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D-29
드미뜨리 표도로비치는 28세의 젊은 사내이며, 보통 키에 수려한 용모를 갖추고 있었으나 나이에 비해 상당히 늙어 보였다. 근육질의 사내로서 비록 그의 얼굴에는 뭔가 병적인 것이 엿보였지만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위었고 두 뺨은 움푹 꺼졌으며 안색에는 환자의 황달기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상당히 크고 검은 두 눈은 퉁방울처럼 튀어나와 있었고 대단한 고집을 가진 듯하지만 어딘지 초점이 흐려 있었다. 흥분하여 씩씩거리면서 말할 때조차 그의 시선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거역하고 있는 듯 무언가 당시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란 무척 어렵습니다〉라고, 그와 이야기를 해본 사람들은 그를 평하곤 했다. 어딘가 모르게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다가도, 재미있고 장난기 어린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갑자기 호탕하게 터뜨리는 그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놀라는 일도 적지 않았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스마일씨 알료샤가 19세 박보검이라니 이해가 딱 되어요. 드미뜨리는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요? 저는 이병헌이 떠오르네요. 28세 때는 아니고 30대 중반 즈음의...?
「당신은 사람들에게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이 고갈되면 그런 결과가 생길 거라고 정말로 확신하십니까?」 갑자기 장로가 이반 표도로비치에게 물었다.「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만일 영생이 없다면 선행도 없는 것입니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드미뜨리 표도로비치!」 표도르 빠블로비치는 자신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만일 당신이 내 자식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당신한테 결투를 신청했을 거요…. 권총으로, 3보의 거리를 두고…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열린책들 번역에 다른 부분에 불만은 없는데, 표도르가 자식한테 존댓말을 쓰고 상대를 '당신'이라고 부르니 어색합니다. 인성도 그 모양인 인간이.
'진정한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이번에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처음 접하며 번역의 중요성을 참 많이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 왠지 이해가 안가는 것을 번역의 탓으로 돌리는 못난 저의 모습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장비탓만 하지 않도록 제 실력이 늘길 바랍니다. ^^
읽을수록 공감이 가네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 과연 인류를 사랑하는게 맞나?라는 의구심도 들고. 이 글이 스누피에 나오다니.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네요.
피너츠의 어디에서 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느 에세이에서 "버트란드 러셀이 한 말인지 피너츠에 나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이라면서 인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었다니... 혹시 그 뒤에 버트란드 러셀이나 피너츠에서 다시 인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의 수도원마다 이런 끌리꾸샤가 흔히 보였고 자주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오전 미사에 데려오면 그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교회 전체를 돌아다니며 개처럼 울부짖다가도, 성혈성체를 내와서 그들을 성혈성체 쪽으로 데려가면 '귀신 들림 현상'이 곧바로 사라졌고 병자들은 몇분간이라도 늘 평안해졌다.
까라마조프 형제들 1(창비세계문학 85) p91,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끌리꾸샤가 자주 나와서 무엇일까 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우울증'같다고 하네요. 여성들에게 이런 일들이 흔히 일어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라니!! 요즘처럼 '여성 인권'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라는 의문이 듭니다. p91 그러나 놀랍게도 훗날 나는 의사들을 통해 그것은 결코 꾀병이 아니며 무서운 여성질환으로 주로 우리 루시에 많으며 시골 여성의 힘겨운 운명을 증명하는 병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병은 아무 의료적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힘겹게 출산한 직후 곧바로 극도의 고된 노동을 감당한 탓에 발병한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 출구없는 슬픔과 폭력등에서 비롯하기고 하는데 일반적인 예에 따르면 어떤 여성은 천성적으로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 우리나라에도 '울화병'이라는 병이 많이 있었는데 일종의 '끌리꾸샤'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가끔 동네에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을 비웃거나 놀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 때는 이러한 단어와 행동들의 일상화되었던거 같은데 어쩌면 이들의 슬픔을 집단적으로 희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리꾸샤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어쩌면 여권이 바닥이던 사회의 유물일지도 모르겠네요...
ㅎㅎ전 처음에 끌리꾸샤가 사람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러시아 장편은 처음인데 정말이지 등장인물들 이름때문에 혼동됩니다(부칭에 애칭까지)~ 그 안에서 스토리라인과 등장인물 관계 찾기까지!! 옛날 90년대 유행했던 매직아이보는거 같아요^^;;~
저도 예전에 ‘화병’이 한국 고유의 병이고 영어 사전에도 등재됐다, 영어 사전에도 올랐다고 들었었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가부장제에서 억압 받으며 억누른 화가 병이 된 게 아닐까 혼자 짐작했는데, 동남아에도 이런 비슷한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DSM에는 그냥 우울증의 한 양상으로 적혀 있나 봐요.
러시아 그 시대에는 여성의 히스테리, 발작이 흔하고 일반적인 증상이었던가? 그게 뭘까 했는데 ‘울화병’, ‘그들의 슬픔을 집단적으로 희화한 것’으로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저는 ‘유로지비’라는 말을 도스토옙스키 소설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것도 러시아 문화 고유의 개념인 거 같은데 ‘바보 성인’이라고 합니다. 열린책들 판에는 그대로 ‘유로지비’라고 옮겼는데, 다른 번역본에는 단어가 어떻게 나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악령에 어떤 '유로지비' 일화가 꽤 나왔는데 우리나라 '애기동자' 비스름하더라고요. 뭔가 기괴했어요.
'유로지비'가 우리나라 '애기동자'와 비슷한가요?? (악령 같이 봤는데도 기억이~^^;; )제 번역본에서는 '백치성인'이라도 소개하더라구요~ 솔직히 무엇인지도 모르겠구~그런데 애기동자라니 뭔가 오싹하고 궁금하네요~
[악령] 에서 무슨 수도원에 바보같은 성인이 한 명 있고 부자, 가난뱅이 할 것 없이 우루루 몰려와 매일 그에게 은혜받기를 기다리던 장면 기억하세요? 그 '유로지비'는 바보'같은' 성자가 아니고 정말 '바보'였던 거 같은데 사람들이 모여서 숭배하고 그런 거 보니까 우리나라도 법당? 이나 신당? 같은 곳에서 '신' 이 들어왔다고 우기면서 점 봐주고 미래 예측해 주는 그런 거랑 묘하게 비슷하더라고요. 역시 사람사는 거 다 똑같다 이렇게 느꼈어요.
아... 유로지비와 애기동자. 생각 못했는데 비슷한 거 같기도 합니다. 먼 훗날에는 지금의 공황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같은 명칭과 분류 기준을 황당하다며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울장애나 공황장애가 어떤 바이러스나 단백질로 인해 발병하는 것임이 확인되어 알약 하나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옛 사람들에게는 천연두도 하늘이 내린 벌처럼 느껴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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