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 다리 위 차차 @송송책방

D-29
그런데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역시 지능이 있고, 이 문제를 떠맡다 보면 마음이 괴로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 이야기가 바로 『다리 위 차차』로군요.
50쪽, 헌신적으로 일하는 하얀섬 요양원 대표 아이. 차차가 도입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아이와 같은 요양원용 로봇은 가까운 시일 내에 거의 확실하게 도입될 거라고 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없을 거고요. 그리고 아무런 냉소 없는 전망인데,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그런 요양원용 로봇과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쌓게 될 거라고 봅니다.
1999년에 소니에서 로봇 개 ‘아이보’를 만들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아이보는 나중에 잘 팔리지 않았고, 소니는 2006년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소니가 애프터서비스를 중단하자 사설 수리업체까지 생겼어요. 아이보 주인들이 그만큼 아이보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고칠 수 없게 되자 아이보 주인들은 절에서 아이보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18050416015867639
차차는 ‘넌 인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라는 비난을 듣지만(27쪽), 소니 역시 인간에 대해 몰랐고, 사실 우리 모두 인간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로봇 개가 도입될 때 만든 사람들은 그게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틀린 예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봇 개의 장례식을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인간들은 로봇 개들도 그냥은 떠나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 로봇 개 장례식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져요. 비웃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비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는 성인이 되어서 다마고치를 키운 적이 있어요. 그것도 엄청 귀엽고, 정들고, 죽었을 때 슬프더라고요.
다마고치 저희(?) 옛날 초등학교 때 잠시 유행 했었다가 금방 멸종, 아니 단종 된 거 아니었나요? 꽤 생명력이 있었군요. 그 마음 알 거 같아요. 가끔 저는 진짜 살아있는 개를 보고도 프로그램된 로봇 같아서 징그러울 때가 있어요. 사람을 좋아하도록 진화가 되어서 사람만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하고 귀엽게 달려드는데 그런 모든 기제들이 내부적인 유전자로 타고난 거잖아요.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 그니까 이 강아지한테 난 특별한 건 아니야. 개들은 원래 사람 좋아해.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먹이 주면 좋아한데. 이런 걸 머리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귀여운 건 어쩔 수 없죠. 다 알아도 나를 따르면 정이 가요.
68쪽, [“저 달 옆에 별은 내 어머니가 만드셨어.”]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두 번째로 읽으니 보이는 문장이네요. 이런 치밀한 복선이...
70쪽, 저한테는 이 장면이 『다리 위 차차』 1, 2권을 통틀어 가장 슬프고 잔인한 컷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고요.
인간은 보복의 가능성이 없는 대상에게 쉽게 잔인해지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처음에 선을 넘는 게 어렵지만 한 번 누군가 선을 넘기만 하면 그 뒤를 잇는 일은 매우 쉽고요.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보복의 힘을 부여하는 것?
혹시 @윤필 작가님 이 장면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약간 엉뚱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는데요, ‘인간다움’이라는 게 얼굴과 관련이 있는 일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70쪽이 슬픈 이유도, 어떻게 보면 그냥 종이 위의 그림인 만화에 우리가 쉽게 몰입하는 이유도, 아이보의 주인들이 다른 가전제품과 달리 로봇 개와는 헤어지기 힘들어했던 이유도 상대에게 얼굴이 있어서 아닐까... 그런 생각인데, 정교한 근거나 논리를 대라고 하면 못 대겠네요.
73쪽, ‘소명’이라는 말도 왜 이리 슬픈지. 평소에 저희 부부에게는 힘을 주는 단어인데요. 소명으로 사람(로봇)을 낚으면 뭐든 시킬 수 있을 거 같아요. (대표적인 성공 사례: 예수님) 뭐든 해도 괜찮다는 사람은 가끔 가엾은 처지에 빠지고.
74~75쪽, 이 부분도 두 번 읽어야 겨우 이해가 되네요! 와, 저 무릎을 쳤습니다.
제 의도가 작가님 무릎에 도착했다니 뿌듯합니다.
정강이에 멍이 들었습니다!
장맥주님 댓글을 보고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소명을 이루려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라는 뜻이었을까요?
제 아내인 김혜정 그믐 대표(a.k.a. @고쿠라29 님)는 『다리 위 차차』를 읽으며 차차가 예수님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오히려 신약성서를 뒤집어보게 되었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실 예수의 진심은 죽기 싫다는 것 아니었을까. 96~97쪽에서 차차는 그런 항의조차 못하지 않는가.
확실히 차차가 예수와 같은 역할을 하기는 합니다. 나중에 인류 전체의 구원을 결정하게 되니. 하지만 저는 96~97쪽에서 그렇게까지 생각을 확장하지는 않고, 다만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성소(聖召)를 떠올리기는 했습니다.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풀이하는 그 개념이요.
B가 차차에게 하는 제안이 성소(聖召)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르심을 받는 존재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전 인생을 거는 사명을 그렇게 던지다니. 너무 잔인하고 너무 황홀하고.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한없는 파멸도 감수해야 하고.
저는 그런 성소를 받기를 두려워하는데 늘 거기에 끌리기는 했어요. 모든 번민으로부터 해방될 테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불교의 ‘출가’와는 좀 느낌이 다른 거 같습니다. 그 ‘부르심’의 경험을 들은 신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 신학교에 들어가는 분들 중에서도 그 부르심의 경험을 확신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신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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