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혼자 읽기

D-29
고양이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려고 하는 십대 청소년을 떠올려보자. 깜짝 놀란 여러분이 재빨리 그 청소년의 뺨을 한 대 후려침으로써 고양이가 무사히 도망치는 광경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자. 진정으로 그 행위가 잘못됐을까? 그래서는 안 됐다고 주장해야 할까?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동물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더라도, 그래도 무조건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까? 내게는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로만 들린다. 동물도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사례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은,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으려는 동물을 제3자로서 방어해줄 때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위해를 가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위해의 크기 말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0장_동물에게 자기방어권이 있는가, 셸리 케이건
어떤 등산객이 단순한 호기심에 곰이 살고 있는 동굴인 줄 알면서도 그곳에 들어간다(위해를 가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자 인기척에 놀란 어미 곰이 자신의 새끼들을 해치려는 줄 알고 등산객을 향해 돌진한다. 이 경우 등산객은 자기방어권을 상실할 정도로 어미 곰의 공격을 유발한 것일까? 아니면 정당하게 자신의 복지가 어미 곰의 위해 당하지 않을 권리를 압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0장_동물에게 자기방어권이 있는가, 셸리 케이건
공격하는 동물은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는 데 반해 공격을 당하는 쪽은 매우 낮은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해보자. 예컨대 개미핥기가 개미를 핥아먹는다든지 곰이 연어를 잡아먹는 경우 공격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공격을 당하고 있는 동물이 얻게 되는 복지가 공격하는 동물이 잃을 복지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크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공격하는 동물에게 가할 수 있는 위해의 양이 너무 작아서 잠재적 희생자를 구해서 실현할 수 있는 선이 공격자를 압도할 수 없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0장_동물에게 자기방어권이 있는가, 셸리 케이건
이와 달리 공격하는 동물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 데 반해 공격을 당하는 동물은 높은 지위를 가진 경우를 생각하면 그 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테면 검은과부거미(black widow spider)가 캥거루를 깨물어 맹독으로 죽인다고 상상해보자. 이때에는 캥거루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 거미를 죽이는 것일 때 거미에게 가하는 위해는 충분히 작은 게 되며, 거미의 도덕적 지위가 캥거루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에 거미의 위해 당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임계치가 쉽게 충족된다. 캥거루의 생명을 구함으로써 실현되는 선의 크기가 거미의 권리를 압도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0장_동물에게 자기방어권이 있는가, 셸리 케이건
만약 여러분이 검은과부거미에게는 도덕적 입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적절한 동물,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도덕적 입장은 취하지만 도덕적 지위는 상당히 낮은 동물 중에서 맹독을 가진 종류를 대입하면 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례에서는 임계치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무고한 위협을 죽일 수 없다면, 공격하는 동물이 잠재적 희생자에게 위협을 되는 동물이라는 사실은 공격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희생자를 방어해주고자 공격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허용되는 경우는 생채기를 내는 정도의 충분히 작은 위해에만 국한될 것이다. 물론 이때에도 그 행위를 통해 희생자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0장_동물에게 자기방어권이 있는가, 셸리 케이건
규범윤리학에 대한 계층적 접근방식은 두 가지 설득력 있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첫 번째 생각은 이것이다. 도덕적 입장이 근거가 되는 다양한 정신적 능력은 각각의 개체마다 그 ‘정도’가 다르며, 어떤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더 발달되거나 정교한 형태로 갖고 있다. 두 번째 생각은 이렇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이와 같은 능력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보유한 개체들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도덕적 관점에서 더 큰 헤아림을 받는다. 이 두 가지 생각을 종합하면 비록 아직까지는 추상적이더라도 계층주의에 관한 설득력 있는 논의가 구성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이와 같은 일련의 사고방식 중 일부는 내 생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많은 동물이 도덕적 입장의 근거가 되는 특성 중 일부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런 동물들은 도덕적으로 헤아림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동물들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던 것보다 더 많은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동안 인간이 동물을 대해왔던 끔찍한 방식을 떠올리면 훨씬 더 큰 헤아림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그러나 나는 이와 동시에 동물이 사람보다 이런 능력들을 적게(또는 낮은 수준)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므로 동물이 사람보다 덜 헤아려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개체들은 각각 도덕적 지위에서 차이가 있으며, 사람은 동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덧붙여 동물들끼리도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지위와 관련한 능력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도덕적 지위가 더 높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철학에서는 때때로 추상적 주장이 일견 설득력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함의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주장과 그것이 담고 있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설득력 있어 보였던 전제를 포기함으로써 그 주장에 저항(또는 회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이성적으로는 이해되는데 감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감성적으로는 납득이 되는데 이성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계층주의에 대한 논의에서는 이 같은 딜레마에 봉착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우리가 꽤 오랫동안 살펴본 것처럼 이런 개념들은 그 자체로서도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계층적 접근방식을 통하면 행여 우리가 짊어졌을지도 모를 흥미롭지 않고 불합리한 수많은 잘못된 결론을 모두 피할 수 있다. 계층적 관점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접근방식이므로 우리의 이성에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나는 사실상 동물윤리를 둘러싼 문제에서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입장 중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온전한 학문으로서 정립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현재로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견해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우선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는 입장을 시험적으로 받아들인 다음, 다른 관점들과 비교를 통해 최선의 견해를 수용한 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킬 만한 여지가 있는지 계속해서 따져봐야 한다. 모든 이론은 이런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앞에서 나는 계층적 접근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합리적 우려 가운데 세 가지를 주목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약속 어음을 발행한 것도 있다. 다시 한번 논점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첫 번째 우려는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인간 성인이 동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계층주의 관점을 수용하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우리보다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 우월한 존재의 실재 가능성에 대해 사고를 개방해야 한다. 합리적 우려라고 소개했듯이 우월한 존재는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앞에서 자세히 논증한 것처럼 이 같은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계층주의를 견지하는 데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계층주의가 사물을 바라보는 겸손한 태도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받아들이지 못할 까닭은 논리적으로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두 번째 우려는 ‘가장자리 상황’에 처해 있는 존재를 계층적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심각한 정신 장애를 가진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계층적 관점에서 이들의 결여된 정신적 능력을 감안하면 도덕적 지위가 일반적인 사람보다 낮다는 결론이 불가피해 보인다. 나는 ‘양식적 인격’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들의 정신적 동류인 동물보다는 높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같은 우려의 날카로움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결국 이들이 우리보다 덜 헤아려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다른 대안적 관점인 ‘단일주의’ 등이 오히려 계층주의보다 설득력 떨어지는 견해임을 논증함으로써, 그래도 계층주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임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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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우려는, 이것이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약속 어음을 발행했고 아마도 여러분이 무척 기다리고 있을 논증인데, 다름 아닌 ‘정상적 편차’ 문제다. 우리를 한참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우월한 존재’, 우리보다 한참 낮은 능력을 가진 ‘가장자리 상황의 인간’처럼 일반적인 사람과 도덕적 지위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는 존재를 인정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와 같은 보통의 인간 성인들 사이에서도 도덕적 지위에 차이가 있다는 개념으로, 결국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높거나 낮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결론을 인정해야 하는 매우 골치 아픈 문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셸리 케이건
‘정상적 편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논리적·이성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아직 확실한 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에서 논리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계층주의를 수용케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동물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련 능력들의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격차, 이를테면 파리가 가진 최소한의 행동 능력과 지각 능력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사람의 월등한 정신적 능력을 가진 보통의 인간 성인들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해봐야 무척 사소할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셸리 케이건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 편차’다. 이 차이는 그저 신경 쓰지 않음으로써 넘어갈 수도 있다. 사람 개개인마다 갖고 있는 능력들의 작은 차이가 도덕적 지위에서의 미세한 차이를 만들지만, 우리의 통상적인 도덕적 사고에서 이런 차이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상적 편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방금 언급했듯이 계층적 관점을 정립하기 위해 불식시켜야 할 가장 큰 우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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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떤 이들은 이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고 별로 괘념치 않게 넘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나는 정상적 편차를 인정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설령 미미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도덕적 지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상당히 불편해한다는(최소한으로 표현했을 때)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 편차 문제에 대한 보다 ‘탄탄한(robust)’ 답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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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인간 성인들에게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답변을 하려면, 도덕적 입장의 기반이 되는 능력의 차이가 도덕적 지위에서의 차이를 유발한다는 가정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미세한 정신적 능력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도덕적 지위에 어떤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돼야 한다. 도덕적 지위가 관련 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함께 꾸준히 부드럽게 증가하는 게 아니라, 이보다 덜 부드럽고 느리게 올라가든지 아니면 보통의 인간 성인들 사이의 정상적 편차 범위 내에서는 ‘평평하고 일정하게’ 유지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계층적 관점을 토대로 내가 생각한 또 다른 대안적 견해는 관련 능력들이 증가할수록 도덕적 지위가 따라서 상승하되(동물 왕국의 진화계통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인간 성인 사이의 정상적 편차 범위에 도달하면 그 지점에서 평평하게 유지된다. 이른바 ‘인간 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로, 다른 개체들은 모두 도덕적 지위에서 차이가 있지만 오직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 관점이다. 그리고 아마도 사람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우월한 존재의 경우) 다시 능력이 증가해 도덕적 지위가 상승할 것이다. 다만 이 견해에도 문제가 있는데, 일반적인 인간 성인의 보유한 능력의 범위가 도덕적 지위에서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다른 수준에서는 그렇지 않을 정도로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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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는 입장은 관련 능력의 정상적 편차가 도덕적 지위의 차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통상적인 인간 능력의 범위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관점일 것이다. 아마도 도덕적 지위는 능력의 특정 범위 안에서 평평하게 유지돼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관련 능력의 모든 수준에 걸쳐 똑같은 도덕적 지위를 이끌어낸다는 단일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개체마다 일정한 도덕적 지위를 생성하는 범위가 여러 개 있고 각각의 구간마다 각기 다르지만 일정한 지위를 이끌어낸다고 가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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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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