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서점]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같이 읽기

D-29
잊지마. 네가 걸었던 길들을. 어떤 형태로든 스몄고 출렁일 테니. 바로 내 안에서 말이지요. @겨울매미 님처럼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 저는 종이에 적는 게 있는데요. 이게 좀 효과가 있습니다ㅎㅎ '그동안 해왔던 것들은 어디 가지 않는다, 다 내 안에 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든든해지더라고요. 예전에 어느 작가 북토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내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는 상상을 하자. 과거의 관점에서 지금의 나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와 지금, 나의 무엇이 달라졌는지 회고해 보는 시간이. 스물의 나는 어땠지? 나의 처음은 어땠지? 지금의 나는 어떻지? 자신의 성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것을 회고해보아야 한다.' 라고요. 어떤 작가였는지는 기억이 가물한데,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저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오... 저한테 너무나 힘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네요. @무슨 님의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스무 살의 제가 지금의 저(마흔 살의... 흐흐흐)를 만나면, '저 언니랑 친해지고 싶다, 저 언니한테 의지하고 싶다, 저 언니 편하고 든든하다.' 이렇게 느낄 거 같아서, 급 기분이 좋아졌어요. 자신감 떨어졌던 저에게 너무나 좋은 처방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힘을 내기 위해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였을 뿐인데 @겨울매미 님께도 도움이 되었다니 무척 기쁩니다^^ 며칠 전 이 이야기를 남기고서, 그날 밤 자기 전에 '스물의 내가 어땠었지', 떠올리다 잠이 들었는데요. 꿈에 나오더라고요. 갓 대학에 입학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저의 모습이, 그 때의 에너지가.ㅎㅎ 자주 떠올려봐야겠어요.
꿈은 보여준다. 무엇이 아픈지. 누가 불편한지. 왜 놓여나지 못하는지. (...) 아무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밤은 밤이고, 끝끝내 밤인 것을.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96, 안희연
꿈 이야기를 하니까, '시어서커' 파트에 있던 글이 생각나 수집해 봅니다.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애써 기억하려 합니다. 가끔씩은 꿈이 다음날 하루를 점쳐주기도 하는 것 같아서요. 기분 좋은 꿈을 꾸고난 날이면 '오늘은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아무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 좋은 꿈을 꾼다고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나진 않더라고요. 그랬던 날들을 떠올리며 읽으니 '밤은 밤이고, 끝끝내 밤' 이라는 말이 가슴이 훅 와닿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이 머릿속에서 나오는 걸까요?
자신을 쪼개지 않고 어떻게 제 얼굴을 몸 밖으로 꺼내겠는가. 내가 나를 정말 그릴 수 있나.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가능할까.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요'이고, 자화상이라 이름 붙은 그림들은 사실상 실패의 기록이라는 생각이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100, 안희연
저도 과거.. 미대 입시 때문에 오랜 기간 소묘를 했거든요. 그 당시 제가 그린 석고상 얼굴은 매번 저를 닮아있었어요. 대학에 들어가 인체 소묘를 할 때도 분명 앞에 서있는 모델을 그렸는데 그림 속엔 내 모습이 보이고. 다른 친구들 그림도 찬찬히 보면 그들의 모습이 담겨있곤 했더란 말이지요. 물론 저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림엔 어쩔 수 없이 그린 사람이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 @겨울매미 님은 어떠신가요?) 해서 저 부분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를 꼭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어야 자화상일까?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곧 실패일까?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어떻게 쪼개야 진짜 내가 나오는 걸까?' 등의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문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탓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자신을 반드시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내가 그린 그림에는 자연스레 스며나오는 내가 있을 것이기에, 그 자화상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담기만 해도 성공한 자화상일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 부분을 읽으며 다들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와 @무슨 님 미대 언니셨군요!!! 비전공자인 저로서는 부럽습니다. ‘자화상이라 이름 붙은 그림들은 사실상 실패의 기록이라는 생각이다.’ 인상적이어서 저 역시 밑줄 그어 둔 문장인데요. 객관적으로 바라보아 그린 그림이 성공한 그림이라는 전제 하에 생각해 보면, 저의 생각엔 세상 모든 그림이 아름다운 실패의 기록이란 생각이 들어요. @무슨 님 말씀대로 그림에는 그리는 이가 묻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과연 완벽한 객관이란 존재할 수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는 이의 시각과 냄새가 덕지덕지 묻은 지극히 주관적인 그림들, 얼마나 아름답고 처절한 그리고 고유한 실패인가요. 객관적이 되기를 아름답고 처절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실패한 그림이 어쩌면 진짜 성공한 그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의 의견과 결국 같은 의견이지만 '아름다운' 실패의 기록(!)이라고 말 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아름답고 처절하지만 고유한 실패, 그것이 결국 성공한 그림! 실패했지만 실패가 아닌. @겨울매미 님 덕분에 또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실패'라는 단어가 가진 사전적 정의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 모양이에요.
너만 여기 있어. 너만 제자리라니까? 빠르게 앞서나간 사람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시간과 감정의 더께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나의 옷은 더럽다. 씻고 싶고 빨고 싶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108, 안희연
오늘도 다른 서점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더러워진 내 옷을 씻고, 빨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헤헤, 저도 자주 느끼는 느낌이에요. 모두가 나를 앞서 달려가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은 제게 우울과 함께 오곤 해요. 이제는 그럴 때 주문처럼 외워 봅니다. “생각보다 잘되고 있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잘되고 있다.” 중요한 건 남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함을 잃지 않는 일인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나는 남들보다 뒤처진 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나만의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이죠.
인간이 살기 위해 많은 게 필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 '그 사람' 하나만 있으면 인간은 살 수 있다. 견딜 수 있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151, 안희연
사흘이면 벌써 이 모임도 마무리되는군요. 이번 모임에선 @겨울매미 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ㅎㅎ 다른 두 분은 많이 바쁘신가봐요ㅠㅠ 이 책 꼭 다 읽어보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이번 모임 책은 이미 다 읽고 그믐에 들어올 때마다 다시 읽고 있습니다. 필사해두었던 것도 연거푸 꺼내보고. 보면서 이건 왜 적어놨었던가, 생각도 해보고요. 제 생각 위로 작가님과 겨울매미님의 생각을 포개어 보다 보니 계속 새로운 생각들이 이어지더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까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겨울매미님이 저의 '그 사람' 이군요!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문장을 옮겨 적어둔 적이 있습니다. 안희연 작가의 '그 사람' 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그 문장이 떠올랐어요. '누구는 겨우 책 한 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책 한 권으로 어떤 사람이 몰려오기도 하는 법이었다.' - 김미현 <지금 난 여름에 있어> 정말 맞는 말이죠?
‘책 한 권으로 어떤 사람이 몰려오기도 하는 법이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제가 @무슨 님께 ‘그 사람’이 되어 기뻐요. 독서 모임 때마다 @무슨 님도 제게 ‘그 사람’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알고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156, 안희연
아침에서 저녁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삶에서 죽음으로, 상실에서 애도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옮겨야만 하는 우리는 모두 뒤축이 닮은 구두를 신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169, 안희연
닮은 > 닳은 / 오타가 났네요.ㅎㅎ 그믐에선 오타가 나는 것도 나름 묘미입니다. ㅎㅎ 그나저나 '닮은' 이라고 바꿔 써도 어째 의미가 통하는 느낌. 오늘 나는 무엇을 옮기느라 뒤축이 닳았나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삶이 때때로 아니 사실은 자주 그러하듯 햇빛과 물이 늘 충분한 것은 아니다. 바라고 믿는 것과 무관하게 나무는 시들고 열매는 상한다. 그럼에도 그 나무를 어떻게든 길러보려고 편향과 열정을 다하는 것. 누가 내게 삶의 정의를 묻는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179, 안희연
얼마 전에 일 년 동안 키우던 화분을 분갈이해 왔습니다. 일 년 새 무성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뿌듯해하면서요. 식물이던 동물이던 키우는 과정엔 정말로 키우는 사람의 편향과 열정이 필요한듯 합니다. 바라고 믿는 대로 자라주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향과 열정을 다하는 것. 이것은 서점을 운영하는 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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