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p35
나는 평범함으로 뭉뚱그려진 자화상 안에 우리의 특권과 차별이 은폐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한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약자로서의 정체성과 수혜자로서의 정체성이 혼재되면서 정확한 자기 인식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한다
p110
그러나 관계는 상실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엄마에게는 상실이자 배신인 일이 나에게는 분리이자 독립이 아니었을까? ‘엄마의 딸’로 살지 않고 ‘나’로 살기 위해 겪어야 했던 진통이 아니었을까?
p125
우리는 세계의 실패를 직시하는 대신 그 실패를 어머니라는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 근본적 원인을 은폐한다. 어머니도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실패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모든 사람처럼, 한때는 미숙했고 영원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p131
학문적·문학적으로 업적을 쌓은 인물이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오랜 세월 모성을 신성시하고 절대시할 수 있었던 이유, 여성의 본능이자 소명으로 추켜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조건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모성에 대해 발언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p159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아름다움의 신화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성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p259
이야기의 기원에 충실하려면 첫 장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시작되어야 했고, 마지막 장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끝나야 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열망한 인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지 못한 여성’, ‘비존재로 존재하는 여성’이므로. 결국 엄마의 삶을 기록해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계보에 ‘비존재’인 할머니가 있음을 기억하고, 할머니와 달리 엄마를 ‘존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p52
모든 타자가 내게 특별해진 존재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해서 그 깨달음과 일치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상주의를 넘어서야했고 내안의 도덕적 한계를 재설정해야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튀어나오는 자기모순을 당혹감에 휩싸여 응시해야 했다.
p55
더이상 나는 피피와 나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생명을 가진 우리가 어느 면에서 같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이제 나는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을 생각한다. 내가 피피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면, 그것은 무엇에서 비롯하는 것인가?
p99
반려동물은 우리와 한집에 살고 이름을 가지고 개별적 존재로 대우받는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또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서구의 저자들이 '반려동물은 동물인가' 라고 묻는 의도는 인간과 반려동물의 계급차이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과 다른 동물의 계급차이, 어떤 동물은 사랑받고 어떤 동물은 착취당하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은 동물인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을 수 있다. '반려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서의) 동물인가?'
p217
그러나 저 단순한 주장의 진짜 문제점은 여전히 손익의 대상을 인간으로 국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동물을 배제했던 비인간성이 현대 축산업을 참극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이다. 개식용 합법화 주장이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오인되는 상황은 우리가 현대 축산업의 비극으로부터 아무 교훈도 배우지 못했음을, 우리의 기억상실을, 어리석음을 증명할 뿐이다.
p281
한 사회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있지 않다. 모든 존재가 목적이라는 인식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으로서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p290
이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더 합리적이라기보다는 더 간편한 입장일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동물의 고통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이 불편함으로 바뀔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는지 모른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이 책의 표제인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I never had a mother)”는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유명한 문장이다. 이 선언은 모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내 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 여성에게는 모두 어머니가 없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작가 하재영이 어머니의 생애사를 인터뷰하며 그와 교차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달팽이들』 『스캔들』 등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는 소설가 하재영의 첫 논픽션으로, 버려진 개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번식장, 보호소, 개농장을 취재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번식업자, 유기견 보호소 운영자, 육견업자 등 다양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개 산업의 실태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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