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이 말했다. 몇주 동안 새 한마리 안 보이네. 마치 만물이 어떤 식으로 파내어진 것처럼 보여(For weeks, there is not a bird to be seen. It is as if everything was somehow hollowed out).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인데, 잡초들만 계속 자라나. 서양메꽃은 덤불로 목을 조르고, 쐐기풀의 노란 뿌리는 땅속에서 앞으로 기어나가고, 다년초 덩굴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크고, 갈색 반점세균과 진드기가 번져가고, 끙끙대며 단어와 문장을 병렬해놓은 종이조차 진딧물이 짜낸 감로로 칠한 것처럼 느껴지네. 몇날 몇주 동안 성과도 없이 머리를 쥐어짜지만, 만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습관 때문인지, 과시욕 때문인지, 아니면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삶에 대한 경탄이나 진리에 대한 사랑, 절망, 분노 때문인지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쓰면 점점 똑똑해지는 건지 아니면 더 미쳐가는 건지도 대답할 수 없다네. 아마 도 우리 문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써나갈수록 전체적인 조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낸 정신적 구성물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을 인식이 발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 텐데, 실은 우리의 길을 실제로 지배하는 예측 불가능성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예감하고 있네. 횔덜린의 생일 이틀 뒤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그림자가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걸까? ”
『토성의 고리』 213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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