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도시 브뤼주' 를 죽이게 읽는 모임

D-29
제인을 만나면서 마치 죽은 부인 환생시키려는듯 제인을 바꾸려는 모습들은 많은 영화들에서 본 것 같아요. 말씀하신 현기증도 떠오르고요. 1800년대 쓰인 소설이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부인이 살았을 때 방문했던 브뤼주는 엄청나게 우울한 도시였다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자신은 행복하기에 그것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부인이 죽고나서 브뤼주를 회상하고 부인과 닮은 도시라고 생각해 다시 왔다라고 하는데, 저는 차라리 부인을 잃은 자신의 마음과 닮은 브뤼주라고 하면 더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왜 죽은 부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우울한 도시=죽은 부인, 그 그늘밑에 있어야하고 즐겁게 살면 안 돼서? ㅎ 저는 부인과 사별했고 정말 사랑했다면 부인이 가장 행복했을 도시로 갈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위그가 부인을 애도하는 측면에서 이해했습니다. 사별한 부인에 강박의 애정을 보이는 위그는 온전히 거기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전혀 없고 그 슬픔에 젖어야 고통과 죄책감을 덜 느끼는 겁니다. 본문에서는 '그가 지닌 엄청난 슬픔의 감정이 그런 환경을 요구하고 있었다.' 라고 쓰여있죠. 그런 환경은 한편으로는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브뤼헤 사람들의 시선일 수 있고요.
저는 브뤼주의 이미지가 위그와 바르브에 따라 다른 게 흥미로웠습니다. 화창한 아침이었다! 해는 환하게 비추고 새소리와 이미 시골 분위기가 만연한 변두리 지역에서 피어나고 있는 어린 새싹의 향기에 감격한 바르브는 얼마나 쾌활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는지! 미네위터의 곳곳이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미네워터는 사랑의 호수라 해석되지만, 사랑을 하는 호수라는 말이 그 뜻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83p) 바르브가 느끼는 도시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거든요. 위그는 이 도시의 회색빛에 잠식당하려고 왔는데 부인과 닮은 제인과 만나면서 회색빛에 균열이 일어나는듯하니 당황하며 다시 자기 안에 그 회색빛을 되찾으려고 하는 간절함이 읽히더라고요. 그런점이 저는 괴기스러웠고요. 위그가 제인을 만난 몇 달 동안 그 어면 것도 그가 다 시 겪고 있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변했던가!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거대한 공허 속에서의 외로움을 더는 느끼지 않았다. 예전의 그가 했던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영원히 닿을 수없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제인이 그것을 위그에게 되돌려주였다. 그는 제인에게서 그 사랑을 다시 발견했고, 물에 그 모습이 그대로 비친 달을 보는 것처럼 제인에게서 그사랑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모습 전체를 일그러뜨리는 고약한 바람이 붙어도 이 사랑의 그림자에는 어떤 물결도, 어떤 떨림도 생기지 않았다. (70p)
아..
저도 동감합니다. 위그의 브뤼주와 바르브의 브뤼주는 같은 공간이나 다른 세계인 것이죠. 각자의 요구가 다르듯이요. -죽은 도시는 곧 죽은 아내임이 틀림이 없었다. 그가 지닌 엄청난 슬픔의 감정이 그런 환경을 요구하고 있었다.(p.23) 수녀가 되기를 바라는 바르브는 플랑드르의 독실한 신앙과 엄격한 종교색으로 물들어 있는 부뤼주에서 행복한 듯 합니다. -바르브는 언젠가 자신도 그 일원이 되기를 바라면서 예수의 신부이자 하느님의 종인 수녀원의...아!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P.88) 바르브의 도시가 행복한 만큼 위그의 도시가 더욱 우울해 지는 부분인 듯 합니다. 스마일씨님이 언급하셨던 "회색빛의 균열"과 그 회색을 간구하는 간절함. 그 간절함에 위그의 삶이 망가진 듯 해요. 저는 브뤼주의 건물들을 위그의 실체로, 물에 반영된 물그림자를 위그의 슬픔이나 죽음을 갈구하는 감정의 대상물로 보았습니다. 유사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그래서 관념적으로 내면에 슬픔을 유지하고픈데 현실적으로는 제인을 사랑하고픈 호기심과 욕망으로 갈등하는 현실과 내면의 균열로 인해 이성을 잃게되는, 결국 비극으로 이끌어진 한 인간. 위그 비안. 저는 그림이나 사진에 묘사되는 운하에 비추어진 너무나 선명한 물그림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집니다. 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요, ... 위그의 실체와 내면의 모습, 제인의 실체와 위그가 만들어낸 관념속의, 기억 속 부인모습. 이들을 도시의 건물들과 위그 내면의 세계인 물그림자로요. 닮아 있지만 결코 같지않은, 물결로 변형되거나 사라지는 물 그림자. 유사함의 균열로 괴리감이 생기고 고통과 죄책감으로 이끌어지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사진 속 너무 멋진 물그림자로 과다 몰입한 면 없지 않습니다.~~^^
슬픔에서 존재 이유를 찾는 사람들 있잖아. 행복보다 슬픔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이요. 위그를 보면 슬플 때 더 생기가 도는 사람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스마일씨 아! 로덴바흐가 브뤼헤에 실제로 살지 않았군요. 그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우연히 표지의 삽화를 그린 크노프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로덴바흐와의 관계에 대해 'Both spent their childhood in Bruges and were friends.'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글에서 로덴바흐는 브뤼헤에 산적이 없다고 하네요. 바로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머리카락이 살인의 도구화 되었다는 것이 물론 간단히 묘사했지만 상당히 기괴했습니다. 그 전에 당대 사람들은 그럴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머리카락에 집착하고 강박이 있는 위그도 그랬구요.
@달여인 좀 결이 다른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표현에도 도시에 인구가 빠지고 활기가 없고 경제도 안돌아가고... 여러모로 쇠락된 이미지를 가리켜 '도시가 죽었다'라고 그러지 않나요? 얼핏 스치듯 읽었는데 당시 브뤼즈가 상당히 그랬다고 합니다. 뭐 이런 인상이 로덴바흐의 글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저 역시 제목은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말씀대로 1830년 벨기에가 독립했을때 가난한 도시였다고 하네요. 중세 (13세기-15세기)에 번영의 절정기였는데 바다로 나가는 항만도시로 무역이 발달하여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절정기인 13세기에는 첫 증권거래소가 생길정도로요. 그 이후 주변국가의 침공과 지배하에 점점 몰락했다고 합니다. 한때 찬란했으나 몰락한 도시. 그래서 그 당시 죽음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듯 합니다.
처음에 조금씩 읽다가 중간부턴 휘몰아치듯 단숨에 읽었습니다. 중편의 길지 않은 분량과 사진 덕에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제가 독서후 감상을 지금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으나(스포가 아니길 바라며) 이러한 느낌 잊기전에 적어봅니다. 미식한독설가님 덕분에 생소한 로덴바흐의 작품을 접하며 앞서 말씀해 주신 상징주의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각의 세포들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시적 표현들이 좋았습니다 그가 표현한 우울한 회색빛이 감도는 브뤼주의 강둑과 은하, 건물과 사람들 그리고 예배행렬의 사람들 묘사들에 통해 마치 그림을 보는 듯,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 때로는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특히 종소리를 통한 청각의 시각화에 로덴바흐의 매력을 알게 되었네요. -교회에서 퍼져 나온 소금기 어린 작은 음표들이 면죄 기도를 위한 성수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p.25) -종소리 역시 다소 검은색으로 느껴진다….이 검은색은 똑같이 회색 띈 소음으로 다가와 배회하며 튀어 오르고, 운하 위에서 일렁인다. (p.65) -바르브는 오르간 소리와 아름다운 리넨천처럼 온통 하얗게 펼쳐지는 성가를 듣는 게 지겹지 않았다. (p.89) -온종일 보이지 않는 검은 향로를 흔드는 듯 연기처럼 소리를 내 뿜으며 계속 울려 대는 종소리. (p.114) -작은 종탑에서 나는 작은 종소리….그것은 하늘에서도 줄지어 행진하는 은빛 드레스의 감동적인 향연이었다. (p.147)
"종소리를 의인화해 그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준다."는 신선합니다! 읽는 중에 전혀 그 뉘앙스를 감지 못하고 있었어요!
또한 종소리를 의인화해 위그 그 자신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 준 듯합니다. -처음 종은 친절하고 사려깊게 설득했다…..그를 꾸짖었고, 그를 재촉하고 그의 머릿 속을 침입해서. . .(p.125) -위그는 끈임없이 반복해서 . . 기계적인 모습으로, 맥빠진 목소리로 “죽은 여인…죽은 여인…죽음의 도시 브뤼주….”라는 말을 마지막 종소리 박자에 맟추려. . . -종소리는… 느리고 기력이 없는 작은 노파들이 쇠로 만들어진 꽃잎을 나른하게 뜯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p.167) 마지막 부분은 고대연극의 코러스 부분을 연상시키며 저에게는 이 소설이 연극적인 요소까지 포함한 듯 느껴지게까지 했습니다. 위그의 감정과 내면의 소리를 머금고 있는 종소리..로덴바흐에겐 브뤼주의 종소리가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저에게는 300개이상의 좁은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 보았던 종탑의 종으로 기억됩니다.
미식한독설가님이 마련해 주신 이 모임에서 좋은 작가와 작품 만나서 좋았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난 뒤 작곡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드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올려봅니다. 독일어 오페라이나 영어자막이 있어요. 내용을 다 아시니 볼만 한 듯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 함께 보아요.~~~ https://youtu.be/VSbTl0i6jtc
아, 감상평 인상적이네요! 이 책을 금새 완독하셨지만 모임 기간이 남아있어서 끝까지 관망하시면서 가끔 여유있으시면 고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또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시각으로 읽힐수 있는 부분도 남아있고요. 감사합니다!
네.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듣고자 합니다. 자주 들어올께요.
저도 소설을 읽는 내내 가까이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댕댕댕... 하면서 위그를 지켜보며 경고하는 듯한 소리와 종탑의 위엄이란. 번역가 선생님은 책상 앞에 앉아 번역을 하다가 자주 뒤를 돌아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뭔가 뒤에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오페라 동영상까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가 선생님은 작업내내 음산하셨던듯
아.."회색빛에 잠식", "회색빛에 균열 " ,"회색빛을 되찾으려고 하는 간절함" 참 책의 느낌과 어울립니다. 이 책 참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리 느껴지기도 하는데 자학과 메조히즘 그리고 물신주의, 교살, 페티쉬즘, 관음 등 뭔가 카톨릭의 엄숙함과는 괴리한 느낌들이 미려한 문장속에 그리고 처연한 슬픔속에 잠복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시선에 따라 변태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목이 또한 그러한 것인가 생각도 들고....뭐 눈에 뭐만 보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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