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23.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D-29
“인공지능(AI) 시대에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요?” 요즘 강연장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197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바실리 레온티예프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말(horse)들이 미국 민주당에 가입해 투표할 수 있었다면 농장의 상황은 달라졌겠지.” 말을 소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들이 투표할 수 있었다면 공장식 축산업의 끔찍한 농장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겠죠. 우리 인간은 최소한 말이나 소보다는 나은 존재입니다. 투표할 수도 있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AI에 어떤 일을 맡기고, 인간에게 어떤 일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되어야죠. 그러니까, 저렇게 무심코 던지는 질문 뒤에는 사실 아주 무서운 열패감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새로운 과학 기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열패감, 그런 의사 결정은 평범한 시민인 내가 아니라 기업가, 정치인 혹은 과학자의 몫이라는 열패감 등.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말이나 소가 아닌데 말이죠.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금 한창 AI와 로봇을 개발하는 현장의 연구자 사이에서는 잠정적인 합의가 있습니다. AI와 로봇으로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두 가지가 그렇습니다. 바둑이면 바둑, 번역이면 번역, 세무 회계면 회계, 이렇게 딱 한 가지만 잘하도록 훈련받은 AI와 로봇은 업무의 성격이 복합적인 직업을 대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식 노동, 육체노동, 감정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직업을 AI와 로봇으로 대체하려면 각각의 업무마다 별도의 AI나 로봇이 필요하겠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AI와 로봇이 따라서 못하는 인간의 능력 가운데 하나가 섬세하고 즉흥적인 손동작이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쉬워 보이는 일들, 예를 들어 어린아이나 노인의 얼굴이나 몸을 씻기거나 상자 안에 모양, 크기, 재질이 제각각인 물건을 요령 있게 쌓는 일도 AI와 로봇에게는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어려운 일이죠. 영화 <스타워즈>의 두 로봇 ‘R2-D2’와 ‘C-3PO’를 떠올리면 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쓸모가 많은 로봇은 R2-D2죠. 인간형 로봇(안드로이드) C-3PO는 허우대는 멀쩡해 보이지만 R2-D2와의 통역을 돕거나, 쓸데없이 정신 사납게 하는 게 다죠.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은 1977년에 이미 어떤 AI와 로봇이 쓸모가 많은지 알았던 걸까요? AI와 로봇을 둘러싼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흔히 우리가 ‘돌봄 노동’이라고 말하는 것들, 그러니까 아이를 기르고(보육) 노인, 환자, 장애인을 보살피는(간호) 일을 AI나 로봇으로 빠른 시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쓰고 ‘불가능하다’고 읽습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를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런던 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장하준은 세계적인 경제학 석학입니다. 그와 경제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어떤 경제학자는 그를 폄훼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사다리 걷어차기』(2002년)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010년) 등의 성취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소 불분명했던 부분들을 모두 바로잡고, 혼란스럽던 일부 용어를 정리ㆍ통일했으며, 미주를 각주로 옮겨 본문에 대해 보다 풍성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했다.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를 고발 저자의 당초 집필 의도는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나쁜 사마리아인들(리커버)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처음으로 보통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본격 교양 경제서. 자유 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도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공기업 문제가 과연 민영화로 해결 가능한지, 지식재산권이 실제로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어떤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경제 발전에 적합한 문화나 민족성이 있는지 등 중요한 경제 현안들에 대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나 영화 등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들려주는 ‘더 나은’ 자본주의 이야기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다만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사용 설명서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쓴 ‘일반인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 경제란 무엇이고, 경제학을 왜 알아야 하는지에서 출발해 자본주의 경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간략한 경제사를 훑어본 뒤 다양한 경제학파를 소개하고 장단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이 중에 세 권 정도 있네요. 두 권은 읽었고 한 권은 십년 전 선물받고 아직도 안 읽었고^^; 그 사이 신작이 나왔군요~
그 장하준이 2015년에 <파이낸셜타임스>에 음식을 주제로 한 짧은 칼럼을 몇 편 연재했었습니다. 나중에 사석에서 그 칼럼을 발전시켜서 ‘음식’과 ‘경제학’을 엮는 새로운 책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초콜릿, 향신료, 소고기 등의 음식과 세계 경제의 관계를 다룬 책은 이미 넘치는데 왜? 그러다 2022년에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의 원서(Edible Economics)가 나왔습니다. 얼마 전 번역본이 나오자마자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읽었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국내에서만 160만 부의 저서를 판 세계적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오랜 독자로서 말하자면, 이 책으로 장하준은 드디어 ‘경제학자’에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장하준은 음식과 ‘요리’에 생각보다 훨씬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그 음식과 요리를 내세워서 자신이 지금 세상을 향해서 말하고자 하는 열여덟 가지 경제학 메시지를 요령 있게 정리했습니다. 물론, ‘경제학자’ 장하준의 대표작은 앞에서 언급한 세 권입니다(여기에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도 덧붙입니다). 하지만, ‘작가’ 장하준의 대표작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입니다. 당연히 장하준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가장 먼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읽어야 합니다. 장하준의 책을 계속 따라서 읽었던 사람이라면 ‘작가 장하준’을 만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더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이전의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의식도 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돌봄 노동 이야기입니다.
장하준은 가정과 공동체의 무보수 돌봄 노동(unpaid care work)이 경제학에서 무시당해온 관행을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이제는 상식이 되긴 했습니다만, 가장 널리 쓰이는 경제 척도 GDP(국내총생산)에서 무보수 돌봄 노동이 누락되는 상황이 얼마나 우스운지 저자는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2명의 엄마가 자녀를 교환해서 상대방의 아이를 돌봐 준 다음 베이비시터 금액을 서로에게 지불한다면 두 사람의 재정 상태와 아이 돌보는 시간에는 아무 변화가 없지만 GDP는 올라갈 것이다. (…) 돌봄 노동 없이는 (사회 안에 자리 잡은)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인간 사회 자체가 존재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256쪽)
장하준은 이어서 무보수 돌봄 노동뿐만 아니라, 보수를 받고 일하는 돌봄 노동의 중요성도 언급합니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 많은 나라에서 가정, 공동체 그리고 사회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로 확인된 “의사, 간호사, 구급차 운전사 등을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 탁아 시설 종사자, 양로 시설 종사자, 교사” 등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기막힌 역설을 고발합니다. “핵심 일꾼”(영국) 혹은 “필수 직원”이라 불리며 심지어 ‘영웅’이라는 칭송까지 쏟아진 이들의 “보수가 (최고 수준의 의사를 제외하고는) 형편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묻습니다. “어떤 일이 ‘핵심’임을 인정한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제일 좋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돌봄 노동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습니다. (수년 전부터 혼자서 떠들어 온 주장입니다.) 어차피 돌봄 노동을 AI나 로봇으로 대체하기가 어렵다면,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돌봄 노동이 인간의 자리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면, 돌봄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높이는 토론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까 놓고 말하자면, (간호사, 교사도 포함해서) 보육 교사나 요양 보호사가 대기업 정규직만큼 급여를 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얘기입니다. 여기저기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립니다만, 저출생과 고령화가 나라의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며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나라에서 보육, 교육 또 (노인과 환자를 돌보는) 간호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왜 못할까요?
관련 종사자로 힘이 되는 글입니다. 현실에선 별로 기대가 되지 않지만요.
저는 앞으로 돌봄 노동의 가치가 더욱더 재조명될 거라 생각해요. @Hazel 님도 항상 기운 내시길!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읽고서 경제학 책을 더 읽어볼까,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다음 책도 살펴보세요.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책인데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반비). 아직도 청소년에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김영사, 원서 1989년),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교실, 1988년) 같은 책을 추천하곤 하는데.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정말 답답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을 아직도 읽히다니. 책이 나온 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도 변했고 생각도 변했고 특히 경제학이 바뀌었는데;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책이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이었어요. 강력 추천합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실비아 나사르가 이 책에서 추적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업적이 아니다. 저자는 독특하고도 위대한 하나의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하버드대 '최우수강의상'에 빛나는 토드 부크홀츠의 유머와 파격의 경제학 특강. 대표적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경제이론들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현실에서 각각의 경제이론과 그 이론이 주는 아이디어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한 책이다. 경제학이 왜 이렇게 난해하고 복잡한지를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결한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방이 곧 닫힐것 같지만...도서관에 예약 걸어 놨다가 얼마전 찾아왔어요. 입문책으로 좋다하시니 잘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시작이요^^ 다 읽으면 방 닫힐거같아요 ㅎㅎ
사실 이미 방 닫힌 <스마트 브레비티>도 책을 뒤늦게 공수하여 오늘 시작했어요. 요게 분량이 더 적거든요. 이번달 좀 바쁘네요.😅
저는 스마트 브레비티 방 닫혀서 다음에 읽기로 했어요. 다 따라가려니 숨이차네요 ㅋ
순서는 제맘대로 4개정도 읽었는데 재미있어요. 오늘이지나면 방이 닫히겠지만 ,나머지도 끝까지 다 읽어볼거예요. 경제학 입문용으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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