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 독서 세번째 📖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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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국회의원이 역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오늘 홍 의원님이 건넨 말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명령.” “그런 명령 난 받은 적 없어요.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p73 “그게 제일 최악이야. 시키는 대로 했다. 명령에 복종하면 모든 게 면죄되는 거야?” p184 “왜 진실을 알고 싶으세요?” “…….” “단순한 호기심입니까, 아님 직업적 본능입니까?” “틀렸어.” “그럼 뭐죠?” “알고 싶어. 그냥, 막.” 말을 이어나가는 민서의 입술이 떨렸다. 민서는 승호를 보지 않았다. 취조실 벽면 너머의 아득한 곳, 희미한 불빛 속에 가려진 실체의 세밀한 면, 그 아득한 곳을 넘보고 있는 듯했다. “사람 열 명이,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사지가 훼손되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이 침묵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 p210 다수로 볼 수 있는 짐승인 사람은 자신들만의 질서를 부여받기를 원하네. 기업의 선봉에 선 선각자는 그들에게 그들만의 판을 만들어주고 그 판 안에서 현대화, 문명, 지성, 사랑 등의 모든 감정의 배설과 순환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줘야 하지. 물론 그 수고에 따르는 전리품은 선각자와 기업의 몫으로 돌아가. 선각자는 알고 있어. 짐승인 사람들에게 욕망의 전리품을 적당히 나누어주면 그 전리품의 규모가 점점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p239 핵심 인재, 핵심 기술이 전체를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 전체에 핵심 기술의 공유와 교란을 야기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전체의 거시적 번영을 위해 핵심의 혼란을 유발하는 세력의 초자연적 제거는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당위적 선택이다. 그런 내용이에요.
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열외인종 잔혹사』로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주원규의 『반인간선언-증오하는 인간』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매회 화제성을 낳고 있는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원작소설이다.
p182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던 과거의 기억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했던 살인의 감각이 되살아나버린 자신이 끔찍하게 싫었다. 정인은 알고 싶었다. 이 악몽을 되풀이해서 재생하는 인간의 정체를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p270 조민은 숨겨진 진실을 보존하는 결정체야. 그 궁극은 언제나 순수하지. 하지만 탐욕에 물든 이들에게 순수는 쓸모없는 장식품에 불과해. 어떻게든 순수를 파괴하고 모든 걸 훼손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고 해. 우린 그 포악한 파괴자들로부터 조민을 지킬 의무가 있어. p331 — 우린 이 구제받을 수 없는 인간에게 구원을 행하는 중이야. 어처구니없는 죽음들 앞에서 사죄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중이라고. 오히려 나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 누구도 심판할 권리 같은 건 없어. — 법, 체제, 이념은 심판할 권리가 있고? p343 사이코 맞아.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어. 세상 자체가 미쳤는데. 난 내 식으로 순수를 재건설하고 있어. 피로 물든 악행의 밤을 보내면서 우리만의 기적을 꿈꾸는 일 말이야. 그런 거, 매력적이지 않아? p400 정권 바뀌고 체제 바뀌고 설령 국가 자체가 꺼져버려도 영구 집권이 가능한 권력을 창출하는 것. 이봐, 어르신들. 우리 솔직해집시다. 까놓고 말하자고요. 당신네들 이렇게 모인 게 바로 이 권력, 그 빌어먹을 걸 자손대대로 물려주고 싶어 모인 거 아닙니까? 내 말 틀립니까?   시정잡배만도 못한 조잡한 논리를 늘어놓는 함문형의 강연은 언어 선택의 저급함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재우는 강연자의 노골적인 막말을 시종 경청하다 심지어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기립해 박수까지 치는 참석자들의 작태를 보며 함문형이 A에서 갖는 위치를 짐작했다. 재우는 함문형의 강연을 들으며 지나치게 단순한 A의 목표를 예단할 수 있었다. A의 목표는 오직 하나, 배금(拜金)이었다. p441 맞아. 난 전달자야. 내 기억 속에 담겨 있는 것. 사람들의 기억, 사람들의 말, 사람들의 영혼, 감정, 난 그것들을 말할 수 있어. 나는 그것들을 말하는 순간에만 살아 있는 나야. 그리고 그 기억은 이제 나에게만 남아 있어. 전달한 이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오직 이 지구상에 나 홀로만 남아 있는 유일한 기억. 그러므로 나는 그 유일한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말하는 나, 기억으로만 살아 있는 나 말이야.
기억의 문주원규의 장편소설 『기억의 문』. 기억 전달이란 특수한 능력을 가진 아이 '조민'을 뒤쫓는 택시 운전사 '정인', 비리 경찰 '재우', '비밀단체 'A'의 각기 다른 욕망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폐되어야만 했던 학살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구형 소나타 택시에 올라타 거대한 지옥도로 묘사되는 대한민국의 곳곳을 누빈다. ‘돈 앞에서 과연 무엇으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묵직
13p 고통이 수반되는 난자 채취와 다르게 정자 채취는 쾌락이 수반되었다. 난자 채취에 비해 간단했으므로 남편은 시험관 시술이 실패할때마다 문정처럼 절망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것이 문정의 신경을 건드렸다. 43p “어차피 잃을 아이라면 심장소리를 듣기 전이 나아요, 더 자란 상태로 유산이 되면 소파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끔찍해서 자기 자신을 찾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98-99p 간장과 비슷한 색의 소독약이 배꼽 밑으로 두 세 개의 구멍을 내고 치골 상방에 4센티미터 정도 작게 절개를 할 것이다. 혜경은 코로나가 끝나면 따듯한 나라로 휴가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하며 생각했다. 비키니 라인 밑으로 개복을 해야 할텐데. 145p 설주는 쌍둥이를 낳고 인력사무소를 통해 조선족 시터를 소개 받았다. 설주 또래의 시터는 말수가 적었지만 설주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면접을 볼 때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성경을 읽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설주는 그녀를 믿었지만 친구들의 충고대로 녹음기를 숨겨뒀다. 녹음된 소리를 확인한 설주는 충격을 받았다. 녹음기에는 욕설이 가득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었다. 183p 혜경은 단골 꽃집에 들러 노란장미를 샀다. 혜경은 플로리스트가 건넨 꽃다발에 코를 묻으며 노란 장미의 꽃말을 떠올렸다. 노란장미의 꽃말은 완벽한 성취였다. 그리고 질투.
헬로 베이비장편소설 《콜센터》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김의경의 신작 《헬로 베이비》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평균 결혼 연령의 변화, 삼십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임신과 출산을 계획할 수 있는 현실. 그 과정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압박.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사회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길고 지난한 시간을 견디고 싸워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헬로 베이비》는 그러한 고민을 안고 난임 병원에서 만난 삼사십대
63p 번식장에 가면 눈물이 줄줄 흘러요. 슬퍼서가 아니라 암모니아 가스가 너무 심해서 65p 사람들은 이곳을 강아지공장이라 부른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번식장에서는 강아지를 생산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은 기계지만 번식장에서 강아지를 찍어내는 것은 모성을 가진 엄마개다.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여기가 공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엄마아빠 개는 기계보다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127p 이름만 보호소지 그냥 비닐하우스 안에 뜬장만 층층이 쌓아놓은 곳이었어요. 케이지마다 큰 개는 한 마리씩, 작은개는 두 마리씩. 이층 케이지에서 똥오줌을 싸면 일층에 있는 개들이 다 뒤집어쓰는 구조. 치우는 사람도 없어서 배설물이 무더기로 쌓여있고, 한여름이라 파리에 바퀴벌레에... 맞아요 번식장이랑 똑같았어요. 차이점은 새끼를 안 뺀다는 것 밖에 없었죠. 204p 1923년 미국 델마바 반도에 살던 씰리어 스틸은 집에서 몇 마리의 닭을 키우던 주부였다. 어느날 그녀는 병아리 50마리를 구매하려다 주문 오류로 500마리를 받게 되었다. 스틸은 이 병아리들을 실험삼아 실내에서 키워보았는데 그즈음 발명되었던 사료보충제(닭의 사료에 비타민 A와 D를 첨가했다)덕분에 병아리들은 죽지 않고 겨울을 보냈다. 몇 번의 실험을 거치며 1926년에 스틸의 닭은 1만 마리로 불었고 1935년에는 25만 마리가 되었다. 미국의 어느 주부에게 일어난 이 사소한 사고가 현대 가금류 산업의 공장식 축산업의 도래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224p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이라는 전제를 단 뒤에 개식용 찬성의견을 펼친다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그들이 개식용을 찬성하는 이유는 개고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평등, 권리,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믿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한국사회의 개식용 논쟁은 이런 화두를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관점이다. 295-296p 마찬가지로 내가 미코라는 한 마리의 유기견을 구했을 때 연간 유기동물 발생 두수를 가리키는 10만이라는 수치는 내게 무력함 그 자체였다. 10만 마리에서 내가 줄인 유기견의 숫자는 단 한마리였다. 미코를 구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코가 나에게, 내가 미코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미코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기에는 도덕도, 윤리도, 모순도, 딜레마도, 어떤 복잡한 문제도 없었다. 낙관도 비관도 없었다. 나는 거기에서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자격 없는 자의 응답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달팽이들』 『스캔들』 등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는 소설가 하재영의 첫 논픽션으로, 버려진 개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번식장, 보호소, 개농장을 취재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번식업자, 유기견 보호소 운영자, 육견업자 등 다양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개 산업의 실태를 그려낸다.
[1부 부두] 공장 p.10 그녀는 공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그리웠던 풍경들을 허겁지겁 눈으로 좇으며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그것은 이미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지워져 공장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죄수들이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사형수가 청소는 해서 뭐 하냐고 비아냥거렸을 때, 청산가리는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덧붙여,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애꾸 p.40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벌치기가 죽었을 때 꿀벌들이 그의 몸에 새카맣게 달라붙어 큰 덩어리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몸에 달라붙은 벌들로 인해 벌치기의 시체는 마치 커다란 바위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꿀벌들은 말벌과 싸울 때처럼 그의 몸에 달라붙어 빠르게 날갯짓을 해댔다. 나중에 노파의 딸이 시체에서 벌들을 떼어내려고 하자 그 속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그녀는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훗날 사람들은 그 이유가 벌들이 벌치기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라고도 했고 또는 자신을 돌봐주던 주인을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도 했고, 또 혹자는 벌치기를 죽인 것이 바로 벌들이라고도 했다. 하역부 p.65 그녀는 파랗게 빛나는 고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헤엄을 쳐도 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고, 매끄러운 거죽이 손에 잡힐 듯 코앞에서 번들거렸지만 고래는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 허탈해진 그녀는 지칠 때까지 물 속에서 나오지 않고 다시 고래가 솟아오르길 기다렸지만 끝내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완전히 기진해서 그녀가 다시 물 밖으로 나왔을 땐 바다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등을 떠밀어 고향을 떠나게 했던 바로 그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제 그녀를 다시 어디론가 데려갈 참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바람을 불렀을지도.... 칼자국 p.89 그 물고기는 언젠가 그녀가 바닷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사내들이 작두만한 칼로 거침없이 고래의 배를 썩썩 가르자 피와 내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 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출항 p.117 과연 객관적 진실이란 게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칼자국이 죽어가면서 금복에게 한 말은 과연 진실일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도 인간의 교활함은 여전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2 평대] 개망초 P.149 언제부턴가 선로를 따라 이름 모를 하얀 꽃이 무성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 그것은 바다 건너 멀리 외국에서 들여온 철도 침목에 씨앗을 숨기고 있다 삼분지 일쯤 지구를 돌아 그들이 붙어온 굄목이 자리를 잡자마자 바람을 따라, 철로를 따라, 자연의 법칙을 따라 들로 산으로 퍼져나간 식물이었다.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있을 참이었다. P.151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이미 초래된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보태려는 사람들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가보다. 벽돌 p.199 그것은 벽돌을 굽기 전에 미리 찍어둔 인장으로, 벽돌공장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벽돌의 상품명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벽돌로서는 최초의 브랜드였던 셈인데, 금복의 장사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또하나의 증거였다. 고래 p. 271 어둑한 호롱불 아래, 어른들은 납빛처럼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엄마의 얼굴엔 이불이 덮여 있었다. 그날 이후, 소녀를 지배한 건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인생의 절대 목표는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다. ...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p.274 그들은 영화를 통해 인생을 이해했으며 영화는 부조리한 실존에 질서를 부여해주었다. 그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모험과 달콤한 로맨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고, 불가해하다고 믿었던 세상이 엄격한 시적 정의의 질서 아래 작동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고 매혹적이어서 모든 것을 건너뛰는 동시에 모든 것을 단절시키는 한편, 모든 것에 우선하고 모든 것을 포섭해서 기어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었다. .... 모든 미국적인 것은 아름답다. [3 공장] 교도소 p.318 한편, 그는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소명을 실천하고 인류의 유전적 소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영지에서 주어진 권한 이상의 업무를 수행했다. ... 그것을 그는 '매립'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의 인종 개량학적인 우생수술은 죄수들의 인권을 무시한 불법적인 시술이었짐나 교도소 내에선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었다. .... "그런데 이 계집애는 꼭 바크셔같이 생겼구먼" 그것은 영국에 있는 한 지방의 이름이며 그 지방에 기원을 둔 돼지 품종의 이름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춘희는 교도소 안에서 바크셔라고 불려졌다. 철가면 p.337 철가면은 고통이 면역되지 않도록 언제나 싱싱하게 살아 있는 신경을 찾아냈다. 모진 고통 속에서 춘희는 자신의 욱체가 점점 지워져가는 것을 느꼈다. .... "그러니까 기억이란 신비로운 것이지." 왕족 p.348 아무도 물리적인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 그들은 마치 이리 무리에 잘못 끼어든 승냥이를 쫓아낼 때처럼 냉담하고 잔인해져 있었다. 그것은 지식인의 법칙이었다. .... 그는 결국 세상에는 비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으며 비밀은 오직 혼자만이 간직하고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비밀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 그것이 그녀가 춘희가 있는 감방으로 오게 된 사건의 전말이었다. .... 그렇게 해서 약장수와 창녀였던 두 사람의 파란 많은 인생은 모두 형장에서 마감하고 말았다. 춘희 혹은 여왕 p.40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계속 벽돌을 만들었을까? .... 그 어떤 해석도 충분한 설명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노동은 단지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필사적이었으며 단지 유희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된 일이었으며, 또 단지 그리움 때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반복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벽돌을 굽는 일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을까? ....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했던 그 열정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에필로그 둘 p.421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문학동네 소설상이 오랜만에 당선작을 냈다. 주인공은 지난해 여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천명관씨. 등단작 '프랭크와 나'를 제외하곤 아무 작품도 발표하지 않은 진짜 신인이다.
1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조지 오웰과 술과 담배] p.38 전업 작가 생활은 굉장히 외롭다. ... 처음에는 그 어색하고 막막한 기분이 뭔지 몰라 며칠 당황했다. 한참 뒤에야 아, 이게 외로움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우리가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무척 복잡다단한 심리로서, 아마도 한 종류가 아닌 듯하다. 즉 용어 자체가 좀 부정확하다. 세상에는 사람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드는 외로움도 있다. 초여름 해가 질 무렵, 쓸쓸하고 아름다운 갯벌 바다 앞에서 그런 감정을 음미한다. 반면 전업 예술가의 고독은 삶 자체에 흥미를 잃게 하는, 피로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는 어떤 긴 작업을 혼자 해야 하는데, 그 작업을 왜 하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달리 없다. 그걸 남한테 설명하다 보면 비참한 기분에 빠진다. 왜냐하면 대체로 그는 세속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고, 의도와 결과물도 딴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설명해줘도 남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가면을 쓰고 살게 된다. [집필실과 레지던시] p.45 적지 않은 기업과 문화재단, 지방자치단체가 예술가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낮에만 이용 가능한 스튜디오를 빌려주는 곳도 있고, 작업실 겸 숙소에 밥까지 주는 곳도 있다. 사용료를 조금 받는 곳도 있고, 무료인 곳도 있고, 지원금까지 주는 곳도 있다. 이런 예술가 레지던시는 외국에도 흔하며, 특히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보편적이라고 한다. .... 운영하는 쪽에서도 눈에 보이는 작업물이 생기는 시각예술이 전시나 홍보 효과 측면에서 매력적이지 않을까 혼자 짐작해본다. ... 문인을 위한 창작 레지던시는 수요와 공급이 그 중간쯤인 모양이다. 토지문화관, 연희문학창작촌, 부악문원, 소설가의 방, 강원 작가의 방, 백련재 문학의 집, 글을 낳는 집, 예버덩 문학의 집, 노도 문학의 섬,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등. [고유명사를 어찌할까요] p.64 코널리가 이들 실존 기관과 언론사 명을 자기 소설에 아무 거리낌 없이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름도 아니고 주요 캐릭터들의 직장이며 핵심 사건의 배경이다. 마냥 정의롭게,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 나는 진짜로 수정 헌법 1조가 이런 차이의 원인인가 싶어서 창작물 관련 국내 명예훼손 소송 사례를 조사해본 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식선에서 불만을 터뜨릴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창작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예 명예훼손죄를 피해 갈 수는 없었지만, 어지간하면 법원은 뭐라 간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껏은 그냥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냥 다들 지명이나 기관명을 가상으로 지어서 쓰니까 집단적인 습관이 된 것 아닐까? [소설가들은 어떻게 친해지나요] p.123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설가들은 전부 개인주의자라는 사실이다. .... 기본적으로 글 쓰는 일이라는 게 혼자 하는 작업이고, 소설은 더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개인주의자라도 생활인으로서 이런저런 활동이 있고 네트워크가 있다. .... 소설가들을 한데 모으는 자리도 있다. ... 몇몇 문학상 시상식과 연말 송년회는 여전히 제법 성대하다. ... 데뷔 시기가 비슷하거나 나이가 엇비슷하면 '젊은 작가 좌담' 같은 자리에 함께 초청받기도 한다. 남들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거기에 나가서 들어보면, 고민은 대개 비슷하고 해결책은 다들 없다. 동년배 한 무리가 고민이 비슷하고 해결책이 없으면 끈끈해진다. 2부 소설가의 돈벌이 [내 책은 얼마나 팔리는 걸까] p.153 일반적인 단행본은 3천-6천부 정도 팔리면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한다. .... 책이 한 권 팔릴 때 저자가 받는 돈, 즉 인세는 대부분 책값의 10퍼센트다. 그러니 한국문학의 기대주는 인세 외에 다른 수입이 없으면 기초생활 수급자 신세고, 한국 소설의 미래도 인세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작가들이 잘 모른다. 우선 출판사마다 인세를 입금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 그냥 작가가 언제든 자기 책 누적 판매량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참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 상금이 선인세라서, 몇만 부가 팔리기 전에는 내게 인세 들어올 일이 없다. .... 영화라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통합전산망을 통해 누적 관객 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영화관에서 발권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판계에는 이런 통계가 없고, 책 판매량을 밝히는 서점도 거의 없다. [요즘엔 별걸 다 해야 돼요] p.190 요즘엔 정말, 별걸 다 해야 돼요. .... 그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해도 콘텐츠와 책은 다르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엄연히 다르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싲가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계약은 어려워] p.196 2차 저작물의 형태도 복잡해졌다..... 권리의 형태 역시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이 모든 일이 현대의 삶에 대한 은유 같다. 주변 환경은 정신없이 변하고, 따라잡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고, 아니 도태되어 멸종된다고 하니까 어, 어 하면서 따라간다. ... 발전은 대개 나의 통제력 상실을 의미한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자기 건강 상태를 확신할 수 없게 되듯이, 내 권리라고 하는데 나는 거의 아는 게 없다. ...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협상 경험이 많고 변호사와 더 가까운 이들에게 유리해지는 구조가 되어간다. [정부지원과 한국문학] p.252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문제다. 나는 적극적 복지에 순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배고픈 예술인과 배고픈 비예술인도 구분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직업에 관계없이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창작 지원에 찬성한다. .... 반면 자기 부담금 없는 예술인 연금 같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누구나 웹소설 플랫폼에 글을 올려 작가 호칭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예술인의 자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국가가 그 기준을 정하는 게 바람직한가? 위에는 이런 고차원의 딜레마가 있고, 아래에서는 여러 집단에서의 이해관계가 얽힌다. 그러다 보니 문화 지원 정책이 실행된 결과물을 보면 비판할 지점들이 늘 여러 각도에서 보일 수밖에 없다. 사업을 추진하는 공무원들도 참 답답할 것이다. 3부 글쓰기 중독 ['거대하고 흐릿한 적'과 작가들의 공부] p.320 이 작품들을 준비하면서 저는 '거대하고 흐릿한 적'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과거 제 선배들이 쓴 현실참여형 소설에서는 우리가 저항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고 단순하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하수인이나 협력자, 또는 탐욕스러운 자본가와 그 주변인이 그들이었습니다. ... 그러나 최근 한 세대 사이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억압하는 실체 역시 과거보다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억압이 제도 속으로 들어갔고, 그만큼 학문적인 깊이를 갖춘 이론이나 합리주의의 탈을 쓰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는 곧 사회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작가라면 전보다 훨씬 더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요? [주 작가의 독서량과 집필량이라면] p.373 한국에서 소설가로 살기는 녹록지 않아서, 내 또래 다른 소설가들은 어떻게 사는지 살피게 된다. 그가 나와 같은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지니고 비슷한 자세로 글을 쓰면 라이벌 의식과 동지의식을 함께 느끼게 된다. 후자를 좀 더 강하게 느낀다. '나 같은 인간이 나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내게는 그런 동료가 주원규 작가다. ... 그는 <공산당 선언>을 700번 이상 읽었다고 한다. 20대에는 어느 시립도서관의 책들을 작심하고 다 읽은 적이 있다는, 믿기지 않는 에피소드도 있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말하고 듣는 세계’보다 ‘읽고 쓰는 세계’를 지향하며 책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나 책을 써보자고 제안했던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유유히)에서는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가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이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부지런히 글을 지어 먹고사는 소설가의 일상과 더불어 문학을 대하는 본심을 숨김없이 풀어놓는다. 소설가 장강명은 오후 11시 반쯤 자고 오전 6시 반 전에 일어난다. 글 쓰는 시간은 스톱워치로
<댓글부대>, 장강명 1. “강사가 자기들의 언어를 썼기 때문이죠. 여기 강사들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사람도 기껏해야 삼십 대 중반인 거 눈치채셨습니까? 기성세대가 말하는 건 일단 불신하고 보는 세대입니다. 인터넷에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판쳐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서로 가르쳐준다 싶은 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 아이들이에요. 우리는 이 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p. 24 2.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 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p. 57 3. 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않고 요즘 젊은 이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뭘 포기한 세대라느니 하면서 오히려 기를 꺾어놔. 아주 악질적인 사고방식이야. 조금만 부추겨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는 애들한테 ’동네 뒷산 오르는 주제에 무슨 엄살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힘드니까 등산이다’라며 멸시하고. 자기들 인생 하나 성공하지 못한 종자들이, 자라나는 애들 미래를 발목 잡고 있어. 다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해.“ p.147-148 4. ”뭘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만큼 사람 정신을 좀먹는것도 없어. 사람들도 그걸 알아. 어떻게든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려 필사적으로 애쓰지. 아주 발악들을 해. 취미에 몰두해서 걱정을 떨쳐버리려 하기도 하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면 혹시 없던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몇 번씩이나 두드려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술을 퍼마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p. 149 5. ‘세이프티 볼트’라는 기술이 있어요. 난간이나 낮은 담 같은 걸 뛰어넘을 때 쓰는 기술이에요. 한쪽 다리랑 한쪽 손을 난간 위에 대고 뛰면서 나머지 다리는 미끄러뜨리듯이 접어서 난간을 넘는 거죠. ‘볼트’라는 게 뛰어넘기 기술인데, 그중에 이게 안전하다고 이름이 ‘세이프티 볼트’래요. 그런데 막상 하는 거 보면 별로 안전하지 않아요. 가만히 서 있다가 낮은 담을 넘을 때에도 열 번쯤 하면 한 명은 실수로 다리가 난간에 걸리거나 해요. 달려오다가 하면 훨씬 더 위험하고요. p.205 <피프티 피플>, 정세랑 1. 몇시간쯤은 잔잔함이 계속되리란 예감이 들었다. 심폐 소생술을 하고 나면 찾아오는 참기 어려운 허기를 해결하며 기윤은 자신의 안쪽에 설치된 급경사의 레일을 점검했다. 참담함의 한가운데에서도 오르락내리락 달리는 기괴한 롤러코스터를. 다음 당직에는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파고가 내려가도 지속되는 것들이 간절했다. p.20 2. 같은 사람들이다. 그 짧은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다. 떠오르고 나서 이해가 되었다. 같은 사람들이었다. 토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학을 통폐합시킨다. 보이는 토대와 보이지 않는 토대를 다지지 않고 허무는 사람들 말이다. 발밑으로 모래가 흘러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그리하여 입을 벌린 구덩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등을 뒤에서 밀어버리는 사람들...같은 사람들이야, 말해주고 싶었다. 말해야 할 것 같았다. p.135 3.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기준을 각자 세우게 되잖아요? 제 기준은 단순해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마음의 마개가 잘 닫혀 있느냐 덜컥거리며 쏟아지느냐. 상대방을 고려 않고 감정을 폭주시키는 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선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 드물고 귀해요. p.236 4. 설아가 정말로 해바라기센터를 주저 없이 맡아 운영해 오고 있었기에 근용은 조용해졌다. 해바라기센터는 전국 중소도시의 거점병원에 설치된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시설이었다. 복합적인 의료지원과 함께 사회복지사와 경찰, 행정 직원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다들 냉한 성격의 설아가 해바라기센터를 맡은 것에 갸웃했지만, 의외로 환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하품이 옮는 것처럼 강인함도 옮는다. 지지 않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 그런 태도가 해바라기의 튼튼한 줄기처럼 옮겨 심겼다. p.325-326 5. 소씨 아저씨를 배웅하러 장례식장을 나서, 로비 바깥까지 따라 걸었다. 밤바람이 차고 맑았다. “눈이 닮았네요.” “안 닮았는데요.” “닮았어요. 눈 안에 심지가 있어요. 가장 의지했던 딸인거 알지요?”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할아버지네, 승화는 웃었다. 오래된 상처를 그 말들이 연고처럼 덮었다. 승화는 한마디도 믿지 않고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고마웠다. p. 440-441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장편소설. 그간 <표백>, <한국이 싫어서> 등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써온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목소리로 부박한 현실에 정면 돌파를 시도한 소설이다.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개정판스테디셀러 『피프티 피플』의 10만부 판매 기념 전면개정판. 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소설 속 세상에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감수성에 걸맞도록 문장 표현을 다듬었고 출간 이후 달라진 의료 정보 등을 손보아 전보다 한층 섬세해지고 정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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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프리스타일 랩을 위한 북클럽 《운율,서재》
명품 추리소설이 연극무대로~ (돌아온 연뮤클럽)
[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 애주가를 위한 큐레이션
[그믐밤] 30. 올해의 <술 맛 멋> 이야기해요.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서강도서관 x 그믐] ④우리동네 초대석_김혼비 <아무튼, 술>
'하루키'라는 장르
[Re:Fresh] 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다시 읽어요.[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하루키가 어렵다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함께 읽기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작법서 읽기]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함께 읽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김새섬의 북모닝, 굿모닝 ☕
[1월 북모닝도서] 넥서스 - 하라리다운 통찰로 인류의 미래를 묻다[1월 북모닝도서] 빌드(BUILD) 창조의 과정 - 또라이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아이팟의 아버지[1월 북모닝도서] TSMC, 세계 1위의 비밀 - 클립 하나에 담긴 보안[1월 북모닝도서] 레드 헬리콥터 - 숫자 뒤에 사람 있어요.[1월 북모닝도서]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역사 속 리더들에게 배우다
<책방연희>의 다정한 책방지기와 함께~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 채식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③ 고기는 절반만 먹겠습니다 (브라이언 케이트먼)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②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12주에 채식 관련 책 12권 읽기 ① 채식의 철학 (토니 밀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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