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혼자 읽기

D-29
팬데믹 기간 막대한 돈이 풀렸고 각종 자산 가격이 미친 듯 상승했지요. 보고 있자니 회의감이 많이 들더라고요. 노동의 의미가 무너지는 것 같았고, 이런 시스템이 건강한지, 지속가능한지, 또 불가피한지도 알고 싶어졌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과 파장을 분석한 이 책을 읽으며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요? 964쪽짜리 책인데 틈틈이 밑줄 친 구절들 올리면서 가볼까 해요. 혼자 읽는 1인 모임입니다. 전자책으로 읽을 예정이라 페이지 표시는 따로 하지 않을게요.
결정적으로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국제화되어 있었고 여기에 수출 주도형 국가로서의 재정적 필요와 특히 대금을 회수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자본재의 거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은행시스템은 달러화를 조달하기 위한 국제 화폐 시장과 원화와 달러화를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외환시장에 크게 의존했던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한국어판 서문,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런 시장들은 무너져 내렸고 덩달아 한국의 금융시스템 역시 엄청난 자금조달 압박에 시달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주요 금융가와 다르게 한국은 자금조달 중단뿐 아니라 원화의 막대한 평가절하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한국처럼 막대한 외화를 보유한 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건 경제가 튼튼한 국가라도 세계적인 충격파 앞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한국어판 서문,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2009년 이후부터 한국이 보여준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며 한국의 연구 개발 분야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화는 오늘날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성장과 변화가 가능했던 건 『붕괴』 후반부에서 주로 설명하는 서구사회의 정치적 대격변을 한국이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한국어판 서문,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실제로 2008년의 금융위기는 단지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겪은 위기였으며 다만 그 근원지가 북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이었을 뿐이다. 금융위기는 또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불확실한 방식을 통해 미국을 세계 금융경제의 중심지로 다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미국은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유일한 국가였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들어가는 말: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누군가는 세계화의 위기를 통해 현대의 독립국가가 지닌 역할의 중요성과 새로운 형태의 국가 자본주의의 출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결론 내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몇 년 동안 일어난 정치적 반향을 통해 더 큰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그렇지만 2008년 위기의 표피(表皮)가 아닌 그 내면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런 설명이나 진단이 일부분만 들어맞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들어가는 말: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납세자들의 세금을 탐욕스러운 은행을 구제하는 데 투입했다. 물론 어떤 경우 그만한 이익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많은 선택들에는 여전히 수많은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 내에서도 커다란 갈등이 나타났으며 결국 8년 뒤에 또 다른 극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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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을 받았는데 그런 모든 분노의 와중에도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면 바로 “아무런 이유 없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2008년에서 2009년으로 이어진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분명한 논리가 작용했다. 바로 계급 논리로, 확연하게 드러난 것처럼 “월스트리트를 먼저 보호하고 다른 사람들 걱정은 나중에 하자”는 것이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들어가는 말: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우리가 지금 고려해야 할 것은 2012년과 2013년의 기본적 가정과는 달리 위기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위기의 반복이 아닌 위기의 돌연변이와 전이(轉移)다. 이 책의 4부에서 살펴보겠지만 2007년에서 2012년까지 이어진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는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냉전시대 질서 이후의 포괄적인 정치적, 지정학적 위기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명백한 정치적 의미는 감출 수가 없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들어가는 말: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미국에서 불평등에 대한 논쟁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중도 자유주의자들은 현대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가져온 장기적 문제들에 대한 신빙성 있는 해답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증하는 불평등과 시민권에 대한 침해라는 기존의 문제 위에 경제위기가 더해졌으며 2008년 이후 채택되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본 극적 위기 탈출 방안들이 그 자체로 나쁜 부작용들을 만들어내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들어가는 말: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다만 더 절박한 문제는 유럽연합의 민주주의의 한계와 그 편파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민주주의의 합리성을 포기하면서 좌파에 대항한다는 냉혹한 견제 전술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우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고 그런 사실은 영국의 브렉시트와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의 사례가 증명해주고 있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들어가는 말: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1993년 미국 공사채 시장 매도 위기에 직면한 클린턴 행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준비했던 야심 찬 계획들을 일단 보류한다. 루빈과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의 뜻에 따라 적자 감축은 클린턴 행정부의 최우선 목표가 된다. 민주당의 수석 정치 고문 제임스 카빌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람이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곤 한다. 대통령이나 교황, 아니면 프로야구의 4할 타자로 다시 태어나는 건 어떨까. 그런데 사실 나는 그 당시의 채권시장이 한번 되어보고 싶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을 테니.”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장 잘못된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1980년대까지 미국에 대한 주요 해외 투자자들은 유럽 사람들이었고 이어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보고 있던 일본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사실 일본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 중 하나이긴 하다. 그렇지만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엔화 가치가 급등하며 국내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경쟁자로서 일본의 위협은 수그러들게 된다. 2006년 4월, 오바마가 “국가 부채를 다른 국가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면”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바로 중국과 공산당 정권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1장 잘못된 위기,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국제 투자가들의 확신이 사라지면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운 자본 유입 중단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날 것이고 그때는 결국 통화 고정을 포기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동안 누려온 안정성은 이제 자국 화폐의 엄청난 가치 폭락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자기자본이 있는 경우에는 그 돈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지만, 외화를 차입한 경우에는 파산에 직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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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바로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1994년에는 멕시코가, 1997년에는 말레이시아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이, 1998년에는 러시아가, 1999년에는 브라질이 바로 이런 참극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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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중국인민은행은 국가 개입의 효과를 “불태화”하기 위해 시중에 풀린 통화를 효과적으로 줄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중국 내 모든 은행에 예비 준비자산을 대규모로 확보하도록 했다. 이는 중국 정부와 기업 경영진 사이의 극단적인 결탁, 그리고 강압과 상호 이익을 통해 공산당과의 공동 연대를 하며 만들어진 관계로만 유지될 수 있는 근본적으로 불균형한 상황이었다. 중국의 새로운 세력집단으로 부상하게 된 기업과 경영진은 엄청난 규모의 수출 주도형 성장 정책을 따라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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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금융시장 정보를 주로 제공하는 미디어그룹 블룸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자랑하는 브라질 출신의 슈퍼모델 지젤 번천이 자신을 모델로 기용한 프록터앤드갬블사에 팬틴 샴푸 광고 출연료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요구했다는 기사를 전했다. 순재산만 3억 달러에 달한다는 이 슈퍼 모델 역시 통화시장에 불고 있는 불안한 분위기를 그냥 보아 넘길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한편 힙합 팝스타 제이지는 MTV에서 방영하는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유로화 돈다발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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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국의 국내 문제가 어떻게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뒤흔들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동산은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중산층을 위한 일반 주택들은 그다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의 시장성 높은 재산 중에서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부동산이 전 세계 부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2장 서브프라임,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왜 증권을 만든 금융기관들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었을까? 부분적으로는 생산제도 자체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증권화를 통해서 매력적인 파생상품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그렇지 못한 상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별로 인기가 없는 상품들을 딱히 시장에 선보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전체 업무를 관장하는 은행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 내용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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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이런 사람들만 탐욕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이들을 호도하고 관심을 그쪽 방향으로 돌리게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수 모기지 차입자들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동산 시장이 일종의 균형 상태에서 호황으로 돌아섰을 때는 모든 사람이 싫든 좋든 다 함께 투기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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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국에서 새로 집행된 모기지 상품의 3분의 1 이상이 한 개인이 소유하는 두 번째, 세 번째 심지어 네 번째 주택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른바 “투기과열지역”으로 알려진 플로리다와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그 비율이 45퍼센트가 넘었다. 월스트리트나 다른 부유한 지역의 갑부들이 버는 정도의 돈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제 부동산 투기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재산 증식 방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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