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함께 읽기] #18. <우리 슬픔의 거울>

D-29
예전 한국전쟁때 이불보따리 싸서 피난가셨던 분들과 같지 않을까요?
아.. 배낭여행이나 트래킹 갈때 침낭 챙기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나 싶어요. 전쟁을 거기에 비유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 저는 이불은 덮는거로 생각해서 서양사람들은 맨바닥에서 자는 걸 정말 싫어하는군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불은 깔기고 덮기도 하는건데 매트리스는 딱 바닥에 까는 정도로만 쓰이잖아요. 무개나 크기도 상당하구요. 전쟁 중에도 포기 못하고 가져갈정도면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르메트르의 『우리 슬픔의 거울』 출간에 맞춰서 짧은 글을 하나 써서 팬심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문학의 가능성을 여전히 믿는 소설 독자로서 누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잡식성의 독서 취향을 가지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만 챙겨보는 일도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최우선으로 번역본이 나오자마자 찾아 읽고, 그것도 모자라 현지에서 원서가 새로 나왔는지 챙겨보는 외국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입니다. 르메트르? 웬만한 열정의 소설 독자가 아니라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르.노.추’의 구성원을 자임할 정도로 이 작가의 팬입니다. ‘르.노.추’는 ‘피에르 르메트르 노벨상 추진위원회’입니다. 그 정도로 작품이 좋냐고요? 네, 정말로 좋습니다.
일단, 르메트르와의 인연부터 말하는 게 순서겠습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건 2018년입니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열린책들)이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읽고 나서, 당시로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혔던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 『오르부아르』(열린책들)를 잇따라 읽었습니다. 이미 그때 팬이 되었죠. 그러고 나서, 그의 데뷔작 『이렌』부터 모든 전작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로 154센티미터 신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화가 뺨치는 그림 실력을 갖춘 형사 ‘카미유 베르호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잔혹한’ 스릴러 『이렌』 『알렉스』 『카미유』를 읽으면서 더욱더 그에게 빠져들었죠. 이 대목에서 헷갈리는 독자도 있겠습니다.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공쿠르상 수상 작가가 잔혹한 스릴러 소설도 썼다고? 도대체 이 작가의 정체는 뭐지? 지금부터 르메트르의 이채로운 경력을 듣고 나면 더욱더 이 작가에게 호기심이 쏠릴 것입니다. 찬찬히 한번 들어보세요.
르메트르는 1951년생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성인 대상 문화 강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로 밥벌이를 해왔습니다. 틈틈이 자신이 강연자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기성 작가의 강연을 기획하면서 자기 작품을 차근차근 준비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만 55세에 2006년 『이렌』으로 데뷔합니다. 올해(20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49년생으로 르메트르보다 두 살 위입니다. 그가 만 30세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해가 1979년이니, 둘을 비교해보면 르메트르의 데뷔가 얼마나 늦었는지 알 수 있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늦깎이 ‘문학청년’의 그저 그런 성공담이겠죠.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르메트르는 늦은 데뷔를 보상이라도 하듯이 앞에서 언급했던 형사 베르호벤을 주인공으로 한 『이렌』(2006년) 『알렉스』(2011년) 『카미유』(2012년) 같은 작품을 쏟아내면서 유럽에서 장르 소설 작가로 명성을 쌓습니다. 그렇게 발표한 소설 가운데는 우리 시대 실업의 문제를 잔혹하게 묘사한 걸작 『실업자』(2010년)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프랑스 드라마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2020년)의 원작입니다!)
이렇게 장르 소설을 발표하는 와중에 르메르트는 ‘본격 문학’에 도전할 뜻을 밝힙니다. 이미 예순이 다 된 작가의 이런 호언장담에 대다수의 반응은 코웃음이었죠. (사실, 르메트르에게는 장르 소설과 본격 문학의 구분 자체가 우스웠을 겁니다. 그는 추리 소설을 “굉장히 순수한 비극 문학”이며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캐묻는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니까요. 동의합니다.) 바로 그때 만 63세가 되던 르메트르가 발표한 소설이 바로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쓴 『오르부아르』(2013년)입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그는 이 소설로 노벨상, 부커상과 함께 문학상으로서 권위를 인정받는 공쿠르상을 수상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프랑스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파는 상업적 성공도 거두죠. 사실, 르메트르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르부아르』를 시작으로 20세기 전체를 소설로 형상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일단, 제1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초까지를 배경으로 세 권을 내놓는 게 일차 목표였습니다. 『오르부아르』가 그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60대에 시작해서 최소한 아홉 권 이상의 소설을 내야 끝나는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까요?
사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작품 각각의 성취일 것입니다. 『오르부아르』를 2018년에 읽고서 이런 독후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 계급 갈등 같은 구조적인 문제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욕망, 애정, 연민, 증오 등)이 추동하는 갈등을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혼란한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절묘하게 결합해 놓았다. 그것도 눈을 뗄 수 없는 수다스러운 이야기로 말이다. 심지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말미의 고백도 반전이다. 겉만 보면, 이 소설은 끔찍한 전쟁(절대 폭력)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정작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아(사회 폭력) 좌절한 두 청년의 좌충우돌 생존기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서 20세기 초반의 청년과 21세기 초반의 같은 세대가 똑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사실은 르메트르가 이 소설을 쓴 중요한 계기였을 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수많은 등장인물이 얽혀서 야단법석 소동이 벌어진다. 그렇게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구조가 민낯을 드러낸다. 이 소설은 이 대목에서 한 단계 도약한다. 그 구조의 폭력 속에서 인간성이 압살당하기는커녕 오히려 빛을 발한다. 독자는 그 감동의 순간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오르부아르』의 성취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르메트르는 『오르부아르』 다음에 대선배 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다시 쓴 듯한 『화재의 색』(2018년)을 펴내서 독자를 즐겁게 하더니, 『우리 슬픔의 거울』(2020년)로 프로젝트의 첫 번째 3부작을 완성했습니다. 최근에 바로 이 『우리 슬픔의 거울』이 한국어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르메트르의 팬으로서 나오자마자 이 소설을 읽고서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대작이었으니까요! 르메트르는 독일 나치가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고 나서 시작한 제2차 세계 대전이 지지부진했던 개전 초기 1940년의 프랑스 파리와 마지노선 참호에서 소설을 시작합니다. (전쟁터에서 시작한 3부작이 전쟁터에서 끝나는 설정부터 기가 막히죠!)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비웃듯이 프랑스 북쪽의 벨기에 등을 공략하며 우회해서 전차를 몰고 파리로 진격합니다. 이때 주인공 ‘루이즈’는 오랫동안 어머니가 감춰온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부대를 이탈한 두 군인은 졸지에 군사 감옥에 갇혀서 위험천만한 피난길에 내몰리죠. 여기에 가세하는 또 다른 욕망을 가진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의 난장판! 1940년 4월부터 6월까지 딱 두 달간 벌어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르메트르는 전쟁의 광기와 개인의 비극이 맞물리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꾸려가려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 묘사하며 독자에게 감동을 줍니다. 르메트르 특유의 해학도 빼놓을 수 없고요.
다시 20세기 프로젝트입니다. 르메트르는 이미 프랑스 현지에서 2022년, 2023년 잇따라 제2차 세계 대전 후를 배경으로 한 3부작의 첫 두 권을 내놓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1948년, 두 번째 이야기는 1952년. 이번에는 배경도 세계로 넓어집니다. 프랑스 파리뿐만 아니라 레바논 베이루트와 베트남 사이공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르메트르는 올해(2023년)로 만 72세입니다. 앞으로도 최소한 네 권의 작품을 더 내야 완성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라도, 그가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은 르메트르의 작품을 펼치는 일입니다. 참, 『오르부아르』를 먼저 읽은 분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그 귀엽고 당돌한 여관집 꼬마 ‘루이즈’가 30대의 산전수전 다 겪은 여성이 되어서 바로 『우리 슬픔의 거울』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 위화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르메트르가 있다, 같은 비교도 해보고 싶네요. :)
다들 책은 재미있게 읽고 계신가요?
전 벌써 다 읽었습니다~^^ 재미도 있는데 세계사 지식도 쌓이니 일석이조의 독서였습니다. 3부작 두 권도 빨리 읽어보고 싶은데 내년에 나온다 생각하니 슬프네요. 저도 르메트르의 건강을 간절히 바랍니다.
네, 저도 전후 1948년, 1952년을 배경으로 한 신작들 번역을 열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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