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는 동안 나는 유리가 창에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유리에 먼지가 잔뜩 끼어 흐릿했기 때문에 맑은 시냇물 속에 담가 돌멩이에 닿아 깨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씻었다. 그런데 이 반짝이는 유리를 해가 있는 쪽으로 높이 치켜들고 비춰보는 순간 나는 지금껏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경이를 보게 되었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세 명의 소년 천사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 그러나 이 모습은 너무나 희미하고, 어렴풋하게 비쳐서 나는 그것이 태양빛 속에 있는 것인지, 유리 속에 있는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단지 내 공상 속에 떠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유리판을 움직여보면 일시적으로 천사들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면 갑자기 다시 천사들이 보였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난 이후에 나는 수년간 유리 액자 속에 그대로 끼워져 있는 동판화나 스케치는 그 긴 세월 동안 어두운 밤이면 유리에 자신의 모습을 전한다는 것을, 말하자면 유리 속에 자신의 거울상과 같은 것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전원에 머문 날들』 133쪽,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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