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서의 발전 - 아마르티아 센] 일단 혼자 읽기

D-29
해리 G. 프랭크퍼트의 이름이 나오니 반갑습니다. 프랭크퍼트는 "평등은 없다"(On Inequality)라는 책에서 저런 주장을 펼치는데 위에 언급된 논문 내용을 대중을 위해 풀어쓴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책을 주제로 신문 칼럼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 칼럼에서 프랭크퍼트의 주장이 옳은 말인지 궤변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는데 여전히 헷갈립니다. 소득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구분해야 한다는 센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좀 넓어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평등은 없다주장이다. 1부에서는 절대적 평등이 왜 도덕적 선이 될 수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오늘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정치적으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 논한다. 2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의 원칙이 도덕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지를 살핀다. 《평등은 없다》는 이제까지의 경제 불평등 논의를 간명하게 정리하는 한편 그 논의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줄 것이다
칼럼을 통해 프랭크퍼트의 논증을 봤는데 정말로 궤변같지만 반박하기가 쉽지 않네요. 저는 다음과 같이 논증을 단순하게 이해했습니다. (원문을 읽어보지 못해서 심각하게 오해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오해라면 지적해주세요. 허수아비를 때리는 중이라면 매우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ㅎㅎ) 경제적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하는 문제가 나쁘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이유가 없다. 센의 지적처럼 경제적 평등을 역량의 평등으로 이해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기 때문에 위 논증이 성립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프랭크퍼트는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하는 문제가 나쁘다’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이 나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 때에는 그 나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쪽인 거 같아요. 말하자면 경제적 불평등이 나쁜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프랭크퍼트는 그렇다고 보는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와 이재용 사이에는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재용이 그 불평등으로 인해 센이 말한 ‘역량’이 박탈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론 머스크와 이재용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은 해소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역량을 박탈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 아닌가, 그렇다면 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 과제 아닌가, 제가 이해하는 프랭크퍼트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말이 궤변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기술이나 국제무역 방식이 현재 절대빈곤층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반면 슈퍼리치들의 부를 100배로 불려준다면 도입을 해야 할까요? 프랭크퍼트는 그런 기술이나 무역 방식을 도입하고 부자들의 부를 불려주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주장할 텐데, 저는 헷갈립니다.
몇 년 전의 저라면, 고민없이 그러한 기술 및 무역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을 것 같고, 지금도 굳이 고르라면 그럴 것 같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관리하는 일은 개인이 할 일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하면서요. 그런데 SNS가 상대적 박탈감을 극대화한다는 사실과,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SNS사용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종속된 요즘 상황을 고려한다면,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근데 굳이 기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배아픈 상황은 심각한 고통이고, 또 삶을 추동하는 주된 동기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배아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도 아주 똑같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습니다. 사회 수준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가 달라지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아사자가 나오는 나라에서는 절대 빈곤 퇴치가 우선이어야지, 상대적 박탈감 해소를 그 앞에 내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배가 아파도 말이지요.
경제적 불평등을 옹호하는 입장은 제가 그 부분을 아직 보질 못했는데 샌델 근작에서 능력주의를 다루는 부분과 연관지으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해요. 공정하다는 덫과 함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마이클 조던의 사례를 들어 자기소유주의였을까요? Who owns my body라는 화두로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그걸 더 갈고 닦은 건 바로 나자신!이기에 내 성공의 맛을 내가 온전히 누리는건 당연한데 불만있냐는 다소 재수없어 보이지만 딱히 반론도 못하겠는 맞는 말이론이 있었는데요~ 그게 능력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하고 가는 자본주의 방향과 맞물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meritocracy는 부정적 뉘앙스를 품고 있는듯 보이지만요~ 언젠가 빌 게이츠 아빠가 거액을 기부하면서 내 아들이 이 시스템하에서 잘 살도록 이 체계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부한다는 취지의 썰을 들었던 것 같은데요. 뭔가 전반적인 판형보단 조금씩 땜질하는 마음으로 균열이 터져나온 곳을 임시로 미담으로 납땜하면서 부자들의 온정주의에 기반하여 삐꺽거리는 시스템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신기루로 끌고 가는게 아닌가 해요. &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선 기든스 현대사회학에서 배가 고픈게 아니라 배가 아파서 혁명이 난다!고 수업시간에 김문조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절대빈곤할 때는 기력?이 없어서 또 너무도 세뇌하듯 나는 못해 ㅠ 에 빠져있어서 좀비마냥 그저 존재하면서 살아갈 것이고ㆍㆍ상대적 박탈감이 있어야 뭐가 좀 바뀌어야한다는 논의도 하고 그럴텐데 그걸 작가님께서 현수동에서 슬쩍~ 흘리셨잖습니까 ㅎㅎ
마음 속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서 정의론이 한 200권 정도 뒤로 밀리는 기분이에요. ^^;;; 어려운 책이로군요. 공정하다는 덫은 못 읽어봤고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조던의 예시는 기억이 납니다. 저도 어릴 적 비슷한 생각을 해봤던 터라 신기하다는 느낌으로 읽었어요.
자신들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혁명을 막겠다는 의도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지배계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쩌면 혁명의 가능성을 봉쇄하기에 가장 가증스러운 행위로 봐애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공교로운 건지 아이러니한 건지 저는 결과적으로 그런 주장을 펼치는 지배계층과 입장을 같이 하게 되곤 합니다. 혁명의 폭력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서요. 그리고 쁘띠 부르주아라고 욕 먹게 됩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가 아파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말씀은 입에 착착 감기는 명언이네요. 저는 배가 아파서도 혁명이 일어나고 배가 고파서도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별도로 한반도 역사에서 혁명다운 혁명이 없었던 이유는 참 궁금합니다. 배가 고프기도 고팠고 아프기도 아팠을 텐데...) 원래도 글 쓸 때 욕심이 많아서 원고 중간 중간에 생각들을 많이 흘리는 편인데 "아무튼, 현수동"에서는 그렇게 흘린 생각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이게 안 좋은 습관 같기도 하고, 고전이 된 작품들 속 장광설(풍성함?)을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뒤에 사회가 당신에게 환호해주었기에 그런 성공의 열매를 더 크게 과하게 맛보는거 아니냐? 그렇기에 사회와 그 성공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담긴 이론도 있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기에 적정지점에서 수긍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조던과는 전혀 무관한 그저 일반인의 입장이었구요^^; 정의론이 어려운 책이니까 대작가님께선 당연히 읽으셔야 하는 것입죠 ㅎㅎ 네네~! & 정확히 제도개선이 혁명을 막는다는 워딩을 제 96선배님께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경제학박사인가를 따셨던 것 같은데, 처음 들었을 땐 그래도 자본주의 병폐를 고치기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그걸 하지 말아야 한다니!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또다른 변명이 아닌가~~ 했었지만. 현실적으로 혁명이란 건 불가능해보이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위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나면 좋긴 하겠지만^^ 요원하고, 현수동 읽으면서 들었던 또다른 저작인 리얼 유토피아에서 그 가능성viability를 삼십년!인가에 걸쳐 협업의 결과물로 거대한 보고서를 내신 적이 있었는데요 그게 Real utopia by Eric Olin Wright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거기에서 틈새적 변혁, 단절적 변혁, 공생적 변혁으로 나누셨는데 틈새적 변혁이 말씀하신 땜질식 개선이고 혁명이라하면 단절적 변혁으로 가야할터인데 그걸 과연 누가! 할 수 있겠는지ㆍㆍ 한반도에서 지금은 종각에 동상으로 떠억허니 자리잡고 계신 전봉준님 정도 등장하셔야 동학혁명 정도 가능할지? 갈수록 자기만 챙기는 현대에 그렇게 거대한 마음을 품고 더나은 사회를 꿈꾸고 실행까지 한다는게 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작가님께서 아무튼 현수동에서 가능한 소소한 사회를 꿈꾸시고 그걸 지금 이렇게 그믐에서 온라인으로나마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ㅎㅎ
대작가! 가 되기 위하여 정의론을 (언젠가는)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정의론 순위를 다시 마음 속 to read list에서 100위 정도 올리는 것으로 ㅎㅎㅎ 아 이 팔랑귀... (‘대작가’라는 단어가 은근히 영향력이 큰데요.) ‘제도 개선이 혁명을 막는다’는 주장은 96학번보다는 86학번에게 더 어울리는 말 같은데... ㅎㅎㅎ 저는 앞서 적었듯이 혁명의 폭력성을 혐오하는 사람이고, 거기에 더해 『아무튼, 현수동』에서도 썼지만 지상낙원을 믿지 않거든요. 그래서 지상낙원을 더 빨리 가기 위해 그 과정에서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리에 찬성할 수는 없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땜질밖에 할 수 없다면 땜질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어렸을 때에는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배웠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며 ‘동학농민전쟁’이 되더니 이후 이제는 완전히 ‘동학농민혁명’으로 단어가 굳어졌네요. 한국사에 혁명이 없었고 그 이유가 궁금하다는 생각은 저만 하는 건 아닌가 봐요. 서울대 박훈 교수님의 칼럼을 얼마 전 흥미롭게 읽었는데 떠올라서 공유합니다.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1190300055
Big rapid change 그럴듯 하네요~ 혁명이란 게 꼭 누구를 때려잡고 뒤엎고 그런 것만이 아니라 명예혁명도 있었고 유엔인권상 엠네스티에서인가 암튼 세계적 인권상을 받았던 천만촛불혁명도 분명! 있었던 일임에도 없었다 그건 혁명이 아니다 하면 무엇이 혁명으로 간주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저런 전문가분들의 견고한 의견을 한낱 듣보가 뭐라 의문을 제기한다고 미동하는 것은 아닐줄 압니다^^ 다만 학계에서 어떤 분들의 의견은 굳이 그 가치를 없다고 하는 경우들을 봐 온듯 한 느낌이 있어서 말입니다~ 전에 언급했던 빈곤론의 수업을 진행하셨던 교수님은 김윤태 교수님이셨는데 이분이 기든스가 현대사회학에서 써낸 각 분야를 혼자! 영국의 팩트에 기반해서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저 분이 한국적인 팩트에 기반해서 저 고전을 업데이트했다고 여겼었는데요~ 당시 분위기는 그런 책은 없다 정도였던 걸로 보였습니다. 자신들은 (죽었다 깨나도) 할 수도 없으면서^^ 이미 한 사람을 가지고 제대로 평가해주지 못하는 모습이ㆍㆍ이래서 이 학문이 더 망하는 건가 생각했었어요; 물론 듣보의 의견이지요 ㅋ 평가의 디멘젼 자체가 다르단걸 인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이라 해서 꼭 전반적으로 볼 때도 맞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Ground theory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처한 기반에 맞춰 해석하고 그 틀안에서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요. 예전에 갈등해결관련 기관에서 워크샵을 한 일이 있었는데 공무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공무원들이다. 갈등해결은 우리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씀을요~ 학자들의 혁명에 대한 입장도 엇비슷한 건 아닐까요? 아렌트 혁명론을 읽었었는데 아렌트가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 상황에 대해 어찌 평가하실지 궁금해지네요. 아렌트느님은 학자를 넘어선 석학♡정도로 본다면 말입니다:)
big rapid change 개념 재미있죠? 저는 듣보조차 되지 못하는 지나가는 문외한입니다만... big rapid change와 혁명은 다른 거 같기는 합니다.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 시스템, 체제라 할 만한 것이 바뀌는 걸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어요. 그러려면 최소한 헌법 정도는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4.19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저는 4.19도 '의거'라고 배우고 자란 사람입니다 ㅎㅎㅎ) 촛불혁명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조금 주저하게 되네요. 과연 그 전후로 체제가 바뀌었는가.
그런것이고만요~ ㅠ 촛불때 매우 열심히! 참석했던 1인으로 우리가 대통령도 바꾸고! 평화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청소도 다하고 문화적으로 즐거운 혁명을 매우 높은 시민의식으로 해낸게 아닌가~ 했는데요. 대통령하나 바꾸었지만 역량있으신 분이 북한 위기/ 코로나 위기의 더블 위기 시에 등장하셔서 성공적으로 국정운영을 하셨지만 체제 자체가 바뀐게 아니므로 혁명이 아니로구먼요 ㅠ;; & 4.19가 혁명이라 하시면 최소한 한반도에 혁명이 있긴 했는걸요. (라면 너무 이 분야에 집착한 게 아닌가 싶지만;;)
으헉... 지나가는 듣보 문외한의 '이런 거 아닌감?' 수준의 잡상입니다. ㅠ.ㅠ
제 배웠던 2000년대는 '동학농민운동'이었는데 새로 알게 된 사실이네요.
명칭 관련해서는 여전히 논쟁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민중항쟁은 모두 혁명인가, 이건 또 한바닥 토론거리가 되겠네요.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아파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ㅎㅎ 과거에도 미래에도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살펴보고 싶은 것은 프랭크퍼트와 같이 경제적 평등을 소득의 평등으로 이해했을 때에도 논증이 성립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소득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소득 불평등이 야기하는 문제가 나쁘다. (만약 그러한 문제들이 소득 불평등의 해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소득 불평등을 옹호할 이유가 없다. 논증을 좀 더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해 위와 같이 이해한다면, 결국 핵심은 괄호 안의 숨은 가정일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가정에 대체로 동의하고, 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를 센이 말하는 역량 박탈로 이해할 수 있고(프랭크퍼트가 동의할 지는 모르겠지만..), 역량의 회복이 소득의 평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성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랭크퍼트의 결론만 놓고 보면, 소득적 평등이 협소한 목표고 역량에 주목함으로써 다양한 자유를 고려해야 한다는 센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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