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

D-29
이제는 연필로 뭔가를 끄적인다는 게 오래된 사람들의 아날로그한 취미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저도 가끔 섭섭하기는 합니다. 저도 아이패드로 책을 읽기도 하고 대부분의 작업을 아이폰과 맥북으로 하긴하지만 이따금 이게 맞는 건가 싶어요. 최근 연구 결과나 책읽는 뇌를 연구하는 매리언 울프의 책에서 보면, IT기기로 활자를 접하고 타이핑을 하는 것과 지면에서 글을 읽고 글씨를 끄적이는 것이 꽤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1 ⟨하늘에 혜성이 떠 있네⟩] 해당 산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독일의 배경과 ‘달력이야기’라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산문 문학장르에 대해서 알아두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19세기 독일에서는 오늘처럼 활자를 접할 수 있는 매체가 그리 많지 않고 제한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달력은 이즈음의 신문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였습니다. 당시 달력에는 요일과 날짜뿐 아니라 축제일과 해당 지역의 풍습은 물론 간단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도 실었는데요,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야기를 읽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달력이야기’의 역사는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요한 페터 헤벨 역시 이러한 '달력이야기꾼'으로서 19세기 독일 라인 지역에서 '가정의 벗'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작가이자 종교가, 교육자였습니다. '가정의 벗'이라는 필명에서도 보듯, 달력이야기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오락을 제공하는 친구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따듯한 구연체로 짧지만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기고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실제로도 달력은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일 정도였다고 하네요. 제발트는 헤벨이 쓴 이야기의 특징을 다음처럼 소개합니다.
혜성과 이야기꾼 모두는 폭력으로 일그러진 우리의 삶 위에 혜망을 그리고,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려다보지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한다. 말하자면 그런 연민과 무심함이 결합된 기이한 성좌야말로, 어떤 때는 한 세기를 통째로 한 페이지에 집어넣으면서 기민한 눈초리로 사소하기 그지 없는 정황들을 살피고, 가난 일반에 대해 말하는 대신 아이들의 손톱이 굶주림에 시퍼래진다고 말하며, 슈바벤 지역의 부부가 겪는 가정불화와 베레지나강의 범람으로 전 부대가 침몰하게 된 일 사이에 파헤칠 수는 없지만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고 예감하는 연대기 작가의 영업비밀인 셈이다. ⏤23쪽.
시작 전에 신청했다가 책장 어딘가에 책이 숨어있어서 어제 비로소 찾았네요. 뒤늦게나마 합류합니다. 처음부터 읽다가 바로 이 부분을 기록하러 들어왔는데 이미 남겨져있네요. 제발트는 헤벨을 생각하며 썼겠지만 제발트 본인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기록해주신 바로 뒷부분 "그런 특수한 영적 감수성과 기질이 헤벨의 서사적 세계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면, 그 세계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술 또한 아주 독특하다 하겠다." 여기도요.
좋네요:) 이 많은 페이지와 문장들 중에서 서로 밑줄이 겹쳤다는 것은 우리 정신이 각기 다른 장소, 다른 공간에서 잠시 포개졌다는 말일 거예요. 참 재밌고 놀라운 일이죠. 진도에 구애받지 말고 읽어주세요. 저도 @Aaaaan 님 덕분에 읽은 내용을 다시 들춰보고 반추할 수 있으니까요!
초현실적인 꿈의 세계는 헤벨이 낮 동안에 펜을 들고 꿈꾸었던, 별들이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극락은 아니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들이 조우하는 이 우발적이고 자의적인 세계를, 우리는 전쟁과 혁명이 끝없이 계속됨에 따라 신성사적 세계상의 마지막 잔재마저 와해되고 말았으나 세속사는 폭력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시대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다.
전원에 머문 날들 p.29,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들이 조우하는 이 우발적이고 자의적인 세계" 헤벨는 이것을 꿈에서 견디었으나 저는 요즘 현실 자체가 이렇게 느껴져요. "신성사적 세계상의 마지막 잔재마저 와해되고 말았으나 세속사는 폭력적으로 뻗어"나간 시대의 끝자락에 우리가 서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1 ⟨하늘에 혜성이 떠 있네⟩] 제발트는 프랑스혁명이 일었던 18세기 말, 독일에서 태어나 19세기 초에 생을 마감한 달력편찬자이자 이야기꾼인 헤벨을 탐구함으로써, 당시 심어진 폭력의 씨앗이 한 세기가 흐른 뒤에 독일에서 어떠한 형태로 발아했는지 그 세속사(世俗史)를 추적합니다. 제발트는 헤벨의 진정한 기교가 세상 모든 것을 자기 관념으로 회수하는 능력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의 시선을 우주적 차원에 주어 지구상의 일을 순수하게 관조하는 능력에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제발트가 헤벨의 서술법에서 발견했다는 것들은 제발트 본인의 것이기도 합니다. 제발트의 산문을 보면 일견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식 서술법을 유지하다가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가 나와서 일상 범위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나열합니다. 객관성을 유지하되 지나친 거리감으로 인해서 관객이 되지는 않는, 좋은 거리감이 제발트의 산문에서는 돋보입니다. 여담이지만 좋은 독자는 좋은 작가에게서 훗날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는 어떤 씨앗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마찬가지 의미에서, 제발트는 헤벨이 일찍이 나폴레옹을 지지했었지만 유럽에서 계속되는 전쟁을 보면서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음을 시사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헤벨이 어떤 비극의 씨앗을 보았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여기서 헤벨이 끄집어낸 목록들은 민족쇼비니즘 수사법의 그것이다. 그리고 그 수사의 반향음들은 점차 시끄럽게 울려퍼지면서 앞으로 100년간 독일 사회를 저 멀리 광기로 몰아갈 것이고, 무조건적인 의지로 권력에 집착하는 또다른 독재자의 통솔하에서 유럽의 신질서를 세우겠다는 나폴레옹의 실험을 되풀이할 것이다.
전원에 머문 날들 p.41,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이 산문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점은, 헤벨이라는 달력편집자이자 '가정의 벗'이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했던 달력이야기꾼을 살펴봄으로써, 제발트가 어떤 폭력의 근원을 규명해 가는 방식입니다. 비단 독일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프랑스혁명과 그 이후에 옹립된 나폴레옹 황제,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결과물이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갔으며, 그로써 유럽대륙 전반에 이르러서 민족쇼비니즘의 수사가 일어났다는, 일련의 과정을 서술하는 방식이 굉장히 유려합니다. 산문 전체가 제발트적인 '연결'로 가득합니다. 제발트는 이러한 독특한 '연결성'이 헤벨이 쓴 작품에서 발견한 특징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 특징은 누가 뭐래도 제발트의 것입니다. 언젠가 황현산 평론가가 "당신이 말하려는 작품의 독창성이 당신의 독창성"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마지막으로 제발트가 설명한 헤벨이 쓴 작품의 특징을 알아보면서 1장 마칠게요.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의 유고 평론집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우리 시대 시의 ‘제 살아 있는 힘’을 일깨우는 비평가인 동시에 그 까다롭다는 프랑스 현대시의 가장 탁월한 주해자이기도 했던 그가 ‘시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마주한, ‘시가 가르쳐준’ 깊이들을 넓은 품으로 아울렀다. 시에 낯선 이에겐 문으로 들어서자는 노크일 것이고, ‘문학의 밀림’ 앞에 서 있는 이에겐 ‘앞서간 발자국’이 될 것이다. 그 제목이 ‘산고(散稿)’인 것은
그런 특수한 영적 감수성과 기질이 헤벨의 서사적 세계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면, 그 세계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술 또한 아주 독특하다 하겠다. 프랑스군이 독일에서 퇴각한 뒤 저기 라인강 너머 아래쪽에 진주해 있을 때······ 프랑스군이 우편마차를 타고 바젤의 성 요한의 문을 나와 포도밭을 지나 준트가우에 들어섰을 때······ 태양이 이미 알자스의 산맥 너머로 기울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어지면서 극히 완만하게 서사의 기울기가 생견나다. 언어는 자잘한 우회로와 나선원을 그리며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닮아가고 그렇게 최대한 현세의 재보로부터 자신을 지켜냄으로써 멈춰 서 있다.
전원에 머문 날들 p.24,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안녕하세요. 제발트의 몇 작품 읽었지만 산문은 처음인데요,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22. 헤벨의 이야기들에서 인간 운명의 부침을 다스리는 주권이 발원하는 원천은 결국 우주적 차원이자그 우주적 차원에서 얻어낸 자기 자신의 미미한 의미에 대한 통찰인 셈이다. 한 걸음 떨어져 순수하게 관조하는 순간이야말로 헤벨의 가장 심오한 영감이 샘솟는 때이다. 48. 시커멓게 다 타버린 채 우주를 황망히 돌고 있는 지구의 폐허를 은하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보다 더 생손한 시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가정의 벗의 이야기에서 울려퍼지는 유년 시절은 어제보다 더 먼 과거는 아니다. ㅡ '하늘에 혜성이 떠 있네' 에서
네 감사합니다. 재밌는 감상 많이 공유해주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2 ⟨이 호수가 바다였다면⟩~] 이 산문에서 제발트는 생피에르섬에 머물렀던 장 자크 루소를 추적합니다. 재밌게도 제발트는 대학생 시절에 생피에르섬에 가봐야겠다고 최초로 마음먹은 시점으로부터 무려 31년이 지난 1996년에 이르러서야 섬을 방문하게 됐다면서 얘기를 시작합니다. 장 자크 루소가 50대에 이르러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망명 생활을 하던 도중에 잠시 생피에르섬에 들렀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무려 31년이 지나서 50대에 접어들고나서야 코르시카섬에 당도하게 됐다는 제발트의 언급은 공교롭게 들립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지만, 제발트가 장 자크 루소의 삶 위에 자신의 그것을 포개면서 시작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포갬'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코르시카섬에서 루소의 행적과 그런 루소를 다룬 몇몇 텍스트에 대한 언급과 제발트가 실제로 코르시카섬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들이 한 문단 안에서 뒤섞이는 대목도 있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문장을 소개하면서 2차 시기 시작할게요:)
나는 하지만 루소의 방에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이 섬이, 100년이나 200년 전에는 전 세계 어디나 그랬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으로 아직 침범당하지 않은 정적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욱더 쉽게 빠져든 환상이었다. 특히 당일치기 여행객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저녁 무렵이면 섬은 우리 문명의 영향이 미치는 곳에서 더이상 경험할 수 없는 고요 속으로 잠겨갔다. 이따금씩 호수를 스치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커달나 포플러나무 잎사귀들이 사부작거릴 뿐, 미동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어지는 어스름 속으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고운 자갈이 깔린 길은 점점 더 환해졌다. 나는 울타리가 쳐진 목초지와 은빛의 고요한 귀리밭, 포도밭과 막사를 지나 그새 칠흑같이 컴컴해진 너도밤나무 숲의 끝자락까지 올랐다. 산비탈에서 서자 호숫가 저쪽에서 하나둘씩 불이 밝혀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호수 자체에서 부상하는 것 같았다.
전원에 머문 날들 p.56,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69. 우리는 글쓰기를 별로 영웅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확하지 않은 것은 아닌 방식으로 자신을 항상적으로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강방적인 행위로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행위는 작가야말로 사유라는 병에 시달리는 주체들 가운데 어쩌면 가장 불치의 환자라는 것을 입증한다. ㅡ '이 호수가 바다였다면'에서 제발트가 섬의 곳곳을 다니며 고찰한 루소의 말년을 따라가는 것도 꽤 흥미롭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2 ~⟨이 호수가 바다였다면⟩] 제발트는 루소와 20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서 생피에르섬을 방문합니다. 본문 곳곳에서 제발트가 루소의 삶에 자신의 그것을 겹쳐보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는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발트 역시 루소와 마찬가지로 고국 독일을 떠나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도 모국어로 죽는 그 순간까지 작품 활동을 펼쳤던 작가로서, 루소의 생애와 맞물리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루소는 자신의 작업물로 인해서 살던 곳에서 추방되었고 곳곳을 떠돌면서도 각종 박해와 음해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떠돌면서 건강이 나날이 쇠하는 와중에도 수천 쪽의 글을 집필하면서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사실을 모르더라도 본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발트가 루소의 나이에 이르러서 생피에르섬을 찾는 행위 자체는 특별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루소 이후에 명성을 얻은 생피에르섬에 무수한 관광객이 찾아왔다고 제발트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발트는 루소의 행적을 보존해놓은 공간을 단순히 관광하지는 않습니다. 대다수 여행객이 루소의 방에 놓여 있는 단촐한 풍경을 보고 실망해서 떠나는 와중에도, 제발트는 문헌학자 특유의 태도로서 그냥 지나칠 법한 과거의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여기서 의미를 부여한다함은 어설프게 대상을 나 자신으로 회수하지 않고, 대상에게 시선을 주어서 달라붙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제발트는 마치 200년 전의 루소처럼 방을 바라보고, 환희에 차서 생피에르섬을 거닐던 200년 전의 산책자처럼 외경을 묘사합니다.
그들 중 루소의 필체를 해독해보고자 유리 진열대 위로 몸을 숙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60센티미터 너비의 빛바랜 마루 널빤지가 방 한가운데로 가면 심하게 닳아서 판판한 구덩이를 이루고 있다는 것, 반면 딱딱하게 옹이 진 자리는 나머지 나무보다 2~3센티미터 가까이 돌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 또한 없었다. 곁방 개수대의 반질반질한 돌 표면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아직도 화덕 주위에 남아 있는 그을음의 냄새를 맡아본 사람도,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 과수원 너머 남쪽 호반의 풀밭을 내려다본 사람도 없었다. 나는 하지만 루소의 방에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이 섬이, 100년이나 200년 전에는 전 세계 어디나 그랬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으로 아직 침범당하지 않은 정적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욱더 쉽게 빠져든 환상이었다.
전원에 머문 날들 56쪽,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작가들은 외부의 상황과 무관하게 매순간 영감을 얻을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작가들이 매번 새로운 경험을 찾아다니는 '경험사냥꾼'으로서 관광객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늘 자신을 외부 세계에 열어놓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새로운 인식과 관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우주로 나갈 수도 있지만, 내 눈앞의 소금 한 알에서 우주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제발트는 왜 하필 루소가 들렀던 많은 장소 중 하필 생피에르섬를 특별히 여기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 생피에르섬이 루소가 인생에서 드물게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짐작합니다. 게다가 다른 시기와 달리 루소는 생피에르섬에서 써야만 하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글을 썼고, 훗날 생피에르섬에서 보냈던 행복한 시기의 경험이 루소의 마지막 책인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에 등장한다는 점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얘기해볼 만한 지점이 참 많은 산문이지만 이쯤하겠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다른 대목을 인용하면서 2장 마치겠습니다.
작가 루소는 생피에르섬에 머물 수 있었던 몇 주 동안 전적으로 한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시기를 문학의 요구로부터 자기 자신을 면해주는 기회로 이용하려 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제 그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문학적 명성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소망하겠다고 말한다. 루소가 이제 문학에 느끼는 '불쾌감'은 일시적인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글쓰기에 언제나 동반되는 감정이었다. (···) 시민 계층이 어마어마한 철학적・문학적 에너지를 들여 자신의 해방에 대한 요구를 천명하던 시대에 루소만큼 사유의 병리적 측면을 인식한 사람은 없었다. 루소야말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바퀴를 멈출 수 있기를 그 무엇보다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글쓰기에 집착했다면 그건 장 스타로뱅스키가 말했듯 오직 손에서 펜이 떨어지고 화해와 귀환의 '고요한' 포옹 속에서 본질적인 것이 말해지는 순간을 불러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글쓰기를 별로 영웅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확하지 않은 것은 아닌 방식으로 자신을 항상적으로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강박적인 행위로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행위는 작가야말로 사유라는 병에 시달리는 주체들 가운데 어쩌면 가장 불치의 환자라는 것을 입증한다.
전원에 머문 날들 68,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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