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D-29
사실 인간의 '짐승같은'잔혹성이라는 표현을 간혹 쓰지만, 그건 짐승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부당하고 모욕적인 말이야. 짐승은 결코 인간처럼 그렇게 잔혹할 수 없거든. 그렇게 세련되게, 그렇게 예술적으로 잔혹할 수 없다고.
까라마조프 형제들 1(창비세계문학 85) p441, 도스토예프스키
<반란>에서의 이반과 알료샤의 대화에서 이반의 묘사가 너무 잔혹해서 읽기 좀 거북했습니다. 정말로 왜 이렇게 사람들은 잔혹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화를 원치 않아,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원치 않는단 말이야. 난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함께 남고 싶어. 〈비록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해소되지 못한 분노를 품은 채 남을거야. 게다가 조화의 값이 너무 비싸서 내 주머니로는 입장료를 도저히 지불할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서둘러 입장권을 되돌려보내주는거야. 만일 내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가능하면 빨리 그걸 돌려보내야 한다구.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야, 알료샤. 난 그저 입장권을 정중히 돌려보내는 것뿐이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당신이 다시금 소리 높여 전하려는 모든 것은 인간들의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게 될 것이요. 왜냐하면 그것은 기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인간들의 신앙의 자유는 1천 5백 년 전 당시에 당신한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아니었소?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고 싶구나》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 아니었소? 당신은 바로 그 《자유로운》 인간들을 지금 목격한 거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인간은 반역자로 창조되었소. 과연 반역자들이 행복해질 수 있겠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인간을 덜 존중하고 그에게 더 적은 것을 요구하면 그의 부담이 줄어들 테니, 더욱 사랑으로 다가가는 길이 될 거요. 인간은 허약하고 비열하오. 인간은 지금 도처에서 우리들의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게 대체 어떻단 말이오? 그건 어린애들의, 코흘리개 학생들의 자부심인 거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러면 끈끈한 잎새들이나 소중한 무덤들이나 푸른 하늘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은 어찌 되겠어요! 앞으로 형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며, 또 무엇으로 그들을 사랑하시겠어요?」 알료샤는 슬픈 목소리로 외쳤다. 「가슴과 머릿속에 그런 지옥을 담아 두는 것이 대체 가능하기나 한가요? 아니, 형은 그자들과 합류하러 가실 거예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살하고 말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그것은 방탕에 빠져 부패 속에서 영혼을 질식시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서른 살까지만 그럴 뿐이고 나중에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거야, 그리고 그때는….」 「어떻게 빠져나온다는 거죠? 무엇의 도움으로요? 형이 가진 사상으로는 불가능해요.」 「어쨌든 까라마조프 식이 될 거야.」 「〈모든 것은 허용된다〉, 이런 말인가요? 모든 것은 허용된다니, 정말 그럴 것 같아요?」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제5권 찬반론,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영생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유를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죠. 룰이 있는 것보단 룰이 없는게 자유롭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우니까요. (무엇이 자유인가 하는 복잡한 고민은 차치하고요) 신기하게도 우리 도형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에 반대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대심문관을 통해 기적, 권위에서 비롯되지 않은 신앙의 자유를 말하구요. 기적이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자유로운 행위가 맞지만, 신앙은 결국 인간에게 한계를 지어 자유를 일부 제한하죠. 제가 생각하기에 어느정도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머리가 복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의 자유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자유에 있어서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 『악령』의 스따브로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스메르쟈꼬프는 모두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세 인물을 통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사상은 인간을 파멸시킨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거 같고요. 도스토옙스키는 그러므로 인간이 무서운 공허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것은 허용하지 않는’ 도덕률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하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받은 니체나 까뮈는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다른 결론을 내고자 했고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는 게 일면 흥미롭고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필생의 적이라고 여겼기에 깊이 고찰했겠지요. 저는 도스토옙스키가 현재의 문학적 위치에 오른 것이 그의 사후 무신론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가 독실한 신앙의 시대였다면 역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지금처럼 중요한 작가로 대접 받지 못했을 거고요. 조지 오웰 사후 소련이 바로 몰락해버렸다면 "동물농장"도 지금처럼 고전이 되지 못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저또한 아직 “모든것이 허용된다”는 입장이여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논리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온전히 삶속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허용되지 않는” 도덕률을 신의 존재에서 끌어 온 것도 그렇구요. 우리 도형도 이를 알고 논리가 아닌 스토리 형태로 “모든 것이 허용된” 인물들을 파멸시켰지만, 결국 이런 문제는 개인이 삶을 통해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도스토옙스키가 꺼낸 이 문제를 여태까지 잘 해결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허용되지 않는’ 도덕률을 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바탕을 두고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여럿 있었지만 다들 허점은 있는 것 같고요. 제 경우에는 『악령』에서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때까지의 세계사는 바로 이것에 불과한 거야”라는 끼릴로프의 대사에 오래 사로잡혀 있는데,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신이라는 객관적 가치의 원천이 있다면 윤리도, 삶의 의미도 생기고, 금지되는 것이 생기며,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도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신이 없다면 다른 객관적 가치의 원천을 찾거나 주관적 가치에 근거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할까? 사르트르 같은 사람은 가능하다고 본 거 같습니다. 까뮈는 그런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본 거 같고요.
5권을 열심히 읽고있는 저는 둘째 이반에게 급 끌리고 있네요. 알료사는 아직 미성숙한 것 같고 드미뜨리는 넘나 단순하고..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선호가 어떻게 변해갈지도 궁금해요.
모든것이 허용된다고 믿은 모든 주인공들이 결국 죽음을 맞는다고 생각하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굉장히 윤리적인 느낌이 드네요 신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이 무신론자들에게는 어떻게 와닿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종교가 있다보니 생각하는데 한계가 좀 오네요
이상하게도 윤리의 문제를 탐구한 유명한 무신론자들이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한 것 같습니다. 니체도 그랬고, 까뮈도 그랬고요.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견진성사까지 받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거든요. 그런데 20대 초반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고 나서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을 소화할 수가 없어 너무 어지러웠습니다. 그리고 『악령』을 읽고 나니 더 이상 종교를 지니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도스토옙스키 때문에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인생 책을 『악령』으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책 때문에 인생이 정말 바뀌었어요. 도스토옙스키가 알았으면 크게 한탄했겠지요? ㅎㅎㅎ
'지난 일은 모두 꺼져라, 지난 세계와는 영원한 작별이다, 그곳으로부터 어떤 소식도, 어떤 부름도 영영 없길. 새로운 세계, 새로운 곳으로 가는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러나 환희 대신 갑자기 짙은 어둠이 그의 영혼을 뒤덮었고, 전에는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런 비애가 가슴속에서 아프게 쑤셔대기 시작했다. 그는 밤새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차는 나는 듯이 마냥 달렸고, 먼동이 틀 무렵, 이미 모스크바에 들어설 때에야 그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나는 비열한 놈이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p567,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1권. 애초 구상한 두 편의 소설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하는 미완성의 작품이다. 문학사적으로 러시아 문학을 세계문학 속에 우뚝 세운 19세기 러시아 장편소설의 위대한 시대를 장엄하게 끝맺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소설을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김희숙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고 정연한 해설을 더해 선보인다. 친부 살해를 다룬 범죄소설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정념, 이상, 신앙을
어제 네 형의 눈길은 자신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 네 형은 그런 눈길을 보내고 있었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일 때문에 내 가슴은 순간적으로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몰라. 사람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발견한 것은 내 평생 한두 번에 불과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6권 러시아의 수도사,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권. 이 책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 도스또예프스끼가 쓴 대심문관의 이야기다.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운명 전체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듯했고, 안타깝게도 그 같은 운명이 그대로 실현되었어. 내가 너를 너희 형한테 보냈던 것은, 알렉세이, 형제로서의 너의 얼굴이 그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제6권 러시아의 수도사, 도스토예프스키
상권 다 읽고 중권으로 넘어갔습니다. 알료샤와 리즈의 꽁냥꽁냥 사랑 이야기도 재밌네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문 초등학생을 대하는 알료샤의 모습. "쟤가 저러는 건 다 이유가 있겠지..." 알료샤 너무 착해서 마음이 정화되네요. 조시마 장로 과거 이야기도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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