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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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6 왜냐하면 저들 두사람의 만남은 그 첫 순간부터 저분의 심장에 오욕으로 남았으니까. 그게 바로 저분의 속마음이지! 나는 저분이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내 그 얘기를 듣는 일만 해왔던 거야. 저는 이제 가겠습니다. 하지만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당신은 정말로 형만을 사랑한다는 걸 알아두세요. 형이 주는 모욕이 크면 클수록 당신은 더욱더 형을 사랑할 겁니다. 바로 이것이 당신의 격정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모욕하는 형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만일 형이 개과천선한다면 당신은 당장에 형을 내던지고 사랑도 완전히 식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대단한 신실함을 끊임없이 관조하고 형의 배신을 비난하기 위해 형은 당신에게 필요한 존재예요. 이 모든 건 당신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 아름다운 까쩨리나와 드미뜨리의 약혼은 일상적인 사랑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드미뜨리는 까쩨리나의 오만함에 대한 복수로 까쩨리나는 드미뜨리가 자신의 도덕적 자긍심을 무너뜨린것을 '구원'이란 단어를 앞세워 결혼할려는 것이 아닌지. 왠지 지적이고 관념적이고 허무주의자같은 이반이 형의 약혼자 까쩨리나에게 흔들리는 장면은 의외의 모습이라 재미있습니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어떻게 흐를지 궁금하네요.
저도 드미트리-카체리나가 연을 계속 이어가는 오기(?) 가 너무 신박하더라구요! ㅋㅋ 실제로 제가 만난다면 기싸움에 말라죽을 것 같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대체 어떤 사랑을 했는지.. 진짜 어떻게 읽을 줄 알고 썼는지도 궁금하네요 ㅎㅎ
드미뜨리-까쩨리나의 기묘한 애증은 왠지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만 필력 없는 작가한테는 묘사할 엄두가 안 날 그런 관계이지요. 잘못 썼다간 독자들이 짜증내면서 ‘설득력이 없다’고 불평 터뜨릴 거 같고요. (시청률은 높은데 너무 오래 방영되어 소재가 떨어진 미드에서 종종 벌어지는 막장 관계들이 생각납니다.) 드미뜨리-그루셴까 사이에도 역시 필력 없는 작가한테는 묘사할 엄두가 안 날 긴장과 끌림이 있습니다. 드미뜨리-까쩨리나-그루셴까 같은 기묘한 삼각관계에 이반 같은 인물까지 끼워넣어 잘 버무린 솜씨에 정말 경탄합니다.
p358 어쩐일인지 그 이등대위에게 화가 잔뜩 난 드미뜨리 표도로비치가 그분의 구레나룻을 붙잡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굴욕적인 모습으로 거리로 끌고 나가 거리에서도 또 오랫동안 끌고 다녔대요. 이곳 학교에 다니는 그 이등대위의 어린 아들이 그걸 보고는 곁을 뛰어다니면서 큰 소리로 울며 아버지를 위해 빌고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매달려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사람들은 웃기만 했다는군요. 용서 하세요. 알렉셰이 표도로비치, 저는 그이의 그 수치스로운 행동을 분노없이는 떠올릴 수가 없어요. : 드미뜨리의 행패에 수모를 겪는 이등대위와 그의 아들의 모습은 너무 처절해서 마음이 저리네요. 예전 <죄와 벌>에서 퇴역관리 마르멜라도프와그의 아내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의 묘사처럼 참 너무 비참하네요. 도스토옙스키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잘 묘사하고 표현하는지 참 대단하고 궁금하네요.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을 읽으며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길 원하셨을까요??
저는 스타브로긴의 기행이 떠오르더라고요. ㅎ
이렇게 도선생님의 3부작을 읽는 다면 비슷한 등장인물들끼리 묶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드미뜨리가 스타브로긴보다는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물인거 같더라구요.
드미뜨리가 스따브로긴보다 머리가 좀 나쁘고 대신 마음 깊은 곳에 정의감이나 염치 같은 게 좀 있는 거 같습니다. ^^;;;
저도 읽으면서 다른 작품의 인물들이 떠오릅니다. 유로지비라고 설명되는 등장인물이 많아서일까요.. 공통점이 있어요.
사실 인간의 '짐승같은'잔혹성이라는 표현을 간혹 쓰지만, 그건 짐승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부당하고 모욕적인 말이야. 짐승은 결코 인간처럼 그렇게 잔혹할 수 없거든. 그렇게 세련되게, 그렇게 예술적으로 잔혹할 수 없다고.
까라마조프 형제들 1(창비세계문학 85) p441, 도스토예프스키
<반란>에서의 이반과 알료샤의 대화에서 이반의 묘사가 너무 잔혹해서 읽기 좀 거북했습니다. 정말로 왜 이렇게 사람들은 잔혹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화를 원치 않아,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원치 않는단 말이야. 난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함께 남고 싶어. 〈비록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해소되지 못한 분노를 품은 채 남을거야. 게다가 조화의 값이 너무 비싸서 내 주머니로는 입장료를 도저히 지불할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서둘러 입장권을 되돌려보내주는거야. 만일 내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가능하면 빨리 그걸 돌려보내야 한다구.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야, 알료샤. 난 그저 입장권을 정중히 돌려보내는 것뿐이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당신이 다시금 소리 높여 전하려는 모든 것은 인간들의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게 될 것이요. 왜냐하면 그것은 기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인간들의 신앙의 자유는 1천 5백 년 전 당시에 당신한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아니었소?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고 싶구나》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 아니었소? 당신은 바로 그 《자유로운》 인간들을 지금 목격한 거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인간은 반역자로 창조되었소. 과연 반역자들이 행복해질 수 있겠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인간을 덜 존중하고 그에게 더 적은 것을 요구하면 그의 부담이 줄어들 테니, 더욱 사랑으로 다가가는 길이 될 거요. 인간은 허약하고 비열하오. 인간은 지금 도처에서 우리들의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게 대체 어떻단 말이오? 그건 어린애들의, 코흘리개 학생들의 자부심인 거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러면 끈끈한 잎새들이나 소중한 무덤들이나 푸른 하늘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은 어찌 되겠어요! 앞으로 형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며, 또 무엇으로 그들을 사랑하시겠어요?」 알료샤는 슬픈 목소리로 외쳤다. 「가슴과 머릿속에 그런 지옥을 담아 두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나 한가요? 아니, 형은 그자들과 합류하러 가실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살하고 말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것은 방탕에 빠져 부패 속에서 영혼을 질식시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서른 살까지만 그럴 뿐이고 나중에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거야, 그리고 그때는….」 「어떻게 빠져나온다는 거죠? 무엇의 도움으로요? 형이 가진 사상으로는 불가능해요.」 「어쨌든 까라마조프 식이 될 거야.」 「〈모든 것은 허용된다〉, 이런 말인가요? 모든 것은 허용된다니, 정말 그럴 것 같아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영생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유를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룰이 있는 것보단 룰이 없는게 자유롭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우니까요. (무엇이 자유인가 하는 복잡한 고민은 차치하고요) 신기하게도 우리 도형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에 반대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대심문관을 통해 기적, 권위에서 비롯되지 않은 신앙의 자유를 말하구요. 기적이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자유로운 행위가 맞지만, 신앙은 결국 인간에게 한계를 지어 자유를 일부 제한하죠. 제가 생각하기에 어느정도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머리가 복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의 자유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자유에 있어서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 『악령』의 스따브로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스메르쟈꼬프는 모두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세 인물을 통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사상은 인간을 파멸시킨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거 같고요. 도스토옙스키는 그러므로 인간이 무서운 공허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것은 허용하지 않는’ 도덕률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하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받은 니체나 까뮈는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다른 결론을 내고자 했고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는 게 일면 흥미롭고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필생의 적이라고 여겼기에 깊이 고찰했겠지요. 저는 도스토옙스키가 현재의 문학적 위치에 오른 것이 그의 사후 무신론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가 독실한 신앙의 시대였다면 역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지금처럼 중요한 작가로 대접 받지 못했을 거고요. 조지 오웰 사후 소련이 바로 몰락해버렸다면 "동물농장"도 지금처럼 고전이 되지 못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저또한 아직 “모든것이 허용된다”는 입장이여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논리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온전히 삶속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허용되지 않는” 도덕률을 신의 존재에서 끌어 온 것도 그렇구요. 우리 도형도 이를 알고 논리가 아닌 스토리 형태로 “모든 것이 허용된” 인물들을 파멸시켰지만, 결국 이런 문제는 개인이 삶을 통해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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