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

D-29
<그림자>에서 '어머니'에 관해 생각하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에 의해서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엔도는 작가가 된 이후, 많은 글에서 이 부분을 언급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종교가 아니었다는 것을. 어머니에 의해서 동양인의 몸에 맞지 않는 서양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매우 불편해 했었고 벗어버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벗어버리지 못하고 입고 있었던 것은, 설혹 벗어 버린다 한 들 대신 입을 만한 마땅한 옷을 갖고 있지 못했고, 또한 어머니가 사랑한 그 옷을 차마 벗어버리지 못하고 어정쩡히 입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청년기를 이런 자세로 보내기도 하면서. 그러나 끝내 벗어 버리지 못했던 그 서양의 옷을 자신의 몸에 맞춰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일본인에게 맞는 옷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작가 초기부터 갖게 된 문제의식이었고, 이 문제에 답을 찾고자 5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결국 <깊은 강>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깊은 강'은 서양의 종교도 동양의 종교도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깊은 강'인 것이죠. 50년의 긴 과정 속에서 한 작품 한 작품 그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고 다양한 소재와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일본 가톨릭 작가라는 최고봉에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읽고 있는 <그림자>는 엔도가 일본의 가톨릭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성장과정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미 공지드린 대로 오늘 8일(목)까지 <그림자>를 읽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들과 제가 올린 글 등을 확인하시며 <그림자>에 대한 마지막 멘트가 있으시면 남기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머니'에 집중해서 <그림자>를 다시 읽으니 처음에 읽었을 때보다 '어머니의 그림자'가 나에게 얼마나 커다랬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도쿄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얼마나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했는지도 묘사되어 있네요. 35쪽 첫 번재 줄에 "고통스러웠지만, 매일 같이 어머니와의 생활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내게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는 것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라는 내용에서 보여지듯,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결국은 '어머니'와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은 페이지 마지막 줄에서 "당신에 대해서,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서 쓰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듭니다"라고 이야기하듯, '나'에게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이자, 평생의 문학적 화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소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읽을 수 있게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런 의미에서의 그림자...유미소님 글을 읽으니 제목이 한층 다가오는것 같아요.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목 왜 그림자일까.
오 그렇군요! 👍
<그림자>를 여러 번 거듭해 읽으며, 사소하지만 궁금한 부분이 있었는데요, 39쪽에서 '당신'이 신문지에 싼 것을 '나'의 손에 쥐여줍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책임자가 그게 뭐냐고 묻자 "내가 배급받은 버터요. 내 것을 주는데 잘못됐나요?"라고 대답하죠. '당신'에게 소중한 것, 귀한 것을 '나'에게 나눠주는 모습에서 그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인데요.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그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사용한 것이 어째서 '버터'일까요? 사실 이런 부분에서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싶은데요. 만약에 그가 건네준 것이 신문지에 싼 떡이나 고기였다면 그 당시 귀하고 소중한 음식을 나에게 나눠주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한데 '버터'라니, 버터는 동양에서는 일상에 꼭 필요한 식자재는 아니다 보니, 마음을 전하는데 왜 하필 버터를 주는지 의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버터'가 서양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버터가 얼마나 소중하기에 신부가 배급받은 것을 모아뒀다가 나에게 주는지 궁금했습니다.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저도 이부분 궁금했는데, 설탕이나 쌀 같은게 왜 버터일까요. 아마도 배급품목 중에 보관이 잘 되고, 칼로리가 높아서 나름 귀한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유미소님과 바나나님이 올리신 질문 '버터'에 관한 답글입니다. '당신'은 프랑스 피레네 출신의 외국인입니다. 전시 중이었으며 전쟁통에 첩자의 의혹까지 받아 강제 이주된 수용소에 다른 외국인 신부들과 함께 격리되어 있던 중이었습니다. 모든 생필품은 배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함께 격리되어 있던 신부와 선교사들이 모두 외국인이었던 것으로 보아, 배급으로 받는 식량은 주로 빵과 버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일본에서 선교를 하고 있으나 아침식사는 대부분 빵이 주식이었을 터라 빵과 함께 버터가 배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배급받은 버터를 아끼며 간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것을 나에게 건넨 것입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양식을 나눈 것 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인에게는 쌀과 된장이 주식이라면, '버터'는 빵과 함께 서양인의 주식을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유미소님 남겨주신 글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결국은 '어머니'와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나'에게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이자, 평생의 문학적 화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깊이 있는 해석 감사합니다. 원서의 제목인 <影法師/ kagebousi>에 가까운 읽기인 것 같습니다. 엔도 문학의 출발은 바로 '어머니'와 '당신' 의 영향과, 어린시절 받았던 세례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긍정적인 에너지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문학의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좀 더 확장시킨다면, 엔도는 이 '그림자'를 다른 작품(앞으로 다루게 될 작품)에서 '흔적'이라는 단어로 대체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자'와 '흔적'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지, 아닌지, 본 텍스트를 통해서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가이드 해주시는 질문들로 ‘어머니’가 엔도의 인생에 큰 화두였다는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엔도의 글 속에서 그 영향력을 계속 알아가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바나나님, 제목의 궁금증이 해소되셨죠?
오늘부터는 <잡종견>으로 들어갑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그림자>에서도 나왔던 대상인 '강아지와 개'를 더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림자>의 p.44 -"당신에 의해서 버려진 개" p.63 -"버려진 개의 슬픈 눈" 과 겹쳐집니다. 그리고 이 잡종견은 엔도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읽어 보신 느낌이 어떠신가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구우는 뒤를 따라왔다. 그러고는 더 이상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언제까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스구로는 구우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저녁 안개 속에서 구우는 이쪽저쪽 전봇대에 소변을 보고, 풀숲에 코를 집어넣기도 하며, 그의 뒤를 따라온다.” 둘 다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개와 헤어지는 장면인데 다롄의 구우는 어린 주인공을 바라보았고, 지금의 구우는 그를 따라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차를 탈 때처럼 빨리 멀어질 수 없으니 어쩌면 계속 스구로 뒤를 따라가지 않을까 아니 그랬으면 하며 읽었습니다.
여름바다님의 "어쩌면 계속 스구로 뒤를 따라가지 않을까 아니 그랬으면 하며 읽었습니다."처럼 독자들에게 그런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엔도의 작품중에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번역서가 나와 있습니다(2018/ 안은미 역/정은문고)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책에도 엔도가 경험한 <잡종견>의 구우가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엔도가 처음으로 접한 애완견 내지는 동물입니다. 그 이후, 고양이,너구리,구관조 등 다양한 동물이야기로 발전합니다. 이 동물들은 어린시절 체험했던 '구우'에게서 출발함니다. 공동적으로 자신의 슬픔을 알고 있으며 곁에 동행하는 위로자 였습니다. 엔도의 동물사랑은 이 <잡종견>의 구우에게서 출발하여 다양한 동물로 성장하고, 마침내는 동반자 "예수"에 이르게 됩니다.
<잡종견>을 읽었습니다. 역시 자전적인 소설인것 같네요. 어린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힘들었을 시기에 곁을 지켜준 구우를 생각하며 어른이 되어 다시 잡종견을 키우게 되었는데, 잡종이라고 가족들이 미워하니 제가 다 야속하네요.
<잡종견>을 읽으면서 부모의 불화 가운데 고독했던 ‘스구로’에게 ‘구우’라고 불렀던 개의 존재가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개에게 같은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얼마나 소중했을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없었던 스구로에게 구우는 단순히 자신을 따라다니는 개이기 보다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구우 또한 잡종견으로 그 어느 종에도 속하지 못한, 더하여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개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스구로)과 비슷한 형편에 처하여 누구보다 그를 잘 위로하던 개, 어쩌면 더한 아픔을 가지고도 자신을 배웅하던 개에게서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p.44와 63 의 ‘개’를 이러한 이해로 바라보니 더 잘 이해가 갑니다.
마들렌님 감사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픔을 말할 수 없었던 스구로에게 구우는 단순히 자신을 따라다니는 개이기 보다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상처받은 어린 소년 스구로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죠.
바나나님 감사합니다. 네,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림자>에 등장하는 개를 더 구체화 시킨 작품이죠. 잡종이라고 사랑받지 못 해서 안타깝습니다.
요즘 우리는 반려견이라고 하죠. 인생길을 함께 걷는 사람을 '반려자'라고 하고, 애완동물을 '반려견'이라고 할 만큼 친밀한 대상으로 우리 생활 속에 들어 와 있습니다. 저도 대형견을 집에서 키우고 있답니다. 그러면 애완동물 및 반려견을 곁에 두고자하는 심리 저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반려동물을 곁에 둔다기 보다 곁에 있음으로써 ‘반려'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 같아요.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동물을 오래 키우다 보면 처음의 결심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감정적으로 반려동물의 입양을 결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끌림이 있거든요. ‘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려견의 눈에서 감정을 읽게 되는 순간이 자주 있습니다. 일상을 놓칠 만큼 큰일을 겪을 때 정말 슬픈 (혹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더군요. 반려동물을 곁이 두는 심리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함께하며 반려동믈을 통해 나를 보게 되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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