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일본이 6회의 전쟁을 치러나가는 동안 아시아·태평양의 거의 전 지역과 민족은 예외 없이 일본의 직간접 통치하에 들어갔던 것이다. (...) 일본 민족을 정점으로 하여 여타 제 민족이 각기 제자리를 차지하게 하려 한다는 이 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제시한 목표와는 달리 아태 지역의 여러 민족은 길게는 40여 년, 짧게는 3~4년간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종속적 상태를 강요받아야 했다. 이러한 식민통치의 체험은 한국을 비롯한 아태 지역의 여러 민족과 국가의 향후 진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은 유럽에서는 오히려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제도와 협력 분야가 발전하고 있지만, 현대 동북아 및 아태 지역의 국제관계에서 그러한 양상은 상대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유럽 대륙에서 나타난 제국들은 기독교 문명과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라는 공동의 유산을 남겼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아태 지역에 남긴 유산은 상대적으로 빈곤하거나 보편적 가치가 결여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요인들이 현대 동북아 국제관계의 국가와 지역을 연결하는 공동 매개체의 결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쟁으로 점철된 근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는 그런 점에서 현대 동북아 국제관계의 변화와 특질을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p.410) ”
『제국 일본의 전쟁 1868-1945』 제10장 일본의 전쟁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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