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D-29
아빠, 제 무덤에 흙을 덮을 때 참새가 날아오도록 빵껍질을 부숴서 그 위에 뿌려주세요. 참새들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으면 기쁠 것 같아요. 저 혼자 누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까라마조프 형제들 3(창비세계문학 87) 에필로그 p469, 도스토예프스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고통만큼 신(내세)을 간절히 원하게 되는 때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부분을 가슴 아프게 읽었어요. 책의 마지막이 일류샤의 장례식인 이유가 혹시 그런 것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일류샤의 운명을 까먹었던 터라 두 번째로 읽으면서도 ‘어라?’ 하고 놀랐습니다. 어린 소년이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게 요즘 흔한 일도 아니고, 개도 찾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서 설마 죽을까 싶었는데요. 그런가 하면 저는 ‘잊지 말자’는 다짐이 영원한 손실 앞에 무척 무력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제 마음 속에 남는다 하더라도 제가 죽으면,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남는 게 없을 텐데요. 너무 허망합니다. 무신론자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혹한 진실일까요? ‘개인적인 무신론 3대 경전’ 이야기 재미있었습니다. 저한테 무신론 3대 경전은 뭘까 생각해봤는데 두 권은 골랐고(『악령』, 『시지프 신화』), 다른 한 권은 뭐가 될까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도 적극 동감합니다!! 무신론자라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앞에서까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지금 전 무신론자지만은요^^ 죄없는 아이들의 잔혹한 죽음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신에 대한 믿음과 부정을 선택하기 가장 극단적인 상황인거 같습니다~ 저도 쑥스럽지만 아이들 앞에서 도스토옙스끼 읽은 엄마라며 뿌듯해 한답니다(자기효능감 급상승!!)~^^ 이 과정과 모임들이 소중하고 고마운 기억으로 남을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의 교육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이런 멋지고 성스러운 기억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육일 겁니다. 그런 추억을 많이 가지고 삶으로 나아간다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구원을 받은 겁니다.
까라마조프 형제들 3(창비세계문학 87) 에필로그 p475, 도스토예프스키
어제 @ 동키돈키님이 이 부분을 언급했을 때 공감했었거든요.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신기루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기억이 아닐까 했습니다. 멋지고 성스러운 기억들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각자에게 다른 세계를 선물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이렇게, 평생토록 이렇게 손을 잡고 가요! 까라마조프 만세!꼴랴가 다시 열광적으로 외쳤고 모든 소년이 그의 외침에 화답했다
까라마조프 형제들 3(창비세계문학 87) 에필로그 p478,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마지막은 밝고 희망차다 <악령>의 마지막 '티혼의 암자에서'를 쓴 도스토옙스키가 동명이인이 아닌가 싶을정도였다 밝아서 좋긴 한데 단짠의 느낌으로 <악령>도 다시 한번 읽어볼까 싶어진다 프란시스코 고야가 말년에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루누스>나 <검은연작>들을 남겼다 그의 후기 그림들은 <악령>의 스타브로긴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작품들을 낳은 도스토옙스키에게 르느와르같은 느낌의 작품을 그려낸 사실이 신기하다~
도박사님들은 모임 후기도 정말 상세하게 올려주시네요. 정성과 열정에 감탄합니다.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저는 한 번씩 일상을 잊고 이 책 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문학작품이 이렇게 많은 질문과 대답,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어떤 질문은 긴 시간이 지난 후 그 대답을 찾게 될 듯하네요. 아마도 이제는 일상에서 가끔 ‘맞아, 나 도스토옙스키 읽은 사람이지?’하게 되겠지요^^ 그믐 밤도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함께 읽고 나눠주신 모든 분 감사합니다!
@동키돈키 님이 말씀하신 공동체 윤리에 대해 집에 가면서 생각해보았어요. 공동체 윤리가 신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잔체주의나 군중심리의 함정을 피해서 대단히 일관성 있고 내부 모순이 없는 논리를 공동체가 개발할 수 있다면(저는 어려울 거라 봅니다만) 그걸 객관적 자연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봐야 종이기주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장맥주 공동체 윤리는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그 시대에 맞는 그 시대만에 공동체 윤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핵심에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어야 하겠지만요. 지금까지 역사에서 논의된 수 많은 공동체윤리가 결국에 가서는 경전화, 성역화 되면서 변질되는 걸 보면서 절대적인 공동체 윤리의 내용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과, 결국 이 공동체 윤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과 형식이 공동체 윤리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민주주의 라는 체제의 위대함(?)은 내용이 있는게 아니라 그 형식적 틀에 있는게 아닐까요? 개개인의 뜻을 취합해 이를 공론으로 정한다. 이때 내린 결정이 항상 정의롭고 윤리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내린 결정이기에 책임도 같이 질 수 있는 것 같아서요. 대심문관이 그렇게 비난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위대함을 살릴 수 있는것도 제가 말한 공동체 윤리의 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위대한 선지자가 와서 기가 막힌 윤리를 top-down으로 제시하면 그 시대에는 잘 기능할지 모르나 결국엔 시대변화를 따라잡디 못하고 변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행착오가 있다라도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개인윤리 토대로 공동체 윤리를 도출해내고, 공동체 윤리의 틀 안에서 개인윤리가 조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조화시킨다는 것이 너무나 나이브하고 이상적인 생각일지라도, 그러한 시도가 있어야 공동체 윤리가 인정받을 수 있을것 같아요. 결국엔 삐딱하고, 회의적이고, 허무주의자를 표방한다는 저같은 사람이 이런 다소 나이브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게 아직까지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ㅎㅎ…
삶의 의미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지해지는 게 당연한 거죠! 저도 민주주의의 가치는 마지막에 도출하는 결론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입법도, 사법도. 그래서 즉각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늘 경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믐밤 닫히기 전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가지고 여러 이야기 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남기고 싶어 왔습니다.!! 읽을 책 목록도 늘고, 후기 읽으며 ‘건조한 친절함’이나 ‘잊어버리는 것, 잊혀지는 것’에 대해서도 또 생각하고 갑니다. 많은 것 배울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사회 분위기는 반대하지만 함께 살아나가야 할 가치나 방향은 무엇이 있을까 항상 궁금하더라구요~그래서 이번 <까라마조프 형제들>과 석영중 교수님 책의 글에서 와닿는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장강명작가님의 <산자들> 작가의 말도 좋아서 올립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 복음서 12:24 인간은 선하고 악하며 동물적이면서 신적인 것을 지향한다 이토록 모순적인 성정은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지적한 바 그대로 인간에게 기쁭일 수 있지만 엄청난 고통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모든 비극성을 뛰어넘는 어떤것 인류를 보편의 운명에서 구원해 줄 어떤것을 끈질기게 추구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공감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칭찬의 박수 세 번으로 이 글을 시작합니다. 짝!짝!짝! 3개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 3대 장편을 읽는다는 이 무모하면서도 멋진 계획에 함께 해 주신 분들,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중간 중간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긴 장정을 마치고 그믐밤은 무려 3명의 박사를 배출하였어요. @스마일씨 @거북별85 @작은기적 님을 비롯 함께 해 주신 분들 너무나 자랑스럽고 축하드립니다.
그믐밤 오프라인 모임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셨지만 온라인 모임에서 열심히 함께 달려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공간에 남겨진 우리들의 글이 무려 540개가 넘어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라는 책으로 500개가 넘는 글이 남겨진 독서모임이 한국에, 아니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에 또 있을까요? 정말이지 역대급 아닌가 싶습니다.
18일에 있었던 오프라인 그믐밤에서는 지난 1탄, 2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과자 (무려 @수북강녕 책방지기님이 직구를 하기도 하셨다고요)와 러시아 차가버섯 티와 함께 도스토예프스키를 이야기하는 마지막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지난 두 번의 모임과는 조금 다르게 책 내용에 포커스를 완전히 맞추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을 이루는 사상적 측면에서 유신론과 무신론을 다루며 우리들 각자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존 메설리의 분류표를 보며 살펴보았어요. 물론 무 자르 듯 나는 100% 이 쪽에 속한다는 분은 없었고요, 다들 이 부분과 저 부분에 조금씩 걸쳐 있거나 혹은 이런 쪽에서 나이가 들면서 저런 쪽으로 점차 변경이 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리한 분류표 결과도 공유드립니다. 불가지론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 선택자 없음 불가지론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의미가 있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IlMondo @스마일씨 @작은기적 삶이 무의미해서 좋다 (긍정) => @수은등 @거북별85 @임쏘쏘 삶이 무의미해서 좋지 않다 (용인) => @동키돈키 @고쿠라29 삶의 의미는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온다. (긍정적 유신론) => @IlMondo @수북강녕 @임쏘쏘 @작은기적 삶의 의미는 속세에 있으며 객관적이다 (객관적 자연주의) => @장맥주 삶의 의미는 속세에 있으며 주관적이다 (주관적 자연주의) => @동키돈키 @수북강녕 @거북별85 @스마일씨 @고쿠라29 @장맥주
거북별85님이 문장수집 해주신 에필로그를 살짝 바꾸며 모임 마무리하겠습니다. "영원히 이렇게, 평생토록 이렇게 손을 잡고 가요! 도스토예프스키 만세! 그믐과 수북강녕이 다시 열광적으로 외쳤고 모든 도박사들이 그들의 외침에 화답했다"
이제 두 시간 뒤면 모임이 종료되네요. 모두 고맙습니다.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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