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집>을 읽을 때도 너도나도 알고 있는 단어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시선으로, 언제나 이토록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니(!) 하며 감탄했었는데요. 신간을 읽으니 이건 안희연 시인만의 주특기가 아닌가 싶습니다.ㅎㅎ 생각보다 부모님의 과거를 잘 모르고 있는 저를 돌아보면서 '보늬밤조림' 파트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엄마랑 통화하면서 이것저것 좀 물어봐야겠어요.
[무슨 서점]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같이 읽기
D-29
무슨
겨울매미
그 밤, 우리가 머문 곳은 비눗방울로 만들어진 방공호 안이었다. 곧 터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잠시나마 안전했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37쪽,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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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매미
위의 구절은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1부를 읽으면서 그 표현의 적확함에 감탄했던 문장들이에요.
한편, 45쪽에서는 ‘복모구구’라는 사자성어를 배웠네요. 한자로도 찾아보고 앞으로 편지 쓸 때 써먹어야겠어요.
하루 종일 먹는 것 생각이 머리에 가득한 사람으로서, 1부를 읽으며 참 좋았습니다. 맛나고 아기자기한 먹을거리와 삶을 연결지은 글들이니까요.
저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먹는 것 얘기를 한번 써 봐야겠습니다.
무슨
호주머니의 쓸모, 울타리의 쓸모, 침묵의 쓸모, 밤의 쓸모….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의 쓸모가 있고 그것을 일깨우는 것이 쓸모의 쓸모다.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33,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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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위에 꽂아둔 문장 뒤로 이어지는 '쓸모'에 대한 글입니다.
'비밀의 쓸모, 노래의 쓸모, 이웃의 쓸모, 쪽빛의 쓸모. 어떤 단어든 쓸모라는 말을 붙여보면 그것에 대한 선호가 분명해진다. 전쟁의 쓸모, 차별의 쓸모. 그런 쓸모는 몇 번을 고쳐 생각해 봐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잠시도 곁에 두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가늠할 수 있다. 동행하고 싶은 단어인지 아닌지. 중요한지 덜 중요한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법칙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을 운용해나가는 데 꽤 도움이 되는 소거법이다.'(34p)
1부를 모두 읽고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말이 '밤을 재운다'와 '쓸모의 쓸모' 더라고요.
특히 '쓸모'는 입안에서 발음해 볼수록 생경한 단어인데도 ( @겨울매미 님이 언급하셨듯) 작가가 설명하는 '쓸모'의 쓸모가 저에게 너무나도 적확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글에는 글쓴이가 가진(여기는) 삶의 진리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안희연 작가가 가진 삶의 진리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듭니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며 1부 읽기를 마쳤네요.
다들 1부 모두 읽으셨는지 모르겠군요. 모임 시작일에서 목요일까지 날짜가 좀 바투었지요... 남은 부분도 찬찬히 같이 읽어나가 보아요!
겨울매미
@무슨 님이 인용해 주신 부분을 저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낮잠의 쓸모: 심각한 줄 알았던 일이 생각만큼 잘못된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해 준다.
심심함의 쓸모: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해 준다.
빗소리의 쓸모: 일상에 차분한 색채를 씌워 준다.
거짓의 쓸모: ‘비눗방울로 만들어진 방공호’(37쪽)를 마련해 준다.
음악의 쓸모: 지금 여기 이 상황 말고 다른 세상이 있음을 기억하게 해 준다. 어떤 문제에 대한 과몰입 상태를 흩뜨려 준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는데 무척 재미있네요. 참고로 위에 적은 쓸모들을 저는 오늘 하룻동안 다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거짓의 쓸모’에 대해 고백하자면 오늘 저녁 모임 때 술 마실 거면서 밥만 먹을 거라고 남편한테 거짓말해 놓았거든요. 서너 시간 후 터져 버릴 비눗방울입니다. ^__^
무슨
하룻동안 다 체험하신 쓸모들이라는 말에 조금 웃었습니다.ㅎㅎㅎ
@겨울매미 님이 열거해주신 걸 읽다보니 저도 오늘의 쓸모들이 무엇이 있었나, 고민해보게 되네요.
오늘 저의 가장 큰 쓸모는 '말 걸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점 근처 골목에서 하는 공사 때문에 내내 시끄러웠거든요. 소음 때문에 고통 받던 사이, 그 혼란함을 헤치고 서점에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눈치를 슥 보고 말을 걸까 말까 고민했을텐데, 오늘은 저도 모르게, 아주 무심코 말을 걸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 덕분에 잔뜩 모 나있던 기분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돌이켜보니 굉장한 쓸모였네요. 사소한 것들의 쓸모를 파악하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도 내일의 쓸모를 찾아 봐야겠어요!
겨울매미
애쓰지 마. 결국엔 흘러가게 되어 있어. 그건 하엽(下葉) 지는 시간이란다. (중략) 세상 모든 일이 그래. 하지만 안에 있어. 머잖아 돌아올 잎이 있어.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80-81쪽,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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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매미
웬일인지 자꾸만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는 요즘, 이 구절이 크게 마음에 와 닿기에 공유해요.
“안에 있어.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어.” (80쪽)
무슨
저도 이 부분을 여러 번 읽었어요.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그 말은 아래 문장과도 이어지는 듯 해서 하나 더 꼽아봅니다.
무슨
“ 나는 헤맴에 최선인 사람이고 싶다. 현실은 빈약한데 이상은 턱없이 높아서가 아니라,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까다로운 성미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81,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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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2부의 몇 챕터를 남겨두고 아껴 읽고 있습니다. 결국 내일까지 다 읽게 되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읽고 싶어요. 이번 산문집은 두고두고 곱씹어 읽고 싶은 구절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밑줄을 계속 긋고 있습니다. 밑줄만 그엇을 뿐인데 제 것이 된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 긋고 또 긋고 그러고 있네요.
무슨
눈앞에 주어진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저는 꽤나 단칼에 해버리는 편인데요. 가끔은 앞뒤 재지도 않고, 어떤 굳은 신념 따위도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합니다.
고민하는 시간을 최소화해 그 시간이 주는 고통을 피하고 싶기도 하고, 내 직감을 믿는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게 정답(!) 같은 이런저런 이유가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간 해온 일들이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어떤 결정 이든 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었기에(그래야 끝나기에, 마감이 있기에), 그런 일 처리에 인이 박혀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일단 선택해. 선택한 것이 좋아지게 만들면 돼.' 이런 마음으로 하지요.
해서 저 문장이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헤멤에 최선인 사람이라니. 헤메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그것에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안희연 작가의 글은 저도 몰랐던 저의 관념을 여러차례 전복시킵니다.
겨울매미
저는 어떤 선택을 앞에 두고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검토하고 다시 의심한 후 조심조심 한 걸음을 내디디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무슨 님의 글을 읽으며 '이럴 수도 있구나!'하고 무척 신기했어요.
'나는 헤맴에 최선인 사람이고 싶다.'라는 문장에 저도 밑줄을 긋고 표시를 해 두었는데요, 그 이유는 제 자신이 너무나 헤매는 사람인 까닭에 이 문장이 엄청난 위로가 되어서랍니다. 같은 문장에 대해서 저는 진한 공감과 위로를 느끼고 @무슨 님은 관념의 전복을 경험하셨네요. 이런 식으로 다양한 생각과 느낌, 삶의 방식에 대해 알아가는 것, 이런 게 바로 '독서 모임의 쓸모'이겠죠? ^__^
무슨
저도 @겨울매미 님 덕분에 '독서 모임의 쓸모'를 다시금 깨우치고 있습니다:)
제가 매달 모임을 열면서도 가끔씩은 '이거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나'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수만 번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래, 이렇게 대화하며 새로운 걸 알게 됐었지, 공감하며 위로받았었지, 안도했었지' 합니다. 왜 잊고 있었을까요... 덕분에 저 또한 자신감을 찾게 되었습니다!ㅎㅎ
무슨
“ 전쟁이 끝나면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한다고, 끝에는 또다른 시작이 있는 법이라고 쉼보르스카는 말했지. 잊지 마. 네가 걸었던 길들을. 어떤 형태로든 스몄고 출렁일 테니.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빗자루를 들어. ”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87,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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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잊지마. 네가 걸었던 길들을. 어떤 형태로든 스몄고 출렁일 테니. 바로 내 안에서 말이지요.
@겨울매미 님처럼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 저는 종이에 적는 게 있는데요. 이게 좀 효과가 있습니다ㅎㅎ
'그동안 해왔던 것들은 어디 가지 않는다, 다 내 안에 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든든해지더라고요.
예전에 어느 작가 북토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내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는 상상 을 하자. 과거의 관점에서 지금의 나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와 지금, 나의 무엇이 달라졌는지 회고해 보는 시간이. 스물의 나는 어땠지? 나의 처음은 어땠지? 지금의 나는 어떻지? 자신의 성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것을 회고해보아야 한다.' 라고요. 어떤 작가였는지는 기억이 가물한데,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저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겨울매미
오... 저한테 너무나 힘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네요. @무슨 님의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스무 살의 제가 지금의 저(마흔 살의... 흐흐흐)를 만나면, '저 언니랑 친해지고 싶다, 저 언니한테 의지하고 싶다, 저 언니 편하고 든든하다.' 이렇게 느낄 거 같아서, 급 기분이 좋아졌어요.
자신감 떨어졌던 저에게 너무나 좋은 처방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스스로 힘을 내기 위해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였을 뿐인데 @겨울매미 님께도 도움이 되었다니 무척 기쁩니다^^ 며칠 전 이 이야기를 남기고서, 그날 밤 자기 전에 '스물의 내가 어땠었지', 떠올리다 잠이 들었는데요. 꿈에 나오더라고요. 갓 대학에 입학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저의 모습이, 그 때의 에너지가.ㅎㅎ 자주 떠올려봐야겠어요.
무슨
꿈은 보여준다. 무엇이 아픈지. 누가 불편한지. 왜 놓여나지 못하는지. (...) 아무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밤은 밤이고, 끝끝내 밤인 것을.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p.96,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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