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1

D-29
나는 렉싱턴 애비뉴를 건너다가 구석의 신문가판대를 힐끗 보았다. "뉴욕 금융업자 앤드루 베벨, 심장마비로 사망" 서너 걸음을 걸어간 뒤에야 그 말을 이해하고 신문가판대로 돌아갔다. <뉴욕 타임스> 1면에 적힌 말이었다. 모든 신문의 1면에 비슷한 말이 적혀 있었다. <더 선>: "죽음이 앤드루 베벨을 데려가다" <아메리칸>: "위대한 금융업자 앤드루 베벨, 62세로 사망" <포스트>: "거대 은행 제국의 지배자 앤드루 베벨 사망" <일 프로그레소>:"앤드루 베벨 에 모르토" <월 스트리트 저널>: "앤드루 베벨 62세로 사망" <헤럴드>: "베벨, 죽다"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1 에르난 디아스, 트러스트
출판사 얘기 하셔서 문득 생각난 건데, 저는 드라마나 책에서 제가 몸담고 있는 업계 얘기가 나오면 왠지 흠칫하게 되는데요. ㅎㅎ 트러스트에서도 괜히 저 혼자 낄낄댔던 부분이 헤럴드 베벨 부고 소식을 전하는 매체들의 미묘하게 다른 톤이었어요 ㅋㅋㅋ 신문사별 정치 성향과 특성을 부고르 전하는 한줄 제목으로 보여준 게 재밌더라고요 ㅎㅎ
그런 점에서 요새 저는 정진영 작가의 '정치인'을 읽으면서도 자주 흠칫하는데요. 실제로 저자가 기자 생활을 오래 했던만큼 기자의 일이 이렇게 객관적으로(?) 그려지는 게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해서요. ㅎㅎ 책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정치인'은 '침묵주의보' , '젠가'를 잇는 조직3부작의 세 번째 소설입니다. 세입자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얼결에 정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주인공 '정치인'이 국회에 입성하며 겪는 일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국내에선 정치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나마도 대부분 음모와 비리의 축으로 정치를 다루고 있다면 이 소설은 ‘입법’과 그 법안을 둘러싼 정부와 국회의, 혹은 여야의, 야당 내부의 관계를 그립니다. 아무래도 '입법'의 과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는 만큼 쉽게 몰입하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정치 내부를 샅샅이 보여주는 본격 '정치 소설'이 잘 없다는 점에서 한번쯤 짚고 넘어가면 좋은 소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치인소설 《정치인》을 읽어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는 철저히 ‘법’안에서 살고 있다. 율사는 법안에서 세상을 재단하지만, 실제로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은 시민이 뽑은 국회의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법이 만들어질 길이 본래 있는 것이다. 정치도 곧 인간이 하는 행위이므로 돈보다 무서운 권력이 자리한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 삶과 다르지 않다. 기초적인 생활도 어렵다는
@범한소 정치한 소설은 많고, 정치적인 소설은 그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드물지 않은 것 같은데, '정치 소설'은 언제 읽었는지 까마득하네요. <정치인>은 제목이 너무 '정치인' 그 자체여서 모종의 '자극'을 못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입법 과정'을 다룬다고 하니, 제목처럼 그 자체로서의 정치를 다룬 것 같네요. 재미랑 정보 중 어떤 쪽이 더 우세한지, 그런 것도 조금 궁금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업계의 사정을 아는 사람 시선으로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한 소설은 <익명 소설>이었어요. 프랑스 소설이고, 5분의 1정도 봤는데, 상당히 '프랑스 소설' 스러운 지적 미스터리를 표방해요 ㅎㅎ 출판사에 투고된 익명의 소설이 너무 흥미로워 서면으로 계약하고 책을 내는데, 소설 속에 그려진 내용들이 현실에서 벌어져요. 작가는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고.. 그런데 제 킬링 포인트는, 출판사 원고 검토부에 가해지는 탈락자들의 증오와 저주, 그리고 그런 반응에 대한 편집자들의 시니컬한 반응들이었어요. 스티븐킹 원고 받으러 비행기 타고 '달려'가는 모습들도 재밌었더라고요.
익명 소설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잘나가는 신작에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바로 소설을 쓴 작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작품의 내용과 현실의 살인 사건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형사까지 나타나는데……. 《익명 소설》은 프랑스 현대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이자, 우리나라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욤 뮈소 등의 뒤를 이을 프랑스 작가로 평가받는 앙투안 로랭의 스릴러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두고 ‘단순한 탐정 소설을
잠들기 전에, 평론가님들에게 공통된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끄적여 봅니다. 일주일 동안 언급된 책들 살피느라 다들 분주할 것 같은데요, 거기서 조금 벗어난 얘기도 해보고 싶어서요^^ 장편소설 한 권을 읽는 동안 작품에 대한 마음은 왔다갔다 하잖아요.. 이건 좋은데 저건 좀 아쉬운 식으로. 그럴 때, 다 읽고 나서 좋다고, 탁월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각자 어떤 걸까 궁금해요. 실은 어제 한 북클럽에서 소설 <프랭키스슈타인>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내내 좋았던 건 아니지만 플롯에 쏟은 노력이 정말 대담하고 대단해 보였고, 저는 그런 형식들에 상당히 점수을 많이 주고 있더라고요. 소설은 1819년에 메리셸리가 프랑켄슈타인 쓰던 얘기랑 현재에 과학기술 영역에서 프랑켄슈터인 박사처럼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려는 사람, 거기 반대하는 또 다른 박사, 그리고 섹스봇 사업자 이야기가 교차 진술돼요.. 솔직히 요즘의 고민이기도 한데요. 이런 독해가 너무 전형적인 독해인 걸까, 내가 너무 교과서처럼 읽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어서요. 소설을 잘 읽는다는 게 뭘까요.. (밤늦게 다소 느닷없는 글을 쓴 것 같아 부끄럽내요. 빨리 퇴장해야지. 총총) 다들 좋은 밤 깊은 밤 보내고 있기를요!
ㅎㅎ 읽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남겨두었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고서 들러보았어요, 그 사이에 쌓인 대화가 반갑고 따라 읽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남겨진 질문을 두고 생각해보았는데요, 장편 한 권을 읽고 이 소설이 정말 탁월하다, 라는 판단에 이르는 경우는 참 드물고 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은 중간에서 읽기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장편을 만나는 것부터가 드물다는 생각인데요, (선생님들은 중간에 독서를 그만두시기도 하는지, 아니면 그래도 끝까지 읽어야 마음이 개운한 편이신가도 궁금하네요ㅎㅎ) 그런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요소에 재미만 고려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참 많은데 왜 굳이 장편소설을 읽으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끝까지 다 읽는가? 여기에는 장편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좀더 나아간 대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하간 저를 다 읽게 만든(!)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에 기대어 생각을 이어붙여보자면... 이 소설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니었어요, 조금 덜어내도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들도 있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이 인물들이 어디로 갈지 궁금하다, 이 서사가 어디에서 끝을 맺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짐작하고 있으나) 그것을 직접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강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소설은 탁월한가, 탁월하다면 어떠한 맥락에서 탁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보아야 할 텐데요... 문득 ‘탁월함'의 기준은 단편과 장편에 다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이 소설은 탁월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저에게는 조금 더 잘 맞고 ‘탁월한 소설이란 이러이러하다’에는 조금 갸웃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적고, 나중에 또 들러 생각을 이어보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시길 바라며...!
흥미로운 질문은 남겨 주셨네요! 책 한 권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혼자서 '정말 좋았어-' 라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 '좋음'의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니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느 하나라고 할 것 없이 독서를 하는 동안 여러 요소를 따질 텐데요- 우선 전기화 평론가께서 말씀하신 것(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장편!)처럼 독서를 끝까지 지속하게 만드는 것, 흡인력이 제게는 장편을 읽는 데에 중요한 기준인 것 같아요. 읽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은 어떤 가치를 판단하고 말하기 위해 좋거나 그닥 별로거나 끝까지 읽기는 하는데요. 독서가 취미였던 시절의 저는 반 정도 읽다가 흥미를 잃으면 그냥 덮어버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쨌거나 하나의 책에 말하기 위해 끝까지 읽는다-를 정해두고 있으니 저를 책장의 마지막으로 추동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하면 결국엔 서사인 것 같아요. 중심이 되는 사건과 그것의 구조도 중요하지만, 그것들 중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보완되는 요소가 있으면 괜찮은 것 같거든요. 가령 주인공이나 인물 간의 관계 같은 것들이요. 독서를 하는 내내 마주하는 사람들이니 장편 속의 인물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되니 인물들도 서사 속의 참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앞으로 몇 권의 책을 정하고 같이 읽는 과정에서라면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대개 저는 독자를 마지막까지 이끄는 서사의 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 적고 보니 서사(narrative)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네요- 너무 큰 덩어리를 툭 던져놓은 느낌도 들고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요!
전기화 평로가님 이야기 중, '이건 탁월하다'와 '탁월한 건 이것이다'의 간극에 대한 내용이 공감되네요. 생각해 보니 어떤 작품을 읽고 나서 그 작품이 좋다고 판단하는 기준이야 있겠지만, 막상 최종 결정(?)이 그런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기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중간에 그만두는 장편소설이 꽤 많은데요, 무언가를 간파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만 읽는 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를 다 읽어 버렸다는 느낌이 들 때라고도 할 수 있겠죠. 구체적으로 그런 느낌은 '균형'이 깨질 때 와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한 설명이 노골적이라거나, 인물의 선택이나 관계의 변화가 수단처럼 보인다거나..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그만둘 때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연봉, 성취, 인간관계, 조직문화 등이 균형 잡혀 있고 앞으로의 시간이 다소 예측하기 힘들 땐 힘들어도 더 다녀 보자 싶고, 그중 어떤 것이 너무 열악해도 다른 것들이 채워지면서 일말의 기대감이 남아 있어 더 다닐 수 있지만, 더 볼 것도 없다 싶으면 사표 내는 것 같거든요. 6월에 같이 읽을 작품 결정할 때도, 그런 균형감이 있는 작품이 선택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나저나 소전서림 수서회의 통해 선정된 5월달 추천 장편 목록 넘겨 보다 <항구의 니쿠코짱!> 보고 깜놀했네요. 얼마 전에 웨이브에서 (요즘 저의 OTT 생활은 웨이브로 대통합) 영화로 보고 마음이 너무 몽실몽실 태평해져서 좋았는데, 소설도 있네요. 여름 휴가 때 읽을 책으로 추천하고픈!
항구의 니쿠코짱!제152회 나오키상, 일본 서점대상 2위를 수상한 일본 대표 여성 작가 니시 가나코의 《항구의 니쿠코짱!》이 소미미디어에서 출간되었다. 《항구의 니쿠코짱!》은 걸걸하고 활달한 어머니 니쿠코와 그녀를 부끄러워하는 엄마와 전혀 닮지 않은 사춘기 초등학생 기쿠코 사이의 비밀이 밝혀지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초라할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항구 사람들을 아이의 시선으로 묘사한 이 이야기는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향수를 자극시킨다는 찬사를 받으며 2021
탁월한 장편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은 각자가 소설을 읽고 있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문에 서평으로 소개할 작품을 골라야 했을 때는 해당 작품이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인가? 우리가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기준이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나 '정치인'은 확실히 더 많은 독자를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고요. 그런 관점과는 완전히 별개로,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 '소설' 읽는 즐거움을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돌아보니 열살때 읽었던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이었던 것 같아요. ㅎㅎ 이전까지는 세계위인전이나 청소년 소설 수준에서 머물러 있던 독자로서의 근력이 '퇴마록'을 기점으로 확 성장했던 것 같아요. 일단 분량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걸 전부 다 '독파' 하면서 소설을 읽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달까요. 소설로서 퇴마록의 가장 큰 장점은 말그대로 '재미'일텐데, 이 재미는 많은 장르소설이 그렇듯 흥미진진하고 눈을 뗼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원초적인 재미에 가까울 것 같고요. 최근에는 추리소설을 좀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을 했는데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띄엄띄엄 읽은 것 빼고는 추리소설을 열렬하게 읽어오진 않았거든요. 그러다 두달 전쯤 코로나 때문에 일주일간 집에서 격리를 하면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과 '빅 슬립'을 연달아 읽었고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새롭게 눈을 뜬 느낌이었달까요. 요즘은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 시리즈를 하나씩 읽어가고 있답니다. '빛이 드는 법' 한권을 일단 읽었는데 무척 '탁월한' 작품이더군요. 그러고보면 같은 장편소설이라도 장르에 따라 독해 방법과 탁월함의 기준이 다를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 고유한 '좋음'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는 경관(마르틴 베크 시리즈 4)요 네스뵈, 헨닝 망켈 등 유수의 범죄소설 작가들이 사랑하는 북유럽 미스터리의 원점, 경찰소설의 모범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제4권 『웃는 경관』. 스웨덴 국가범죄수사국에 근무하는 형사 마르틴 베크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찰소설이다. 공동 저자인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이 시리즈에 ‘범죄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여 부르주아 복지국가인 스웨덴이 숨기고 있는 빈곤과 범죄를 고발하고자 했다. 또한 긴박한 전개와 현실적인 인물이 자아내는 위트도 갖추고 있어 대중
빛이 드는 법길을 잃은 사람들만이 발견하는 퀘벡의 어느 작은 마을 스리 파인스. 그리고 이제 그 사람 중 하나가 사라졌다. 가마슈 경감은 자신이 이끄는 살인 수사과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 작은 마을로 향한다. 거기서 그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던 여인의 실종을 알게 된다. 그 여인은 마침내 피난처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과거가 그곳으로 그녀를 쫓아왔다. 그리고 공포가 고조되는 가운데 가마슈는 역시 자신
기나긴 이별미국의 대표적인 추리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으로,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 로스 맥도널드의 『움직이는 표적』과 더불어 하드보일드 3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챈들러는 1955년 미국 추리 작가 협회의 최우수 작품상인 에드거상을 수상했다.
저번에 영화 고르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 골라서 보았던 영화들을 돌이켜보면 거의 외국 영화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무슨 외국 고전 영화나 실험, 예술 영화들을 본 것은 아니었고 그냥 거의가 블록버스터나 시간 떼우기용 B급 영화들이었어요. 한국 영화들은 거의 보지 않았는데 아마도 저에게 너무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영화를 틀었는데 외국인들이 외국어를 하고, 외국 풍경이 나오고, 그런 게 좋았던 거죠. 그래서 내용적 완성도는 오히려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 저는 그냥 그렇게 뭔가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접속했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진은영 시인 식으로 말하면 철수보다 폴이 좋았던 거죠... ㅎㅎ 소설을 고를 때에도 저는 여전히 비슷한 것 같아요. 저와 너무 가깝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들은 피하게 돼요. 문체가 저에게 중요한 이유는 똑같은 걸 그리더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장치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내용적으로는 조금 황당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엉뚱한 이야기들이 좋고요. 그렇게 어딘가 붕 뜬 느낌으로 소설을 읽어가다가 갑자기 현실과 접속되는 순간이 있는데, 저에겐 그게 소설을 읽으며 가장 좋은 순간인 것 같아요. 카프카 <소송> 같은 작품들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만 일어나지만, 그것들이 한 순간도 우리 현실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잖아요. 이렇게 붕 뜬 느낌이 좋기 때문에 독자를 너무 '몰입'시키는 소설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웹툰을 볼 때는 '이 다음에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고 그렇게 작용하는 게 좋다고 느껴지는데, 소설에서는 반대로 지금 읽고 있는 이 페이지에 이 소설의 대부분의 좋음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런 식의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부코스키의 <우체국>처럼 서사가 거의 없는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실 저는 감정적으로 너무 많은 소모를 하게 하는 소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저의 삶도 이미 충분히 슬프기 때문에... 이렇게 적고보니 참 너무 가벼운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ㅎㅎ; 그게 저의 취향이지만...
소송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소송』. 카프카가 남긴 세 편의 장편소설 중 하나로, 작가 사후에 출간되어 뒤늦게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에 갑자기 체포된 요제프 K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1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소송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적나라한 현실을 묘사하며, 현대사회의 구속과 억압, 관료주의가 지휘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우체국미국 문학 최고의 안티히어로,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소설. 부코스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쓴 첫 장편으로, 하급 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10년간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이후 발표된 일련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택시가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았다. 다시 계단을 올라갔고 침실에 들어가 침구를 걷어내고 새것으로 갈았다. 베개 밑에 긴 갈색 머리카락 한 올이 남아 있었다. 가슴속에 납덩이가 쿵 떨어지는 듯했다. 프랑스인들이 그런 느낌을 잘 표현했다. 젠장, 그 인간들은 모든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1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551p
'지금 읽고 있는 이 페이지에 이 소설의 대부분의 좋음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강보원 선생님 말씀 너무 공감돼요. 개인적으로 건질만한(?) 문장을 하나라도 발견했으면 결국 그 소설은 나에겐 좋았던 소설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기나긴 이별'에서도 다른 많은 요소들은 제쳐두고 "이별을 할 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라는 한 문장 때문에 이 소설을 오래 떠올리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책을 읽다가 꽂힌(!)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문제는 표지를 함께 찍어두지 않아서 정작 나중에 다시 보면 어떤 책의 한 페이지인지 알지 못하는 것...그래서 요새는 책을 다 읽고 나면 항상 표지 사진도 함께 찍어두려고 합니다. ㅎㅎ
"모든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언제나 정곡을 찌른다"는 표현은 소설에 대한 얘기 같기도 하네요. 스스로 표현력이 떨어졌다 싶을 때 긴급 처방 받듯이 소설 읽거든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코맥 매카시 사망 뉴스를 봤어요. 저한테 많은 약을 처방해 주신 분. 코맥 매카시 문학의 본격적인 역사, 사후의 역사가 이제 시작되겠네요. 조금 슬프고, 그보다는 많이 기대되는 이상한 기분이에요.. 저는 <모두 다 예쁜 말들> 좋아헤요.
가격이 없는 사람도 있죠. 그래, 그렇지.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죠? 죽지. 죽는 것쯤은 두렵지 않아요. 그거 잘됐군. 죽을 때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살 때는 별 도움이 안 되지.
6인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 #1 코맥 매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282쪽.
느슨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에 벌써 2주가 흘렀네요. 저는 요 며칠 언급해 주셨던 책들을 가볍게 살피고 있어요. 어제는 보원 평론가님이 추천한 <나의 친구, 스미스> 앞부분과 소개글을 조금 읽어 봤어요. 헬스장 가서 진심으로 운동하는 이야기이고, 그 안에서도 지속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소품 같은 소설이구나 싶으면서도 이 책은 다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일단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혼자만 하던 생각들을 이렇게 소설 속 캐릭터의 생각으로 만나니까 반가웠고, 운동에 대한 온갖 동영상들에서 주워들었던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용어들을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만나니까 생경했는데, 그 점이 신선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진짜 동시대 소설이다, 바로 지금 읽어야 할 소설이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나의 친구, 스미스동네 헬스장의 ‘스미스 머신’을 벗삼아 웨이트트레이닝에 몰두하는 7년 차 회사원. 좀더 체계적으로 단련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디빌딩 대회에 도전하지만 주위 상황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여성의 몸이 가지는 젠더성, 현대사회의 루키즘과 페미니즘을 참신한 관점으로 재해석한 소설이다.
저도 <나의 친구, 스미스> 읽고 싶어서 조금 찾아 봤어요. 작가가 1991년생이고, 실제로 회사 생활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책의 내용들 역시 그런 생활에서 나왔겠거니 싶어 미덥고요. 서른이 넘으면서부터 저도 그렇고 운동을 잘 하지 않던 친구들도 슬슬 몸을 움직여 보고 있는데요. 다들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내 몸을 알고, 근육을 쓰는 방법을 알아 간다는 게 즐겁다는 거였어요. 운동은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몸으로 체득해야만 가능한 기쁨을 느끼게도 하는 것 같아요. 아직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책소개를 보니 몸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피트니스 대회를 나가려고 했던 주인공이 몸이 아닌, 여성 참가자에게 요구되는 것들에 혼란을 겪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바디 프로필 열풍과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바디 프로필도 그렇고, 피트니스 대회도 그렇고, 결국 '보여주기'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느낌인데, 그렇다면 그건 정말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운동이며 몸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아직은 생각 덩어리 정도로만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운동에 대해서, 여성의 몸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사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ㅎㅎ
지난 번에 읽고 있다고 한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를 다 읽어서 이 이야기도 조금 해 볼까봐요. 이 책의 큰 줄기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인데요, 선자 이모는 주인공 해미의 친구인 한수의 엄마이자 해미의 이모인 행자의 간호사 동료예요. '이모들'은 파독 간호사로, 해미가 선자 이모를 만난 것도 어렸을 적 독일에 잠깐 살았던 때였어요. 선자 이모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첫사랑의 이니셜 'K.H.'를 찾기 위해 해미, 한수, 레나 세 친구는 참 많은 노력을 하는데요. 해미가 독일에 있을 때는 K.H.를 찾지 못했다가 아주 먼 훗날, 현재에 이르러 다시 K.H.를 찾기 시작합니다. K.H.를 찾는 건 해미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어쩌면 해미를 기자로 이끌었던 최초의 쓰기와 맞닿아 있을 수도 있고,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쉽지 않았으나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니까요. K.H.를 찾기 위해서 해미와 함께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계속해서 훔쳐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아주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이 보여서 여러 번 뭉클했어요. 백수린 작가가 워낙 아름다운 문장을 잘 쓰기도 하고요... 또, 한국을 떠나와 독일에서 K.H.와의 기억을 되짚는 내용의 일기였기 때문에 파독 간호사로서 선자 이모(와 다른 이모들)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흔히 '희생'이나 '애국', 곱지 않은 시선으로는 '외화벌이' 등의 단어들에 이들의 삶을 가두었었는데, 사실은 그들의 주체적인 선택이 있었다는 걸, 그것이 아주 컸다는 걸 저도 모르고 있었어요. 실제 파독 간호사에 대한 연구에서도 그런 해석이 다분하다는데, 소설에서 그려지는 이모들도 그림자 진 캐릭터는 절대 아니거든요. 최근에 발표된 디아스포라 소설(장.단편을 포함해) 가운데서도 확실히 이 소설은 인물의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사실은 주체적인 선택 아래 꾸려진 삶이라는 거, 그래서인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이 구절이 유독 마음을 건드리더라고요. 선자 이모의 일기의 첫 페이지마다 적혀 있는 문장이기도 해요.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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