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

D-29
마이클이 말했다. 몇주 동안 새 한마리 안 보이네. 마치 만물이 어떤 식으로 파내어진 것처럼 보여(For weeks, there is not a bird to be seen. It is as if everything was somehow hollowed out). 모든 것이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인데, 잡초들만 계속 자라나. 서양메꽃은 덤불로 목을 조르고, 쐐기풀의 노란 뿌리는 땅속에서 앞으로 기어나가고, 다년초 덩굴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크고, 갈색 반점세균과 진드기가 번져가고, 끙끙대며 단어와 문장을 병렬해놓은 종이조차 진딧물이 짜낸 감로로 칠한 것처럼 느껴지네. 몇날 몇주 동안 성과도 없이 머리를 쥐어짜지만, 만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습관 때문인지, 과시욕 때문인지, 아니면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삶에 대한 경탄이나 진리에 대한 사랑, 절망, 분노 때문인지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쓰면 점점 똑똑해지는 건지 아니면 더 미쳐가는 건지도 대답할 수 없다네. 아마 도 우리 문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써나갈수록 전체적인 조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낸 정신적 구성물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을 인식이 발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 텐데, 실은 우리의 길을 실제로 지배하는 예측 불가능성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예감하고 있네. 횔덜린의 생일 이틀 뒤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그림자가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걸까?
토성의 고리 213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장~] 8장은 '나'가 미들턴을 방문한 이튿날, 싸우스월드의 한 호텔에서 코르넬리우스 더용이라는 인물을 만나서 자본과 설탕과 예술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0세기 영국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거래를 독점하던 소수의 가문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그것을 과시할 수단으로서 예술(가)을 활용했다는 얘기입니다. 일례로 덴하우의 마우리츠하위스나 런던의 테이트미술관 같은 주요 미술관은 설탕 가문의 기부금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본과 예술이 서로 공모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오늘에 와서 특별히 놀라운 사실은 아닙니다. 한편 8장은 아일랜드 내전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5장에서 말년에 로저 케이스먼트가 "아일랜드의 백인 원주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사실과 연결해서 읽을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책 전체에서 반복되는 '누에'의 이미지도 등장합니다. 이로써 '나'가 종횡무진 걸으면서 보고 듣고 탐방하는 장소들을 점으로 이으면, 흐릿하나마 어떤 구심점이 그려지기는 합니다. '나'는 뚜렷한 목적지를 가지고 걷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발 딛는 곳마다 황폐해진 풍경이 보인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나'는 텅 빈 중심부로 이뤄진 미궁을 끝없이 배회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의 역사를 다룬 좋은 기사가 있어서 공유해봅니다. 읽어보시면 8장을 더욱 풍성하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8장 시작합니다. 1. [아일랜드 역사④…굶어 죽거나 이민 떠나거나]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9 2. [아일랜드 역사⑤…민족주의 대두, 거센 독립운동]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2 3. [아일랜드 역사⑥…對英 전쟁. 내전, 그리고 독립]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5
18세기와 19세기에 다양한 형태의 노예경제를 통해 축적된 자본은 지금도 여전히 회전되면서 이자를 낳고 이자는 또 이자를 낳고, 늘어나고 몇 배로 불어나면서 자신의 동력을 얻어 계속해서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다고 더용은 말했다. 예로부터 이런 돈을 정당화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바로 예술을 후원하고, 예술작품을 구매하고 전시하며, 큰 경매시장에서 작품가격을 우스울만큼 계속해서 높이 올리는 데 있다는 것이 더용의 생각이었다.
토성의 고리 227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장] '나'는 더용과 헤어진 뒤 브레드필드에서 19세기 영국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생가터를 방문합니다. 앵글로 노르만 계통에서 유래한 피츠제럴드 가문은 육백년 이상을 아일랜드에 거주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는데 에드워드의 어머니인 메리 프랜시스 피츠제럴드는 가문의 막대한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이렇게 부유한 가문에서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같은 걸출한 문인이 배출됐다는 이야기는, 예술과 자본이 공모를 맺어온 사례의 아이러니한 번안입니다. 꼭 피츠제럴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잊을 만하면 이런 유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수전노의 집안에서 걸출한 예술가가 탄생함으로써 한 가문의 계보가 이상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오이디푸스적인 클리셰입니다. (이런 클리셰는 아무도 불쾌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키기까지 하는 듯합니다.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 이후 ‘나’는 브레드필드를 떠나 우드브리지의 한 여관에서 잠을 청하다가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를 만나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가 앉은 배경의 화원에서 언젠가 여행한 아일랜드의 슬리브블룸산의 기슭을 봅니다. 그곳은 애슈버리 부인의 별장이 위치한 곳으로서 한때 ‘나’는 애슈버리의 집에 기거하면서 그들과 교류한 적 있습니다. 애슈버리 부인은 남편이 제대한 직후인 1946년, 혼인하고 나서 아일랜드로 옮겨와 상속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애슈버리 가족은 30년대 초에 상속받은 넉넉한 유산을 바탕으로 재산을 지켰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애슈버리 부인은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는 사정이 호전될 거라는 믿음을 한번도 잃지 않았어요, 우리가 속한 사회가 몰락한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애슈버리 부인과 그 자식들은 삶과 무관한 소일거리에 매달리는데, 막내인 에드먼드는 바다로 진수할 생각도 없으면서 조선(造船)에 매달리고, 애슈버리 부인은 종이봉투에 꽃씨를 모으고 분류하는 일을 하며, 캐서린과 두 동생은 방에 모여서 배갯잇과 침대보를 꿰매면서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솔기를 뜯고 다시 봉합하는 일에 하루종일 매달립니다.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근본적으로 실제적이지 못한,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는 유형의 인간이에요. 우리 가족은 모두 실생활에 능력이 없는 몽상가들이지요. 아이들이나 저나 똑같아요.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외에도 8장에서 ‘나’는 많은 지역을 돌아다닙니며, 하나같이 터무니없이 팽창한 다음에 덧없이 수축하는 사례라고 할 만합니다. 쌘들링스에서는 과거 귀족들이 사냥 파티를 위해서 자연을 거대한 평지로 깎아낸 땅을 맞닥뜨립니다. 기업활동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은 시민계급의 남자들이 상류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자연을 거대한 저택과 대지를 구입하였고,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이 신봉하던 기업가 정신에 위배되는, “아무런 소득이 없고 오로지 파괴만을 지향하는, 그런데 누구도 탓하지 않는 사냥”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극도의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자본을 증식시킨 이들이 나중에는 극도의 비효율성과 비합리성으로 자본을 소진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자본으로써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착취해서 자기 벽에 걸어놓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런 예술 작품에 돈을 쾌척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타파하는 데는 십원 한 푼 쓸 의지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오퍼드니스 곶의 한 이름 없는 섬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지역 주민조차 그냥 ‘섬(The Island)’라고 부르는 곳으로서, 과거 국방부에서 무기를 연구하던 비밀연구소가 있던 장소이며 ‘나’가 여행할 당시인 1972년에는 민간에 개방된 상태였습니다. 이 이름 없는 ‘섬’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작은 축소판이자 그리 멀지 않은 미래처럼 보입니다. 이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4년 전 작성된 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토성의 고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가 바라본 풍경을 함께 읽어보면서 8장 마칩니다. [동아사이언스, 토성의 ‘절대 고리’가 사라진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6785
루바이야트11세기 페르시아의 시인들은 벗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즉흥적으로 ‘루바이’를 지었다. 루바이는 4행시를 뜻한다.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은 수백 편의 루바이를 남겼다.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나 영국 시인 피츠제럴드는 친구로부터 하이얌의 루바이가 적힌 필사본을 선물받는다. 그는 약 600년 전의 이 ‘쾌락주의적 불신자’ 하이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루바이들을 번안해 ‘루바이야트’라는 이름으로 출간한다. 말이 번안이지 피츠제럴드는 거의 자신
하지만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벙커 안의 원시적인 장비들과 천장 아래의 철제 궤도들과 아직 군데군데 타일이 붙은 벽에 걸린 괭이들, 쟁반 크기의 물뿌리개, 승강장과 하수구 따위들이 어디에 쓰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날 내가 오퍼드니스에서 실제로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를 모른다. 마지막으로 높은 제방을 따라 걸었던 것은 그나마 기억하는데, 차이니스 월 다리로부터 낡은 펌프하우스를 지나 선착장으로 나아갈 때 왼쪽으로는 초원지대에 검은 바라크로 된 임시수용소가 서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강 건너 육지가 보였다. 방파제에 앉아 사공을 기다릴 때, 저녁 태양이 구름을 벗어나 멀리까지 휘어진 바다의 경계를 비추었다. 주류는 강물을 거슬러올라갔고, 물은 주석판처럼 빛났으며, 갯벌 위로 높이 치솟은 라디오 안테나 탑은 거의 들릴 듯 말듯한 웅웅거리는 소리를 고르게 내뱉었다. 오퍼드의 지붕과 탑 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나무 우듬지 위로 솟아 있었다. 저기가 한때 내 집이었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더 눈을 파고드는 역광 속에서 문득, 사라진 지 오래된 방아들이 어두워져가는 풍경 속 여기저기서 무겁게 진동하며 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토성의 고리 278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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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9장은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어느 한 부분을 빼 놓고 얘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아해서 암기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번 장은 크게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9장은 성서 역사에 근거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현하는 모형제작가 알렉 개러드 그리고 19세기 프랑스 작가이자 ⟪무덤 저편으로부터의 기억⟫의 저자인 샤토브리앙을 다룹니다. 성전의 모형 제작자인 개러드는 감리교의 아마추어 설교자를 했을 정도로 신실함을 갖췄지만 자기 작업을 할 때는 '신의 의지' 같은 표현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고작 10제곱미터 크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모형을 만드는 데 수년을 바칩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9장 엽니다.
어느 미국인 설교자는 내가 성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표사이 신의 계시에 의해 주어졌느냐고 묻더군요. '내가 신의 계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더니, 그는 아주 실망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신의 계시가 있었다면 왜 내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획을 자꾸 변경해야 했겠습니까? 아니, 오직 연구와 노동만이, 무수한 시간에 걸친 노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미슈나와 여타 접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사료를 연구하고, 로마 건축을 공부하고, 헤롯이 마사다와 보로디움에 세운 건축물들의 특징도 연구해야 올바른 생각에 도달할 수 있어요. 우리의 모든 작업은 결국 생각에 기초할 뿐이고, 생각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바뀌는 법이니, 이렇게 바뀐 생각 때문에 우리가 이미 완성했다고 간주한 것들을 다시 부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고 더 철저히 세부를 파고드는 이 작업이 내게 무엇을 요구할지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아마도 성전 짓는 일을 애당초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는 인상을 주려면 주랑 천장의 1제곱센티미터짜리 격자칸 하나하나를, 수백개의 기둥과 수천개의 사각돌 하나하나를 직접 손으로 만들고 색칠해야 합니다. 이제 시야의 가장자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도대체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 지금까지 해놓은 일 전체가 가련한 졸작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 묻게 됩니다.
토성의 고리 287,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9장] '나'는 쎼인트마거릿 교회에 들릅니다. 그리고 18세기 말 샤토브리앙이 혁명을 피해서 영국으로 도망왔고, 그곳에서 아이브스라는 목사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그의 딸 샬럿 아이브스와 교류하게 된 일화를 떠올립니다. 그곳에서 샤토브리앙은 샬럿과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당시 그는 기혼자로서 자신을 차마 속일 순 없었기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그녀를 떠나게 됩니다. 후일 시간이 흘러서 샤토브리앙은 쎄인트마거릿을 회상하며 글을 남기는데, 자신이 지금처럼 정치가이자 작가이기를 포기하고 당시 샬럿과 결혼해서 살림을 차리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했더라면 어땠을까 자문합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의 회한과 아쉬움이 묻어 있습니다. 이 결핍이 글을 글이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것은 글쓰기에 뒤따르는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지만, 결과로서 남은 글과 애당초 불행 없는 삶 중에서 무엇이 더 나았으리라고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보르헤스의 한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릅니다. 나쁜 일들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글로 변하리라는 것을 보르헤스 자신은 알았다고요. 또 행복은 그 자체로 누리면 되기 때문에 무언가로 변할 필요가 없다고요.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행복하거나 불행할 테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모든 경험은 하나의 소실점을 이루며 그곳에서 동등하게 견딜만한 것이 되리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제발트의 인식은 이보다 더 멜랑콜리하긴 합니다. 삶에서 대부분의 순간들은 행복보다는 불행한 일이 더 많으므로 "하나의 불행에서 다음 불행으로 비틀거리며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형식을 띠게 될 텐데, 기억 작업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연대기의 기록자는 "자신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자기 몸에 새겨넣는" 행위를 거듭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불행 앞에서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샤토브리앙에게는 그 수단이 글쓰기였을 테고요. 어느 강연에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행복이 필요할 뿐이라고요. 이 말이 묘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드문드문 찾아올 행복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닥치는 불행을 시간의 먼 소실점 너머로 유예시키는 의연함일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이는 단순히 실패를 딛고 성장하는 성장 문법과는 다릅니다. 저는 글쓰기를 통해서 얻는 보상은 글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오늘은 조금 일반론적인 얘기를 해봤습니다. 제가 읽은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9장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굴착기가 땅에 커다란 웅덩이를 파더니, 더러 거의 건초더미만 한 나무뿌리들을 그 안에 밀어넣고 묻었다. 그리하여 말 그대로 아래위가 바뀌었다. 그 전해에는 양치류와 이끼 사이에서 눈풀꽃과 제비꽃, 아네모네가 자라나던 숲의 흙바닥이 이제는 무거운 점토층으로 뒤덮였다. 오래지 않아 완전히 끈적끈적해진 땅 위에서는 씨앗이 얼마나 오래 땅속 깊이 묻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늪풀만이 다발을 이루며 자라났다. 이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게 된 햇살은 정원의 음지식물들을 순식간에 파괴했고, 날이 갈수록 나는 스텝지대의 가장자리에 사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하루가 시작될 때면 때로 침실의 창문을 닫아야 할 만큼 무수한 새들이 요란하게 노래하던 곳, 오전이면 종달새들이 들판 위로 솟구쳐오르고 저녁 무렵이면 때로 울창한 숲에서 나이팅게일이 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던 바로 그곳에서 나는 이제 생명의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토성의 고리 313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10장~] 어느덧 마지막 장입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 '나'는 1장에서 얘기했던 토머스 브라운 경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이 책 전체가 닫힌 원환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나'는 토머스 브라운 경이 남긴 다양한 글 묶음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누에'를 언급합니다. 나아가, 중국에서 시작하여 폐쇄적으로 번성하던 양잠업이 시리아의 상인들을 거쳐서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영국을 지나, 독일에까지 흘러들어가서 국책 사업이 되었는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책 전체에서 '누에'의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나'는 '누에'를 어떤 상징물로서 보기보다는 20세기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맞닥뜨린 어떤 비극적 '종'의 사례로 본 듯합니다. 누에를 단순히 상징으로 보게되면, 20세기 유럽의 양잠업의 역사를 등한시하게 될 뿐 아니라 소위 열강들이 한 '종'을 타자화하고 도구화하는 방식으로 종내에는 자기 자신들조차 타자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면밀히 살피지 못하게 됩니다. '나'에게 누에는 그 자체가 구체적인 이야기임과 동시에 여러 논의로 뻗어나갈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게 됩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마지막 장 시작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조명의 증가와 노동의 증가, 이 두가지는 평행선을 그리며 나타난다. 우리의 시선이 도시와 근교 위에 걸린 창백한 반사광을 더이상 관통하지 못하는 지금 18세기를 떠올려보면, 산업화 이전에 이미 적어도 특정 지역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련한 몸이 나무 틀과 살로 조립해놓은, 추가 매달리고 고문장치나 가축우리를 연상시키는 베틀에 평생 꽁꽁 묶여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 기이한 공생은 아마도 비교적 원시적인 그 형태 덕분에, 우리가 오직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기계에 묶여 있어야만 지상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후에 등장한 어떤 다른 공업형태들보다 더 분명히 보여준다.
토성의 고리 330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10장] 마지막은 책 전체에 대해서 가볍게 얘기하겠습니다. (바깥이라서 지금 책이 없기도 합니다.) 책은 축적과 팽창을 위시한 진보의 역사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며 그 극점에 달하면 급속도로 반전되면서 수축한 역사의 사례집이라고 할 만합니다. 언젠가 다뤘던 『공중전과 문학』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요한묵시록의 네 기사〉에 나오는 '진보의 천사'에 관한 벤야민의 묘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파편에 파편을 쉼 없이 쌓아올리며 그 파편을 자기 발 앞에 내던지는 단 하나의 파국을 (본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산산이 부서진 것을 한데 모아 맞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폭풍이 닥치더니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불어대서,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그의 앞에는 잔해더미가 하늘까지 치솟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폭풍이다." ⏤공중전과 문학, 95쪽. 우리는 '진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자 거스를 수 없는 것이며, 인류의 진보를 멈추려거나 늦추려는 시도는 모두 무용하다는 식의 주장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진보'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나'의 역사적 시선을 경유해서 보여줌으로써 과연 진보가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인지를 재고하게 합니다.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최근 하이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진보'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무조건적으로 새롭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진보'이자 '지고의 선'으로 보는 관점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냅니다. 아무리 새롭더라도 그것이 휴머니즘의 파괴인 한 그것은 진보일 수 없으며, 설령 진보가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좋기만 한 것이라고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고 말이죠. 『토성의 고리』는 그 시절에는 당연한 것이었고 최선의 행동이었던 것들이 오늘에 와서는 몰락의 예표였음이 드러난 다양한 사례로 가득합니다. 오늘이라고 과연 다를까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최선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시간이 흘러서 되돌아보았을 때 몰락을 부추기고 앞당기는 요인들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다른 얘기처럼 읽힐 순 있겠지만, 앞서 말한 다비트 프레히트의 책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토성의 고리』 마치겠습니다. 이로써 국내에 번역된 제발트의 책은 『이민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잇달아 모임을 열지는 않고 조금 긴 기간을 두고 다음이자 마지막 모임을 열려고 합니다. 더 다양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또 저혼자 떠들게 되어서 매우 쑥스럽습니다. 뭐가 됐든 수고하셨습니다.
공중전과 문학20세기 말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제발트의 역사의식과 문학론을 살필 수 있는 저서.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했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하여 묶은 '공중전과 문학', 강연 주제의 문학적 사례인 작가 논문 '알프레트 안더쉬'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 책의 저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가장 시의성 있는 주제와 문제를 논하는 대중적 철학가이다. 프레히트가 이번에는 점점 고도화되는 〈인공 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 실존〉과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그는 인공 지능의 발전을 이끄는 것은 앎에 대한 동경도 아니고 자연법칙도 아닌, 자본주의적 계산이라고 지적한다. 즉 특정 집단이 인공 지능의 도움으로 세계와 인간 속으로 깊이 침투하려는 목적은 인간
사실 기술의 "객관적인 문화"는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인간과 자연과 자연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 좀 더 독립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지능적인 수단인 돈과 기술은 인간을 해방시키지 않는다. 그것들은 어느 순간 자기만의 삶을 얻더니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구속시킨다. 기술은 인간에게 옴짝달싹 못 하도록 마법을 건다. 인간은 더 이상 기술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기술은 그런 인간을 점점 더 높은 기술적 단계로 내몬다. 그로써 인간은 기술을 이끄는 존재가 아닌 기술에 쫓기는 존재로 전락한다. 결국 기술은 돈과 마찬가지로 우상으로 치켜세워지고, 가치 그 자체가 된다. 그전까지 인간에게 중요했던 가치의 상실에 대해서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 260쪽, 리하르트 ���비트 프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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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버터북스/책증정]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담당 편집자와 읽으며 2025년을 맞아요[책증정] 연소민 장편소설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함께 읽기[📕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
"동물"을 읽습니다 🐋🐕🦍
[현암사/책증정]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를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북클럽] 14.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읽고 실천해요[진공상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 모여주세요![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그믐북클럽Xsam]19.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읽고 답해요 [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작품 함께 읽어요.
[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1탄) 작별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
국내외 불문, 그믐에서 재미있게 읽은 SF 를 소개합니다!
(책 나눔) [핏북] 조 메노스키 작가의 공상과학판타지 소설 <해태>! 함께 읽기.[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세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하루키'라는 장르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오늘의 문장 - 은화
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7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1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3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0월 31일
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 책으로 그림 읽기!
[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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