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혼자 읽기

D-29
그러므로 행동 능력은 도덕적 입장을 취하기 위해 지각 능력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도덕적 입장은 반드시 복지에 연결되기 때문에 어떤 존재에게 중요한 복지의 유무가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 되며, 그렇기에 최소한의 행동 능력일지라도 도덕적 입장을 갖는 데 필수 요소가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복지나 안녕이라는 개념은 좁은 의미, 즉 자신에게 필요한 복지가 더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복지라고 해도 그것이 해당 개체 또는 그 삶에 변화를 일으킬 때라야 복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넓은 의미의 복지는 이 문제의 핵심에 이르지 못한다. 어떤 존재에게 조금이라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복지에는 최소한의 행동 능력이 필요하며, 그런 까닭으로 도덕적 입장을 갖기 위해서는 좁은 의미의 복지가 요구되기 때문에, 도덕적 입장에 행동 능력이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장_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존재들, 셸리 케이건
더욱이 복지나 안녕이라는 용어는 ‘위해(harm)’나 ‘혜택(benefit)’ 같은 용어와 마찬가지로 좁은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이 도덕철학자들에게 보다 일반적이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도덕철학은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개체들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그 세부적인 사안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책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윤리적 문제를 논할 때는 도덕적 입장과 곧바로 연결되는 복지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장_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존재들, 셸리 케이건
더욱이 적어도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어떤 개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좋은 복지이고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나쁜 복지라고 규정할 수 없다. 원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는 그런 복지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개인의 만족이나 이익을 넘어선 그 ‘이상의’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 현실적으로 욕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원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으로 누군가 여러분의 욕구와 선호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능력을 방해했을 때, 그것은 여러분을 더 ‘존중(respect)’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일 뿐 여러분의 복지 수준을 낮춰 결과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를 보다 확장해 생각하면 어떤 존재가 스스로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방해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 개체에게 위해를 가한다기보다는 존중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장_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존재들, 셸리 케이건
일찌감치 밝혔듯이 이 책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입장은 ‘계층적’ 관점이다. 즉, 도덕적 지위는 유동적이며 어떤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다른 입장도 있다. 이 관점은 다름 아닌 ‘단일주의’로,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모든 존재는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견해다. 높거나 낮은 도덕적 지위에 대해 논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뿐더러 부적절하고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내가 단일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오직 단 하나의 도덕적 지위만 있으며, 도덕적 입장을 가진 모든 존재는 철저히 그 지위를 공유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글이 있다: <도덕적 지위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켜거나 끄는(on/off)’ 문제일 뿐이다. 모든 개체는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물론 그렇다고 단일주의가 은밀하다는 말은 아니며, 단일주의 관점은 늘 깊숙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일주의자들은 ‘도덕적 지위’라는 개념이 갖는 의미로는 공개적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많은 단일주의자들이 이른바 ‘이익 평등 고려(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s)’ 원칙이나 그 비슷한 것을 호소한 바 있는데, 이는 도덕적 관점에서 ‘유사한’ 이익(이해관계)을 ‘동일한’ 가중치로 고려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헤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이 주장은 경우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사람이나 소나 상관없이 특정 관심사에는 도덕적으로 차이를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이와 같은 견해는 명백히 단일주의 관점을 드러낸다. 누구의 어떤 이익인지의 요소는 전혀 도덕적 차이점을 주지 못한다는 주장은 모든 존재의 도덕적 지위가 동일하다는 말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모든 존재의 도덕적 지위는 그들이 어떤 종류이건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한 똑같다는 것이다. 도덕적 지위에서 더 높고 더 낮은 형태는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데, 모든 도덕적 존재는 단일하고 공통적인 도덕적 지위만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은 비록 ‘지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뿐 결국 단일주의에 입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일주의가 이익 평등 고려 원칙의 관점에서만 동물윤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이제 단일주의자들이 쥐보다 사람을 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기본적 통찰에 대해 살펴보자. 그것은 다름 아닌 거의 모든 현실적인 상황에서 사람의 죽음은 쥐의 죽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에 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물론 사람과 쥐 모두 익사할 위험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멀리에서 보면 그들의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 표면적 유사성은 훨씬 더 뚜렷한 ‘비유사성(dissimilarity)’을 드러낸다. 이 문제에 관한 간단명료한 사실은 사람이 죽는 경우 발생할 ‘위해’가 쥐가 죽는 경우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의 위해는 둘 중 하나가 생존했을 때 향후 자신이 얻을 복지의 총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양을 따져본 결과 사람이 익사할 경우 사라질 복지의 양이 쥐가 익사할 경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말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따라서 이 사실 자체만으로 쥐가 아닌 사람을 구해야 하는 충분조건이 성립된다. 사람의 이른바 ‘더 높은 도덕적 지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저 여러분이 사람을 구하지 않을 경우 그가 입을 위해가 쥐가 입을 위해보다 크다는 간단한 사실만 인지하면 그만이다. 쥐가 아닌 사람을 구하는 행위는 더 큰 위해를 막기 위한 도덕적 요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어떤 개체에 우선해 다른 개체를 돕는 결정을 할 때 애써 도덕적 지위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둘 중 어느 쪽이 더 큰 위해를 입게 될 것인지만 따지면 되니까 말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여기 조너선(Jonathan)과 레베카(Rebecca)가 있다. 두 사람은 지금 모두 아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 중 한 명만 선택해서 도울 수 있는데, 진통제가 하나밖에 없고 쪼갤 수도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조너선은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레베카는 단지 종이에 손가락을 살짝 베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일 때 여러분은 이를 도덕적 동률 상황으로 보고 두 사람의 고통이 정확히 같다고 봐야 할까? 동전 던지기로 결정해야 할 그런 상황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다른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마땅히 조너선에게 약을 줘야 한다.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레베카보다 크기 때문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그렇다면 사람이 동물보다 더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좋은 것들’이란 무엇일까? 이는 중요한 질문이며, 충분한 논의를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조심스러운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내가 그동안 생각해본 ‘좋은 것들’의 내용만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미리 말하지만 절대로 포괄적이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을 것이다. 첫째, 사람은 동물보다 더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서로 보살피고 애정을 공유할 뿐 아니라 내면적인 이해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분명하고 가치 있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가족애를 나눌 수 있다. 둘째, 사람은 보다 광범위하고 진보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 자신이나 가족, 친구들의 지식은 물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현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을 획득해 이를 포괄적인 과학적 이론으로 축적할 수 있다. 셋째, 사람은 뚜렷하고 폭넓은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취미, 문화, 사업, 정치 등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놀라운 창의력과 독창성으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 넷째, 사람은 고도로 발전된 심미적 감각을 갖고 있다. 음악, 무용, 미술, 문학 등 갖가지 예술 작품을 정교하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 법칙이나 수학 법칙을 포함한 세계의 미학적 차원을 보다 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섯째, 사람은 규범을 반영할 수 있다. 중요한 문제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또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바를 찾아내고자 하는 추진력도 갖고 있다. 여섯째, 사람은 도덕적 확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사람은 복잡한 형태의 미덕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곱째, 사람은 성스럽고 거룩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 혼자 또는 다른 이들과 함께 영적인 이해를 갈구하면서 그것이 삶속에 뚜렷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나는 개는 자기들끼리 또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개들 사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우정의 깊이와 질 그리고 풍요로움이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덜 뚜렷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 속에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비버가 댐을 만들고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것도 놀라운 성취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의 성취가 비록 누구에게 언제나는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는 그 범위와 난도 그리고 중요성의 측면에서 동물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동물도 경험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고 특히 자신의 생활환경에 대한 지식은 매우 놀랍지만, 사람의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에 비교할 것은 못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그렇지만 개는 인간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의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개는 이 세계의 후각적 측면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심미적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들이 느끼는 봄내음은 인간의 느끼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개 또한 냄새와 관련해서는 그럴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일지 어렴풋이도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그에 걸맞은 정도까지는 개의 삶에 대한 평가가 상향 조정돼야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2장_사람과 동물은 평등해야 하는가, 셸리 케이건
평등주의는 분배에 관한 모든 관점 중에서 가장 익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대안이 필요하다.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남들은 20~30억 달러나 갖고 있는데 내 재산은 고작 10억 달러일 뿐”이라고 불평할 수 있으며, 당연히 이를 불평등의 문제로 보긴 어렵다. 어떤 이의 삶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낮은 복지 수준으로 귀결될 때라야 불평등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삶은 객관적으로 적절하지도 않고 복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3장_동물에게 복지를 나눠주는 방법, 셸리 케이건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good enough)’ 삶 또는 ‘적절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 수준을 정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선 위로 올라가면 양질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선(baseline)’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사람들을 이 기준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도덕적 우선순위를 두면 된다. 누군가 이 기준선에 이르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을 망쳐버렸다는 도덕적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이와 같은 견해는 이런 방식으로 ‘충분한’ 삶의 종류를 구분하는 작업을 수반하기에 ‘충분주의(sufficientarianism, 充分主義)’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3장_동물에게 복지를 나눠주는 방법, 셸리 케이건
지금 상황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사항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매우 중요한 도덕적 가치로 여긴다는 사실과, 이를 위한 여러 자기 대안 중에서 선택을 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정도이며, 단일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사람과 동물 그리고 동물과 동물 사이의 광범위한 불평등을 찾아내 그것이 심각한 문제임을 널리 알려서 고쳐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복지 자원을 보다 덜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부터 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이전하는 정책을 넘어, 자원을 사람으로부터 뱀, 새, 쥐, 개구리, 파리로까지 확대함으로써, 현재 사람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크나큰 불평등을 완화시켜 평등주의의 요구 수준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3장_동물에게 복지를 나눠주는 방법, 셸리 케이건
물론 나도 사람의 삶이 쥐나 새 그리고 토끼보다 훨씬 질 높은 삶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여기에 일종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나는 이와 같은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 다시 말해 쥐의 삶이 사람만 못하다는 그 사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우리가 이 불평등을 타파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는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단일주의와 평등주의를 동시에 받아들일 때는 당연히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평등주의의 분배 원칙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일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3장_동물에게 복지를 나눠주는 방법, 셸리 케이건
복지에서 분배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늘 평등한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복지의 총량이 비록 적더라도 복지의 분배가 좀 더 공평하게(형식적일지라도) 이뤄진다면 그 결과가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묻고 있는 부분은 분배 문제는 논외로 하고 복지 그 자체다. 다시 말해 “도덕적 지위가 복지의 가치에 차이를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이와 같은 나의 주장이 옳다면 도덕적 지위에서의 격차는 사람과 동물 및 동물과 동물 사이의 다른 도덕적 권리에서의 격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도덕적 ‘일관성(consistency)’의 문제다. 복지의 분배 문제에서는 도덕적 지위의 역할이 분명하나 복지의 도덕적 가치에 관한 문제라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관성이 없어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동물의 분배 요구 권리를 그들의 낮은 도덕적 지위를 감안해 조정해야 하는 것처럼, 복지에 대한 동물의 권리도 이에 맞게 조정돼야 할 것이다. 동물에게 도덕적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틀림없는 진실이지만 거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고집은 이제 멈춰야 할 때가 됐다. 도덕적 지위가 낮은 개체는 도덕적 권리도 낮으며, 복지에서의 증가분 역시 도덕적으로 중요성이 낮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른 좋은 것들의 증가하는 몫 역시 적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여기 여러분의 직관을 확인해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어떤 두 개체가 ‘치통’을 앓고 있다. 모두 같은 강도의 통증을 느끼는 중이다. 매우 고통스럽다. 이런 상황을 떠올린 다음 이제 여러분이 치통을 완전히 없애줄 진통제를 갖고 있는데 둘 중 한쪽에만 사용할 분량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두 개체 중 한쪽의 치통을 멈춰주지 않으면 둘의 치통은 오래도록 같은 기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해보자. 마지막으로 두 개체 중 한쪽은 인간 성인이고 다른 한쪽은 쥐라고 상상해보자. 양쪽의 치통이 똑같은 강도라는 것은 사람과 쥐의 복지에 동일한 나쁜 영향이 가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어느 쪽을 돕겠다고 결정하든 간에 복지의 양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제공해야 할 복지가 아니라 없애줘야 할 복지라는 점만 다르다. 나는 이런 경우 잃게 될 복지의 양이 사람과 쥐가 같다고 해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나는 사람의 치통이 없어져서 도출되는 결과가 쥐의 치통이 사라져서 나오는 결과보다 더 좋다고 본다. 누가 내게 왜 그런지 묻는다면 사람이 쥐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이고, 더 많은 헤아림을 받아야 하며, 도덕적으로 쥐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쥐가 아닌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내 직관이 이 사례에서 사람의 도덕적 지위가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사람의 치통이 없어지는 세상이 쥐의 치통이 사라지는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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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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