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3. <셔터를 올리며> 읽고 나눠요

D-29
4-1 - 분식이라는 사업 아이템의 특수성이 환기되는 챕터였습니다. 저비용의 식재료에 강한 향신료의 메뉴라 숙련된 조리 스킬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맛을 낼 수 있는 낮은 진입 장벽. 4-2 - 95/소망하며 우리는 큰다. 그런데, 아니 종종, 소망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4-3 - A/성장기 내내 편식을 하고 살았어서 god의 짜장면같은 기피 음식이 없네요. 물론 지금은 대충 아무거나 다 먹게 되었지만 음식에 대한 디폴트값이 거부였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기피 음식이 딱히 없는 거 같습니다. 체지방율에 신경쓰는 삶을 살다보니 액상 과당과 정제 탄수화물을 기피하고 있긴 한데 이건 인간적이지도 않고 그냥 좀 그렇네요.
4-1. 저의 부천대학교 근처에서 거주하던 저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도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대학근처라 그런지 당시에는 몰랐지만 벽에는 그라피티처럼 DEMO라는 빨간색 페인트칠도 많이 있었고 어느날은 어른들이 밖에 나가지 말라고도 하시고 시끌시끌하던 나날들이 떠오르네요 무엇보다 어머니와 같이 시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길 집앞 도로가 뽀얀 최루탄으로 뒤덮히고 막연한 기억입니다. 지금생각해보면 당시 철부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던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걱정도 되고 그렇게 편안하게 어린시절과 지금것 살아온 나날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대학생들이 싸워서 얻어진 환경이라고 생각이 드니 고맙기도 하고, 또 대학생들도 사실 애들인데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라는 생각도 스치고 복잡하네요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가 훗날 지금 어린애들이 저처럼 추억할 과거가 될테고 그들이 무탈히 성장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현재인의 책임이 있진 않나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4-2. 이 장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엄마는 언제나 푸짐한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화답했고 가게에는 항상 농담과 웃음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p.95 4-3. 기피하는 음식은 엉뚱하게도 도라지무침입니다. 이것도 어린시절 강렬한 기억때문인데요 배고픈 어느날 하얀 도라지무침이 감자볶음인줄알고 한웅큼 집어먹고선 감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입안이 얼얼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도라지무침이라고 크게 싫어할 이유는 없을텐데 말이죠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기대와 다를때의 결과였죠. 정말 마음먹기나름이라고 제가 기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연결되서 따라온다는게 너무 흥미로운것 같습니다.
ㅋㅋ 저도 도라지무침 싫어했던 기억이 갑자기 소환되네요 어른들이 신기했어요 이 맛없는 것을 왜 먹으라고 하는지 이해할수 없었어요, 그런데 나이 먹으니 없어서 못먹는 도라지무침이 되었네요 특히 저는 오이랑 양파랑 같이 무치면 넘 맛나더라구요
4-1 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 국민교육헌장 암기하기, 애국가 4절까지 틀리지 않고 쓰기 정말 그런 시절을 지나왔네요 저는 '갱지'란 단어에 훅 끌렸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알까요? 갱지? 이문열의 <변경>인가 기억이 가뭇가뭇한데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등장인물이 종이가 없어 학교 운동장에 그림 그리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서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부분이 생각났어요... 우리나라의 빠른 성장을 한세대에 체감하다니...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머님의 장사수완은 그냥 나오는게 아닌듯 합니다. 역시 천재의 감으로 장사도 어떻게 하면 잘되는지 아셨던 게지요...멋짐 뿜뿜 입니다. 위의 언니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집에서 했다가 얼마나 혼났던지... 정말 그 시절 그랬습니다. 4-2 p95 가게에는 항상 웃음과 농담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엇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p111 "너무 치우치치는 마" 4-3 저는 정호승님의 '슬픔이 기쁨에게'가 떠올랐어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랑 같이 암송했던 기억이...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장 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린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4-1 최루탄 시대…. 책으로만 본 역사의 한 장 면이 작가님의 사춘기 시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글로 배운 처참했던 역사의 사건이 작가님과는 너무 가까운 현실과 맞닿아 있어…. 4-2 p. 114 그해 6월, 우리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4-3 << 쑥국>> 국민학교 때 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00시에서 제일 큰 학교였기 때문인지 다른 곳에 비해 일찍 급식을 했습니다. 그 시절 급식은 급식실이 아니라 음식이 담긴 카트가 각 교실로 와서 교실에서 배식을 했던 시스템이였습니다. 그래서 각자 배식을 받아 책상에서 밥을 먹고 담임 선생님께 잔반 검사를 받았지요. 그 때 담임선생님은 유달리 잔반에 민감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봄 이였겠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쑥국이 나온 날 우리반 아이들은 대부분이 난리가 났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쑥국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잔반은 남기지 않아야하는데 쑥국은 정말 먹게 힘든 음식이였죠. 저는 다행히(?) 꾀가 바삭해서 우유급식 때 받은 우유를 얼른 먹고 그 빈 곽에 쑥국을 다 옮겨 담았습니다.(그 때 제 키가 커서 뒷좌석에 앉았기 때문에 가능했죠?! 모든 운이 따라 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사통과로 식판을 반납했는데…. 평소에고 입이 짧아 늘 선생님의 잔소리를 받던 아이는 쑥국 때문에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불행이도 그아이는 제일 첫줄이라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 그 아이는 선생님 명령에 억지로 쑥국을 먹다 식판에 먹던 음식을 개어냈습니다. 그 모습이 어린 기억에도 너무 안타 까웠지만 그 시절 선생님은 무서운 존재라 아무도 그 아이 곁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면 아동학대인 일들이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많았을 까요?!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저도 쑥국이 싫은데 그 아이는 아마 쑥 자만 나오면 진저리를 칠 것 같습니다.
4-1. 4장에는 학창시절 선생님과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읽다가 예전 체벌하던 중학교 선생님 생각나서 혼났습니다. 촌지 받는 거 좋아하시고, 조금 잘 사는 아이들 좋아하고 못 사는 아이들 무시하던 아주 못된 선생님이었죠. 선생님은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고 공부도 중위권에서 맴돈 저라는 사람은 매질할 때는 제외하고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작가님의 시대보다는 조금 늦게 태어난 사람으로 최루탄의 냄새는 저에게는 희미했지만 청춘의 아픔에는 많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4-2. 어느 날 목욕탕에 갔더니 사타구니에 검은 터럭이 풀처럼 돋은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몸에도 새 역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웠다. 그러나 올 것은 와야 했고, 거부하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세상은 물레처럼, 미싱처럼 돌았다. (p99) 4-3. A. '싫어하는 음식'이었던 곰탕에 대한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꼬꼬마시절 엄마는 곰탕을 한 솥 끓여놓고 집을 며칠 비우신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해 뜨기 전에 나갔다 한밤중에나 퇴근하셨지요. 곰탕에 소금과 후추를 넣어 간을 하고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소금을 곰탕냄비에 넣는 도중에 그만 소금통 뚜껑이 떨어져 그 안의 모든 소금이 곰탕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같아서야 배달음식을 시켜먹던지 했었을텐데 집에 곰탕 외에는 다른 먹을 음식이 거의 없었고, 곰탕을 다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바닷물보다도 더 짠 곰탕을 3일 내내 다 먹었습니다. 짠 맛 때문에 속이 안 좋아 구토도 했고, 곰탕의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났었습니다. 지금은 곰탕을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돼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는데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이 아찔합니다. B. 그 시절에 저는 만화책만 탐독했습니다. 시는 안중에도 없던 시절...
4-1. 가정방문과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처럼 세들어살던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시를 줄줄 외우던 중학생 시절이라니 정말 낭만적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낭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들었어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많은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생생한 글이 좋았습니다. 4-2. 범죄, 전쟁, 종교, 사랑이 범벅된 혼돈의 1980년대 중반이었다. (중략) 두려웠다. 그러나 올 것은 와야 했고, 거부하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세상은 물레처럼, 미싱처럼 돌았다. p99 4-3.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적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중에서 이 구절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절,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시였어요!
4-1. 강인한 어머니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랄 수 있었던 작가님은 행운아십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스스로는 얼마나 고독한 싸움을 매일매일 치뤄냈을지 생각해보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누워있는 남편, 세 아이들 생각에 막막했겠지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4-2. "질질 짜면 뭐 한다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앞만 보고 가야제." // 평소엄마는 좀 무뚝뚝한데, 장사꾼으로서 엄마는 또 달랐다. 쾌활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는 세상을 포기한 아빠가 누워 있어 한숨짓다가도, 방문을 열고 가게에 나서면 표정이 확 달라졌다. 4-3. '삶은메추리알'을 싫어합니다. 역전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모가 있었는데, 서울에서 주말이면 기차 타고 내려오는 아빠를 기다리며 그 집에서 몇 시간씩 놀곤 했습니다.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삶은메추리알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어느 날 그걸 먹다가 급체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아빠가 왔는데도 놀지도 못하고,, 이후로 삶은 달걀같은 것은 목이 메어 잘 먹지 못하겠어요.
벌써 사장이네요. 그런데 그믐의 다른 모임에서도 모임지기분이 말씀하셨듯, 한 권의 책으로 29일은 좀 긴듯한 느낌이 없지 않네요. 빅 히스토리에 그 기간이면 괜찮겠지만, 에세이는 좀; 한창 재미지게 읽을 때 답변을 하면 더 생생한 반응?이 나올터인데 그간 다른 책들을 더 읽게 되니;; 그래도 대단히 오래 전은 아니지만, 되돌아보며 다른 분들의 반응을 보는 점에서는 유의미한 듯도 하네요~ 저도 윗분 말씀처럼 "질질 짜면 뭐 한다냐."로 하겠습니다. 인생의 굴곡을 지나신 분들 많으시네요. Imf니 subprime mortgage니 변동금리니;; 공통으로 겪는 일들이 코호트 경험처럼 있어 그런가 봅니다. 물론 그럼에도 평탄대로를 지나는 사람들도 있고^^ 세번째는 영끌한 일부 중 잘못된 선택을 한 ㅜㅜ 극히 더 일부의 이야기겠지만; 안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바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선지국입니다. "피 채로 먹지 말라"셔서 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에 남는 시는,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한용운님의 <나룻배와 행인>을 좋아했습니다. 님의 침묵까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둘을 엮어보면? 푸른 산빛을 깨치고 난 작은 길을 따라서 아아 님은 갔습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이셔서 당신은 나를 즈려밟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리 가시는구먼요~ 꺼이꺼이. Feat. 진달래꽃도 살짝 섞었습니다. 저도 한 십키로 쯤 빠졌다가, 저녁에 무한리필 밥집 가서 파이팅 좀 했더니 다행히! 😭 다시 반등했습니다. 이눔의 변동금리는 이젠 진짜 결별해야 할 시기가 왔지 싶은데, 아니 곧 오지~ 와야지! 말입니다 ㅠㅠ
댓글 중에 @siouxsie 님의 '김밥 상한가'라는 말이 재미있네요. 저의 마음속 김밥 상한가는 4,500원입니다(야채김밥 기준). 최근에는 8천 원이 넘는 김밥도 보았어요..! 4-1.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가정방문 부분을 읽을 때, 작가님께 감정 이입이 되어 곤란한 마음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가정방문을 경험해본 적이 없네요. 대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담임 선생님이 학기초에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서 "너희 집엔 방이 몇 개니 차는 몇 대니" 하고 물으셨던 게 생각이 나요. 이런 식의 가정조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도 가정방문을 하는 곳이 있으려나요? 4-2. "엄마는 언제나 푸짐한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화답했고 가게에는 항상 농담과 웃음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볼까 봐 분식점 앞문으로는 드나들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골목을 돌아 양옥집 대문으로 들어갔다. 상가에 붙은 방에 갈 때도 언제나 뒷문을 이용했다. 그 방에는 밤낮으로 아빠가 누워 있었다." 4-3. A 슬프거나 아픈 추억이 깃든 음식이어도 먹기는 잘 먹습니다. 음식엔 죄가 없으니까요..ㅎㅎㅎ! 기피한다기보단 조심히 먹는 음식은 하나 있어요. 바로 엿인데요. 어렸을 때 판으로 된 갱엿을 사서 망치로 부셔서 간식처럼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다른 집도 그렇게 먹었으려나요). 갱엿을 씹어 먹다가 이가 하나 깨진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엿을 잘 먹진 않지만 가끔 먹을 땐 조심히 먹게 돼요.
p95 엄마는 언제나 푸짐만 서비스로 손님들에게 화답했고 가게에는 항상 농담과 웃음이 넘쳤다. 그런 풍경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무언가를 소망하게 만들었다. 힘겨워진 상황에서도 자녀들에게 희망을 품게 해주신 엄마 아이들의 건전한 성장에 온 힘을 다해 살아주신 것 같습니다 詩를 외우고 있엇던가를 어렵게 떠올려 보았습니다 새 -박남수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ㅡ포수은 한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새에 지나지 않는다.
2-1 그런 고도 성장 시기가 있었다는 걸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디테일을 더해서 보니;; 그 시기가 한편으로 상상이 됩니다. 지금을 그때와 비교해서 본다면 '뭘 해도 안되는 시기' 겠죠?;; 이런 생각을 하며 한 편으로 씁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후 문제도 그렇고 그럴 수 없겠죠.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챗GPT가 요즘 핫하던데 좋은 쪽으로 법안을 마련해서 개발해 나간다면 길이 열릴 수 있으려나요? ㅎㅎ;; 2-2 돌아보면 1980년대는 '뭘 해도 되는' 시기이기는 했다. 1980년대 중반은 더욱 그랬다. 나중에 대학 엠티에서 밤새 술잔 기울이며 선후배들의 인생 역정을 듣다 보면, 이런저런 가정사의 굴곡은 있었지만 1980년대에 먹고 사는 문제로 고충을 겪었다는 사람은 그리 만나보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자식들은 더욱 그랬다.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나라 살림을 잘해서 그랬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 자체가 그랬다.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았고, 경기가 호황이니 뭘 내다 팔아도 잘 팔렸다. 세상이 아직 극단으로 고착되지 않았고, 기회의 사다리 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다. "그때는 뭐, 농약 냄새 폴폴 풍기는 데서 살아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니께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제." p. 60 2-3 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6학년 중 전반부 3학년 때까지의 기억이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채운 기억들로 이전 기억들을 밀어낸 건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안타깝게도 떠오르는 게 없네요. 4학년 이후부터는 얼핏 기억하기로 386, 486 PC가 학교에 보급되면서 재미를 찾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타자게임 하면서 타자 속도 올리는 데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고인돌, 너구리 등의 도스 게임 하면서 게임 세계에 눈을 뜨기도 했고요. (기억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4-2 91. "질질 짜면 뭐한다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앞만 보고 가야제."
4-1. 유독 학교 선생님과의 기억을 다룬 부분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잇대어 학교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심한 우울을 겪던 때에 저를 변함 없이 든든하게 지원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담임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작가님의 국어 선생님처럼 제 담임 선생님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깐깐하고 결과지향적인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이셨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참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늘 품고 있고 저는 마음속으로 ‘은사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잊고 있던 (어쩌면 잊고 싶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행복하게 되살아나게 도와준 감사한 4장이었습니다. 4-2. 이 장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 돈이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것이 더 문제라는 말을 듣고 의아했지만 그걸 이해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이해하기로 했다. (e북 29p) 그 시절의 작가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피식하고 웃음이 났던 문장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육성으로 웃음이 터진 게 너무 오랜만이라 밑줄 그어봤습니다. ‘돈이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것이 더 문제’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버렸는데 저도 어른이 된걸까요?ㅎㅎ 4-3. A. 저는 굴과 조개류를 특유의 비릿한 향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래도 주면 먹고 먹으라 하면 먹는 수준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 싫어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저에겐 특별히 몸서리 칠 정도로 싫어하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아요. 특정한 기억과 경험 때문에 기피하게 된 음식도 없구요. 제가 지금까지 가본 외국은 모두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는데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가리는 음식 없이 심지어 현지식까지도 야무지게 잘만 먹었답니다. 근데 또 모르죠, 제가 더 많은 나라를 다니며 더 많은 음식 경험을 쌓다보면 싫어하는 음식이 생길지도. 아무튼 지금까지는 어떤 음식이든 행복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제 최애 음식은 유감스럽게도 떡볶이입니다..ㅎㅎ..) 4-3 B. 개인적으로도 참 속상한 일인데 저는 아끼는 시구절이 없습니다. 저에게 시란, 그저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해서 외워야만 하고 공부해야만 하는 무언가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특히 저는 국어 과목 학습 부장을 맡았었기에 시를 감상하기보단 연구하기에 열심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명시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주입식으로 내용과 해석을 달달 외웠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시와 관련된 추억 하나만 적어보자면 저나 제 또래들이 유일하게 자발적인 관심을 가졌던 시구절은 단연코 수능/모의고사 필적 확인란에 적어야 할 시구가 아닐까 싶네요. 역대 수능 필적 확인란 문구는 수험생들에게 참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 김영랑 <바다로 가자>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 김남조 <편지>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 박두진 <별밭에 누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 나태주 <들길을 걸으며>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 이해인 <작은 노래 2>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 한용운 <나의 꿈>
4-1. 여러분은 이 장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초등학교 5, 6학년 시절 집안에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트러블이 많았고 아 이렇게 난 엄마 없는 아이가 되나 보다 덤덤하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집안이 늘 그런분위기라 공부보다 공부하는 척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보는 딴짓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생때 데모도 숱하게 보고 코로 피부로 느끼고 518 광주에서의 일도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를 통해 처음 들었습니다.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동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전교조선생님들이 이슈가 있었고 제가 다니던 중고등학교는 당시 안기부장이 교장 동생이었습니다. 선생님들도 군출신이 많고 기독교와 군대가 섞인 묘한 하이브리드의 분위기... 아이스하키부가 있던 학교라 사랑의 매를 드시던 선생님의 아이스팩이 되어 맞고 날아다니던 기억 등 4-2. 이 장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문장을 적어주세요. - "어차피 손님도 많은데 라면에 들어가는 걸 좀 줄여라." 권하면 "내가 넣고 싶어서 넣는 것이여"라는 것이 엄마의 대답이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딱 엄마다운 말이다. -엄마가 언제 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언제 일어나는지도. - "너무 치우치지는 마." 돌아보면 1980년대는 '뭘 해도 되는' 시기이기는 했다. 1980년대 중반은 더욱 그랬다. 나중에 대학 엠티에서 밤새 술잔 기울이며 선후배들의 인생 역정을 듣다 보면, 이런저런 가정사의 굴곡은 있었지만 1980년대에 먹고 사는 문제로 고충을 겪었다는 사람은 그리 만나보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자식들은 더욱 그랬다.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나라 살림을 잘해서 그랬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 자체가 그랬다.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았고, 경기가 호황이니 뭘 내다 팔아도 잘 팔렸다. 세상이 아직 극단으로 고착되지 않았고, 기회의 사다리 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다. "그때는 뭐, 농약 냄새 폴폴 풍기는 데서 살아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니께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제." p. 60 저희집만 발전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주변에 지방에서 올라와 어렵던 친구들이 금새 자리잡아 가고 부자가 되는것을 본거 같습니다. 조금있는 친구들은 고학년이 되면 강남으로 이사들을 가고.... 4-3. 특별질문은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아래에서 원하는 질문을 골라 대답해 주세요. 혹은 A와 B 둘 다 답해 주셔도 됩니다. A. 싫은 음식은 지금은 아니지만 안믿기게 생겼지만 어려서 고기를 안먹었습니다 기억나는 음식은 나물들 어머니가 해주시던 나물무침들 그때는 왜 죄다 고추장에 버무리셨는지 가끔 생각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텐트치고 놀러가서 먹던 수입햄 긴 사각 캔이 기억납니다. B. 어떤 사람 -신동집(1924~2003)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별을 돌아보고 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차겁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 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혹시는 나의 잠을 지켜 줄 사람인가 지향없이 나의 밤을 헤매일 사람인가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또 한번 나의 눈은 대하게 된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없이 문을 닫는 그의 모습을.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그의 잠을 이번은 내가 지킬 차롄가. 그의 밤을 지향없이 내가 헤맬 차롄가. 차겁고 뜨거운 어진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나와 만난다, 언제나 이렇게 나와 헤어진다. 전영혁씨의 fm24시 끝마무리 시그널 음악과 같이 낭독해주던 시들이 생각납니다.
4-2. p95 소망하며 우리는 큰다. 그런데 때로, 아니 종종, 소망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4-3 A. 삶은 소라를 싫어합니다. 어릴 적 부모님 친구분들과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반찬으로 삶은 소라와 오징어, 멍게, 해삼 같은 것들이 큰 접시에 나왔어요. 맛있어 보여서 신나게 먹고 있는데 어른들이 뭐라고 하셨습니다. 여자애가 밥을 얌전히 먹지 않는다는 거였죠.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하셨던 거 같아요. 남성 중심 집안이라 뭐든 남자가 우선이었거든요. 뭔가 억울하고 분해서 씩씩거리며 먹었는데 그만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며칠을 끙끙 앓고 나서 한동안 해산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2-1 사업적 감각이 있는 아버지와 셈이 빠른 어머니를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우리 아빠는 슈퍼맨이라고 하는 것 처럼, 그 시절 부모님을 보던 시선이 느껴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2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했던가. 그렇게 많은 가정이 '닮은' 행복과 '다른' 불행의 꼭짓점 사이를 왕래하기 마련이지만 우리 가족은 상승과 하락의 고도차가 가팔라 그 체감 지수가 컸다. 2-3 우리 집도 작가님처럼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눈을 뜨면 기계가 빵 반죽을 돌리는 소리, 조금 지나 나던 고소하고 포근한 빵 굽는 냄새가 공기처럼 났어요. 어릴 때 잘먹는 아이었던지라 그 냄새를 자주 맡아도 질리지 않았어요ㅎㅎ 가끔 오전에 빵가게를 지나가며 나는 빵냄새에서 자연스럽게 그때가 떠올라요.
4-1 폭력교사로 통하던 선생님이 작가님께는 따뜻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 자국을 보면서도 그런 선생님을 좋아했던 작가님의 마음이 오묘하게 이해가 가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시대가 만들어낸 기괴함' ' 시간의 진흙탕'이라고 표현하는 작가님의 표현이 제마음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환경에 참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 인 것 같아요. 4-2 "질질 짜면 뭐 한다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앞만 보고 가야제." p91 -> 배워야 할 삶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ㅎ 4-3 / A 어릴 적, 쇼핑센터 지하에서 돈까스를 먹다가 게워낸적이 있어요. 큰 기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제가 돈까스를 돈주고 사먹었던 적이 없었더라구요. 게다가 그때 처럼 어둡고 습한 지하 공간에 가면 속이 울렁거리고, 그곳에서 파는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는 걸 지금 깨달았어요. 어릴적 기억은 머릿속에 남는게 아니라 몸속에 스며드는것 같아요.
3-1 일단 읽어오면서 계속 느꼈지만, 특히나 해당 장 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디테일에 놀랐습니다. 기억 보다는 일기를 참고했으려나요? 일기를 뒤 적이며, 그리고 오래된 사진첩과 추억 상자까지 뒤적이며 글감을 만드셨을 작가님의 모습이 왠지 상상되면서 미소가 번졌어요. '엄마는 외계인이 었다.' 라는 언급한 내용도 크게 동의 되었어요. 저희 어머니 성적표를 본 적은 없지만, 저도 저희 어머니가 왕왕 천재처럼 느껴지거든요. ㅎㅎㅎ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많 은 사람이라던데. 그런 점에서 작가님은 부자 같 아요. 이런 점 말고는 왠지 소박하실 것 같아요. (이랬는데.. 포르쉐를 몰고 다닌다면 충격적일 것 같으니, 더 알아보는 것은 그만해야겠습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우 하고 한 번씩 피드 올라오는 글을 보는데, 짧게 남기는 게시글에도 깨알같은 유머 포인트가 보입니다. 오늘 올라온 북토크 안내 피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장사는_ 안하고_토크나_하는_편의점_점주놈.jpg 미소를 띄며 글을 읽다가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지금은 꽤 오래되었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때의 감정 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물론 책 내용 속 작가님의 아버지는 사고 후 기적적으로 살아 서 돌아오셨지만.. 아마도 당시 작가님의 어머 니께선 살아 돌아와 준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 쓰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지네요. 이쯤에서 마무리할게요. 4장 내용으로 돌아올게요. 잠깐 진도가 뒤쳐졌 지만, 금방 진도 빼고 따라가겠습니다. 3-2 사고 소식은 새벽이었다. 엄마의 얕은 비명, 전화 기를 집어 던지듯 내려놓고 달려 나가던 차가운 바람의 감촉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비몽사몽 잠결에도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빠는 몇 차례 큰 수술을 치렀다. 곧 죽을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의사가 통보 했다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척들 앞에서 엄마는 망연자실 한 채로 말했다. 불행 중 다행으 로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엄마는 몇 개월간 병원에 살다시피 했다. (중략) 사경을 헤매다 간신 히 살아난 아빠가 퇴원해 돌아온 곳은 번듯한 우리 집 안방이 아니라 상가에 딸린 단칸방이었다. 의료 보험이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집안에 누가 크게 아 프기라도 하면 가계가 훌렁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다행히 집이 있었고, 병원비를 마 련하기 위해 엄마는 집을 내놓았다. 다른 사람에게 전세를 주고 우리는 상가에 딸린 방으로 옮겼다. 풍향동 집은 요즘 말로 '깡통전세'가 된 셈이다. p78~79
3-1 엄마를 외계인이라고 하지만, 작가님의 엄마에 대한 애정을 엿볼수 있었어요. 그리고 내 아이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풍향동 2층 집으로 이사가던 장면에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작가님 가족을 응원했어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기를 바랬지만, 아버지의 사고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어요. 3-2 (P72) 엄마는 외계인이었다. 나는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가 하릴없이 낳아버린 자식 같았다. E.T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밤하늘에 애써 손전등 불빛을 깜빡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P73) 엄마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일가친척들 앞에 자기가 이렇게 성공했노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수성가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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