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 5문5답] 3.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D-29
그믐의 새 코너, 다양한 분들을 만나 그 분들의 인생책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생책 5문5답]입니다. 인생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준 책. 좋은 삶을 살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용기를 주는 책.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인생책을 추천받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 세 번째 주인공은, 출판 일도 하시면서 송송책방을 운영하고 계시는 김송은 대표님입니다. 인터뷰는 2월 28일부터 시작합니다.
Q1: 김송은 대표님,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와 인생책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자기 소개 안녕하세요. 김송은입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2017년에 송송책방이라는 작은 출판사를 열어 만화책, 에세이 등을 내고 있습니다. 출판사를 시작할 때 마포에 작은 원룸을 얻어 사무실을 만들었는데, 막상은 매일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마시는 커피 값은 아끼겠지 하는 마음으로 2018년 송송책방이라는 북카페를 열었습니다.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닌데 저희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오무라이스잼잼> 시리즈의 어린이 팬들이 멀리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작년에 일신상의 이유(귀차니즘)로 한동안 카페 문을 닫았는데, 드문드문 멀리서 오셨다가 허탕치고 가는 손님들이 계셔서 3월부터 다시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강원도 영월에서 서점을 하셨어요. 책을 많이 읽었다기보다는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서점 서가에서 놀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넘겨보고 있으면 어른들이 칭찬하는 소리가 뒤통수로 들렸습니다. 그게 좋아서 자주 책 읽는 척을 했는데 실은 <선데이서울>의 야리꾸리한 화보나 만화만으로 꽉 채워진 <보물섬> 같은 걸 제일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서점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때 미처 재고 처리를 하지 못했던 책들을 가지고 와서 집엔 살림살이보다 책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TV를 버려서, 라디오를 들으며 책 더미 속에서 그나마 흥미를 끄는 책들을 발굴해 읽는 게 유일한 오락거리였지요. 그래서 교양인의 싹이 틔워졌는가 하면, 당시 읽었던 책 중 좋아했던 게 80년대 종종 출간되곤 했던 사회풍자가 조금 섞인 유머집 같은 거였습니다. 봉이 김선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부자가 머리 숙여>라는 책을 언니랑 서로 빼앗아가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초 베스트셀러였던 김홍신의 <인간시장>에서 야한 부분만 골라 읽던 기억도 갑자기 떠오르네요. ㅎㅎ 인생 책 소개 원래는 삼성출판사에서 1975년 최초 완역본으로 냈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다>를 인생 책으로 골랐는데요, 이 책은 절판이 되어 다른 책을 골랐습니다. 다른 판본도 많지만, 꼭 이 책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고양이다> 이야기를 조금 더 할게요. 중학생 시절에도 책 더미 발굴이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는데, 집에 책이 많다는 이유로 서가의 업데이트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책을 사달라고 하면 집에 있는 거 다 읽으면 사줄게, 라는 한숨 나는 대답만 돌아왔지요. 당시엔 밖에 나가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어둑한 방에 누워 이 책 저책 쏠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깜깜해지고서야 일어나 훌쩍거리면서 숙제를 하곤 했습니다. 삼성출판사판 <나는 고양이다>는 세로쓰기 2단으로 편집되어 있고 우철 제본이라 오른쪽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어 있습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편집이 많았는데, 아마도 일본의 영향이 아직 많이 남아 있던 때라 그런 것 같아요. 활판이나 활자 같은 걸 새로 만드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 변화가 느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쇄공이 직접 손으로 활자를 배열했던 시절이라 가끔은 글자가 가로로 누워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글씨는 뭐 거의 5포인트 정도 될까 싶게 엄청 작아서 지금은 ‘내 눈이 이래가’ 읽기도 어렵습니다만, 어린 시절엔 밝은 눈으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고양이가 화자로 등장해 인간들을 우습게 그려내는 것도 재밌었고, 이름도 없고 보호나 애정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고양이지만, 그런 것쯤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고양이가 죽는다고 오빠에게 스포일러 당해서 끝까지 읽지 않고 중간까지만 여러 번 다시 읽었습니다. 네, 인생 책이라 꼽아놓고 지금까지 다 읽지도 않았답니다. 낡고 바랬지만 어린 시절 애정을 듬뿍 주었던 책이라, 모든 책을 버리고 한 권만 남기라고 하면 이 책을 남기겠습니다. 그럼 새로 뽑은 인생 책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는 아사히신문의 기자로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퇴직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태어나 명문대 진학-대기업 입사, 성공한 엘리트였지요. 기명칼럼도 쓰는 인기 있는 기자였다고 해요. 그러다 지방지국 관리직으로 발령이 나고 ‘혹시 차별당하는 건가’라는 마음으로 괴로워 하다가 회사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10년에 걸쳐 회사를 그만둘-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준비를 하고 퇴사를 합니다. 이후에 출간한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를 읽어보면 그 배경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등장합니다. 당시엔 원전사고로 전 국민이 절전에 참여하고 있었다는데요, 작가도 처음엔 전기 사용을 줄이는 데 도전하다가 모든 가전제품을 버리고 종국엔 냉장고까지 버리게 됩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사회에 퍼진 ‘단사리(斷捨離)’운동의 영향을 넘어 극도의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버린 거지요.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 좌천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서 회사를 뺀 자기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하며 정신적 미니멀리즘도 실현해버립니다. 인생에서 곁가지를 쳐내고 돈에도 회사에도 의존하지 않게 되자 홀가분한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쓰고,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인생. 이후에 낸 책들을 보면 유럽에서 몇 달 살이를 하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기도 합니다. 유튜브를 찾아봤더니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시더라고요.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국내에 소개된 이나가키 에미코의 세 번째 책으로, 자신의 간소한 식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밥 국 채소절임으로 구성된 소박한 식사. 차리는 데 5분, 그런데 너무 맛있고 그걸로 충분할 뿐 아니라 다른 건 생각도 안 난다고 합니다. 대체 어떤 밥상일까요?
Q2: 새로 뽑은 인생 책으로 이나가키 에미코의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이 책이 대표님의 인생책인 이유에 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이 책의 원제는 <더 이상 레시피북은 필요 없어>입니다. 저자가 레시피북 없이 차려 먹는 식사는 밥, 국, 채소절임. 가끔 호사를 부릴 땐 튀긴 두부를 더합니다. 한 끼 비용은 2000원 정도. 넉넉하게 잡아도 한 달 20만원이면 먹고살 수 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려 이렇게 먹는 걸까요?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라고 합니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월급을 많이 받던 시절 온갖 화려한 식당을 찾아다니고, 요리책을 사모아 전 세계의 유명한 요리를 직접 만들어먹던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주방엔 온갖 향신료와 듣도 보도 못한 식재료가 가득하고, 흥이 나면 직접 만두피와 면도 뽑았다고요. 그랬던 그가 이렇게 변한 데는 ‘냉장고와의 결별’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절전 생활의 끝에 냉장고 코드를 빼버리는 이야기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 자세히 나옵니다.) 냉장고가 없으니 식재료를 쟁여둘 수 없고,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복잡한 요리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참고자료로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았는데, 그 시절 사람들은 나무밥통에서 밥을 퍼 된장국을 후룩후룩 마시면서 맛있게 먹더랍니다. 저거다! 싶었다지요. 휴대용 가스버너 하나, 냄비 하나, 주물 팬 하나, 요리와 식사 겸용으로 사용하는 나무수저 하나. 저자가 가진 요리도구 전부라고 합니다. 냄비에 밥을 지어 나무밥통에 옮겨놓고, 물을 끓여 말린 채소와 된장을 담은 그릇에 부어 휘휘 저으면 식사 준비 끝. 쌀겨 채소절임 통에서 채소를 꺼내 썰어 우적우적 후루룩 먹는 식사가 너무 맛있어서 밖에 나갔다가도 그 밥을 먹으러 달려 들어온다고요. 이렇게 먹으면 간편하고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 불안, 불안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불안도 느끼지 않는다. 불만도 없다.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까 싶을 만큼. 그렇다. 난 자유다. 혼자 사는 단칸방에서 ”새처럼, 고양이처럼, 자유롭다!“하고 허공을 향해 외치고 싶다.”(서문 중에서)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달리 보면 궁상맞은 식사에 대한 자질구레한 설명이 이 책의 내용 대부분입니다. 이 책을 읽은 건 2020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린 지 3년, 북카페를 연 지 2년째였고, 출구를 알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였습니다. 카페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고, 매일 우두커니 혼자 가게에 앉아 불안과 싸우고 고독과 악수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장 큰일이 난 건 아닌데 막연히 미래가 불안해서 매일이 불안했습니다. 불안해서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법륜 스님 책도 읽고 술도 마시고 집에 있는 물건도 잔뜩 버리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답은 소박한 식사에 있었다니. 제가 이 책을 읽고 바로 소박한 식사를 실천하며 불안을 이겨냈다! 그런 ‘간증’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읽고 쌀겨 채소절임(누카즈케)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는 했지만요. 이 책은 단순히 식비를 줄여 변동이 심한 세상에 유연하게 대응하자 그런 교훈이 아니라, 먹고사는 것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먹고 산다. 다시 말하면 먹으면 산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먹으면 생존은 한다는 거잖아요. 그동안의 제 인생은 뭐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놓치면 손해, 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대느라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마음을 기울여본 적 없이요. 아니 ‘더 좋은 것’을 원한다기보다는 뭔가 더 하지 않으면,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으면, 조금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나면, 인생이 다른 빛깔을 띠고 다가오지 않을까? 사실은 돈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그만일지도.”(1장 중에서) 먹고살 수 있으면, 앞으로도 적당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부여잡고 코로나 시대의 긴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Q3: 2020년 겨울, 이 책을 읽게 되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와 사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주세요.
2020년, 전 세계가 코로나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저도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불면의 밤을 보내며 이불을 덮어쓰고 휴대폰으로 우울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마침 오십견이 와서 오른쪽 어깨와 팔을 쓸 수가 없었어요. 와글와글 공포와 혐오를 쏟아내는 댓글을 읽으면 어깨도 더 쑤시는 것 같았습니다. 딱히 이유 없는 불안에 시달리며 주로 습관 교정, 미니멀리즘, 마음챙김 관련 책들을 읽었습니다. 세상이 불안하니 내 의지로 통제 가능한 공간과 생활을 관리하는 데 집착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 책 <먹고산다는 것에 대하여>도 그 시절 만났습니다. 한 끼에 2000원, 월 20만원의 식비가 인생을 자유롭게 한다는 이야기가 신선했습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자기가 먹을 밥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요리란 대단한 진수성찬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직접 지은 밥, 조리 과정이 간단한 반찬과 국입니다.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때우려 해도 3000원은 훌쩍 넘어가는데, 2000원에 한끼 식사가 가능하려면, 저렴한 제철 재료에 스스로의 노동을 더해야 합니다. 이렇게 차린 밥상은 저렴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요. (여담입니다만, 얼마 전, 가끔 방문하는 농막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치킨너겟을 데우려 넣었다 잊어버리곤 2주 만에 열어본 적이 있는데요, 구더기가 잔뜩 꾀어 있을 줄 알고 잔뜩 겁을 내며 열아보았는데 곰팡이조차 피지 않고 너무 멀쩡해서 깜짝 놀랐어요.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죠.) 이 저렴하고 건강에도 좋은 소박한 밥상을 통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중요한 단계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만족하는 거지요. 이 책의 원제가 <더이상 레시피북은 필요없어>인 이유는 레시피가 필요한 화려한 요리가 상징하는 ‘풍요로운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행복의 조건 같은 거요.
Q4: 이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분들께 추천하시겠어요?
이 책은 내 월급만 안 오르는 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요리란 재료에 간을 더하는 것’ 정도의 간단한 과정이라는 설명으로, 무언가 뚝딱 만들어 먹는 데 용기를 줍니다. “내가 먹을 밥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후다닥 만들어 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 최강의 인물은 바로 이런 인간이 아닐까.” 누구보다 10여 년 전의 저 자신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창 직장생활을 하던 30대의 저는 퇴근을 하면 바로 술집으로 달려가던 인간이었습니다. 육해공 가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탐했지요. 제손으로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주제에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오동통한 몸매를 만드는 데 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물론 맛도 있고 재미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만, 시간을 거슬러 등짝을 한 대 후려쳐주고 싶어요. 조금 과장하면 당시 경기도에 작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할 만한 돈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앞뒤 안 재고 뱃속에 때려 넣었으니까요. 그런 시간을 지나 이제는 현실이 무섭고 앞날이 불안한 자영업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다니는 현대 사회의 생활양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물건은 너무 흔하고 너무 싸고, 그래서 굳이 필요 없는 걸 사고 쉽게 버리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물건만이 아닙니다. 먹는 것도 지나치게 먹는 건 아닐까. 맛있는 음식은 물론 너무 좋지만, 매끼니 다른 메뉴로, 고기와 생선으로 채워진, 영양도 가격도 과잉인 식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밥상을 매일 누릴 자격이 있을까. 우리 집 고양이들은 매일 같은 사료를 불평 없이 맛있게 오독오독 씹어 먹는데. 이나가키 에미코가 간소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준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문명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의 이면에 숨은 위험을 알아버린 이상 예전처럼 살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풍요인가. 근본적인 회의도 들었을 테지요. 그렇게 다소 이념적인 접근으로 시작한 소박한 식생활이 의외로 너무 만족스러웠다는 게 반전입니다. 쌀의 단맛, 채소의 신선함, 된장의 구수함. 재료 본연의 참맛을 즐기게 되었고, 게다가 5분 만에 뚝딱 차려 먹을 수 있으니 생활이 복잡할 게 없습니다. 돈도 많이 들지 않고요. 이쯤에서 그동안 레시피북을 보며 양념을 계량하고 복잡한 재료를 지지고 볶고 삶고 튀겨 만들어냈던 화려한 요리는 다 무엇이었을까, ‘풍요로운 삶’이라는 세상이 정한 가치를 그저 따라가려던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지요. 이나가키 에미코가 돌고 돌아 마침내 정착한 소박한 밥상은,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갖게 해준 생활의 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내 손으로 차려 먹는 간단한 식사'로 이제는 지구 최강의 포식자가 아니라 지구 최강의 생존력을 가진 인간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Q5: 마지막으로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전자책으로 갖고 있어 정확한 페이지를 표시하지 못하는 걸 양해 부탁 드립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알고 나면, 인생이 다른 빛깔을 띠고 다가오지 않을까? 사실은 돈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그만일지도. 인생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은 고단하거나 복잡해서는 안 된다. 단순하고 행복한 일이어야 한다. 요리는 가급적 단순하게,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비슷비슷한 음식을 매일 먹는다. 나는 어느덧 그것이 가장 편안하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하든, 세상이 어떤 혼돈에 빠져들든, 난 아마도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이제 많은 돈도 넓은 부엌도 화려한 요리 도구도 없다.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 없더라도, 내가 마음속 깊이 맛있다고 여기는 밥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후다닥 만들어 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 최강의 인물은 바로 이런 인간이 아닐까. 자기가 먹을 밥은 자기가 만들자. 그것이 자유를 위한 길이다. 당신은 그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자신의 밥상을 차려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십년 후의 일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생이 끝날 때까지, 끔찍한 일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인데, 그런 소소한 바람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장담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불안한 까닭은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당신은 무력하지 않다. 요리만 할 수 있다면. 유사시에 아주 적은 돈으로 스스로를 기분 좋게 먹여살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 어떤 천재지변이 닥쳐도, 파산을 하여 궁지에 내몰려도, 모두에게 버림을 받아 혼자가 되어도 앞을 향해 살아갈 수 있다. 그 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생책 5문5답] 인터뷰에 함께 해 주셔서 진솔한 이야기 나눠주신 김송은 대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 주고 싶은 분들은 contact@gmeum.com 으로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저 도우리가 찾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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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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