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가 과거의 작품을 신화화했다며 신나게 깐 책의 저자는 세이무어 슬라이브인데,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하버드 박물관장을 십년 동안 했던 사람이더라구요. 물론 '조화로운 융합', '잊기 힘든 놀라운 콘트라스트', '유혹한다' 같은 직관적이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문장을 남발하는 미술책은 저도 싫지만, 존 버거의 비판을 다 받아들이기는 힘듭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모자 스타일, 저도 관심 있거든요. (생각보다 유행이 빨리 변했더라고요. 21세기에만 그런 게 아니고요) 어쩌면 저도 속물적으로 그림을 보는 중산층 고등교육이수자인가봅니다.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
D-29
호두언니
호두언니
예술의 권위, 신비화, 가짜 종교성, 복제, 그럼에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효과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글입니다. 저자는 과제를 던져놓고요. 예술 작품 원작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저자 역시 명확한 언어로 써놓진 않았거든요. 영상으로 그 부분을 봤을 때는 아주 설득됐다가, 글로는 의문이 든 걸 보면 시각적인 작품을 글로 설명하고 규정한다는 게 한계가 명확하다는 생각도 들고, 혹은 영상이라는 매체가 다른 사람의 지각과 의견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기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호두언니
책의 문장을 적는 방법이 따로 있었군요! 알아야 면장을 하지, 했던 즤 할아버지 말씀이 생각나네요
진공상태5
'문장 수집'을 이용하시면, 책의 문장을 예쁘게 적을 수 있어요.
이미지로도 예쁘게 볼 수 있구요. 4가지 정도? 되는 것 같더라구요.
바나나
3장을 읽으며 좀 갸우뚱 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대목에서 동의할수 없어서...
호두언니
저도 3장 읽으면서 왜 학교다닐 때 읽으며 괴로워했는지 생각났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두번째 읽는 중입니다. 페미니즘 미술사 관련 책을 읽다보면 암 그렇고말고! 하며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만나면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롭고, 아직 내 눈에 씌인 비 늘이 안 벗겨져서 그런건가 또 괴롭고, 이중으로 괴로워요. 더 이해 안가는 건 정신분석학적으로 미술을 분석하는 글들인데.. 그런 글들을 읽고 현대미술과 프로이트와 라깡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신분석은 몰라도 그만이겠거니 할 수 있는데, 페미니즘 미술 담론은 제가 이해 못하는 게 괴로웠어요.
그런데 미술과 함께 하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 지금은, 그런 글을 쓰는 분들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합니다. 페미니즘에 동의하는 것이 모든 페미니즘 텍스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호두언니
3장의 처음은 펠릭스 트루타 <누워 있는 바쿠스 여신>으로 시작한다.
이북 리더기로 읽다보니 그림 캡션이 작아서 제목을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고, 조르지오네, 티치아노, 벨라스케스의 비너스, 고야의 마하, 마네의 올랭피아로 이어지는 여성 누드화를 현대에 다시 그린 키치인 줄 알았다.
안경을 벗고 그림을 다시 보니 (노안 투병 중)
누워 있는 바쿠스 여신이라. 비너스 여신이 아니고. 충격 1번.
침대의 커버가 표범 가죽 모양이니, 그래 바쿠스가 여성이 아닐 이유가 무엇이냐. 게다가 창문에서 음울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남자는 수산나와 노인들의 패러디겠지. 몇 겹으로 이야기를 겹쳐 놓아 누드로 비스듬히 누운 여인은 비너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닳고 닳은 나를 보기 좋게 한 방 먹였구나. 펠릭스 트루타? 누구셔? 70년대에 활동한 화가인가?
호두언니
펠릭스 트루타에 대해 찾아보니, 1824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난 화가다. 충격 2번.
현대 화가가 아니구나. 그런데 누워 있는 바쿠스 여신이라고? 19세기 초에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단 말인가?
펠릭스 트루타는 스물 넷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보니 고향 디종에서 말곤 그다지 알려진 화가가 아닌 것 같다. 얼마 안 되는 작품 목록 이미지를 보니 초상화에 재능이 뛰어났던 것 같다. 몇 안되는 작품 중 이런 튀는 <바쿠스 여신>이 있다니, 그 세계를 알 수가 없다.
이 작품의 소장처인 루브르 박물관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그런데 제목이 <휴식과 욕망>이다. 충격 3번.
그렇다면 화가가 바쿠스 여신이라고 제목을 굳이 붙이진 않은 모양이다. (이 화가의 경향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화가가 그림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존 버거 선생한테 당했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런 파격 제목을 내놓다니. 위키백과에 '존 버거는 Ways of Seeing에서 이 그림을 다른 제목, <바쿠스 여신>이라고 불렀다'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바쿠스 여신은 존 버거가 붙인 제목인가보다. 여우 같은 양반. 우린 작품 제목이 뭐냐에 따라 그림을 다른 방식으로 본다.
3장은 펠릭스 트루타의 그림과 제목이면 충분한 장인 것 같다. 현재 이 작품은 루브르에서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디종의 보자르 미술관에 걸려 있다고.
호두언니
책과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19세기 초에 유난히 결핵으로 일찍 사망한 화가(혹은 기타 재능인들)가 많은 것 같은데, 왜인지 찾아봐야겠다.
호두언니
“ 화가가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이유는 벌거벗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손에서 거울을 쥐어 주고 그림 제목을 허영이라고 붙임으로써, 사실상 자신의 즐거움 때문에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 놓고는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3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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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직접 그려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3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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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펠릭스 트루타, <누워 있는 바쿠스 여신>
『다른 방식으로 보기』 3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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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 이 그림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그 자체로 구매하고 소유할 수 있는 물건들이다. 단 하나만 존재하는 물건들. 미술 애호가는 자기가 소유한 그림들에 둘러싸여 있다. 미술 애호가와 달리, 시인이나 음악을 후원하는 사람은 음악 작품이나 시 작품에 둘러싸여 있지는 못한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5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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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가에게 회화는 앎의 도구였을 수도 있지만 또한 소유의 수단이기도 했다. (중략) 화가들은 이탈리아 상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과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5장 중 레비스트로스의 글 인용,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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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정신이라는 것은 회화가 넌지시 가리킬 수는 있었지만 시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유화는 모든 사물의 외양만을 총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5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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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유화가 사물의 외양만을 보여주며 소수의 예외가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엔 좀 의문이 든다. 1500-1900년의 (유럽) 미술을 꽤 좁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유화라는 매체를 꼭 집어 얘기했어야했나, 하는 의문, 예외에 해당하는 렘브란트, 엘 그레코, 터너, 나중의 인상주의까지, 존 버거가 어떤 것을 '닳아빠진 유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는 알겠다.
호두언니
17세기 이후로 화가의 예술적 의욕의 차이로 평범한 유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는 것도 동의하기 힘들다.
호두언니
“ 유화의 실체성substantiality, 즉 실재하는 사물처럼 실감나게 그려내려는 유화의 속성을 블레이크는 극복하고자 했는데, 그의 이런 바람은 유화 전통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5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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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 공적인 초상화에서는 반드시 거리가 형식적으로 강조되어야만 한다. 평균 수준 의 전통적 초상화들이 대체로 딱딱하고 경직돼 보이는 것은 화가의 솜씨가 모자라거나 기술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이 인위성은 초상화를 보는 방식 깊숙이 내재하는 성질이다. ”
『다른 방식으로 보기』 5장,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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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언니
장르화, 풍경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끊은 느낌이 든다. 특히 프란스 할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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