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스타보로긴은 1권 후반에서 물리적 실체를 드러냅니다. 저는 1권은 다 읽었는데 지금까지 받은 느낌은 1권 마지막 장의 제목인 '현명한 뱀' 내지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느낌으로 보고 있어요. 현명한 뱀은 물론 선악과를 먹도록 유인한 존재를 의미하겠죠. 아담과 이브의 세상을 보는 눈을 획기적으로 바꾼 존재가 현명한 뱀인데 사실 스타브로긴과 같이 나오는 스테판의 아들도 약간 유사한 존재이긴 합니다. 이들은 러시아 세계의 위선과 낙후됨에 지쳐있죠. 이들 모두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인데요. 어찌보면 갑신정변 때의 개화파를 보는 듯해요. 이대로 가면 나라는 망할 운명인데 일본 손을 빌려서라도 근대화를 한 번 이룩해보자는 세력들인데 이후 개화파는 역적으로 단죄되잖아요? 러시아 역사에서,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데카브리스트(10월당원)은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한 청년장교들인데 이들은 프랑스까지 가보면서 자기 나라가 얼마나 낙후되었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되고 유럽식 진보주의를 자기 나라에 구현하려고 합니다. 아마 1820년대쯤 될 거에요. 물론 이들은 진압당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데카브리스트들 후예가 나타나며 사실상 레닌까지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사에서 늘 나타나는 게 친유럽계vs러시아파 사이의 대립입니다. 원래 러시아는 몽골에 짓밟혀있었고 그러다가 대략 18세기부터 몽골 이후 오스만튀르크를 점차 몰아내죠. 그러면서 국경 자체가 끝없이 남진 내지 동진을 하는 겁니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는 당연히 군국주의성격을 띌 수밖에 없었죠. 또 몽골은 당시 이슬람화되었고 오스만이야 당연히 무슬림이니 러시아 황제(차르)는 자신을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당시 오스만은 다종교국가였지만 기독교세력들은 주기적으로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18-19세기에 러시아-투르크 전쟁은 주로 오스만 국경내의 기독교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아무튼 국가를 급격하게 서구화 선진화하자는 세력(데카브리스트의 후예) vs 러시아 고유의 가치, 귀족주의와 기독교, 황제 세력을 지키려는 세력 간의 갈등이 러시아의 핵심적 갈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데카브리스트의 진압과 이후 여러 혁명 세력들이 붕괴되면서 서구화세력들 중에서는 일종의 허무주의/반종교주의가 깃들게 됩니다. 저는 토스토엡스키가 스타브로긴으로 상징하는(물론 도스토엡스키도 젊은 시절 일종의 혁명운동으로 사형선고도 받은 인물입니다만) 세력은 바로 서구화 세력 중에서도 허무주의/반종교주의세력이죠. 소설의 화자는 여기도 나오지만 온건한 자유주의자라고 나오거든요. 종교 내지 영성을 부인하면서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없이 목적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파괴주의적 경향을 띄잖아요.
일본 운동권 중에서도 나중에 적군파까지 등장하면(1970년대) 이들은 산장에서 훈련하다가 서로를 죽이고 비행기테러하고 북한에 잠입하는 식으로 극단적인 형태를 띄게 되는데 이게 다분히 유사한 사례인 거 같아요. 한국의 운동권은 실제로 여러 차례 정권을 얻어낸 것과 상당히 비교되는 사례죠. 한국의 운동권이 기존정치권에 전혀 편입되지 않았다면 일본 적군파 같이 갈 사람도 꽤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친러시아 문학작가로 인정받고 죽을 때에는 수만 명이 조의를 표할 정도로 인정받았던 이유가 저것과도 관련성이 있습니다. 도선생은 그러니까 젊어서는 서구주의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러시아적인 것, 특히 영성쪽으로 많이 접근한 사람이죠. 이 사람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갔다고 볼 수 있는 게 솔제니친이죠. 그리고 푸틴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솔제니친이 그래서 푸틴도 찬양했죠. 지금 푸틴이 국내에서 서방과의 영원한 전쟁을 선포하고 반-자유주의 반동성애, 친정교 성향을 보이는 것도 크게 보면 도선생의 후예라고 할 수 있죠. 모르긴 해도 러시아에서 도선생 책 요즘에 많이 읽고 있을 듯합니다.
[그믐밤] 9. 도박사 2탄, 악령@수북강녕
D-29
프로슈머
수북강녕
@프로슈머 @쓰힘세 말씀 주신 내용에 따라, 바르바라는 신은경, 스쩨빤은 차승원, 스타보로긴은 '노나없'의 안톤 시거로 이미지를 그리며 읽어 봅니다 <죄와 벌> 때 내맘대로 캐스팅을 했었는데, <악령>에는 대거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더욱 다양한 배역 선정이 가능할 것 같아요 ^^
영화 속 악역은 대개 엄청난 살인마인데, 안톤 시거는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악마적 초인(=비범인)이라는 점에서 안톤 시거와 스타보로긴은 분명히 겹쳐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안톤 시거와 어깨를 견주기로는 그간 한니발 렉터 박사 정도가 거론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스타보로긴이 직접적으로 살인하거나 식인하는 행위가 나오지 않았으나, 냉혹한 기행의 수준과 사이코패스적인 기질로 볼 때 이미 악의 화신, 그 자체의 섬뜩한 느낌을 주기로는 그 이상인 듯합니다
프로슈머
스타브로긴의 원형으로 이 소설에도 나오는 페초린(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주인공)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물론 레르몬토프는 러시아문학과 아니면 찾아보지 않을 정도로 꽤나 희소한 인물이기는 하죠. 저도 물론 읽지는 못했구요.
모든 제약을 넘어선... 양심이건 뭐건 그런 거 신경 안쓰는 그런 인물이라면... 어쩌면 니체의 '초인'과도 연결되는 인물일 수도 있겠네요.
쓰힘세
저는 읽으면 읽을수록 @고쿠라29 님이 캐스팅하신 정보석 배우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해외 배우 중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자꾸 떠오르네요. 😁
김새섬
오늘은 <악령>을 읽지 않고 언급해 주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영화를 봤습니다. 제목만 많이 듣고 내용은 잘 몰랐는데 참 재미있네요. 안톤 시거와 스따브로긴은 저에겐 다른 느낌입니다만 극중에 약간 일맥상통하는 대사가 나오네요. 안톤 시거가 아래와 같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If the rule you followed brought you to this... of what use was the rule?
여태까지 당신이 따랐던 규칙때문에 당신이 이 지경이 되었다면, 그 규칙은 무슨 쓸모가 있지요?
프로슈머
사실 꽤 다르긴 해요. 저는 앞부분만 읽고 느낌상 유추했던 건데 안톤 시거는 재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의 영화 중에 '파고'라는 영화가 있는데 드라마도 있습니다. 영화는 워낙 유명하고 드라마는 조금 덜 유명하지만 드라마에서도 항상 안톤 시거 같은 인물이 나와요. 약간 악한 경향성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갑자기 안톤 시거 같은 인물이 나타나 평범한 사람들의 계획(예를 들어서 아내와 헤어져 살고 싶다든지)이 실제로 실현되면서 생기는 악몽을 그리는 거죠. 스타브로긴은 그보다는 좀 더 사회성을 갖춘 인물이기는 하지만 노인 코를 붙잡고 다닌다는지 하는 식으로 잔혹한 일면을 드러내는데 거기서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안톤 시거 얘기를 했어요.
수북강녕
@프로슈머 <파고>가 등장하니 만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군요 <악령>에는 이처럼 깔끔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따보로긴을 '악'으로 보는 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시선이자 의도였을까 생각하며 책을 계속 읽습니다 바르바라와 스따보로긴, 스쩨빤의 먹이사슬에 대해서도 @쓰힘세 님이 짚어주셨지만, 사실 스따보로긴보다 바르바라가 더 '나쁜' 인물일 수도 있지요 악령 상,중,하를 다 읽어야, 도선생님이 생각하는 스띠보로긴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인물상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기심연옥
와우... 프로슈머님 역사적 배경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꿀정보 감사합니다~
작은기적
지금 다시 읽어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어요
프로슈머
1.바르바라가 갑작스럽게 스테판과 다샤의 결혼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서 저는 처음에는 다샤와 스타브로긴과의 어떤 성적 관계가 있었다는 생각,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들을 수양딸과는 결혼시킬 수 없다는(신분상의 차이가 엄연하기에) 그런 생각으로 결혼시키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런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2.삶은 고통이자 공포이다. 이건 다분히 쇼펜하우어가 생각나네요. 물론 쇼펜하우어를 다 읽은 것은 아니고 맛보기만 한 것이지만 쇼펜하우어가 서양언어로 최초로 번역된 불교경전을 봤다고 하더군요. 근데 불교경전이 오역하기 딱 쉽게 되어 있거든요. 삶은 고통이라는 내용은 사실은 '인생에서 영원히 만족을 주는 것은 없다' 정도의 의미인데 이것을 고통으로 해석한 거죠. 제 생각에는 불교-쇼펜하우어-키릴로프(저 말을 한 사람) 식으로 자기 식으로 오역을 했다고 생각해요. 키릴로프에 대해서 도선생은 '선한 목적을 위한 총체적 파괴'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써요. 세상은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파괴해야 하지 않냐? 파괴 이후의 세계는 나는 모르겠고... 대략 이런 걸 주장하는데 이것 자체가 '선한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죠.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파괴적 본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는 거잖아요?
사실 키릴로프는 폴 포트(크메르 루즈)가 생각납니다. 폴 포트는 불교+농본사회에 대한 어떤 환타지를 갖고 있었고 정권을 잡은 후에 도시를 파괴하고 모든 지식인들을 제거하면서 그가 원하는 이상사회를 실현시키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국민의 1/3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대학살로 끝났죠.
제 생각에는 도선생은 종교라는 것이 인간을 억압하는 단점이 있기는 해도 그 저변에 흐르는 '영성'만큼은 보존되어 한다고 보는 것인데 키릴로프는 그게 아니죠. 한마디로 비열하고 천박하며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유럽에서 들어온 어떤 신사상(사회주의)와 결합되면서 자신에 대한 어떤 확신 단계로 들어갔다고 봐요. 저런 개혁세력에 대해서 도선생이 생각하는 건 '현명한 뱀'인 거죠. 그들의 지성은 빛나는 점이 있다. 하지만 결국 뱀의 독으로 모두를 다 물어죽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러시아 문학을 보면 좀 독특한 측면이 있는데 자신들이 서구에 비해서 열등하다면서 자신을 비하하고 엄청 깝니다... 그런데 외국인이 그런 소리를 하면 러시아를 무시한다고 화를 내요. 이런 독특한 사고방식이 항상 깔려있어요. 그래서 서구에서 뭔가 새로운 사상(여기서는 주로 사회주의 허무주의)이 들어오면 러시아식으로 좀 묘하게 변형이 되요. 사실 그런 맛으로 러시아문학을 보는 거긴 한데... 일단 유럽에서는 저런 극단주의 경향이 없는데 러시아로 오면 좀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도선생은 그런 경향을 꼬집는 거 같아요.
프로슈머
3.스테판이 53세, 여자는 20세라고 되어 있죠. 33년 차이입니다. 당시에도 나이 차가 꽤 많이 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그런다고 해서 '안되는 건 아닌' 나이차이였다고 보여지네요. 주변 사람 반응에서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반대하는 사람은 스테판밖에는 없거든요.
스마일씨
참 저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천 베일이 떠올랐습니다. 겉은 잘생기고 세련되고 멀쩡해 보이지만 살인을 저지를 때, 공포나 고통이 없는 사람 같거든요. 4,5장 때 얘기하겠지만 스타브로긴은 정말 모든 행동이 연기같아요!
프로슈머
그렇군요... 일종의 사이코패스 내지 소시오패스라고 볼 수 있겠네요.
거북별85
와!! 말씀하신 것을 보니 저도 공감되네요. 우아한 듯하면서도 뭔가 간교하고 냉소적인 가면같은 모습이 아메리카 사이코의 크리스천 베일이 스타브로긴역을 맡는다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바르미
저는 좀 늦게 출발해 어제 1장을 읽고, 오늘 2장을 읽었습니다. 어제는 60페이지 분량을 3시간 동안이나 읽었습니다. 집중이 왜 그리 안 되던지...
오늘 2장은 중간에 많이 쉬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었습니다.
3장은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겠지요?
이름은 정말 저를 괴롭히는 부분입니다. 이름도 비슷해서리!
매일 한장씩 읽으면 진도에 맞춰 상권을 끝낼 수 있을 듯 하네요.^^
김새섬
1장이 제일 안 넘어가고 @스마일씨 님 말씀처럼 뒤로 갈 수록 의외로 괜찮네요. 저도 지금 3장입니다.
쓰힘세
힘내셔요! 제가 제시하는 진도보다 조금 늦으셔도 됩니다. 파이팅입니다! 🙌
존르카레라이스
안녕하세요, 글을 남기면 중간참여가 되나요?
늦었지만 참여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새섬
어여 오세요~ 초반부가 좀 힘든데 그 부분만 넘어가면 괜찮은 거 같습니다.
존르카레라이스
네 ㅎㅎ 얼른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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