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

D-29
반려동물을 곁에 둔다기 보다 곁에 있음으로써 ‘반려'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 같아요.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동물을 오래 키우다 보면 처음의 결심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감정적으로 반려동물의 입양을 결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끌림이 있거든요. ‘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려견의 눈에서 감정을 읽게 되는 순간이 자주 있습니다. 일상을 놓칠 만큼 큰일을 겪을 때 정말 슬픈 (혹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더군요. 반려동물을 곁이 두는 심리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함께하며 반려동믈을 통해 나를 보게 되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여름바다님 가입 반갑습니다. "곁에 있음으로써 ‘반려'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 같아요"라는 말씀 맞는 것 같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우기 시작할 때는 여러 이유에서 시작했겠지만, 정성들여 키우다 보니 어느새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반려견'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잡종견>에서 " ‘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려견의 눈에서 감정을 읽게 되는 순간이 자주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선택해서 키우게 되는 애완견의 이미지는 완전 배제되어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다롄의 겨울은 4시경부터 어두워진다. 학교를 나와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밖을 배회했다. 그때, 그의 뒤를 언제나 구우만이 따라다녔다. 그가 자리에 멈춰 서면 머리를 갸웃하며, 슬픈 듯한 눈으로 스구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p.75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그는, 개에게만은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한 마리의 까만 잡종견만이 소년 시절 스구로의 동반자였고, 그의 고독을 알고 있었다. 구우는 황혼 녘의 눈 속에 서 있는 주인을 고개를 갸웃하며 슬픈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p.77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부모의 불화로 불안했던 어린시절. 방가후에도 귀가하지 않고 밖을 배회해야 했던 유절시절. 누구와도 슬픔을 나눌 수 없었던 스구로에게 유일한 위로자가 되어 주었던 '구우'는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던 유일한 대상이었습니다. 그 구우가 슬픈 눈으로 스구로를 지켜보고 있네요. 자신을 지켜보는 구우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스구로는 그를 통해 위로받으며, 이 위로는 동반자의식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스구로가 겪고 있는 유년시절은 엔도의 유년시절이었고, 다롄에서의 체험은 엔도문학의 정체성에 아주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오늘은 <노방초>를 읽었습니다. 아주 짧은 분량인데, 원하지 않는 곳(예루살렘)에 와버린 남편의 짜증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제목이 왜 노방초인가요. 글중에 노방초는 나오지 않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빨간색 꽃이던데...
바나나님 안녕하세요. 진도가 빠르시군요~ 원제는 <道草/みちくさ>입니다. 번역한다면 '길가의 풀'이란 뜻입니다. 하여 그 뜻을 가진 '노방초'라 붙였습니다. 자세한 것은 작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처음부터 쭉 읽으건 아니고, 정해주신 기간 맞춰 읽는 작품외엔 틈틈이 읽으려고요.
그러시군요. 같은 시간에 접속하고 있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노방초 방금 읽고 궁금했는데^^;
따라서 이러한 잡종견 '구우'는 엔도가 유년시절 체험했던 위로와 사랑이었고, 이 테마를 한 평생 끌어 가게 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스구로가 추구하는 사랑이자 엔도가 도달하고자하는 세계로 이어져 갑니다.
그렇다면 왜 멋있는 명견보다도 보잘 것 없는 '잡종견'에 끌리며 애착을 느끼는 걸까요?
이 부분은 스구로가 낡은 차를 팔기 싫어했던 장면과 오버랩 되는 것 같아요. 가족을 짊어지고 헐떡거리며 인생을 오르는 자신과 차를 동일시 했던것 처럼, 잡종개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아무래도 명품 순종개에게선 동질감을 느끼기 어렵지 않았을까...
네. 맞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스구로는 새차보다 " 수많은 거리를 헐떡이며 오르내린 손때묻은 '낡은 것'"에 애정을 갖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하여 명견보다는 잡종견에 애착을 느끼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놀고 있는 동안, 구우는 얼굴을 앞발 위에 올린 채로 엎드려 앉아 나무 아래에서 엄마처럼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잡종견은 누구에게나 꼬리를 치며 반기곤 합니다. 요즘 시골에서 크는 개를 ‘시고르자브종’이라고 부르면서 찍은 영상을 자주 접합니다. 그때마다 그들을 눈빛에 반하곤 합니다. 의심 없이 친절한 눈빛이랄까요. 구우는 얼굴을 앞발 위에 올린 채 주인공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집 밖을 배회하는 동안 그의 뒤를 따라다닙니다. 이런 이유 없는 호의는 부모님 혹은 우리가 의지하는 종교의 무엇과 닮은 듯 느껴집니다. 방문자에게 꼬리를 흔들며 엎어지는 구우에게 아들은 태생적으로 잡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태생적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이를 얻기 위한 본능이라고 해도 말이죠.
여름바다님이 날카롭게 지적하셨군요. "구우는 얼굴을 앞발 위에 올린 채 주인공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집 밖을 배회하는 동안 그의 뒤를 따라다닙니다. 이런 이유 없는 호의는 부모님 혹은 우리가 의지하는 종교의 무엇과 닮은 듯 느껴집니다" 네, 스구로와 엔도가 추구하고자한 세계인 것 같습니다.
그림자에서도 묘사했듯 23p 지금도 슬픈 표정을 한, 눈물 고인 개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는 왠지 그리스도의 눈이 생각납니다. 물론 그 그리스도는 모든 것에 자신감을 지니고 있던 이전의 당신과 같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짓밟히며 그 발 아래에서 묵묵히 인간을 바라보는 지친 ㅠ 후미에의 그리스도입니다. 이 대목에서 작가 스스로 언급했듯, 자꾸만 무시당하는 잡종견과 사람들을 구하려 오셨으나 그 대상에게 외면당하는 그리스도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겹치네요. 맛잃은 소금 처럼, 제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외면함으로 결국 조롱받는 크리스찬 처럼 말입니다. 최근 주목받았던 mv에서 드러난 것 처럼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저토록 모든 것을 감내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에 의문이 있습니다. 비빌언덕 없는 낮은 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품는 어머니 대지와 같은 이미지가 신에게 있을진데, 저렇게 무기력하게 조롱당하고만 계신 분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사흘의 시간은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며 사형틀에 매달려 계셔야했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통과하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모습까지가 그 서사의 종결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주말에 등록한 새동네^^ 교회 목사님 설교에서도 주께선 네 가지 장벽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오셨다!는 주제였는데요~ 두려움으로 인한 불신, 그로인한 절망, 그에 따른 주변의 무시를 넘어 마침내 죽음까지 ㅠ(이 대목은 신만 가능한 영역이죠~) 모든 허들을 뚫고 직진!하신 정면돌파의 하나님이라는 설교였습니다. 뜻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장애물들을 허들 넘듯 넘어 결국 우리에게 오신 ㅠ 진취적이고 능력있고 돌파력있는 성취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13p쯤에서 엔도가 묘사한 후미에의 신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현대사회가 묘사하는 종교와 실제는 거리가 있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조명하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그 대목을 읽으며 이런 종교를 누가 믿겠나? 그런 생각이 들긴 했었습니다. 그게 선택받지 못한 개, 잡종견으로 이어지고 몇 달 전 김혜나 작가님께서 여신 <깊은 강>에서 바라나시에 대한 질문도 해주셨었는데 모든 오물까지도 수용하는 강이라는 이미지와 궤를 같이하는듯 보입니다.
네, 엔도가 <예수의 생애> <사해부근> 등에서 그리고 있는 예수는 기적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군중들이 몰려와 병을 고쳐주기를 원했고 고통 속의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기를 원했죠.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군중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군중이 원하는 대로 기적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력했고 고통 속의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통 속에 있는 그들 곁에 함께 동행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엔도 문학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반자 의식'이 탄생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엔도의 '예수像'은 나약하고 무력하지만 그들의 곁을 지켜주고 동행하는 동반자 예수로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성경에 기반해 해석하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피조물인 인간이 질 수 없는 거대한 율법의 짐을 그냥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약한 인간들을 다시 물로 쓸어 버릴 수도 없기에 스스로 창안하신 해법인 아들을 보내어 대신 그 죄를 짊어지고 심판하여 사람들을 용서해주자!는 거대한 대속플랜에 의한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프로젝트인데요. 동행자 예수 모티브도 대단히 수동적인 혹은 수용적인 고개숙임의 자세로 보이네요. 제가 아직 엔도의 문학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이 책을 통해서나마 그 정수로 가는 길을 조금씩 알게되어 그런듯 해요~ 이 책을 읽다보면, 그 곁다리 말고^^ 그래서 탄생한 엔도의 문학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던데요. 그 문학의 접근방법을 연구자이자 역자이신 이평춘 선생님의 가이드를 통해서 이렇게 제대로 접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저녁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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