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꾸러미 : 케이트 디카밀로 <비어트리스의 예언>

D-29
(이건 스포가 아니겠지요?!)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과정을 보니, 저도 다른 작품들이 떠올랐습니다. 김혜진 <아로와 완전한 세계>, 미하엘 엔데 <끝없는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에 대해서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_^
아로와 완전한 세계 (높새바람 6)대산창작기금에 선정된 창작 장편동화! 『아로와 완전한 세계』는 열두 살 평범한 소녀 아로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완전한 세계에서 겪는 모험을 그려냈다. 열두 살짜리 여자 아이 아로는 도서관에서 『완전한 세계 이야기』라는 낡은 책을 집는 순간, '읽는이'가 되어 버린다. '읽는이'는 책 속 세상에 존재하는 열두 나라, 즉 '완전한 세계'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시켜줄 사람을 말했다. 오랫동안 읽는이가 오지 않았던 '완전한 세계'는 그 이름이
끝없는 이야기2000년 세 권으로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으로 총 700 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으로 만들었다. 커버를 벗기면 자주색 천에 싸여있는 두툼한 책이 나온다. 보기드물게 긴 분량이기는 하지만, 종이에도 신경을 써서 너무 무겁지 않도록 배려했다.
저도 언제 기회되면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함께 읽고 싶네요. 예전에 읽었는데 철학적 신비로운 모험을 다시 함께하고 싶습니다.
난 도망가지 않아. 비어트리스가 속으로 말했지. 끝까지 견뎌 낼 거야. 비어트리는 손을 내밀어 안스웰리카를 만졌어. 그것은 마치 빠르게 흘러가는 어두운 강물에 자기를 위해 내려진 닻 같았지.
비어트리스의 예언 86쪽, 케이트 디카밀로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어요. 스토리에 급급해서 놓쳤던 부분들이 보이네요. 소리님이 시 같다고 하신 느낌도 알 것 같고요.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저도 <끝없는 이야기> 엄청 빠져들어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내용이 하나도 생각 안 나지만^^ 참, 저는 안스웰리카를 수컷 염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ㅠ 고정관념...
안스웰리카의 역활은 뭘까요? 첫장부터 등장하는데 그저 비어트리스의 수호천사?라고만 하기엔 부족한 듯 한데요. 수사들을 들이받는 자기 고집이 강한 그러나 비어트리스에게 한쪽 귀를 내어주어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하는.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듣고 싶어요.~~
내 사랑에게만 따뜻한 '차도염(?)' 안스웰리카, 안스웰리카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아요. 소리님이 처음에 소개해주신 것처럼,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동물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 걸 보면, 동물 캐릭터를 무척 잘 살리는 작가님인가 봐요. 저는 안스웰리카는 '비어트리스의 세계'를 지켜주는 수호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어트리스의 세계는 기존 질서(중세, 말씀에 따르는 것, 폭력으로 질서 유지, 남성성 등등)를 바꾸는 새로운 세계(근대성, 개인/자아정체성, 계몽, 평화, 여성성 등등)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안스웰리카는 '폭력'을 쓰네요.ㅎㅎ
염소는 서양에서는 악마를 상징하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는 동물로 알고 있어요. 책의 앞 부분을 보면 수도원의 수사들도 안스웰리카를 반기지 않고요. 제 생각엔 이 책의 작가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특별히 '염소'라는 동물을 선택한 것 같아요. <비어트리스의 예언>은 전체적으로 큰 고정관념 몇 가지를 깨는 이야기인데, '여자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 '여자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 그 밖에도 몇 가지 통념을 깨는 장치들을 넣은 것 같아요. 주요하게 나오는 동물이 염소와 꿀벌인데 둘 다 동화에서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 것 같고, 보통 동물을 등장시킬 경우 보드라운 털과 따뜻함을 강조하는 데 반해 안스웰리카는 '단단한' 머리를 강조하거든요.
비어트리스는 늑대가 누구인지 알아본 여자아이 생각이 났어. 그리고 다른 이들이 누군가를 알아보고 사랑해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지 생각해 보았어
비어트리스의 예언 187~188쪽, 케이트 디카밀로
두 번째로 다 읽고, 이 모임에 올라온 글들도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어요. 작품도 이 모임의 글도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깊이 연결된 기분" 비 오는 토요일 아침에 소리님이 던져주신 화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어디까지 어린이 독자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거지?" 제 생각에 작가님들이 본 그대로를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처음에 링크해주셨던 디카밀로의 글에서(달여인님이 재인용해주셨던 구절) " 누군가 나를 봐주었구나 하는 기분"을 아이들도 느낄 듯해요. 연결의 시작이겠지요. 대신, 그 시선은 한 방향이면 안 될 것 같아요. 작가님들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지요("남들도 우리를 보도록 허락하는 것").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작가님들 스스로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해"를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세상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아니지만, 저도 어린이들을 대할 때 이런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늘 다 읽었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다 쓰고 보니, 아직 다 읽으신 분들에게는 아래 두 메시지가 스포 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스웰리카 ㅡ 단단한 머리,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게 눈에 띄었어요. 비어트리스를 잡아주는 단단한 중심, 같은 역할 아니었을까요. @토요일 님이 인용해주신 구절에 “닻”이라는 말처럼요. 마음이 약해질 때, 내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고 힘낼 수 있게 해주는 양심, 용기, 정체성 같은 존재요. 꿀벌은 어떤 존재일까, 했는데 @달여인 님 설명 듣고 보니 정말 빕스피크 할머니의 상징인 것 같네요. 잭도리를 이끌어주는. 잭도리 카녹 에딕 수사 안스웰리카가 비어트리스를 찾으러가는 장면은 오즈의 마법사가 연상됐어요. 그들은 비어트리스를 찾아가는 것이었지만 자기자신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했겠지요? 모두 마침내 자기가 속한 곳을 찾아간다는 말은 자기가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그 어떤 곳일테니까요. 퀘렌시아. 비어트리스의 엄마가 가정교사에게 비어트리스의 위험한 의지를 꺾지 말고 그대로 키워달라고 당부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위험한 의지를 간직하고 살아가면 그만큼 더 힘들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할 수 있어서 더 마음에 남았나봐요. 진정 비어트리스를 믿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겠지요.
말씀 듣고 보니 정말 오즈의 마법사가 떠오르네요. 저는 작품에서 비어트리스보다 주변인물들이 더 매력적이었어요. '퀘렌시아'라는 말도 검색해봤어요.^^ 저는 작가가 말한 "우리가 속한 곳"까지는 이해가 되었는데, 왜 "집"(원문으로는 home일까요?)이라고 표현했는지가 조금 의문스러웠어요. 로알드 달의 작품에서처럼 집이 지옥인 아이들도 많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집"이 원가족은 아니겠지만요.
원문은 이렇더라고요: We shall all, in the end, be led to where we belong. We shall all, in the end, find our way home. 우리가 속한 곳으로는 "이끌어지고 (be led)" 집은 우리가 "찾아간다 (find)"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 때의 집은 내가 스스로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공간, 또는 진정하누나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아요. 이름을 말하게 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하는 장면들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와, 원문과 연필님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감사해요. "be led"를 어떻게 번역할지 역자 선생님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집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오기도 하더라구요. "집은 원래 자기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곳이지 않나?(150쪽) 에딕의 생각이에요. 연필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아요.^^
오랜만에 들어왔어요. 연필님이 지적해 주신 오즈의 마법사의 여정. 자신을 찾고 자기가 속한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습니다.
@소리 님이 아쉽게 생각하신 부분도 궁금합니다. 저는 동화책의 호흡이라 어쩔 수 없나 싶으면서도 비어트리스가 기억을 찾고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친절하게 설명되진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한 깨달음을 너무 금방 찾아낸 것 같은 느낌이요. ^^; 그렇지만 결말도 신선했고, 묵직한 메시지를 개성있는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 표현해낸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고 위에 다른 분들이 언급하신 동화책들도 읽어보려고 메모해두었어요. 이런 식의 온라인 책모임이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더 재미있게 책을 읽었습니다. 다들 감사해요.
@연필 님 의견에 동의해요. 독자가 비어트리스의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가기 전에 비어트리스가 목표를 설명하니까 그 대목이 사실 완전히 와닿지는 않았어요. "왕이 직접 자기가 한 짓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비어트리스가 이런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낸 과정이 드러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비어트리스는 자기 꿈에서 힌트를 얻곤 하는데, 저는 꿈과 현실을 오가는 흐름이 사건 전개를 명확히 이해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는 제 감상에는 요런 아쉬운 점도 담겨 있었네요. 덕분에 복기해볼 수 있었어요.
잭 도리는 자기 안에서 무언가 작은 것이 타오르는 걸 느꼈어.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비어트리스의 예언 p.142, 케이트 디카밀로
"세상은, 글자로 다 쓸 수 있어."
비어트리스의 예언 p.159, 케이트 디카밀로
비어트리스는 잠시 서서 올려다보았어. 수백, 수천 개의 별이 보였고 행성도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 틀림없이 저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행성이 있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별들이 사라져 버렸고 세상이 어두워졌어. 곰팡이와 피 냄새가 진동했지.
비어트리스의 예언 177쪽, 케이트 디카밀로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도 쓸 수 있다니 감탄한 부분이 많았어요. 위 인용구처럼요. 뒷부분의 짧은 두 문장으로(앞문장의 상황과 대조를 이루는 상황이어서 더욱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집중하게 만들고, 꼭 내가 곰팡이와 피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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