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死者)와 권력

D-29
이쯤 되면 그림이 그려진다. 사자 숭배는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에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더 매력적이다. 오토 3세와 프리드리히 역시 교회의 주도권을 잡고 싶어했고, 나폴레옹과 히틀러 역시 그러했다. 나폴레옹은 교황에게 “당신이 보고 있는 나는 카를 대제요”라고 일갈하며 자신이 쥔 권력을 정당화했고, 히틀러가 카를 대제의 제국을 독일인과 함께 수고하겠다고 말한 것은 1943년,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 이후이다.
10. 프리드리히 2세와 구세주 예수의 묘 (p.293~p.313) 이 챕터에 등장하는 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 싶었고 비어있는 묘는 충분한 대답 같았다. 죽음이 사라진 묘에는 다양한 비유가 붙었다. "다윗의 집", "솔로몬의 침상", "지구의 심장" 등등. "교황 알렉산더 3세는 1181년 제후들에게 칙서를 보내면서 순례자로 예수의 무덤을 찾는 자는 모든 죄의 씻김을 받을 것이라 하고 있다." 그러니 신성한 묘가 자리한 예루살렘이야말로 축북받은 도시였다. 십자군 전쟁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에게서 탈환해 기독교도에게 돌려놓겠다는 명분 아래 일어났다. 그리고 이 신성한 전쟁에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다.
1228년 프리드리히 2세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황제와 교황은 권력을 두고 다퉜고, 교황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며 세속 권력을 원하는 교황을 비판했지만 당대 신학자들의 입장은 한 문장이었다. "교황이 진짜 황제다." 이미 파문까지 당한 프리드리히에게 남은 수는 예루살렘이었다. 십자군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기독교 세계로 돌리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이미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군대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었고, 교황이 프리드리히 2세의 퇴위를 결정하는 순간 그는 끝장이었다. (여기서 파문의 두 가지 종류를 알아두어야 한다. 파문에는 대파문과 소파문이 존재했다. 대파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파문이다. 파문을 당한 자는 그 즉시 기독교 세계에서 제명을 당하며 교회와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대파문의 효력은 현세 뿐 아니라 내세까지 영향을 미쳤다. 소파문은 경중이 약한 파문으로 교회 일에 간여하지 못하는 형벌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소파문만 당한 상태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예루살렘을 점령해간다. 근방의 도시를 공략하면서도 이집트의 술탄이자 살라 웃딘의 조카인 알말릭 알카밀과의 협상을 통해 소유권을 양도 받았다. 얻어낼 것은 얻어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프리드리히는 마침내 예루살렘의 대성전에 오른다. 프리드리히는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성전에서 스스로에게 예루살렘의 왕관을 씌운다. 이 대관식의 축사는 필사되어 각국의 왕과 교황에게 전달되는데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교황에게 보내진 필사본은 "최고 왕의 명성과 권위"를 위해 황제가 왕관을 썼다고 하지만 영국의 왕에게는 다음과 같이 보내진다. "아, 주님은 기적의 권능을 행사하사 제후들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왕을 높이 세우셨느니라. ...... 이를 행하신 것은 바로 주님의 손이로다!" 앞서 프리드리히 2세가 소파문을 당한 상태란 것을 명심하면, 이 대관식의 의미심장함을 알 수 있다. 이 대관식은 하나의 예배이며 신성한 예식이었다. 그런데 교황도 추기경도 주교도 아닌 소파문을 당한 황제가 직접 예배를 주관하고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했다. 프리드리히 2세의 성전은 다시 교황의 밑으로 들어가려는 목적이 아닌 스스로의 권위를 교황과 무관하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화가 난 교황은 예루살렘의 주교 게롤드의 성직 수행 정지 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예수에게 선택받은 왕으로, 새로운 다윗으로 등극한다. 이렇게 프리드리히 이전에는 초라한 기념비와 작은 추모만 거행되던 예루살렘이 화려한 성전의 도시가 되었다.
집단이든 혹은 개인이든 정치권력은 그 기초를 다지고, 자신을 관철하며 부단히 강화해나가는 데 있어 상징을 이용한다. 이것이 정치의 논법이다. 그래서 한 사회나 국가의 지도계층 안에서는 상징을 누가 확보하는가를 두고 끝없는 싸움이 벌어진다.
사자와 권력 p.311, 올라프 라더
11. 처벌과 복권, 죄인은 영혼이 사라진 육신이다 (p.315~p.337) 저 위에 쓰기 싫었지만 억지로 써 놓은 책 소개와는 다르게 주로 사자를 숭배하는 사례가 책 전반에 걸쳐 나왔다. 이 챕터는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이 모욕과 처벌의 대상이 된 사례를 이야기한다. 89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주교 복을 입은 교황이 주교 자리에 앉아서 처벌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산 사람이 아닌 시체였다. 죽은 지 9개월이 지난 교황 포르모수스는 무덤에서 파헤쳐져 죄인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의 세 손가락은 꺾이고 몸은 외국인 순례자들이 묻히는 곳에 묻혔다가 티베르 강에 던져지는 형벌에 처한다. 교황이 되기 전 주교로 지켜야 할 교회법을 어겼다는 명목이었다. 그는 부러진 손가락으로 안수할 권한을 박탈 당하고, 이름이 없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새로운 교황이 포르모수스의 정치적 반대세력에 속했기 때문이 벌어진 일이다. 포르모수스가 교황으로 행한 모든 임명은 취소 당하지만, 왕들만은 예외로 남았다. 새로운 교황 스테파누스 6세가 제후들의 영향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상황은 급변한다. 스테파누스 6세는 실각하고 감옥에서 교살 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다시 포르모수스의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고 미리 강에서 건져둔 포르모수스의 유골을 베드로 대성당의 묘지에 안치한다. 이러한 사건은 사자 숭배의 기능을 역으로 증명한다. 죽은 사람이 제공해주는 정통성, 카리스마, 명분 등등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중요하다. 새롭게 권력을 원하는 사람은 기존에 존재하는 권력이 존경하는 시체에 대해 분노를 터트린다. 이 경우에는 "육신을 능욕함으로 기억을 능멸하려는 게 정확한 목표"가 된다.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기에 가장 흥미로웠던 사례만 적어두고자 한다. 1961년 콩고 총리였던 루뭄바는 콩고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인 절차에 거쳐 당선된 인물이다. 현재 루뭄바시라고 불리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그는 벨기에 군에게 납치되어 고문 당하다가 죽는다. 그의 시체는 황산이 담긴 욕조에 빠진다. 루뭄바는 제 1세계에 반기를 든 반제국주의자였다. 경제 자립을 외치면서 콩고의 자원을 원하던 서구 자본가들의 불만을 샀고, 벨기에가 가지고 있던 콩고군 작전권을 돌려 받으려 했다. 벨기에는 이에 불만을 가지고 카탕가에 파견되었던 벨기에 군사자문단에게 루뭄바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2. 현대 무덤의 마력, 에필로그 (p.339~p.383) 죽은 사람에게서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내는 시도는 비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마술적 사고는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사례도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을 정리하면서 한국의 예를 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 할 이야기는 많을 것이다. 정치인의 취임사나 서울과 대구로 나뉘어진 현충현, 국장의 문제 등등. 하지만 정치적인 실마리도 굳이 드러내기는 싫어서 적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한국으로 복귀한 정치인이 이전 대통령의 묘역을 들리는 뉴스가 나와서 참 묘했다고만 적어두겠다. 이 장에서는 룩셈부르크와 캐나다의 예시가 등장한다. 두 국가 모두 현대 국가와는 무관한 근대 국가의 인물을 추모한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에게 수모를 당한 룩셈부르크는 1346년 사망한 룩셈부르크의 얀(Jan Luxem-bursky)의 유골을 독일에게서 돌려 받고 대성당에 안치시킨다. 룩셈부르크는 크레시 전투에서 사망한 영웅을 돌려받음으로써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한다. 이 영웅이 한낱 용병대장이었으며 권력 투쟁에 몰두한 야심가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캐나다의 경우도 특이하다. 프랑스 계의 사람들이 대부분인 퀘벡 시는 자신들이 정복 당한 것을 기념한다. 'Le Conquete'라는 말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투 이후 사망한 프랑스 장군 몽칼름을 기리는 말이다. 퀘벡시는 우르술라 수도원의 수녀들이 200년 전 감추어 둔 몽칼름의 유골을 2001년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 행위는 자신들의 패배를 기억하는 행위이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동일감을 고취한다.
아픔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아픔을 낳게 한 사건으로 정신적 일체감을 고취하기 위해서다. 특히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감수해야 했을 때, 그래서 무력감과 원통함으로 가슴을 칠 때.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무엇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동지의식을 갖게 된다.
사자와 권력 p.345, 올라프 라더
아픈 과거를 스스로 끄집어내는 것은 아직 상실의 아픔이 남아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그 피해를 낳게 한 선조들이 아픔을 충분히 소화하기 못해 앙금이 남은 것이다.
사자와 권력 p.345, 올라프 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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