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칼을 휘둘렀지만 칼을 휘두름으로써 벌어질 일에 대해 숙고하지 않았다. 숙고했더라면 칼을 휘두르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 아니라 거기까지 생각을 밀고 가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뜻이다. 충동적이었다는 듯은 아니다. 어쩌면 칼을 휘두르기 위해, 휘두를 자격을 얻기 위해 숙고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중략) 그는 두려웠고, 머릿속으로 크고 작은 빗금들이 수없이 지나가는 걸 느꼈고, 그러나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 했고, 알게 될까 봐 두려웠고, 어쩔 줄 몰랐고, 그러나 어쩌지 못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느꼈고, 그래서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내달렸다. 그는 무슨 일인가를 벌였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어서 알지 못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
『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p.77, 이승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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