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

D-29
바다에서 바라보는 도시, 푸른 나무들과 덤불로 에워싸인, 해변까지 이어지는 별장들, 여름의 빛, 소풍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거쳤던 바닷가, 다른 남자 한둘과 함께 바지를 걷고 앞서 걸어가는 아버지, 파라솔을 들고 혼자 걸어가는 어머니, 주름진 치마를 입은 누이들, 그리고 그 뒤에서 작은 당나귀를 끌고가는 하인들, 당나귀 등에 매달린 운반용 바구니 사이에 앉아 있던 나, 그 모든 것들 말입니다. 프레더릭 패라는 또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몇년 전 언젠가는 꿈에서 이런 장면을 보기도 했는데, 우리 가족은 마치 덴하흐 연안으로 유배된 제임스 2세의 작은 왕가 같았습니다.
토성의 고리 64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3장~] 3장에 이르러서 '나'는 로스토프트 남쪽의 황량한 해안가를 걷습니다. 그러면서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풍경과 자신이 과거에 보고 듣고 읽은 내용들을 담담히 엮어내려갑니다. 과거 한때 바다는 명백히 생명의 보고로서 다양한 수생식물과 어종이 살았지만, 이제는 어획량 자체가 줄고 있으며 이는 로스토프트 남쪽의 해안도 다르지 않습니다. 50년대 학교에 다닐 시절, '나'는 구 시각자료도서관에서 보았던 단편영화 속 한 장면을 회상합니다. 떨리는 검은 선이 어른거리던 그 영화에서는 검은 방수복을 입은 남자들이 노획한 청어를 내려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갑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방대한 숫자의 청어를 쌓는 장면은 일견 상징적인데, 자연의 불가사의한 과잉 공급을 보여주는 사례임과 동시에 인간이 자연의 한 조각을 남획하고 또 온갖 방식으로 착취하는 사례라고 할 만합니다. 하나 감상 포인트는, 제발트가 노골적으로 두 개의 사진 자료를 별다른 설명도 없이 시간차를 두고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그로써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 일부 사례에서 특수한 역사적 비극의 전조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청어잡이에 관한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3장 시작하겠습니다.
루앙의 생선시장 감독관이던 노엘 드 마리니에르도 어느날 두세시간이나 마른 땅 위에 있었음에도 꿈틀거리는 청어들을 보고, 이 물고기의 생존능력을 정확하게 살펴볼 생각으로 지느러미를 잘라내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절단한 일이 있었다. 우리의 지식욕에서 비롯된 이런 행동은 지속적으로 대재앙의 위협에 노출된 이 어종이 겪어야 했던 수난사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 백년 뒤, 매년 청어 어획량은 육백억마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동물이 죽을 때 느끼는 몸과 영혼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토성의 고리 72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3장] 인용구에 이어서 말하자면, 역사 속에서 자행된 숱한 학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스스로 행위가 악행이라고 생각하지 않게끔 하는 심리적인 우회로를 만드는 데 귀재입니다. 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너무 흔합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상대를 상종도 못할 악마로 규정한 다음에, 그런 악마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 옳다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구체적인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런 행위 기저에는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종(種)으로 보지 않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나'가 코브히스 마을의 어느 전기철조망 안에서 한 무리의 돼지들을 보고 느낀 소회에서도 드러납니다. '나'는 마을의 미친 남자에게 예수가 기적을 행한 마태복음 4장을 떠올립니다. 내용인즉, 예수가 미친 사람에게 들려 있던 귀신들을 불러내서 풀밭에 있는 돼지 무리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 이후에 이천마리가 넘는 돼지들이 비탈에서 굴러떨어져서 물속에 빠져죽었다 내용인데요, 통상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우화에서 예수가 행한 기적을 읽어내거나 오늘날 돼지가 불결함의 상징이 된 근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 우화는 우리가 우리의 병든 정신을 항상 우리보다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얼마든지 파괴해도 좋다고 여기는 종에게 거듭하여 떠넘긴다는 뜻이 아닌가?" 살펴보면 '나' 지속적으로 포착하는 역사의 비극과 참상은 더 이상 되돌아갈 곳이 없는 까마득한 절벽 속으로 투신하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비극 이전으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 철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기에는 폐허에서 희망이 태어난다는 식의 안이한 낭만주의가 없고, 위기야말로 희망이 깃드는 곳이라고 하는 한탕주의 도박 같은 아이러니도 없습니다. 어떤 비극은 비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죽음은 완전한 소멸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비정함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이런 것들에서도 의미를 뽑아올릴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지만요. 여담으로 하나 더 언급하면, 3장의 마지막은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에 수록된 ⟨틀뢴, 우르바크,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의 마지막과 완벽히 겹쳐집니다.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라는 문장이 하나 더 있다는 점과 "내 시골 별장의 고요한 여유 속에서" 부분을 제외하고는 완벽히 동일한데, 제발트 특유의 위트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보르헤스의 단편도 정말정말 흥미롭고 3장과 연결지어서 얘기할 대목이 많긴 하지만,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보고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3장 마치겠습니다.
픽션들'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권.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주요 현대 사상을 견인한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표작. 1941년 발표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1944년 발표한 '기교들'에 수록된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일생 동안 단 한 편의 장편 소설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단편 전문 작가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수를 보여 준다.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모든 언어가, 심지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영어조차도 우리 행성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계는 뜰뢴이 될 것이다.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에 개의치 않고 내 시골 별장의 고요한 여유 속에서 토머스 브라운의 ⟪유골단지⟫를 께베도풍으로 조심스럽게 번역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그러나 이 번역을 출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토성의 고리 89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4장~] 4장은 유독 이동이 많고 다루는 소재도 많습니다. 『토성의 고리』 전체가 '나'가 끊임없이 장소를 이동하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 읽은 것, 만난 사람들을 다루고 있긴합니다만 4장은 유독 더 그런 인상이긴 합니다. 4장 초반부에서 '나'는 그리니치 해양박물관에 들르는데요, 그곳에서 쏠 베이 전투를 소재로 그린 그림 몇점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림들이 사실주의적인 의도로 그려지기는 했으나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감지합니다. 비극은 극적으로 재현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극적인 효과는 실제 비극 이면에 놓여 있는 놀라울 정도로 덧없는 노력과 파괴의 전모를 드러낼 순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전체적인 파괴의 규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몇 배는 되었고, 어차피 대부분 파괴될 운명을 가진 배들을 건조하고 무장하기 위해 나무를 벌목하여 가공하고, 광석을 채굴하여 제련하고, 쇠를 단조하고, 돛을 짜고 바느질하는 등 얼마나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비유컨대 비극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비극을 몸소 눈앞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은 도널드덕과 청둥오리만큼이나 다른 일일 것입니다. 그 외에도 '나'는 지속적으로 그림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게 되며,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도 이러한 경험은 계속됩니다. '나'는 끊임없이 재현한 것과 재현된 것 사이의 불일치를 경험합니다. 재현한 것은 가변하는 현실로서 고정불변하지 않은 반면에, 재현물에는 당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어떤 극적인 효과가 부여되며 고정불변합니다. '나'가 느끼는 모종의 불일치는 이러한 차이에서 연원합니다. 따라서 '나'는 프랑스 철학자인 디드로가 스헤베닝언 해변으로 가는 산책로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보지만, 과거에 디드로가 걸었던 스헤베닝언은 오늘날과 너무 달라져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나'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을 읽어보면서 4장 시작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나의 수호성인은 다키아 혹은 덴마크 출신의 왕자였는데, 빠리에서 프랑스 여왕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식 날 밤, 그는 지극한 무상의 감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봐, 오늘은 우리 몸이 이렇게 꾸며져 있지만, 내일이면 벌레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지.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벌써 도망길에 오른 그는 남쪽 이딸리아로 순례를 떠나 거기서 은둔자의 삶을 살다가 이윽고 자신 안에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음을 느꼈다.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확실하게 굶어죽었을 영국의 왕자 위니볼드와 우니볼드를 천상의 사자가 가져다준, 재로 빚은 빵으로 구해내고, 비첸짜에서 고명한 설교를 한 뒤에 알프스를 넘어 독일로 왔다. 레겐스부르크 근처에서 그는 외투를 타고 도나우강을 건넜고, 그 도시에서 깨진 유리를 원상복구했으며, 나무가 부족해 애를 태우는 달구지 목수의 화덕에 고드름으로 불을 피웠다. 얼어 있는 생명물질을 태웠다는 이 이야기는 내게 줄곧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내면의 결빙과 황폐화란 결국 일종의 사기에 가까운 쇼를 통해 자신의 가련한 심장이 여전히 불타고 있다고 세상이 믿게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었던가 하고 나는 자주 자문하곤 했다.
토성의 고리 106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4장]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재현하는 사람의 능력과 별개로 인간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합니다. 그리고 때론 우리가 진정으로 알고자 했던 중요한 사실들은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한계 너머에서 왕왕 일어납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닌데,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노리치를 오가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문득 창밖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나는 이런 고도에서 우리 자신을 내려다보면 우리가 목적과 결말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가 끔찍하리만큼 분명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인식에 비춰서 4장의 남은 부분도 계속해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편집부가 출판했던 1차세계대전의 화보집이 전쟁의 참상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음을 떠올립니다. 기사나 사진 따위의 재현물은 그것을 무기력한 풍자로써 전달하거나 아이러니의 수법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이는 4장의 말미에 등장하는, 쿠르트 발트하임과 관련한 일화에서도 그러합니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두 번의 임기동안 UN사무총장을 지낸 인물로서 후에 오스트리아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훗날 나치에 부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사실상 정치적으로 생명을 마감했으며, 죽는 그 순간까지도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그가 UN사무총장을 지낼 시절에, 우주탐사선 보이저2호를 발사하면서 우주에 있을지 모를 외계인에게 인사말을 녹음한 자기 음성을 태워보냈다는 사실은 무척 아이러니합니다. 한번 떠나간 보이저2호를 다시 지구로 되돌릴 길은 요원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보이저2호는 잔인한 나치부역자의 음성을 인류의 평화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둔갑시킨 채 태양계 바깥지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치의 목소리가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의 목소리로 둔갑한 채 아득한 우주 너머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근원적인 재현 불가능성과 그것을 표현하는 한 형식으로서 아이러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4장 마칩니다.
코자라의 여성 주민들은 독일로 수송되어 제국전역에 퍼져 있던 강제노동소에서 대부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의용군은 조국에 남게 된 아이들 이만삼천명의 절반을 현장에서 살해했고, 나머지 절반은 크로아티아의 여러 집결소로 강제 이송했는데, 이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숫자가 가축용 화물차량이 크로아티아의 수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티푸스와 탈진, 두려움으로 숨졌다. 목숨이 붙어 있던 아이들 중 많은 아이는 배가 고픈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개인정보가 적힌 마분지 판을 씹어 먹었으니, 결국 극도의 절망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토성의 고리 120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5장~] 이번 장에서는 소설 ⟪암흑의 핵심⟫의 저자이자 조지프 콘래드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 그리고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외교관으로서 여러 식민지에서 근무했던 로저 케이스먼트를 다룹니다. 두 사람은 식민지 콩고에서 토착민들에게 벌어졌던 범죄를 목격하고 벨기에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글로써 남겼습니다. 5장 초입 부분에서 '나'가 잠결에 접한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도 나오듯,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콩고에서 탐욕으로 타락해 가는 유럽인들 중 케이스먼트만이 유일하게 올곧은 인물이었다고 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코르제니오프스키가 콩고의 경험을 소설로 썼다면 케이스먼트는 사실관계 위주의 보고서로 작성했다는 점입니다. 제게는 두 사람이 하나의 현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 맞게 소설을, 또 보고서를 택했을 테니까요. 오늘에 와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내력이 그들에게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또 그들을 서로 연결시켰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그들이 공유한 소수자성은 권력의 중심에서 먼 콩고 사람들에 대한 억압을 인식할 능력을 주었습니다. 5장에서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아버지이자 폴란드 독립운동을 벌였던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에 관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노보파스또프를 떠난 뒤 십팔개월이 지난 1865년 4월 초, 서른둘의 에벨리나 코르제니오프스카는 결핵이 그녀의 몸속에 펼쳐놓은 그늘과,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은 향수 때문에 유형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생존 의지도 거의 다 소진되고 만다. 그토록 잦은 불행에 짓눌려 지내야 했던 아들을 교육하는 데 제대로 열의를 보이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빅또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 번역원고를 들여다보며 여기저기 몇줄 손보는 게 전부다. 이 지독하게 지루한 책이 그에게는 마치 그 자신의 삶의 거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콘래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건 고향상실자, 추방당하고 실종된 개인, 운명으로부터 지워진 사람, 고독하고 기피당한 사람 들에 관한 책이야.'
토성의 고리 129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5장] 조지프 콘래드는 폴란드계 영국인으로서 폴란드 작가인 아폴로 코르제니코프스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당시 폴란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 분할 통치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아버지 아폴로와 어머니 에바는 폴란드 독립 운동가로서 후일 반복된 수감과 유배 생활 끝에 일찍이 죽음을 맞이 합니다. 이때 코르제니오프스키의 나이는 불과 열두살이었습니다. 비록 부모님을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그 영향이 적지 않았던 탓인지,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이후 자기 인생에서도 소수자로서 주류의 폭력을 감지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상업주식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콩고에서 자행되는 식민지 사업 전체가 허황된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인지합니다. 이는 제국주의적 시선의 허황됨이기도 한데, 언젠가 '나'가 브뤼셀에서 들어간 파노라마관에서 보았던 풍경이 제시되는 방식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조명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전쟁화를 바라보는 관람객은 그것이 역사를 재현하는 기술로 여기지만, 기실 그것은 시선의 위조에 바탕하고 있을 뿐이며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는 모든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면서도 실제로 현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는 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언젠가 유발 하라리 역시 ⟪사피엔스⟫에서 비슷한 대서양 노예무역 사례를 얘기하며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종적 증오에서 비롯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의 경영자는 외려 아프리카인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주식회사의 복잡다단한 체계에 따르면 그들은 아프리카인에 대해서 애당초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아프리카로부터 무척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만 그들을 장부 속 기입된 손익계산상의 숫자로만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따라서 피와 뼈와 살을 가진 한 인간을 보기보다, 마치 그림 속 재현된 전쟁화를 보듯, 그들을 하나의 기호로 파악하는 체계적인 '시선'을 따랐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책에서 이렇게 씁니다. "많은 농장주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 영국 동인도회사는 벵골인 1천만 명의 삶보다 자기 이익에 더 신경을 썼다.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벌인 군사작전에 돈을 댄 것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자선사업에 돈을 내고, 좋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네덜란드의 정직한 시민들이었다." ⏤사피엔스, 469쪽. 여기서 콘라트 코르제니오프스키를 조지프 콘라드로 이끈, 소설의 특수한 면모가 조명됩니다. 어떤 사람을 기호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디테일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케이스먼트가 식민지 콩고의 참상을 기술한 보고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소설을 뽑아올리고, 또 어떤 사람은 문제적 현실을 가감없이 담아낸 보고서를 쓸까요? 조지프 콘래드와 로저 케이스먼트로 나뉘는 분기점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이런 질문이 던져지는 지점에서 제발트가 내세우는 화자로서 '나'의 독특한 위치가 드러납니다. 5장에 제발트 추정되는 '나'는 코르제니오프스키와 케이스먼트를 양쪽에 거드린 채 두 사람 사이에 나 있는 협소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읽힙니다. 생각해보면 소수자는 소수자된 자기 위치를 끊임없이 인지하고 의문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자신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소수자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이런 소수자성 자체가 선(善)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소수자성에서 장차 선해질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점을 5장을 통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롤랑바르트도 말했듯이 주변부는 주변부의 오만함이 있으므로 우리는 소수자성을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짓기보다는 소수자성이 오만해 지지 않는 선에서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5장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2011년 원서 출간 이후 10년을 돌아보고 위기 상황을 맞은 인류에게 건네는 제언이 특별 서문으로 수록되었다. 현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키워드로 ‘인간 이해’를 강조한다.
암흑의 핵심문명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을 그린 폴란드 출신 작가의 장편『암흑의 핵심』. 헨리 제임스와 더불어 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한 콘래드의 대표작으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 소설의 화자 말로는 유럽인들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부른 아프리카로의 항해를 통해, 탐험을 동경해
살아남은 자들인 우리는 모든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동시에 보면서도 실제로 현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우리를 에워싸고 펼쳐진 것은 병사 오만명과 말 일만필이 몇시간 안에 목숨을 잃은 황량한 벌판인 것이다. 전투가 끝난 밤, 여기서는 온갖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와 신음 소리가 뒤섞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갈색의 흙뿐이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 많은 시체와 뼈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것들은 원뿔형 기념물 아래에 묻혀 있는가? 우리는 시신의 산 위에 서 있는 것인가? 결국 이것이 우리의 관점인가? 이런 지점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역사적 조망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가? 내가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브라이턴 해변 근처에 자그마한 숲이 두곳 있는데, 이곳은 워털루 전투 뒤에 이 의미심장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나뽈레옹의 삼각모자 형태로 만들어졌고, 다른 숲은 웰링턴 사령관의 장화 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땅 위에서는 이 모양을 인식할 수 없다.
토성의 고리 150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6장~] 6장에서 '나'는 싸우스월드와 월버스윅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버려진 철조 다리를 보면서 그와 관련한 비극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6장은 인물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청나라 말기에 황제를 대신해 섭정을 했던 서태후를, 후반부는 시인 앨저넌 스윈번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이 두 사람은 '나'에 의해서 연결돼 있음이 드러납니다. 블라이드강 위를 가로지르는 철조 다리는 1875년 헤일스워스와 싸우스월드를 오가는 협궤철도용으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나'의 추측에 따르면 중국 황제에게 용이 그려진 작은 궁정 기차를 납품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이 황제는 청나라의 11대 황제 광서제로서, 사실상 서태후에 의해 정권을 장악당했으며 평생 그녀의 전횡에 시달리다가 말년에는 방치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청나라 말기의 중국 대륙은 서태후의 전횡에서도 보듯 엉망진창이었음이 본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황제가 더 이상 황제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청일전쟁과 청불전쟁을 거쳤던 데다가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려는 서구 열강의 등쌀에 떠밀려서 국운은 나날이 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싸우스월드와 월버스윅 사이의 버려진 철조 다리와 납품이 예정돼 있었다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황제의 기차는, 점진적으로 쇠해가던 청나라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오브제처럼 보입니다. 버려진 철조 다리는 서태후가 광서제를 어르고 달랠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점을 미루어보건대 한 비극적인 시기의 마침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6장 시작합니다.
1861년 8월, 몇달 동안 결정을 미루던 끝에 함풍제는 도피처 허러에서 방탕으로 파괴된 짧은 생애를 마감하려는 중이었다. 물이 아랫배에서 가슴까지 올라왔고,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몸의 세포들은 혈관에서 빠져나와 조직 사이의 모든 틈에 고인 염수 속에서 바닷물고기들처럼 떠다녔다. 의식이 깜빡깜빡하는 함풍제는 외병들이 자기 제국의 지방으로 침략해오는 것을 사지가 죽어가고 몸의 기관이 독극물로 범람하는 과정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렇듯 그 자신이 중국의 몰락이 진행되는 싸움터였으며, 결국 그달 22일 밤의 그림자가 그를 덮자 그는 죽음의 혼미 속으로 완전히 침잠했다.
토성의 고리 174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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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6장 전반에서는 쇠퇴를 예비하는 극도의 팽창이 돋보입니다. 어찌보면 이 책 전체가 곧 쪼그라들 일만 남은 팽창의 사례집이라고 할 만합니다. 서태후는 살아생전에 황제보다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렸고 화려한 보석과 금붙이로 자신을 치장했지만, 그 화려함은 곧 들이닥칠 비극의 전조임이 드러납니다. 죽기 직전에 서태후가 남긴 말을 듣고 있으면 그녀도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공허한 결말을 맞게될지 아주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씁니다. "되돌아보면 역사란 해변으로 거듭 몰려오는 파도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운과 시험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 가운데 어느 한 순간도 진정으로 근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나'가 발을 내딛고 눈길을 주는 장소에는 모두 예외없이 이러한 말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편, 후반부에서는 빅토리아시대에 더니치 지역에서 살았던 시인 앨저넌 스윈번을 다룹니다. '나'에 따르면 스윈번의 생애는 서태후의 생몰년도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스윈번은 머리가 엄청나게 거대했던 데다가 키는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어딜 가든 "경악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윈번은 서태후와 생몰년도는 겹칠지 모르겠지만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많이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변두리 주택에서 머물면서 일체의 자극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계속 살아갔고, 하루 일과는 무료하다 싶을 정도로 규칙적이었습니다. 일례로 주변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성실하게 뽕잎을 먹고 스스로 귀한 실을 자아내는 누에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누에는 서태후가 가장 좋아라 했던 것으로, 섭정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늘 주변인들을 의심해야 했고 누구도 터놓고 믿지 못했던 그녀에게 성실히 실을 잣고 또 그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누에처럼 안심되는 존재도 없었으리라 우리는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앨저넌 스윈번에 대한 묘사를 인용하면서 6장 마치겠습니다.
'스윈번은 늘 아침에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책을 읽습니다. 게다가 식사시간에는 마치 애벌레처럼 먹어대고 밤에는 겨울잠쥐처럼 잠에 빠지지요.' (···) 세기 전환기에 퍼트니힐을 방문했던 손님 중의 한 사람은 그 두 늙은 남자가 마치 레이던산(産) 병에 든 두마리의 기이한 벌레들처럼 보였다고 적었다. 그 사람은 스윈번을 볼 때마다 잿빛 누에나방(Bombyx mori)을 떠올렸는데, 스윈번이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을 한조각 한조각 먹어치우는 모습도 그러했거니와, 점심식사 뒤 그를 덮친 몽롱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전기가 번쩍 지나간 듯 새롭고 활기찬 상태로 깨어나더니 내쫓긴 나방처럼 손을 떨면서 서재를 재빨리 왔다갔다하다가 계단과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런저런 귀한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는 모습 또한 나방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토성의 고리 195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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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글을 썼는데 왜인지 모르게 글이 날아가버려서 생각나는대로 다시 써 봅니다:) 7장에서 '나'는 더니치의 들판을 걷고 있습니다. 더니치 들판은 수천년에 걸쳐서 삼림이 감소되고 파괴되면서 생겨난 지역입니다. '나'는 언젠가 숲이 조용히 타오르던 광경을 목격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더니치의 들판과도 같은 재의 땅이 영국 전역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임을 예상하며 이렇게 씁니다. "고등 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어찌보면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이며, 따라서 생래적으로 인간 종인 우리는 불이 공기를 삼키듯 우리 주변을 재로 만들면서 우리를 확장해왔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꽤 우울한 감상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에 잠겨서 '나'는 어느새 프란체스꼬 수도원의 폐허를 지나는데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치된 잡목림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어쩐 일인지 미로 속을 헤매듯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기진맥진하며 겨우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경험의 여파는 이후에 마이클 햄버거를 만나고도 지속되는데요, 몇달 후에는 그와 비슷하게 더니치의 풀밭 위에서 끝없이 뒤얽힌 길을 걷는 꿈까지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나'가 맞닥뜨린 미로를 서술한 부분을 함께 읽으면서 계속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어스름이 몰려올 무렵, 지독히 피곤하여 거의 쓰러질 지경이던 나는 어떤 좀 높은 장소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는 써머레이턴의 주목(朱木) 미로 한가운데처럼 작은 중국식 정자가 있었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밝은색의 모랫바닥, 어른 키보다 크고, 이미 거의 밤의 암흑 속에 빠져들어가는 덤불의 날카롭게 재단된 선들, 내가 방황했던 길에 비하면 단순한 무늬로 이루어진 미로 자체를 보게되었다. 꿈속에서 나는 이 무늬가 내 두뇌의 단면을 그리고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미로 저편으로는 들판의 연기 위로 그림자가 뻗어 있었고, 이어서 별들이 차례차례 대기의 심연에서 솟아올랐다. 밤이, 모든 인간적인 것과는 다른 이방인인 놀라운 밤이 산꼭대기 위로 애절하고 어슴푸레하게 지나간다. 나는 마치 지구의 꼭대기에, 겨울밤이 영원히 멈추어서서 반짝거리는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판은 한기에 얼어붙어 있고, 모래땅의 우묵한 곳에서는 투명한 얼음으로 만든 살무사, 독사, 도마뱀 들이 졸고 있는 듯했다.
토성의 고리 202쪽,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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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내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나오는, 하이펭의 대칭형 정원이 연상되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인 유춘은 독일군의 스파이로서 자신을 추적하는 처단자를 피해서 베를린에 영국 포병대의 정확한 기밀을 전하고자 하며, 이에 따라 '이미 존재하는 미래'를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릅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인 유춘은 이런 말을 간직합니다. "무시무시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그것을 완수했다고 상상해야만 하고, 과거처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자기 자신에게 강요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일컬어지는 선형적인 명칭이지만 그것은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라는 데칼코마니의 접힘면이며, 미래는 과거만큼 고정불변할 수도 있고 과거는 미래만큼 유동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람은 당대를 벗어나서 연결될 수 있고, 역사에서 우연은 필연과 동등해집니다. 그리고 7장에서 '나'가 만나게 되는 마이클 햄버거라는 인물도 앞서 언급한 유춘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마이클 햄버거를 포함해서 7장에서 소개되는 인물들은 '우연한 계기'로 타인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처한 당대를 넘어서 과거의 인물과 자신을 포갭니다. 대표적으로 마이클 햄버거는 자신을 둘러싼 온갖 사물이 시인 횔덜린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 횔덜린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 '나'는 그런 마이클 햄버거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궁극적으로 마주한 마이클의 집에서 '나' 자신의 것인 듯한 집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나'와 마이클 햄버거의 삶의 궤적인 만나는 교차점에서 스탠리 캐리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렇듯 우연에 우연이 겹쳐지는 식으로 인물과 인물들은 사적인 연결고리로 얽혀있는데, 종내에는 그 전체를 "벨기에식 저택의 전망탑"에서 조망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언젠가 '나'가 경험했던 잡목림의 미로 형태를 띨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서만 목격이 가능할 것입니다. 7장은 저에게도 흥미진진하면서도 한번 들어가면 기진맥진하는 미로입니다. 더 얘기해볼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7장 마무리하겠습니다.
픽션들'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권.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주요 현대 사상을 견인한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표작. 1941년 발표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과 1944년 발표한 '기교들'에 수록된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일생 동안 단 한 편의 장편 소설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단편 전문 작가 보르헤스의 문학적 정수를 보여 준다.
픽션들<픽션들>은 2백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상상은 심심풀이 환상이 아니라 삶과 세상의 미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상상이다. <픽션들>은 20세기 문학에서 돋보이는 큰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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