정말 좋았거든요. 제가 한때 헬스장 가서 혼자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무리 짓지 않고 혼자 조용히, 옆사람한테 별로 신경쓰지 않고, 개인 운동에만 열중하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롭고 마음에 들 수가 없더라고요. 미학적이기까지 한 풍경이어서 좋아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런 몰입감도 '오염'되기 시작하고, 몸을 향한 단순한 열정도 침해당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헬스와 뷰티, 주체와 객체, 몰입과 방해 등이 서서히 착종돼 갈수록 시작할 때의 깨끗한 고립이 변질돼 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클래식'해서 놀랄 정도였어요. 긴 머리, 좋은 피부, 제모, 12센티미터 하이일.. 계속해서 보디빌더 대회 찾아보며 읽고 있는 중이에요 ㅎ
말씀하신 '오염'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시다 가호가 소설 속에서 형성시키는 포인트들 중 하나가 저에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어떤 거냐면, 주인공인 'U노'는 어쨌든 보디빌딩을 하고 싶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정진'이 최우선의 가치인 사람이잖아요. 'O시마'는 그런 주인공의 일종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데 귀걸이나 제모 등 사회적 여성성의 압력을 넣는 사람인 E토 역시 주인공의 스승이고, 그 역시 '정진'이라는 카테고리 속에서 무엇인가를 해낸 사람으로 묘사되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러니까 '육체적 강함을 향한 순수한 정진 vs 그것을 방해하는 외부의 사회적 여성성의 강요'가 아니라, 이 정진 내부에 이미 분열이 있는 점이요. 그래서 U노는 귀걸이 등에 처음에는 저항하지만 '그것도 정진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결정적으로는 '그래도 대회는 나가야 하잖아'라는 코치의 말에 수긍하는 부분도 있고요.
보디빌더 출전기를 읽으며 여성의 몸에 대한 클리셰를 이토록 많이 접하게 될 줄은 진정으로 몰랐던 1인입니다..
그래서 U노가 처한 딜레마는 그가 단순히 보디빌딩에 대한 열정을 밀어붙임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는데, 왜냐하면 '보디빌딩에 대한 열정' 속에 U노가 싫어하는 그런 사회적 여성성이 이미 침투해 있고, 그것도 심지어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침투해 있으니까요. 예컨대 머리를 왜 길어야 하느냐, 라고 하면 '여자는 그래야 하니까'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근육이 단련되지 못한 등 부분을 가렸다가 갑자기 노출시킴으로써 대비효과를 준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거죠. 그렇게 대립의 전선을 꼬아놓은 점이 저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졌고, 주인공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아주 궁금해하면서 소설을 읽어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대립이 심화되어가면서 결국은 '보디빌딩'이라는 것도 하나의 장르이고, 그 자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자율적 대상이라는 점, 순수한 몸의 단련과 보디빌딩의 간극이 점차 드러나는 것도 좋았고요.
왠지 이 소설에 대해 할 말이 이것저것 너무 많은 것 같은데 ㅎㅎ; 좀 다른 이야기지만 댓글을 쓰다보니 더욱 궁금해진 점이 있었는데요. 왜 이 소설에서 이름들이 다 어떤 가명이나 코드처럼(U노, O시마, E토 등등) 표기가 되어 있는 걸까요? 어떤 라이트한 느낌과 익명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고, 뭔가 허술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까 궁금해요. 이 책에 유독 일본 만화 작품이 많이 인용되는데, 그런 것과도 같은 결인 것 같은데 정확히 뭐라고 표현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저는 이제 <취미는 사생활>을 읽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보원 평론가님이 이야기한 내용을 상기해 가면서 어젯밤에 책을 다 읽었어요. 짧다면 짧고, 또 단순하다면 단순한 소설 같은데, "정진 내부에 이미 분열"이 있다는 그 지점에서, 또 "대립의 전선을 꼬아놓은" 지점에서, 이 소설을 단순하거나 짧은 소설로 정리할 수 없게 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몸을 향한 몰입감과 대화에 대한 위화감 속에서도 대회에 나갔던 선택이 첫 번째 '절정'이었다면, 막상 대회에 나가 새로운 차원의 분열과 마주하게 된 것이 두 번째 '절정' 같았어요.
예를 들면, 대회에서 주인공은 3위를 하는데, 1위를 한 선수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실격되잖아요. "근육에서 약간 수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 이 대회에서 가치를 두는 '내추럴한 근육'이나 '클린한 근육', 말하자면 '드라이한 질감의 근육'에 반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 이 대회와 대회를 둘러싼 몸에 대한 인식의 아이러니함을 잘 보여 주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어요. 모종의 인위적인 개입을 거부하는 자연스러운 근육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으로, 억지 미소라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공존하는 현실이 상당히 정확하다, 하면서 읽었어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웃으라는 건 진짜 못견디겠어! 하고 폭발하는 지점이 많이 공감되기도 했고요. 저도 진짜 미소의 세계가 싫거든요..
<나의 친구, 스미스>는 보원 평론가님 이야기처럼 정말 할 말이 이것저것 너무 많은 소설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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