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내리다> 혼자 읽기

D-29
버니스는 인기 없는 현재 상황에 희미한 고통을 느꼈다. 마저리가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저녁 내내 한 남자와만 춤을 추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고향인 오클레어에서도 그녀보다 지위와 미모가 떨어지는 다른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여자들에게 뭔가 부도덕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설사 걱정한다 해도 그녀의 엄마는 다른 여자들이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남자들은 사실 버니스 같은 여자를 존중한다며 그녀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무너져 내리다 p.168, 스콧 피츠제럴드
글쎄요, 어떤 여자가 그런 시시껄렁한 방문객을 영원히 도와줄 수 있겠어요. 요즘에는 모든 여자가 스스로 알아서 헤쳐 나가요. 난 심지어 옷 입는 거랑 다른 것들에 대해 암시를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 애는 화가 났는지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거예요. 걔는 자기가 인기가 별로 없다는 것 정도는 알 만큼 분별력이 있어요. 하지만 분명 자신은 대단히 고결한데 나는 너무 경박하고 변덕스러워서 끝이 나쁠 거라고 생각하고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걸요.
무너져 내리다 p.170, 스콧 피츠제럴드
갑자기 그녀가 숨을 가쁘게 들이쉬었고 어떤 기운이 두 눈에 번쩍 스쳐 지나갔다. 인물을 읽는데 노련한 독자라면 그것이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스치며 나타났던 표정과 어렴풋이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것이다. 그것은 어쩐지 조금 발전된 표정이라고 할까, 버니스에게 완전히 새로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연한 결과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무너져 내리다 p.205, 스콧 피츠제럴드
문은 닫혔고 해는 저물었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지금껏 버텨낸 강철 같은 음울한 아름다움만이 남았다. 그가 품었을 슬픔마저도 환상의 세계, 젊음의 세계, 풍요로운 삶의 세계 속에 남겨지게 되었다. 거기가 바로 그의 겨울 꿈들이 활짝 피어났던 곳이었다.
무너져 내리다 p.249, 스콧 피츠제럴드
그는 문득 '소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허공에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소멸. 있음에서 없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 짧은 밤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 모든 행동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이며, 만취로 점점 더 느려지는 행동에 대한 대가는 또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무너져 내리다 p. 261, 스콧 피츠제럴드
그러나 현재가 중요한 법. 현재 해야 할 일들과 사랑해야 할 사람이 먼저였다. 물론 지나친 사랑은 금물이다. 아버지가 딸에게, 혹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는 결혼상대에게 똑같은 맹목적인 애정을 요구하게 되고, 만약 거기에 실패하면 사랑과 삶에 큰 상처를 안고 돌아설 것이다.
무너져 내리다 p. 280, 스콧 피츠제럴드
음... 사람들의 뒷머리라고 할까요. 머리가 몸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사람들의 목을 보고 싶어요.
무너져 내리다 p.298, 스콧 피츠제럴드
쿠: 그런데 어째서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복잡하고 산만하게 자기 표현을 했을까요? 정: 절망을 대놓고 표현한다는 건 어려운 법이니까요. 게다가 자아와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더욱 힘든 일이겠지요.
무너져 내리다 p. 306, 스콧 피츠제럴드
작가로서의 정서적인 좌절이라고 생각해요. 피츠제럴드는 영문학에서 '대문호의 반열에 올라서려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군가 한물간 작가라거나 이제는 끝난 작가라고 비판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런 비판을 이겨내기에는 피츠제럴드의 자아가 너무 쇠약해져 있었던 거지요.
무너져 내리다 p. 308, 스콧 피츠제럴드
당사자인 피츠제럴드는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나름의 교훈을 얻었어요. 생각해 보면 절망은 흔하잖아요. 물질문명이 놀랍게 발전한 시대이지만 이 시대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아파하고 절망하고 있잖아요. 한 시대의 절망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절망을 이해하는 데 <무너져 내리다>는 제게 큰 가르침을 줬어요.
무너져 내리다 p. 312, 스콧 피츠제럴드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활력을 분양하고 빌려줄 수 없다는 점이요.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절망하는 글을 읽으며 어쩐지 이 시대 절망에 빠진 수많은 사람의 마음까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무너져 내린 사람에게 어떻게든 활력을 줘야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그녀의 자아가 붕괴된 그 시발점에 관한 얘기를 찬찬히 들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와달라고는 요구하지 말아야겠다는 점 등의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아요.
무너져 내리다 p. 313, 스콧 피츠제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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