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혼자 읽기

D-29
물론 나도 사람의 삶이 쥐나 새 그리고 토끼보다 훨씬 질 높은 삶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여기에 일종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나는 이와 같은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 다시 말해 쥐의 삶이 사람만 못하다는 그 사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우리가 이 불평등을 타파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는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단일주의와 평등주의를 동시에 받아들일 때는 당연히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평등주의의 분배 원칙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일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3장_동물에게 복지를 나눠주는 방법, 셸리 케이건
복지에서 분배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늘 평등한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복지의 총량이 비록 적더라도 복지의 분배가 좀 더 공평하게(형식적일지라도) 이뤄진다면 그 결과가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묻고 있는 부분은 분배 문제는 논외로 하고 복지 그 자체다. 다시 말해 “도덕적 지위가 복지의 가치에 차이를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이와 같은 나의 주장이 옳다면 도덕적 지위에서의 격차는 사람과 동물 및 동물과 동물 사이의 다른 도덕적 권리에서의 격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도덕적 ‘일관성(consistency)’의 문제다. 복지의 분배 문제에서는 도덕적 지위의 역할이 분명하나 복지의 도덕적 가치에 관한 문제라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관성이 없어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동물의 분배 요구 권리를 그들의 낮은 도덕적 지위를 감안해 조정해야 하는 것처럼, 복지에 대한 동물의 권리도 이에 맞게 조정돼야 할 것이다. 동물에게 도덕적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틀림없는 진실이지만 거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고집은 이제 멈춰야 할 때가 됐다. 도덕적 지위가 낮은 개체는 도덕적 권리도 낮으며, 복지에서의 증가분 역시 도덕적으로 중요성이 낮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른 좋은 것들의 증가하는 몫 역시 적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여기 여러분의 직관을 확인해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어떤 두 개체가 ‘치통’을 앓고 있다. 모두 같은 강도의 통증을 느끼는 중이다. 매우 고통스럽다. 이런 상황을 떠올린 다음 이제 여러분이 치통을 완전히 없애줄 진통제를 갖고 있는데 둘 중 한쪽에만 사용할 분량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두 개체 중 한쪽의 치통을 멈춰주지 않으면 둘의 치통은 오래도록 같은 기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해보자. 마지막으로 두 개체 중 한쪽은 인간 성인이고 다른 한쪽은 쥐라고 상상해보자. 양쪽의 치통이 똑같은 강도라는 것은 사람과 쥐의 복지에 동일한 나쁜 영향이 가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어느 쪽을 돕겠다고 결정하든 간에 복지의 양은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제공해야 할 복지가 아니라 없애줘야 할 복지라는 점만 다르다. 나는 이런 경우 잃게 될 복지의 양이 사람과 쥐가 같다고 해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나는 사람의 치통이 없어져서 도출되는 결과가 쥐의 치통이 사라져서 나오는 결과보다 더 좋다고 본다. 누가 내게 왜 그런지 묻는다면 사람이 쥐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이고, 더 많은 헤아림을 받아야 하며, 도덕적으로 쥐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쥐가 아닌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내 직관이 이 사례에서 사람의 도덕적 지위가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사람의 치통이 없어지는 세상이 쥐의 치통이 사라지는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위 사례에서 사람이 쥐와 비교해 잃게 되는 복지의 양이 더욱 크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더 많이 잃는 쪽이 실제로는 쥐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사람은 치통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는 반면, 쥐는 그 고통의 시작과 끝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없으므로 당장의 고통에만 완전히 빠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할 때 양쪽의 치통이 같은 양의 복지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니라면 어느 쪽이 더 큰지 불확실할 수 있다. 나 또한 쥐로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쥐가 사람과 같은 강도의 통증을 느낀다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위 치통에 대한 사례는 직관 확인용 말고는 잘 짜인 사례가 아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4장_복지의 가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셸리 케이건
정신적 능력(그리고 그 능력의 사용)이 개체의 도덕적 지위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내 생각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번에는 어떤 존재가 비록 지금으로서는 관련 능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결국 그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potential)’을 가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예컨대 이제 막 태어난 인간 신생아는 일반적인 성인들이 소유한 다양한 정신적 능력들을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신생아는 우리 논의의 관점에서 아직 ‘사람’이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이 아이는 마침내 그런 능력을 모두 갖게 된다. 현재 신생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결국 사람으로 성장해 보통의 인생에서 갖추게 되는 능력들을 획득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질문이 필요해진다. “잠재력은 도덕적 지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5장_무엇이 도덕적 지위를 결정하는가, 셸리 케이건
어떤 이들은 내가 설명한 종류의 계층적 관점을 즉각적으로 배격할 준비가 됐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어떤 종류의 계층적 견해라도 이른바 ‘엘리트주의(elitism)’라고 비판할 것이며,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관점이라고 공격할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계층주의는 ‘도덕적으로 치명적(morally pernicious)’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6장_계층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들, 셸리 케이건
“계층적 관점은 엘리트주의”라는 우려 섞인 비판은 무엇 때문에 나온 것일까? 이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다소 달라지긴 하겠지만, 나는 계층적 관점은 엘리트주의라는 주장이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계층적 관점의 반대 의견이 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해 계층주의가 엘리트주의라면 배격해야 할까? 내가 보기에 사람들이 계층적 관점은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할 때 그 계층주의가 위의 악용 사례에서와 같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계층주의는 아닌 것 같다. 철학자들의 비판은 그렇게 엉성하지 않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6장_계층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들, 셸리 케이건
사실 계층적 관점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반대 의견은 우월한 존재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에서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인데, 어떤 인간들은 뇌에 심각한 손상을 당해 일반적인 인간 성인보다 인지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자기인식 및 시간 감각 능력이 결여된 인간도 있고, 최소한의 기억력밖에 갖고 있지 못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의식이 있고 쾌락(즐거움)과 고통을 느끼긴 하지만, 보통의 인간 존재로서는 정신적 능력이 한참 못 미친다. 우리의 논의선상에서 그들은 인지적·감성적으로 침팬지나 개와 같은 동물들과 ‘정신적 동류’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도덕적 지위가 개체의 정신적 능력과 함수관계라면, 이와 같은 사람들의 도덕적 지위는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낮게 부여돼야 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6장_계층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들, 셸리 케이건
심각한 인지 장애 상태의 개체에 대한 계층적 관점이 그 같은 접근방식을 배격해야 할 근거를 제공한다는 생각은 경우에 따라 ‘가장자리 상황 논증(argument from marginal cases)’으로 불린다. 지금 우리가 논의 중인 ‘가장자리 상황’에서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은 인간은 동물과 보통의 인간 성인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일종의 ‘주변 집단’을 형성한다. 이 주변 집단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리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은 단일주의이며 계층주의는 거부돼야 한다. 단일주의의 기본 논지는 이렇게 전개된다. 동물은 사람과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정신 장애를 가진 인간을 일반적인 사람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인간은 보통의 사람과 같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동물을 보통의 사람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것 또한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6장_계층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들, 셸리 케이건
한편으로 우리는 특정 개체가 속한 종이 해당 개체의 도덕적 지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인간이 그 정신적 동류보다 더 많은 헤아림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한 개체라는 사실이 보통의 인간 성인과 똑같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므로, 장애를 가진 인간은 동물이 아닌 사람의 도덕적 지위를 똑같이 확보한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6장_계층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들, 셸리 케이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각각의 종마다 일괄적인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단일주의적 관점에서도 개체가 속한 종을 기반으로 도덕적 중요성을 구분하는 이와 같은 시각은 편견일 뿐이며 ‘종차별주의(speciesism, 種差別主義)’라고 비판받는다. 그런데 종차별주의를 거부하면 ‘가장자리 상황’과 같은 장애를 가진 인간은 어떤 종류의 동물이 정신적 동류이든 간에 그 동물과 똑같은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6장_계층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들, 셸리 케이건
하지만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면 어떨까?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섯 사람이 아닌 10명, 100명, 1,000명, 또는 100만 명 이상을 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경우는 한정돼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수 억 명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했고 혼자만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이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정해보자. 정리하면 수억 명의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뿐일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흥미로운 사실은 이 경우 의무론자들은 그 대답에 따라 두 가지 계파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한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은 안 된다는 ‘절대적 의무론(absolute deontology)’이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선이 위태로운지에 상관없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동은 잘못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다섯 사람을 살리든 1,000명을 살리든, 심지어 수십 억 명을 살리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생명권, 즉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어떤 다른 행동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만으로 경시될 수 없다. 살인은 절대적인 금기 사항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할수록,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룰 수 있는 선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리고 다른 방법이 정말로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결국 금기를 풀고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른바 ‘온건한 의무론(moderate deontology)’의 관점에서 생명권은 분명한 도덕적 무게를 갖고 있지만 그 무게가 무한하지는 않으며, 위태로운 선의 크기가 충분히 크면 생명권보다 더욱 무거워질 수 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7장_단일주의는 의무론이 될 수 있는가, 셸리 케이건
이론적으로만 보면 임계치는 확실히 낮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온건한 의무론의 어떤 이론에서는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임계치가 세 사람으로 맞춰져 있다면 세 명에서 다섯 명을 구하는 것이 충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제 의견은 이보다 훨씬 높았다. 내가 강의 때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모두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대다수가 10명, 50명, 심지어 100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경우에도 무고한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금지돼야 한다고 대답했다. 내가 500명, 1,000명, 1만 명, 100만 명으로 생명을 구할 사람들의 숫자를 계속 올려가자 결국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대답들이 나왔지만,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수치가 굉장히 높았다. 10만 명이나 100만 명 정도의 목숨은 달려 있어야 겨우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이보다 훨씬 높은 10억 명쯤 돼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로 볼 때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생명을 살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무리 온건한 의무론자들이라도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여기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물어볼 것도 없이 결과주의적 관점에 선 학생들은 결과가 더 나아지는 바로 그 지점이라고 대답했고, 소수의 절대적 의무론자들(학생들 중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은 임계치 설정 자체를 부정했지만, 여기에서는 온건한 의무론자들의 입장만을 대변하겠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7장_단일주의는 의무론이 될 수 있는가, 셸리 케이건
톰이 사슴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상상해보면 온건한 의무론과 결합한 단일주의의 전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고기의 삶 1년이 사슴의 1년보다는 가치가 낮다고 여길 것이다. 확실히 그럴 것 같다. 이제는 톰이 사슴을 죽이는 것보다 물고기를 죽이는 것이 위해의 크기에서 더 작을 것이기에, 임계치 역시 그에 비례해 작아진다고 기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명도 사슴보다 물고기가 짧다. 이 또한 임계치를 낮아지게 할 것이다. 이 정도면 사슴은 그렇다 치더라도 물고기를 죽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까? 여기에서도 물론 세부 사안은 톰이 어떤 물고기를 잡아먹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니 톰이 표류하고 있는 무인도 강가에서 송어를 잡을 수 있다고 가정하자. 송어의 평균 수명은 5년이므로 톰이 한 마리를 잡아서 죽이면 2.5년의 수명을 박탈하는 셈이라고 하자. 사슴의 10년보다 수치가 더 작으니 이 또한 임계치를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송어는 사슴보다 훨씬 양이 적어서 한 마리 먹어서 버틸 수 있는 생존 기간도 더 짧을 것이므로 실현되는 선의 크기도 더욱 작을 것이다. 송어의 평균 무게가 1.2킬로그램이니 사슴의 경우에서처럼 하루에 160그램만을 섭취한다고 했을 때 한 마리로는 1주일 정도 생존할 수 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7장_단일주의는 의무론이 될 수 있는가, 셸리 케이건
사실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상할 게 없다. 물고기의 삶 1주일의 가치는 인간의 삶 1주일과 비교할 것이 못된다. 나는 이보다 더 작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온건한 의무론을 받아들인 단일주의자의 입장에서 봐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를 다시 환산하면 사람이 ‘4분 동안’ 얻을 수 있는 복지의 양이 송어가 ‘1년 내내’ 헤엄치고 다녀서 얻는 복지의 양보다 크다는 이야기다. 단일주의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이 계산 역시 상수 m이 1,000이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일반적인 단일주의자라면 상수 m을 1,000으로 설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여운 톰은 살아남을 수 없다. 송어를 잡아먹는 행위는 금지된다. 스스로 굶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결국 온건한 의무론자들은 단일주의를 배격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온건주의자들이 바라듯이 m을 1,000보다 더 많은 생명으로 더 높게 잡으면 결과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오게 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7장_단일주의는 의무론이 될 수 있는가, 셸리 케이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거기로부터 출발해 도덕성 및 단일주의에 관한 의무론적 접근방식을 논증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사례에 사람이 아닌 동물이 등장한다면 전혀 다른 반응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토끼 한 마리를 희생시켜 다섯 마리 토끼를 살리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의무론적 반응은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개의 사람들은 비록 죽어야 할 토끼가 불쌍하긴 하지만, 그것이 더 많은 토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한 마리 토끼를 죽이는 게 올바른 행위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요컨대 동물에 대해 헤아리는 경우라면 우리 대부분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동물들의 복지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전체적인 결과가 더 나아지는 상황에서는 특정 동물을 희생시키거나 해를 입히는 행위를 용납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8장_동물에게는 의무론적 권리가 없는가, 셸리 케이건
제3장 제3절에서 밝혔듯이 나는 비록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사람보다는 약하더라도 동물에게 복지 분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분배 원칙들을 동물로까지 확장하는 대안적 관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분배 원칙이 ‘정의(justice)’에 관한 이론의 일부로 간주되고, 불의나 불공정성은 규범적 특성에 의무론적 요소가 포함돼 있는 존재들에만 해당된다면, 이 관점은 제한적 의무론의 적절한 버전으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8장_동물에게는 의무론적 권리가 없는가, 셸리 케이건
어쩌면 이 지점에서 제한적 의무론자들의 차단점이 앞서 우리가 살펴본 ‘임계치’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유형의 임계치가 동기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려면 초속 11.2킬로미터라는 이른바 ‘탈출 속도(escape velocity)’가 요구된다. 그 미만의 속도로는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얼음의 물 분자를 결합하고 있는 화학적 결합을 깨려면 물 분자가 일정 수준의 ‘운동 에너지(kinetic energy)’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음은 녹지 않는다. 이렇듯 임계치 개념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8장_동물에게는 의무론적 권리가 없는가, 셸리 케이건
이와 같은 물리적·화학적 임계치 외에 우리가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도덕적 임계치도 마찬가지로 엄연히 존재하며, 더욱이 모든 임계치가 도덕의 영역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미 확인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건한 의무론자이며 의무론적 권리가 임계치와 관련 있다고 여긴다. 충분한 양의 선이 위태로우면 생명권과 같은 의무론적 권리의 무게가 임계치에 이르게 되며 결국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용납된다. 반면 위험에 처한 선이 적다면 임계치에 미치지 못해 의무론적 권리는 고스란히 지켜진다. 즉, 의무론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되려면 임계치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8장_동물에게는 의무론적 권리가 없는가, 셸리 케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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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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