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주 추리 소설가와 <계간 미스터리> 77호 함께 읽기

D-29
어디라도 써 주신다면 저로서는 영광입니다ㅎㅎ
설곡야담 미스터리 팬이라면 어찌 클로즈드 서클에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눈으로 고립된 산장과 오컬트 적인 요소까지 이건 취향 저격이지요. 근데 그래서 그런지 미쓰다 신조의 책도 많이 생각났고, 탐정 또한 도조 겐야 느낌이 많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등장인물의 이름과 귀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다면 그냥 일본 소설 같다는 느낌입니다.) 또한 책의 배경이 90년대 말 정도로 추정되는데... 아마 핸드폰같은 전자기기를 제외하려 한 이유 말고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없는 거 같습니다. 최근 소설들이 전자기기를 이용하거나 그걸 넘어서는 트릭을 구사하는 데 비해 아직도 90년 대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우리나라는 본격추리소설의 토태가 적어 아직 초보적인 수준의 설정만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최근 <유리탑의 살인>을 읽었는데, 이젠 본격에 메타소설 요소를 더하기도 하고 (고태라 작가님 인터뷰에서 언급하셨던) 판타지적 성격을 소설의 트릭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걸 보며, 토대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쌓인 게 많아야 그 이상, 또 다른 것들이 나오겠죠. 설곡야담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산장지기의 동기였습니다. 본격 추리소설의 세계에서 갑자기 현실로 오는 동기였고,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본 추리소설을 따라갈 필요는 없겠죠. (이미 그런 소설은 일본에 뛰어난 게 많으니까요.) 우리가 우리나라 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다른 나라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벌어질만한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신 독자님의 기운이 뿜뿜 품어져 나오네요. (저는 반성해야 할 듯... - 그러나 제가 그쪽 쓸 때 열심히 읽겠습니다. ㅎ) 한데 저는 본격에 메타나 판타지적 설정을 더하는 것은, 사실상 본격의 기발한 트릭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를 느껴서 변칙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독자 입장에서 선호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이라... 미래의 대중들에게는 굉장히 일반적인 설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나라 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건 우리나라에서 벌어질만한 이야기(우리가 경험할 만한 이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기억해두겠습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다섯 번째 이야기 거리 * 새로운 월요일입니다. 지난 만우절은 재미난 이벤트 많이 하셨나요? 아무래도 단편소설에 관한 후기는 부담되시는 듯하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까 합니다. 저는 <계간 미스터리>를 받으면 목차를 먼저 훑은 후 관심이 가는 기획기사가 있다면 그걸 먼저 보고, 아니면 순서대로 쭈욱 읽는 편인데요. 그래도 단편소설들을 연달아 읽으면 조금 피곤해서(?) 한 작품 끝내고 뒤쪽 평론이나 기획을 한번씩 보고 오곤 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식으로 보시는 분 계실까요? 그렇다면 이번 77호에서는 어떤 꼭지가 가장 유익했거나 재미가 있으셨을까요?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이제 모임이 9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간간이 꽃구경도 놓치지 마시고요~ :)
만우절 이벤트를 할 만큼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냥 지나쳤네요. 생각해보니 최근 5년간은 만우절을 그냥 넘긴 듯 싶기도 하고요. 이번 계간 미스터리 특집으로 인구 구조는 어떻게 한 사회의 범죄를 바꾸는가를 읽었습니다. 소설부터 읽고 기획과 특집을 읽으시는 모임지기 님과는 다르게 순서대로 읽는 고지식한 독자라서 두 교수님의 범죄 관련 특집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요약하면 인구 구조에 따르는 범죄 유형의 변화가 예상된다 정도일 거 같습니다. 새삼스럽게도 인간 사회와 범죄는 뗄레야 뗄 수 없겠구나 뭐 그런 당연한 진실을 살펴보며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일주일에 한번 맛보곤 했던 인간에 대한 가벼운 혐오도 주중에 맛보게 되었답니다.
순서대로만 읽는 고지식한 독자시로군요. 하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일지도 모르지요. (편집자가 의도한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ㅎ) 흥미로운 인사이트가 담긴 기획 특집에서 인간에 대한 혐오를 느끼셨다면 안습... 인간은 그냥 그러려니 바라봐야 속이 편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인구 구조에 따른 범죄 유형 변화는 결국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할 테니까요. (그렇다고 범죄자를 두둔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만)
만우절 이벤트는 생각지도 못하고 넘어갔어요. 주위에서도 제법 조용하게 지나갔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걸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나이가 지나버렸나 하는 슬픈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순서대로 읽는 좀 고지식한 편이긴 한데요, 이번 편집 순서가 공교롭게도 흥미로운 작품들과 특집 순서여서 평소의 틀과 큰 차이 없이 읽을 수 있었어요. 부산은 꽃이 이미 다 졌습니다. 이제 겹벚꽃 차례라 탐스러운 그 자태를 기다리고 있어요. 저에게는 역시나 첫 번째 특집(인구 구조는 어떻게 한 사회의 범죄를 바꾸는가)가 아직까지는 마음 속 1위 입니다. 그런데 순위가 뭐가 중요한가요. 모든 꼭지들을 소중하게 한 장 한 장 아끼며 읽고 있습니다. 아직 남은 부분들에서 제 마음을 흔들 내용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
저도 이젠 이런 날을 챙기는 게 영 재미도 없지만, 일부러라도 해보는 편이에요. 그냥 넘기면 더 심심해질 것 같아서요. 페이스북에 은발 가발 쓰고 머리했다고 뻥치는 사진을 올렸더니 다들 속아넘어가줘서 좋았답니다. 후후후. <계간 미스터리>는 목차 순서도 정말 잘 잡으시는 것 같지 않나요? 다른 잡지는 제가 결국 읽다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던데, 계간 미스터리는 정말 모든 꼭지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려워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선배님의 글도 있습니다만...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ㅎ)
안녕하세요. <계간 미스터리>는 저 같은 경우 일단 검은 면지에 새긴 한이 편집장님의 서문을 제일 먼저 읽게 되네요. 저번 겨울호도 그렇고 이번 봄호도 그렇고 장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언급하면 머릿속에 어느 정도 개념이 확 체감되고 체화되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 게재된 작품과 평론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해주는 점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언급한 부분을 곱씹어 관심가는 부분을 찾아서 보게 됩니다. 탁월한 가이드인 셈이지요. 작가님의 <마트료시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구성이 매끄럽고 간결해서 참 좋았습니다. 저는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인터뷰이의 멘트에서 범인을 빨리 알아챘어요.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경쾌한 단편이었습니다.
흑흑, 점점 참여도가 낮아져가는 와중에 꿀같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_ _) 저도 한이 편집장님(추리작가협회 회장님이시기도 합니다!)이 매호 소개해주시는 글이 무척 좋습니다. 제가 이론적으로 상당히 약한 뉴비인지라, '아, 그건 그런 거구나?'라고 깨달을 때가 많거든요. 언급된 부분을 곱씹어가며 관심 꼭지를 찾아읽으시면 더욱 재밌게 읽으실 것 같아요. 제 작품까지 언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신 대로 크게 트릭을 잡은 건 아니라서 범인을 알아채는 게 어렵진 않으셨을 거예요. '단숨에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에 방점을 찍었는데, 그렇게 봐주셔서 무척이나 뿌듯합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의 성격을 대표하는 글 속의 문장을 "앞으로 해도 진윤진, 뒤로 해도 진윤진"이라고 생각하고 썼거든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계속 한 박자씩 늦네요... 네 편의 단편을 읽었습니다. 네 편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네 작품이 비슷한 면도 있으면서 각자의 개성도 있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트료시카 작가님도 쓰셨다시피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 줄 인터뷰나 마트료시카가 의미하는 것이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나, 사라진 형광 수건, 괴담의 의미, 카페 알바를 주목하는 이유까지, 굳이 쓰지 않았을 뿐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트릭을 알아채가며 읽었어도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이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꽤 공들여 만들어졌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완벽한 이웃의 모습으로 우리 옆에 있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어서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도 생략되어 있는데 그 장면을 생략한 것이 오히려 읽기에는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도 생각이 나네요. 로드킬 <마트료시카>와 비슷하게 사이코패스를 다루고 있지만, 이 작품은 큰 인형을 모두 벗겨낸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느낌은 <마트료시카>가 강호순이라면 <로드킬>은 유영철 같네요.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되는 걸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지는 거 같아요. 마지막을 호러로 마무리하는데, 단편에서 이런 마무리는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거 같습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게 마지막에는 모든 문제가 이성적으로 풀리기 때문이지만, 호러로 열린 결말이 되면 더 큰 미스터리를 품으며 여운이 남는 거 같아요. 타임캡슐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종종 소년(소녀)의 시점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서술하는 소설들이 있는데 사건의 미스터리함에 소년이 세상을 바라보는 미스터리까지 합쳐져서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들이 표현되는 거 같습니다. 등장하는 소품들 역시 너무나도 친숙한 것들이라 제 어린시절의 추억까지 소환되네요. 신상 오예스가 견과류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건 근래 본 트릭 중 가장 아기자기하면서도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감탄을 했습니다. 다만 할아버지를 죽인 소녀가 아버지까지 죽이는 설정이 조금 과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에 두 작품을 읽어서인지, 사실 소녀가 사이코패스였고, 두 소년을 통해? 이용해? 본인의 잠재된 욕망을 끌어냈다는 이야기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굳이 나누자면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연대의 문제를 사랑이란 개인적 감정으로 연결하는 구성이 좋았습니다. 소송의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돼 신기했는데 작가님이 변호사란 마지막 소개를 보고 역시나 했었습니다. 사실 요즘 (일본) 본격추리소설의 극단적인 형식미나 설정의 기괴함에 질려서 범죄소설이나 하드보일드 책 쪽으로 손이 많이 가는데 범죄라는 것이 수수께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현실의 어떤 징후라는 면에서 이 소설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작가님도 저도 모를 덕련의 실제 모습은 어떨지 많이 궁금해지네요.
우와, 이렇게 알찬 리뷰라니. 너무 감사합니다. 게재 작가님들 어서 와서 읽어보시라 해야겠어요! 제 <마트료시카>의 경우 등장인물들을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딱 제가 봐주시길 바라는 방향으로 읽어주셔서 감개무량합니다. (이 작품의 게재를 거부했던 모 편집자분께서는 '등장인물들을 너무 쉽게 사용하고 치워버리는 느낌이다'라고 피드백 주셨었는데, 저는 제가 정말 그렇게 쓴 건가 싶었거든요. ㅜㅜ 밀렵지망인님 최고... 앞으로 제 책 나오면 다 보내드릴 지도 모릅니다 ㅋㅋㅋ)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 못 읽어본 것 같은데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
저는 등장인물이 챕터마다 바뀌는 건 오히려 군상극의 느낌이 나서 좋았습니다. 다양한 시선으로 주인공을 묘사하는 것이 주인공을 더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다만 <쉽게 사용하고 치워버린다>란 의견은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 낼 것 같은 (공들여 만든) 인물들이 극 진행에 별 영향 없이 흘러간다는 뜻일 거 같습니다. 장르의 규칙에 익숙한 독자라면 알아차릴 수 있는 이 이야기에 어떤 반전이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도 비슷할지도요. 책 보내주실 수도 있단 말씀은 너무 고맙습니다ㅎㅎ 근데 저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책을 고르고 사는 행위 자체를 너무 좋아합니다. 또 책을 살 때도 <정가로 구입>이 저의 포기할 수 없는 작은 사치입니다. 홍선주 작가님 이름 꼭 기억했다가 작품 나오면 정가(!)로 구입하겠습니다.
제가 요즘엔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다'라는 모토로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반전을 노리는 글을 쓰게 되겠지요. ㅎㅎ 정가로 구입하는 사치라니... 너무 있어보이는(!) 취미 아니십니까?! 정말 소중한 독자님이시로군요. 하지만 민폐를 끼칠까 걱정도 되네요. 제 책들이 줄줄이 출간대기 중이라.. (흠흠;;) 일단 밀렵지망인님은 제 마음 속에 저장... ㅋㅋㅋ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이다. 마음에 콕 박힙니다. 자꾸 쓰는 글이 쌓이면 쌓일수록 뭔가 재미를 던져주고 싶어하는 제가 툭툭 튀어나옵니다. 비밀스레 장치들을 숨기고 싶고, 내가 넣은 이중적 의미를 알아챌까 시험해 보고도 싶은. (작가님 의도와 맞는지와는 관계없이) 제 개인적으로는 좀 더 본연의 글에 집중하는 데 힘이 되는 말이네요!
맞아요. 사실 글을 계속 쓰다보면 '엄청나게 대단한 반전'은 이미 선인들이 다 써 먹어버리셨기 때문에 (혹은 내가 천재가 아니라서 ㅎ) 그걸로 승부보긴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글 자체로 재미있는', '읽는 재미가 있는'을 추구하게 되는 거 같아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본연의 글쓰기가 가능하다면 후에 반전이나 중의적 의미를 사용한 또다른 재미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일단 글을 잘 쓰도록 우린 노력해야 합니다. ㅎ
여러 기획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좀 띄엄띄엄 읽었습니다. 평론글을 읽을 때 가장 난감한 게 읽는 도중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나올 땐데, 항상 제 짧은 독서력(?)이 발목을 잡네요. 그런데 반대로 제가 재미있게 본 작품의 언급이 있으면 훨씬 그 글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사이버펑크는 하드보일드를 꿈꾸는가?>라는 소제목이 눈에 띄였던 박인성님의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블레이드러너 2049>를 보지 못해 글의 뒷 부분은 결론만 봤지만 <블레이드러너>와 <필립 말로>를 좋아하는 저에게 앞부분은 흥미진진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하드보일드 소설들은 보면 유독 공통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세밀한 묘사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묘사 속에서 도시의 모습이 보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로렌스 블록의 뉴욕이 그렇고 하라 료의 신주쿠가 그렇고 제임스 리 버크의 뉴올리언스도, 켄 브루언의 아일랜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SF 가상세계에서의 하드보일드는? <블레이드러너>의 도시는 사실 뉴욕이라고 해도 도쿄, 홍콩이라고 해도 되고 심지어 서울이라고 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블레이드 러너>는 낯설면서도 묘한 익숙함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블레이드러너>를 보고 훌륭한 하드보일드라고 생각했던 건 알고보니 이런 이런 이유가 있어서 였을까요? 하드보일드는 사이버펑크의 세계가 탐이 나고, SF는 미스터리라는 서사가 탐이 나나 봅니다.
<블레이드러너 2049> 재밌습니다! 저는 원작 영화와 소재는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의 새로운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봤습니다. 밀렵지망인님의 리뷰는 특히나 재밌네요. 흠, 뭔가 저와 의식의 흐름이나 시각이 비슷하신가 봐요. (그래서 제 것도 재미있게 봐주셨나 봅니다. ㅋㅋㅋ)
너무 늦은 리뷰일까 걱정됩니다만, 그래도 남깁니다. 부담이 되어 남기지 않았다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을 시간이 필요했어요. 저는 ^^ [마트료시카] 어째서인지 처음부터 화자가 연쇄살인범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때문에 중간중간 인터뷰를 읽으면서 음, 내가 너무 뻔한 설정으로 글을 읽고 있나? 하는 흔들림도 종종 있었어요. 몹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살인자의 음침하고 습한 모습을 설정하기보다, 일상에 섞여 아무렇지 않게 우리들 무리에 숨어 지내는, 때로는 대담하기도 한 모습에서 그가 더 소름끼치는 살인마라는 생각을 생각을 했습니다. 윤진에게 연쇄살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윤진이 그런데 정체도 모른다면서요? 이상한 설정이에요! 하는 부분에서 아! 이 사람 맞았구나! 자기 얘기구나! 하면서 이후부터는 시원하게 읽었어요. 좀 더 이입하면서요. 마지막, 범인이 검거된 뒤 나오는 뉴스 보도도 좋았습니다. 다만 그 동네를 떴던 그 남자가 어떤 계기로 잡혔는지 몹시 궁금했어요. 개의 특수 섬유 조직은, 그 목수건이었나요? [로드킬] 나와 닮았다는 지우의 설정에서 저는 혹, 이 남자가 이중인격 즉, 해리장애가 있는걸까 한참 고민하면서 읽었습니다. 마지막은 지우와 그녀의 친구가 더 무섭게 각인되는 장면이었는데, 주인공의 그늘 아래서 그들 역시 괴물이 되고 만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지우와 그녀의 친구가 괴물이었던 건지, 혹은 마지막 주인공을 바라본 건 지우가 아니라 까마귀를 환각으로 착각한 건지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결말이었어요. 로드킬, 이라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제목도 흥미로웠습니다. [타임캡슐] 타임캡슐을 초등학교 졸업 때,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동장에 묻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는 졸업 후 10년 뒤였는지, 20년 뒤였는지, 정확한 날짜는 언젠지조차 기억나지 않아 다시 찾아가보질 못했네요. 그 타임캡슐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정확히 살고 있을까요? 꺼내본 이가 있을까요? 각설하고. 할아버지의 사망에는 여러 사람의 공조가 있었다는 부분에서 가장 뜨악함이 밀려왔습니다. 모든 정황을 깨달은 주인공 충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더불어 익숙한 이름으로 뜨는 뉴스를 보며 할아버지 다음으로 그 아빠도 해결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까지 미쳤을까나요. 몹시도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과 떨리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제목이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입니다. 코로나 시국을 몹시도 잘 반영한, 트랜디한 소재의 글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불어 마지막 파트의 결론이 가장 "초 현실적"이어서 웃픈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라는 말에 안타까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도 보통의 현실은, 소설이 아니고서야 그래, 그렇지. 수긍하는 결말이었어요. 그럼에도, 상희씨가 통화 목록에 손가락을 꾹 누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너무 늦은 리뷰란 없습니다. 천천히라도 참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마트료시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맞습니다! 주인공이 목에 하고 다닌 야광목수건 때문입니다. 노숙자 남자에게서 개를 떼어놓기 위해 죽였고 죽이는 과정에서 개가 증거를 남긴 것이죠. (시고르 자브종은 위대합니다! ㅋ) 저도 <코로나 시대의 사랑> 제목 인상적이었어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정말 멋지게 오마쥬하셨죠. 어쩜 그렇게 글자도 딱 맞아 떨어지는 질병이 유행을 했는지... ㅎㅎㅎ 알찬 리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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