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우리가 죽기 전까지 차별은 안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동질성을 선호하는 것은 본능이고, 시장주의 자체가 차별을 긍정하는 개념인걸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게 '나'라는 개념으로 잡히잖아요. 우연적으로 어떻게 타고나든, 태생부터 출발선이 다른데 그걸 일부 보정할지언정 전면 부정하긴 힘들어요. 보정 정도를 합의해 나갈 뿐이겠지요.
차별이 없어지는 것보다 나보다 열등한 것을 동정할 수 있는 도덕성이 보편화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sns를 통해 도덕성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힐링북클럽] 선량한 차별주의자
D-29
어머
Andiamo
@담영 @느려터진달팽이 지난주 유.인.아.에서 김경연 선생님께서 <책먹는 여우> 번역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문학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여우는 "~자빠졌어요"로 번역한 걸 편집부에서 고쳐달라 해서 결국 "뒤로 넘어졌어요"로 출간되었다고 아직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하셨어요. 누군가에게 올바르기 위해 창작자의 의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재단되고 수정되는 것은 괜찮을까요? 특히 문학이란 장르에서?
어린 아이는 접하는 책의 표현에 쉽게 영향을 받으므로 표현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차별적 언어를 지양하는 정도를 넘어서 '좋지 않게 들린다?'는 표현도 다 바꿔버리는 행태는 지나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찬가지로 성인들 사이에도 장님, 봉사 대신 '시각장애인' 선택 장애 대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로 표현을 바꾸는 데만 온 힘을 기울이면 결국은 못할 말(금지어) 투성이라 입을 다물게 되지 않을까요? 작가들이 현재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그려내는 대목에서도 pc한 표현으로 수정하는 데 방점이 찍히면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현실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차별적 표현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은 좋으나 누군가 차별적 표현이라 규정하면 그와 동시에 그 말은 금지되고 그 말을 쓰는 사람은 맹공격을 받는 현 세태에는 의문이 듭니다.
언어교육에서도 학습자가 오류를 저질렀을 때 이 표현은 틀렸어 직접 수정하는 방식보다는 그 학습자가 한 말을 아, 그래서 너는 ~하다고 말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바른 표현으로 바꾸어 전달하는 간접수정방식을 지향합니다.
차별을 지양하기 위해 온갖 금지어를 만드는 것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대신 지향하는 표현(그 또한 다양했으면 합니다)을 많이 써서 그 말이 자연스레 일반 표현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언어 생활에서 차별 표현을 조심하는 한편 실제 사회에서 차별을 줄이기 위한 제도나 방안의 합리성과 적절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책 먹는 여우책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급기야는 책을 먹게 된 여우 이야기!『책 먹는 여우』는 책에 빠진 독자의 모습을 과장되었지만 일리있게 표현하고 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을 너무나 좋아했다. 급기야는 책을 다 읽은 다음 소금 한 줌, 후추 조금을 뿌려 꿀꺽 먹었다. 하지만 책값이 워낙 비싼 탓에 마음껏 책을 읽고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여우 아저씨는 도서관을 털기로 결심하는데…….
THE FOX WHO ATE BOOKS(책먹는 여우 영문판)『THE FOX WHO ATE BOOKS』는 한국에서 40만 부, 100쇄 이상 팔린 아동서적 베스트셀러『책 먹는 여우』의 영어판 입니다. 책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급기야는 책을 먹는 여우의 이야기를 재치 있고 유쾌하게 풀어내었습니다. 영어로는 처음 출간되는 책으로, 원어민 수준의 철저한 번역과 저자의 확인을 받은 유일한 영어본입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을 너무 좋아해 책을 다 읽은 다음 소금 한 줌, 후추 조금을 뿌려 꿀꺽 먹었어요. 하지만 책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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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터진달팽이
네 그렇게 고치는 표현은 좀 매가리가 없어진달까요?;; 일상에선 쓰면서 극구 글에서만 쌍심지를 켜고 그러지 말아라! 하는 것만 같달까요 ㅠ 물론 그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닌데, 앞서 언급했듯 원저작의 빛을 받아야만 저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수정된 저작물들이 의미를 가질 것 같네요. 여유가 여기도 없어보인다고나 할까요~ 문학이 아닌 사회과학적 글들에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이 저렇게나 많이 팔리다니! 육아와 무관한 사람이라 과문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 저자특강에 다녀와서 후기를 썼었는데 공유해볼게요. 트레바리 논픽션 클럽에서 이 책을 하쟈고~~ 하셨는데, 저는 이미 출간 시에 직강 들었다고~~ 하면서 그 회차는 빠진 적이 있었는데요^^; 몇 년 또 지났다고 자발적으로 들어와 참여하고 있군요 ㅎㅎ
https://m.blog.naver.com/widerhorizon/221707954767
Andiamo
@어머 " 차별이 없어지는 것보다 나보다 열등한 것을 동정할 수 있는 도덕성이 보편화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sns를 통해 도덕성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이 또한 차별 표현을 지양하는 관점에서 보면 불편하게 느끼고 표현에 수정을 요청드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
@Andiamo 네, 애초에 차별 없애기 이상을 추구하시는 andiamo님과 차별이 없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현실을 살고자 하는 저의 관점 차이니, 우리는 결코 합치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함께 가야겠지요, 티각태각하면서. 이상만 보는 건 공허하고, 현실만 보는 것은 개선 불가능한 상태를 정당화할 뿐일 테니까요.
담영
andiamo님이 이상을 추구하시는 것같진 않은데... 오히려 차별을 없애는 표현을 쓰라고 작가에게 강요하다가 작가들이 입막음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경우 차별 없는 표현으로 뜯어고치는 바람에, 오히려 작가가 풍자하고자 한 대상의 어그러진 모습이 덜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고 해요. 어휘가 세상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어휘를 제약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야를 그만큼 제약하게 되는 건 아닌지...싶습니다.
책 먹는 여우 작가님의 화도 그런 맥락인 듯해요. 자빠지다가 주는 어감이 있는데 뒤로 넘어지다는 너무..건조해지지 않았나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습니다.
여튼, @느려터진달팽이 님 비유에 동의합니다. 피아노를 좋아해서 꾸준히 연습하는데, 힘든 부분을 열심히 연습하고 나면 다른 부분까지 연주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차별이 하나씩 개선될수록 전체 사회가 아름다워지겠죠ㅎ @어머 님도 차별의 보정에 동의하시는 것 같고요. 차별 자체야 뭐... 우열 나누기가 인간의 본능이라 없어지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느려터진달팽이
비유에 동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꾸 틀리는 부분을 오늘도 쳐보았습니다 ㅎㅎ 그리고 우열 나누기가 본능이라는 점은 애들 가르칠 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거의 그게 그건데도 불구하고 진도가 조금 빠르면 나는 지금 체르니 치고 있어! 나는 지금 스텝 c야 등 고만고만한 사이에서 우위임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인도 몇 평 사네 자가네~ 그런 시시한 우위를 확인하는 모습에서 만물의 영장 ㅋ 인간이 고작 그런 소유로 평가받아야 하는가!에서 자괴감을 느끼는 건 모두가 다 그런 본능을 소유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구요~ 가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유투브를 통해 듣는데 저런 분들은 세상이 정하는 기준으로는 전혀! 재단되지 않는 beyond measure랄까요? 그런 분들이 아닐까 하며 혼자 감동을 엄청 먹고 있는 1인 드림☆
진공상태5
@어머 님,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좋아하세요? 저는 아직 들어만 본 유명한 책 느낌이라서요.
어머
@진공상태5 지기 님의 초대로 가입하고 주제에 관해 생각을 흘려 놓았지만, 아직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진공상태5
아, 모임지기님 초대로 오신분이군요!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흥미진진합니다 ^^
Andiamo
@느려터진달팽이 <책 먹는 여우>는 사실 육아와 연계라기보다 제 덕질의 연장선이랍니다. 제가 도서관 덕후라서 아이도 도서관에서 키웠던 거고 그러다보니 채인선 작가가 쓴 <도서관 아이>의 모델이 된 '순천 기적의 도서관'과 같이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친화적 도서관을 꿈꾸었지요. 제 도서관에 놀이매트, 소파, 텐트도 있는 건 도서관이 아지트처럼 편하고 자유로운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것이었구요.
책, 사람(작가), 공간(서점,도서관)이 너무 좋아서 도서관이나 책이 들어가는 제목이거나 그것들이 주제인 책들을 한동안 사다 모았던 터라 그런 맥락에서 서지명에 책이 있어 집어들게 된 책이랍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책 먹는 여우의 작가님이 방한하셨을 때 남긴 싸인이 어린이 열람실 메인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덕후의 TMI.
각설하고, 선생님의 강연 후기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16년부터 20년까지 5년을 겪어내고나서야 내린 결론을 선생님께선 빨리 내리셨네요. 사실 저도 여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남의 공간에서(서울시 소유의 영어마을), 남의 돈으로(공모사업-정부나 기관의 돈) 유지했기에 가능했겠지만요.
저도 19년 처음 사립작은도서관을 만들고 월급 없는 관장하며 각종 공모사업으로 "다국어로 다문화를 즐기는 (다.다.락.)" 사회를 도서관에서 만들어보겠다며 열정을 불살랐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와 비슷한 배경이라 혼자 흠모해오다 도서관 열고 작가 강연으로 <후아유>의 작가 이향규 작가님께서 그러셨어요.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이젠 안 한다고. 내가 오만했다고. 나 한 명도 못 바꾸는데. 대의명분에 가슴이 뜨거웠던 저는 당시에는 그 말씀이 잘 안 들렸어요. 다 안다는 듯 작가님은 덧붙이셨죠. 내가 이야기해도 안 들릴 거라고.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다고. 젊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젊으니까 그럴 수 있는 거고. 조금은 쓸쓸하게 웃으시며 하셨던 그 말씀이 5년이 지난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지요.
장기화된 코로나로 영어마을이 폐관되면서 건물을 임대하기엔 너무 부담이 되어 도서관을 집으로 이관하고 남은 사업을 집도서관에서 꾸역꾸역 마무리하다가 가족과도 마찰이 심해지면서 그제야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경시했던 돈도 필요하구나. 내가 페이 없는 관장을 하니 도서관 일 같이 하는 선생님들도 무급 자원봉사일 수밖에 없었고, 제가 for the better world를 외치며 도서관에 제 돈과 시간을 쏟아부으면 그만큼 우리 가족들이 힘들어지는구나.
아무리 좋은 취지여도 "함께 가자. 나와 함께 가시밭길을..."를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도요. 그 당연한 사실을 5년이나 지나 아프게 깨닫고, 집 도서관은 휴관하고 학교 학원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2년간 테트리스 수준으로 새벽부터 저녁, 주말까지일하며 번 돈으로 공간을 임대하여 다시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이제 크고 원대한 목표 대신 제 영역에서 지치지 않고 가늘고 길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당분간은 오전에 고등학교 국어강사, 오후에는 도서관 관장으로, 가끔 필라테스 강사도 하구요. 임대료는 강사일로 충당하고, 도서관에서는 돈과 무관하게 제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해보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이 곧 돈으로 연결되면 너무나 이상적이겠으나 그건 지금 당장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돈과 꿈, 그 중간쯤을 오가고 있답니다. 결이 비슷한 선생님을 뵈어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 나눠 주셔서 감사하구요.
<그믐>에서 선생님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책으로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교류하고 내 생각의 폭이 조금은 확장되는 이런 플랫폼도 대표님이 이상과 돈을 동시에 좇았다면 불가능했겠지요. 대표님과 통화하면서 15년 동안 번 돈을 그믐에 쏟아부었다는 말씀에,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는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5년간 공모사업에 제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나서 번아웃이 심하게 왔고 이제 제 돈으로, 제 공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면서 할 수 있을 크기로만 하려고 해요. 그 여정에서 <그믐>을 만나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도서관 아이(양장본 HardCover)그림책 작가 채인선이 쓰고 배현주가 그린 『도서관 아이』.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자란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행복한 변화와 잔잔한 감동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도서관 자원봉사자인 엄마를 따라 아기 때부터 도서관에서 날마다 지내게 된 도서관 아이 '솔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도서관은 언제나 우리를 열린 마음을 맞이하는 신비한 세계이자 상상의 세계일 뿐 아니라, 추리와 모험으로 가득한 긴장감 넘치는 세계임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후아유“이름 붙이고, 경계 짓고, 회피하는 다수로부터 나는 자유로운가?” 우리 안에 감춰진 시선에 관한 고백 『후아유』(이향규 지음)는 자신이 다수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삶이든 특별하지만 이향규의 삶은 더욱 그렇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영국 사람과 결혼하면서 영 국에서 몇 년을 보냈던 결혼 이주 여성. 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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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터진달팽이
오늘 마침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거기에서도 집에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가 그런 꿈은 감히 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질타를 당하는 모습이 등장하더라구요. 도서관 덕후로 도서관을 만드신 분과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소통을 하다니, 한 때 나마 도서관 알바생이었고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온 1인으로서 반갑네요 ㅎㅎ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저도 젊었을 땐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공부도 밥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무척 열심히 했었고 논문도 많이 읽고 했었지만 이제와 보면 그게 다 부질없다~ ㅠ 내꺼나 잘 챙길 것을ㆍㆍ아쥬 뒤늦게 후회를 해본들 세월이 벌써 이만치나! 흘렀구나~ 하는 것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본 어느 사십대의 소회랄까요.
그나저나 국어강사에 도서관 관장님에 필라테스강사까지! 사기캐릭터시군요 ㅎㅎ 열심히 버신 돈으로 좋은 취지의 도서관을 운영하시니 사회적 기업 지원금은 이런데 쓰라고 있는 것 같은데 지원기준이 요즈음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초창기엔 굉장히 여기저기 다 지원해주었던 것 같은데 좋은데 안 쓰이고 대체 어디에들 쓰이는건지;
그믐도 무려 15년이나 버신 돈을 투자하신 것이로군요! 모두 대단하시네요~ 저는 북한에 학교짓기 같은 허황된 꿈을 갖고 있지만 두 분 처럼 당최 실현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응원하겠습니다!
느려터진달팽이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양장본 HardCover)《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를 쓴 저자 조진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다뤘다. 아마 대다수는 기억도 잘 못할 네다섯 살 때부터 평생 해야 할 일이 정해져버린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던 자신의 업과 생활을 소화해내기 위해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 조진주는, 자신의 첫 에세이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에 갖는 양가적인 감정과 박수갈채와 조명이 가득한 무대 뒤 개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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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iamo
@느려터진달팽이 응원 감사합니다. 사기캐가 아니라 역량이 부족해서 파트 타임 관장을 하고 있습니다. 좀더 단단해지고 커지면 책 쓰는 전업 관장이 꿈입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책 찾아서 읽어볼게요. 선생님께서도 기회되시면 이향규 작가님의 <후아유>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에 북한 쪽 연구 오래하시고 이주청소년들 교육과정 개발도 주관하셨던 작가님은 영국남자와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지금은 영국에서 한겨레학교 교장으로 계셔요. 가톨릭신문에 매달 연재도 하고 계시니 한번 보셔요. https://naver.me/xfRMZWm1
+잠시 딴 이야기.
생각해보니 <후아유>도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다 창비군요.
첫째랑 했던 어린이편집자 활동도 <미디어 창비>였네요. 작가 초청 강연 문의하고 어린이편집자 활동하며 창비 편집자분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참 좋았거든요. 창비 북카페 공간도 너무 좋았고. 내가 책을 쓰면 그 중 한권은 <창비>에서 내면 좋겠다는 소망을 그때부터 가지게 되었네요. 최애 작가를 발굴한 최애 출판사. "어린이가 보는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직접 편집해 보자!" 참신한 기획을 하는 멋진 출판사. = 창비.
작가 덕질에, 도서관 덕질에, 혼자 출판사 덕질도 합니다, ㅋ
이향규 작가님도 거창하게가 아니라 토요일마다 장소 빌려 학교 운영하시는, 작지만 멋진 학교의 교장쌤이시랍니다. 저도 크게 말고 소박하게, 내 그릇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요. 작가님은 후아유에서 자신에게 묻고 또 물은 끝에 그렇게 살고 계시고, 작가님을 흠모하는 저도 그냥 작게,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고, 선생님께서도 선생님 영역에서 대단하지 않게! 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사회적 기업 지원금.. ㅋㅋㅋ 공모사업을 5년간 하고 나서 깨우친 것은 공모 사업이란 건 결국 남의 돈으로, 남의 이름을 빛내주기 위해, 남의 일을 내가 손발이 되어 대신 해주는 거구나.. 공모 사업으로는 제가 추구하는 것을 제 속도대로 할 수 없고, 사업 기한 내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키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저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복지사업의 민낯을 봐버려서 사실 전 기부나 지원에 기대는 것은 회의적입니다.
느려터진달팽이
무려 런던에서 한겨레학교 교장샘이라니! 엄청나신 분들이 곳곳에 포진해 계시는군요^^ 저는 남산에 있는 여명학교 정도에서 봉사한 적은 있었는데요; 거기 교장샘 생신이 스승의 날이어서 후원자 월례 기도회 가서 막 사회의 스승이 되어달라고 얼토당토 않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
아는 동생이 마침 미디어 창비에 다녔었는데 덕분에 창비 책으로 스트레이트 플래쉬할 수 있게 ㅎㅎ 책 5권을 받은 적이 예전에 있었어요~ 아이의 어린이 편집자 활동이라니! 무려 작가×도서관×출판사 3덕질까지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시군요 Respect☆
그리고 역시 5년이나 하셨군요:) 복지사업의 민낯이라니 예산집행의 효율성 제고나 발전을 위해서라도 피드백을 통해서 이렇게 원래 목적에 맞게 지원이 되어야할텐데~라는 이제는 저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ㅋㅋ 고민을 해봤습니다. 진솔한 나눔에 감사드립니다. 후아유는 영화와 예전에 드라마 시리즈 밖에는 모르는 과문한 사람이지만 한 번 챙겨볼게용
어머
욕설을 '부모님 안 계시는'이나 '엄마 없는'으로 순화해서 쓰곤 하던데, 차라리 '개새끼'나 '니미 씨발'이 덜 차별적인 용어가 될까요? 의미는 유사하거나 더 과격하나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에 대한 차별이 언표되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욕설을 쓰는 걸 지양해야겠지만, 이왕 욕설을 쓴다면 어떤 걸 쓰는 게 올바름......은 아니고 덜 해로울까요?
Andiamo
@어머 욕설을 저런 식으로 풀어쓰는 건 어디서 알게 된 정보일까요? 저는 금시초문이라 정보의 출처를 알고나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머
@Andiamo 게임 상에서 유통되고 있어요. 금칙어가 있다 보니 "엄마 없음?" 이러는 거지요. 10대 남학생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명예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도 해요. '엄마 없음'으로 구글링하시면 담화 상황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문득 생각난 건데, 차별을 놓고 보니 뭐가 옳고 그른지 애매해지더군요. "개새끼나 니미 씨발은 그저 '욕'의 기표로 기능하는데 기의는 유효한가?" 이 욕을 쓸 때 가짜 새끼, 엄마와 붙어 먹는 놈의 의미를 담진 않잖아요. '존나'도 마찬가지고요. 욕이라는 게 분노만 남지 의미가 없는, 참 공허한 말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주제를 이탈해서 죄송합니다.)
Andiamo
@어머
남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그런 상황을 자주 접할 수도 있군요. 주제를 이탈했다기보다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우리 안의 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이 참 모호합니다. "당사자"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차별적 표현"이 되니 그런 맥락이라면 비속어인 욕도 차별적 표현의 일부로 포함될 수 있겠지요. 애꾸나 장님이 욕은 아니지만 인권감수성에 입각하여 보면 당사자들에게는 거의 비속어인 욕과 비슷하게 들려진다는 거니까요.
기표, 기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39174&cid=47319&categoryId=47319
시니피앙, 시니피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94605&cid=42642&categoryId=42642
기표, 기의 하니 갑자기 언어학책도 이 다음 순서로 같이 읽고 싶어지네요. 고등학교 때 비문학 지문으로 시니피앙, 시니피에 배우면서 멋있어보이는 용어를 이해하는 내가 은근 자랑스러워? 그 용어 한 두개를 습득하고 좀 똑똑해진 양 지적 허영심에 들떴던 시절도 떠오르고요.
그래서일까요? 대학교 들어가고 첫해에 알바로 학교 근처 입시학원에서 초등 영어를 가르치면서 제가 아이들에게 욕의 의미를 설명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대구 북구 대현동, 지금은 재개발이 많이 이루어져 이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 때는 대구에서 못 살던 동네의 대표, 서울 관악구로 이사와서 대구 북구랑 비슷하네. 이런 느낌의 동네였습니다. 근무했던 학원도 감나무골공부방(야학)을 운영하시던 운동권 출신의 천주교 신자인 원장님과 같이 일했던 공부방 선생님들이 만든 '대안학원?'이라 결손 가정,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원생의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업을 하는데 4학년인가 5학년 남학생이 "니기미씨부럴"이라는 말을 내뱉길래 화들짝 놀라서 거의 20분을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일러주었지요. 더불어 "씨팔"과 "존나"의 어원에 대해서도요.
너희들이 생각없이 내뱉는 그 말에는 이런 낯뜨거운 의미가 있단다. 이런 의미를 알고도 계속 쓸 수 있겠니?가 제 의도였지요. 대학교 1학년, 거의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으로서" 내가 맡은 아이들의 바른 언어생활을 선도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욕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했는데 @어머 님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분노만 남지 의미가 없는 참 공허한 말"을 생각해보면 그 때 제 행동도 참 공허한 짓이었습니다.
잠깐,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볼게요. 아이들과 구민센터 셔틀을 타고 오는데 센터 다 와서 주차금지 구역에 택시 한 대가 떡 하니 서 있었습니다. 3-40인승쯤 되는 덩치 큰 셔틀버스가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기사님이 운전을 잘 하셔서 무사히 부딪히지 않고 지나왔으나 예상하시듯 기사님의 입에서는 욕설이 나왔습니다. "아이, 씨발 무슨 차를 저 따위로 대놔가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연달아 욕을 하시려고 할 때, 앞자리에 앉았던 저는 조금 과하게 밝은 말투로 끼어들었습니다. "우와, 기사님 운전 진짜 잘 하신다! 틈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스무쓰하게 지나오셨어요? 진짜 베스트드라이버시네. 감사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안전하게 운전해주셔서." 그 한마디에 구겨졌던 얼굴이 펴지면서 씨익 웃기까지 하시는 기사님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욕하는 사람에게는 욕할 만한 상황이 있겠지요. 분노가 차올라서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 "욕을 하면 안 된다. 욕은 나쁘다. 네가 한 욕의 의미에 대해 같이 생각해볼까?" 어쩌면 먹물 먹은 사람들이, 활동가들이 이런 식의 접근에만 골몰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변죽만 두드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저는 자꾸 듭니다. 배워서 삶에 적용되지 않는 지식은 개인의 지적 허영심만 충족시키고, 그 허영심으로 되려 타인을 내려다보는 교만한 태도를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안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알지 못하는 데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휘두르는 칼에 서로 상처를 입는 것 같습니다. 머리로 문제를 인식했다면 가슴으로 내려가 이해하고 손과 발을 움직여 실천까지 해야 "아는 것"의 완성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이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하지 않게 대단하지 않고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실천하는 삶을 살자, 가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것이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다시 스무 살의 새내기 선생님이었던 학원 그 교실로 돌아간다면, 욕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신,
"어이구, 우리 ** 골났네. 뭐가 그렇게 속상했을까? 성질 나니까 쌤이 달콤한 초콜릿 하나 줄까? 살살 녹여먹어. 기분도 달콤해지게..." 이 정도로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배워서 머리만 비대해지는 기형적인 사람이 아니라 머리만큼 가슴도 손, 발도 균형있게 커져서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믐>에서의 대화들이 그런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박재연 선생님이 쓴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나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표현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에 불과한데 우리는 '달'은 보지 못하고 자꾸 '손가락'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다가 달에는 눈길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많이 팔리고 읽힌 책이긴 하지만 '손가락' 단계인 것 같아 다시 읽으면서 답답한 점이 많습니다. 손가락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달이 어디 있는지 방향을 알려주는 손가락도 중요하지요. 단지 손가락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상대와 말을 하면 할수록 나만 상처 받은 적이 있는가? 혹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와 상대와의 관계가 묘하게 어긋난 적이 있는가?『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는 오해 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 내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화 안내서다. 단계별 연습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일상에서 말로 인해 얼마나 많은 관계가 틀어지는지를 반추해보고, 말하는 방법이나 상대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방식을 살짝만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려 발버둥치고, 갑질 하는 조직에서 억지 미소로 참아내고, 성공과 효율을 좇는 사회의 기준에 허덕이고, 관계의 고단함 속에 내 마음은 뒷전이 될 때… 우리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지 못한 채 각자의 개별성은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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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터진달팽이
세월호 터지고 하도 울어서, 사실 전엔 돈버느라 가르쳤던 아이들이 그냥 살아만 있어도 귀여워지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돈 안 되는 복지관에 들어가서 자발적 생고생?을 하고 나온 일이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공부하겠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대학원을 결국 나와서 돈되는 일을 안하고 ㅋ 거꾸로 돈이 너무도 적은데 업무량은 많고 복지관 아이들이라고 하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형체인에서 가르치던 사람 입장에서는 온도 차가 나긴 했더랬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욕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햄버거로 잘 구슬려 놔서 어느새 스티커 배부로 결국은 평정시켜 놨었지만 그 와중에 갑질하는 어머니도 계시고 ㅋㅋ 원비가 3.5만원에 누구 녹을 받느냐며 호통치던 유명하신 분이 계셨었죠 ㅎ 그래도 애들이 많이 늘었어서 다음 선생님이 모집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어서 홀가분하게 연말발표회까지 마치고 나온 적이 있었어요~ 대학원에서 복지를 공부했으니, 나는 그걸 실천하겠다!는 단견이긴 했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늘 부어주시는 은혜를 온통 그 안에서만 소진하고^^ 밖으로 나누질 않는다는 놀라운 점인데요~ 물론 다 그렇다 볼 순 없겠지요. 그럼에도 늘 그렇게 사랑을 외치는 자들이 정작 그걸 받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모습에도 역시 놀라움을 느꼈는데요; 제가 보는 것이 또 한계가 있을 수 있기에 쉽게 재단해선 안 되겠지만,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위선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목격하곤 합니다. 참담하달까요 ㅠ 차라리 외치지나 말지!
그래서 아주 예전에 몸담았던 공간인 공감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소외된 그늘진 곳에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 공익변호사분들을 마구 축복하는 마음이었어요~ 정작 믿음없이도 이렇게 그 무엇보다 실체적인 복음good news로 살아가실 양이면, 차라리 입만 떠드는 믿음있는 자들 보다 믿음없이 차라리 합리적이고 상식적인데다가 이미 실천에 헌신!을 하신 저 분들이 사회선교social mission을 실천하고 계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코로나가 삼 년이 너머 이제 소강상태긴 하지만 그 척박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태어난 나라가 어디냐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으로 인해 더 방치되다시피 해서 죽었고, 누군가들은 직장을 잃었고, 또 누군가들은 소득의 절반이상!이 그 삼 년 간 오롯이 날아갔고 그러는 동안ㆍㆍ 우리는 상당수가 어떤 '여유'라는 걸 잃었고 그렇게 풍성함 가운데서 가능했던 타인에 대한 어떤 배려심 같은 마중물이 말라갔고 그 결과 당연하게도 더 팍팍한 삶을 살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걸 일종의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면, 이제 이 코로나가 완전 종식되는 그 때 우리는 다시 인간다운 그 마중물을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을까요? 너무 말라버려서 이제는 끝내 요원해진 일일까요? 부디, 너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잃어버리기 전에 돌아갈 수 있으면 합니다. 여유라는 마중물의 축복이 오늘도 우리에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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