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카프카] 제발트는 한스 치슐러의 ⟪카프카 영화관에 가다⟫라는 작품에 대해서 논합니다. 1950년대부터 쏟아져나온 카프카에 관한 수많은 연구 서적들이 실존주의와 정신분석,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같은 지리멸렬한 헛소리만 반복해왔다고 비판하는 반면, 한스 치슐러의 연구서가 "사실관계에만 천착하고 그 어떤 해설도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절제의 태도가 돋보인다고 치하합니다. 한스 치슐러는 카프카가 영화를 보고 남긴 메모에 착안하여, 당시 기술발전의 첨단에 있었던 영화와 사진과 카프카의 작업물이 맺는 관계를 탐구합니다. 제발트는, 오늘날처럼 시각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와 달리 카프카 시대에는 영화 이미지가 저급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런 시대에서 카프카가 영화 이미지에 빠져 있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카프카는 사랑하는 연인인 펠리체 바우어 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지들은 아름답지요, 이미지들은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만큼 고통이기도 합니다"라고 쓴 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사진은 현실이나 지나가는 풍경을 속사(速寫)로 고정시키는데, 이는 그간 문학 작품에서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보여주던 풍경 묘사와 겹치는 면이 상당합니다. 생각해보면 기술이 발전하고, 사진 기술이 발달하고 보편화되고 나서야 우리들은 이미지의 역할에 대해서 새삼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사진이나 영화 속에서 이미지를 대하는 방식과 현실의 대상을 대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현실에서 사람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은 여러 모로 금기시되는 행위이므로 무척 가까운 사이가 아닌 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진과 영화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대상도 일단 한번 속사로 포착하기만 하면 그 대상의 이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춰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에세이 ⟨기술적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책에서도 잘 나옵니다.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본문이 100여 쪽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에게도 이젠 일상어가 된 ‘아우라(Aura)’ 개념을 비롯, 이 아우라에 의거한 예술의 자율성이 붕괴되어 있는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성격 문제, 그리고 사진, 음악, 영화가 오늘날 대중의 지각양식을 어떻게 변모시키고 있는지 등의 진단과 전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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