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주에 걸쳐서 ⟪캄포 산토⟫의 후반부를 읽습니다.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아기토끼의 아기, 아기 토끼⟩
2. ⟨스위스를 거쳐 유곽으로⟩
3. ⟨꿈의 직물⟩
4. ⟨영화관에 간 카프카⟩
5. ⟨스콤베르 스콤브루스 또는 흔하디 흔한 고등어⟩
6. ⟨음악의 순간들⟩
7. ⟨재건 시도⟩
8. ⟨독일 학술원 입회 연설⟩
(5) [제발트 읽기] 『캄포 산토』 같이 읽어요
D-29
russist모임지기의 말
화제로 지정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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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토끼의 아기, 아기 토끼]에서는 전에 읽었던 ⟪현기증. 감정들⟫에서 잠시 등장했던 시인 '에른스트 헤르베크'를 얘기합니다. 헤르베크는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던 인물로서 담당 의사의 인도로 시를 쓰기 시작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제발트는 말합니다. 헤르베크의 작품에서 비단 모자에서 마법처럼 꺼내는 토끼는 분명 작가가 그 자신을 그 안에서 발견하는 토템 동물이라고요. 헤르베크는 선천적으로 구순열을 타고 태어났으며, 입술이나 입천정이 두 갈래 갈라지는 구순구개열의 상흔 즉 토순兎脣은 그에게 정체성의 표식이 됩니다. 제발트는 빈 대학의 독어독문학과 교수인 기젤라 슈타인레히너의 말을 빌려서 구순열을 헤르베크 스스로 발견해낸 자아분열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슈타인레히너 실제 구순열이 아메리카 토착민 신화에서 태어나지 못한 쌍생아의 흔적으로 여겨진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갈라진 얼굴을 한 토끼가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최고신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 몸 안의 이원성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제발트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구순열을 앓는 토끼를 토템 동물로 삼은 자의 메시아적 소명은 비단 신성한 질서의 선택을 받을 뿐 아니라, 세속의 세계에서 배척당하고 박해받는 역할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헤르베크의 자전적인 글에서 그는 토끼를 자신의 토템 동물로 표현함과 동시에 토끼 고기를 먹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맛있었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끼에 대한 헤르베크의 시선은 양가적입니다. 이에 대해서 제발트는 헤르베크가 자신의 닮은꼴을 잡아먹음과 동시에 어떠한 공모에 가담했으며, 이는 "피해자로서만이 아니라 가해자로서 관여했여했다는 것은 우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삶의 시커먼 간계 속에 그가 어떻게 얽혀들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제발트가 포착해낸 작가의 독창성은 그 자신의 독창성이며, 따라서 헤르베크의 양가성은 제발트의 양가성이기도 합니다. 인상적으로 읽은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기증. 감정들(세계문학전집 123)(양장본 HardCover)W. G. 제발트 소설 『현기증. 감정들』. 형식적인 측면에서 두 편의 짧은 이야기와 두 편의 긴 이야기로 직조된 이 책은 각각 별개인 듯 보이지만 하나의 우주 안에 있는 네 개의 성좌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스탕달과 카프카에 화자 자신을 겹쳐넣고, 단테와 발저, 루트비히 2세, 그릴파르처, 카사노바 등 이미 죽은 이들과 마주하는 환영에 사로잡혀 흘러다니는 일종의 여행 문학이자, 제발트의 작품 중 드물게 자전적인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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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크는 이렇게 썼다 "시는 역사를 슬로모션으로 조형하는 구술 형식이다······ 시란 또한 현실에 대한 혐오로서 그 현실은 시보다 어렵다. 시는 학생에 대한 감독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다. 학생은 시를 배우고 시는 책 속의 역사다. 우리는 숲에 사는 동물들에 대한 시를 배운다. 유명한 역사 서술가는 가젤이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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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발트의 작품은 중간중간 생각지도 못한 묘사를 맞닥뜨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현기증. 감정들⟫에서 제발트가 헤르베크와 그라이펜슈타인의 성채를 걷는 장면 중에 인상적인 한 대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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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와 내가 나란히 앉아 이곳의 놀라운 풍광을 음미하던 화창한 10월의 가을날, 성채의 담벼락 위쪽까지 자란 나뭇잎들의 바다 위로 푸르스름한 안개가 떠 있었다. 바람이 숲 우듬지를 흔들며 지나갔고, 떨어져나온 나뭇잎들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떠올라 아득한 허공으로 하나둘 사라져갔다. 에른스트는 가끔 어딘가 아주 멀리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포크를 음식에 수직으로 꽂아놓은 채, 몇 분 동안이나 꼼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때 우표를 수집한 적이 있노라고,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고 아르헨티나 우표를. 그리고 그는 말없이 담배 한 대를 더 피운 뒤, 마치 지나간 자신의 삶에 대한 놀라움이 함축된 표현인 듯, 그에게는 분명 매우 이국적으로 들릴 단어 '아르헨티아'를 한번 더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가 함께한 그날 오전 시간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우리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으리라. 적어도 나는, 품위 있게 추락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은 결코 다 다르지 못하는 법. 말하자면 그라이펜슈타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제 옛날 같지 않았다는 의미다.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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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직물] 이번 산문은 나보코프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전반적인 경향을 탐구합니다. 제발트는 생전 나보코프가 강령술에 심취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의 작품에서 부유하는 듯한 시선을 감지합니다. "산문에서 빛나는 대목 중 상당수가 우리의 세상만사가 어떤 분류표에도 아직 기재되지 않은 외부의 종에 관찰당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밀사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연극에 어쩌다 한 번씩 객연으로 출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자아낸다." 이때 유령은 과거의 존재이며, 과거와 씨름한다는 점에서 "유령과 작가는 서로 마주 닿는다"고 제발트는 말합니다. 나보코프의 작품에서는 서술자와 그러한 서술자 바깥에서 펜을 쥔 작가를 더 넓고 높은 층위에서 조망하는 듯한 "비가시적인 관찰자"가 개입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나보코프는 문장을 쓰는 작가를 체스 전술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218쪽) 그들은 백의 여왕이 지배하는, 삶의 역전된 상이 가벼운 현기증을 일으키는 거울 속 망명의 세계에 이미 깊이 들어가 있다. 인생은, 운명이 사람을 말 대신 잡고 두는, 밤과 낮이 격자 무늬를 이루는 체스판이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여 잡고 죽이고, 하나씩 하나씩 상자로 돌려보낸다. 필시 나보코프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먼 선배라 할 수 있을 에드워드 피츠 제럴드가 번역한 11세기 페르시아어 운문에 나오는 표현처럼, 영원한 이동에 동참한 것이리라.
새삼스럽게 얘기해보자면, 대상을 관찰한다는 것은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관찰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이 자신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경우입니다. 그 순간 일종의 유령적인 시선을 얻게 됩니다. 자기 과거와 기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과거와 기억은 물론 같지 않습니다. 과거는 반드시 기억으로써 서술되어야 하는데, 이때 기억으로서 서술된 과거는 재현된 과거입니다. 현재의 시선에서 재편되고 편집된 이야기의 형식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기억을 서술하는 작업은 늘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제발트의 말처럼 "모든 기억 이미지를 하나하나 구출해내려는 작업은 심각한 환상통을 안겨"줍니다. 그 서술방식이 1인칭이든 3인칭이든 자기 자신의 기억을 논하는 한, 시선은 유령의 그것처럼 현실을 중력을 벗어나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체스판을 내려다보는 건조한 포즈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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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문의 마지막 문장은 나보코프의 자서전 중 한 대목을 인용합니 다.
"내가 앉은 식탁 자리에는 서쪽 창문을 통해 느닷없고 경이로운 공중부유 장면이 보였다. 순간, 그곳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흰 여름 양복 차림의 아버지가 공기 중에 영광스럽게 손발을 쭉 뻗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팔과 다리는 흥미롭게도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잘생기고도 침착한 얼굴을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힘찬 함성에 맞추어 그는 세 번 날아올랐고, 두번째에는 첫번째보다 더 높이 떠올랐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는 여름날 오후의 코발트블루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영원처럼,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의 모습은 편안히 날아오른 천국 사람 같았다. 그가 주름이 잔뜩 잡힌 의복을 입고 교회의 둥근 천장 위로 떠오를 때, 아래에서는 밀랍으로 만든 가는 초들을 쥔 죽을 운명의 손들이 향내 나는 안갯속으로 차례차례 작은 불꽃들을 일으킨다. 그러면 영원한 안식을 구하는 성직자의 성가가 울려퍼지고, 장례식 백합은 열린 관 속 헤엄치는 불꽃들 사이에 누운 그 누구의 얼굴을 가려놓는다."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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