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대 클래식기타 동아리 인생을 돌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올리브키터리지” 읽기 모임

D-29
"세상에 참, 올리브. 우린 거의 믿었어요. 그 사람은 계속 여위고 몸이 그렇게 약해지면서도 말했어요. '말린, 우리 여행 바구니 좀 가져와봐.' 그럼 전 가져가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올리브." 올리브는 자신과 헨리가 앞으로 갖게 될 손자들에 대해, 착한 며느리와의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을 말린에게 들려주고 싶다. 물과 일 년여 전만 해도 두 사람이 크리스토퍼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가면 긴장감이 너무 팽배해서 한 손이 저절로 올라가며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낼 정도였다는 걸. 그래도 두 사람은 집에 돌아오면 며느리가 착하다고. 크리스토퍼에게 착한 아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만 싶다.
올리브 키터리지 p.325~326,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흥하리라 아직 바쁜 업무일정이 남은 시기지만 감기로 골골한 월요일 아침을 독서모임 가입(만?)과 함께 시작합니다. ^^
완전 환영합니다~~~!!! 다음 책에서 H를 뗄까, 클래식기타를 뗄까 망설이고 있는데 한 번만 더 해보는 것으로....ㅋ
"병 속의 배"는 또 한 번 자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순간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는(또는 떠나게 되는) 시기는 오기 마련입니다. 잔잔히 떠나가는지, 아니면 격동적으로 떠나가는 지의 차이만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각 이야기의 제목의 의미는 뭘까 생각해봅니다. 이야기의 주된 가족의 아빠인 짐은 지하실에서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매인주는 미국의 동북쪽-보스턴보다 위쪽에 있는 해안입니다.) 짐은 설계도로는 다 만든 후 적당히 배를 기울이면 지하실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짐과 둘째 위니는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을거라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바다로 나가야하는 배를 안정적인 장소인 지하실에서 만들고 있는데 완성된 후에 그 배를 바다로 내보내지 못한다면... 이게 자식에 대한 입장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붙들어 두고 싶지만 또 한 편으론 나갈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생각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여진게 아닐까 생각해봅니. 결국 배는 바다로 나가야죠..
"불안"을 읽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정답이란게 있을까요? 설사 정답이 있더라도 그대로 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첫 며느리에게 반감을 갖고 있던 올리브, 결국 가까이 살던 아들부부는 메인주와는 정반대의 캘리포니아로 이사해버렸죠. 그리곤 이혼. 이혼을 했으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계속 거기에 남는다는 아들의 말에 올리브는 할 말을 잃고 부모가 자식을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뉴욕으로 이사한 크리스토퍼로부터 뉴욕에 좀 와달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두 아이를 갖고 있던 앤과 재혼을 한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고생하고 있는 앤의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그렇게 뉴욕에 도착한 올리브는 여러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언제 뉴욕으로 이사를 왔는지, 재혼은 언제 했는지, 자신의 아들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신세는 또 어찌할 것인지... 등등등 그리고 첫 번째 며느리와는 완전히 반대 스타일의 두 번째 며느리에 대한 감정도 허탈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들만 있는 입장에서 앞으로 맞이하게 될 며느리들-30년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과 잘 어울려 살기 위해 미리 많은 것들의 기준을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크리스토퍼의 첫 번째 결혼과 이혼, 그리고 두 번째 결혼에 올리브의 영향이 있었을까요? 크리스토퍼나 앤은 심리상담을 통해 상당한 정도로 그렇다고 인정하며 앞으로는 다르게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실제로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같지만 올리브에겐 그런 상담이 못마땅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올리브와 같은 입장이기도 합니다. '너에겐 잘못이 없다.', '화가 나는게 당연하다.'라는게 정말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거의 막판에 다다르니 처음 "약국"편을 읽을 때는 (위에 @꾸비 님처럼) 헨리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었는데 읽을수록 별로 탐탁치않은 캐릭터인 올리브의 마음에 이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적나라하게 본심을 드러내는 태도가 어떻게 보면 예의가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제 속마음 같아서요. 너그러운 헨리와 솔직한 올리브... 모두 여러 사람들의 마음의 일부이겠지요.
올리브는 그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크리스토퍼는 처음엔 명령조에 성질이 못된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번에는 맹하고 착한 여자와 결혼했다. 뭐, 올리브가 관여할 바는 아 니었다. 아들의 인생이니.
올리브 키터리지 p.401,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하지만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 ("키터리지 부인, 괜찮으세요?" 치과 의사는 물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p.40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5월 마지막 연휴를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어제 "범죄자"편와 오늘 "강"편을 이어서 읽었습니다. 우선 '범죄자'의 이야기를 떠올려봅니다.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범죄자는 어떤 의미가 올 듯 올 듯 하다가 그냥 희미해져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레베카는 목사의 딸로 자랐고 자라는 동안 엄격한 통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엄마는 이단에 빠져 집을 나가버렸고(목사의 딸이고, 목사의 아내인데 말이죠.), 레베카는 식사할 때 이야기도 하지 못하게 하고, 목사의 딸이어서 작은 동네에서 누군가와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것도 조심하도록 지도를 받고, 친구에 집에 가지고, 친구를 집에 데려오지도 못합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들이 현재의 레베카를 만들었을까요? 통신판매원과 사적인 대화를 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한 인터뷰에선 쓸데없는 이야기를 떠낸 게 화근이 된 것 같습니다. 홀로 남은 레베카를 진정으로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까요?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 짝을 구할 때는 그 집안이 사랑이 가득한 집인지 (알 수만 있다면) 알아보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엄마의 부재, 아빠의 엄격함, 주변의 친구도 없었던 레베카에게 이야기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통신판매상담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가능하면 상담자의 이야기에 응대해주는게 훈련이 되었을 수 있지만) 그 상담원의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괜찮아요!!" 등의 대화에 용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레베카가 뭔가를 결심한 듯 라이타와 집나간 엄마로부터 왔던 엽서와 남자친구를 위해 통신판매로 구입한 티셔츠를 들고 나가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경찰로부터 미란다원칙을 듣는 장면을 떠올리는데 그래도 좋다고 하는 걸 보면서 뭔가 짠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레베카가 원하는 그런 대화에는 경찰로부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류의 대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레베카와 관련한 에피소드 중 병원에 찾아가는 일과 메일락스라는 위장약(끈끈해서 메일락스를 퍼먹는 스푼에 약이 덕지덕지 붙고, 또 그 스푼이 집 안 여기저기를 끈적하게 만들고, 잘 씻겨지지도 않는)과 관련해서도 뭔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대학시절 남자친구였던 제이스(현 남자친구인 데이비드를 위해 구입한 티셔츠가 사실은 데이비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제이스와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와의 일화도 뭔가 의미가 있어보이는데 이러한 일화들은 다음에 읽을 때 더 집중해서 읽어볼까 합니다.
"강"은 어쩌면 제가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은 가장 강력한 동인인 듯 합니다. 혼자된 올리브의 삶으로부터 (이제 돌아가셨지만) 노년의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였고, 또 미래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 헨리는 요양원에서 아무런 인지능력없이 수 년을 지내다 죽었고, 아들은 결혼한 후 며느리의 꼬임(올리브의 입장입니다.)으로 멀리 이사갔다 결혼한지 1년도 안되어 이혼하고 애 둘 딸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알리지도 않았으며 현재 연락도 뜸합니다. 아침 일찍 가는데 3마일, 오는 데 3마일이 소요되는 (거의 10km가 되네요.) 강변을 걷고, 던킨도너츠에 들러 구멍난 도너츠 2개를 주문하면 친절한 필리핀계 점원이 3개를 담아주고, 우유를 섞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대목에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요즘은 잘 안가지만 40대엔 일하러 나갈 때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던킨에 들러 도넛에 오리지널 커피-이게 바로 커피에 우유를 탄 그 음료인데 요즘은 안파는 것 같습니다.-를 마시며 잠깐 책 읽곤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강변을 걷다 바닥에 쓰러진 노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살다가 은퇴해서 메인주로 이사온 잭 케니슨입니다. (하지만 도시 생활을 하다 부자로 은퇴하여 시골을 찾아가면 알게 모르게 갈등이 있기 마련이죠. 그 따뜻했던 헨리도 케니슨부부가 이사왔을 때 거부감을 드러냈으니...)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잭의 짧은 단 한 줄의 대화에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같이 이 책을 읽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대화는 옮겨놓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노년의 아름다운 대화의 향연입니다. (아마도 아들 부시에 투표한) 잭에 대해 "당신 공화당지지자냐?"고 치를 떨지만 정치성향의 차이나 외부인에게 느꼈던 이질감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몇 개월전 아내를 읽은 잭이 또 쓰러져서 혼자 어쩔 수 없는 상황에나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되기도하고, 끝내 데이트는 거부하지만 봉사활동차 잭과 저녁을 먹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보기 드물게 둘 간의 관계가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그 친절했던 헨리와 살던 올리브는 그 당시 헨리에게 굉장히 시니컬하게 대했었죠. 뭐 지금도 그 성격이 어디로 가진 않았지만 그 때보단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쯤되니 다시 올리브가 그리워집니다. 후속작인 '다시, 올리브'도 있고, 언젠가 다시 이 책도 읽겠지만 딱 이 순간에 올리브가 죽도록 힘겨운 홀로살기를 그래도 조금은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올리브는 잭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 점심이나 하러 가시려우?" "나는 저녁이 더 좋은데요." 잭이 말했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종일 고대하게 되잖아요. 점심은 헤어지고 나면 아직 하루가 많이 남지만."
올리브 키터리지 p.46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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