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에 대해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한참 생각했는데, 조용히, 천천히 읽고 쓰고 있는 여자로 표현하면 좋겠다 싶네요. 생활이 바쁘고 즐거울 때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삶의 결이 단조로워지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선명해지면서부터는 제가 주력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게 읽고 쓰는 게 아닐까 합니다.
모 인터넷 서점의 고객들 구매성향 통계에 따르면, 저는 영미문학에 꽂혀 있는 사람이더군요. 조이스 캐롤 오츠, 이언 매큐언, 그리고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참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언뜻 이 모임의 제목을 잘못 보고 인생책 5권을 뽑는 것인 줄 알고 '음 그럼 조이스 캐롤 오츠 거 하나, 이언 매큐언 거 하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거 하나, 그리고 한국 문학 두 권...' 이 리 생각했는데 인생책 1권에 대한 5문 5답이더라고요 ㅎㅎㅎ 그래서 바로 좁혀졌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리고 그녀의 모든 책들 중에서도 "올리브 키터리지"!
[인생책 5문5답] 24.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읽고 쓰는 여자의 <올리브 키터리지>
D-29
새벽세시
도우리
Q2
이 책이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새벽세시
뭐든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훅 하고 다가온 마음의 독감 시즌을 통과하던 중 만난 책이 이 <올리브 키터리지>입니다.
이 책 역시, 매일매일 쓰디쓴 약을 집어삼키면서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다들 괜찮아 보이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각자의 쓴 약을 아무렇지 않은 듯 삼키면서 직장에 출근하고, 아이들을 위해 과일을 깎고, 바닥의 먼지를 박박 닦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 책의 모든 인물들이 알려줘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주인공인 한 여자의 이름입니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아버지를 두었고, 건실한 약사 남편 헨리 키터리지와 결혼해 학교에서 오래 교편을 잡았으며, 마찬가지고 우울증이 깊은 아들 크리스토퍼와 살아갑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런 그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 세 개 챕터로 담담하게 읊어갑니다. 자극적이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가게 되면, 우리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비밀들을 엿보게 돼요.
사이좋은 부부로 보였지만 서로에게는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배우자의 다른 곳을 향한 열망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평생 그것을 눈감고 모른척 하며 서로를 연민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 자식을 사랑했고 자식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자식은 하루아침에 떠나버리고, 어떤 때는 밉살맞고 퉁명스러운 짓을 하면서도 그 밑에는 표현되지 못한 마음과 비애가 있다는 것을요.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아, 그럼에도 삶은 이어져야 하고 우리 모두의 부족함과 불충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로 선택해야 하는구나, 라고요.
도우리
Q3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되신 거예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와 사연이 궁금합니다.
새벽세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작가는 <에이미와 이저벨>이라는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요, <에이미와 이저벨>은 엄마와 딸의 이름인데, 이 두 모녀의 이야기는 딸을 키우는 엄마인 저에게 저릿저릿한 울림을 주었어요. 한 구절을 소개한다면 이렇습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랑도 끔찍한 진실을 미리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그대로를 물려준다는 진실을"(p522, <에이미와 이저벨>)
그럼에도 작가는 실패한 엄마 에이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해요. 코끼리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한 입씩 한 입씩 먹어가는 것이라고요. 삶의 고통과 무게는 단번에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기에, 그저 삶을 계속 이어가면서 한 입씩, 한 입씩 베어물어가며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 뿐이라고요. 참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던 저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작가에게 깊은 은혜(;;;)를 받았답니다.
그때부터 으아니 대체 이 작가가 뉘귀야!! 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책이 나오는 대로 다 사들여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올리브 키터리지>를 만난 거죠.
저만의 용어이지만, 저는 책과 독자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인력과 척력이 존재하는데 그걸 '운때'라고 불러요. 책과 나 사이에는 어떤 운때가 있어서 그 책이 필요할 때 제 손에 척! 하고 붙는 거죠. <에이미와 이저벨>이 엄마로서의 저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다면, <올리브 키터리지>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저를 다독여 준 책이예요. 올리브와 같이 심통내고, 올리브와 같이 울기도 하면서 저는 어떤 한 시기를 또 넘어와 지금에 있게 된 것이죠.
도우리
Q4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새벽세시
음... 위로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요.
슬픔 속에 조난된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경청해 줌으로 서로를 구조하는 이야기가 그녀의 책 속에 있거든요. 큰 기쁨이 없는 날들이라 해도, 아주 작고 사소한 기쁨으로 나와 우리를 지탱해갈 수 있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지나간 일들로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올리브의 마지막 날들은 사실 해피엔딩이라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올리브는 지난 시간들의 회한에서 나와서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선택, 전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아직은 남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도우리
Q5
마지막으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새벽세시
올리브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p124)
헨리가 죽기 전 몇 년 동안 자신이 이렇게 헨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 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걸. (p483)
도우리
[인생책 5문5답] 인터뷰에 함께 해 주셔서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 주실 분들은 아래 주소에 입장하여 참여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template/1
전 국민이 자신의 인생책 한 권씩 소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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