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전쟁』 혼자 읽기

D-29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전쟁』을 29일 동안 혼자 읽는 1인 모임입니다. 저는 신앙은 없지만 영성은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태도가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폭력의 근원’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정이며, 민족주의나 팬덤 정치 같은 유사신앙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때 수녀였고, 『축의 시대』나 『신을 위한 변론』 같은 저작에서 무신론을 비판하며 종교의 긍정적인 면을 옹호했던 저자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가다듬고 싶네요. 틈틈이 밑줄 친 구절들 올리면서 가볼까 합니다. 번역본 종이책은 746쪽인데 저는 전자책으로 읽을 예정이라 페이지 표시는 따로 하지 않을게요.
[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의 원인이었다.” 나는 미국의 시사평론가와 정신치료사, 런던의 택시 기사와 옥스퍼드대 교수가 이 문장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한 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 때문에 벌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전쟁사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에는 수많은 사회적, 물질적, 이념적 요인이 관련되며 그 가운데서도 주요한 것은 빈약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임을 인정한다. 정치적 폭력이나 테러리즘 전문가들도 사람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잔혹 행위를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세속적 의식에서 종교적 믿음의 공격적 이미지는 지울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현대의 폭력적인 죄를 ‘종교’의 등에 실어 정치적 광야로 내몰곤 한다. ]
[ 내가 불교의 비폭력성을 언급하면 그들은 불교는 세속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문제의 핵심에 이르게 된다. 불교는 물론 17~18세기 이후 서양에서 이해해 온 의미의 종교는 아니다. 하지만 ‘종교’라는 현대 서양의 개념은 특이하고 괴상하다. 다른 어떤 문화 전통에도 그와 같은 것은 없으며, 심지어 근대 이전 유럽의 기독교도조차 이 개념을 환원주의적이고 이질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종교가 폭력으로 흐르는 경향에 대하여 무언가 말하려는 시도는 간단치 않은 일이 되고 만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성문화(成文化)되고 사적인 것이라는 근대 서양의 종교 관념과 맞아떨어지는 유일한 신앙 전통은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데, 이것은 이런 의미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근대 초기의 산물이다. 이 무렵 유럽인과 미국인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로지 종교 개혁을 둘러싼 신학적 언쟁 때문에 30년전쟁이 발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지금은 세속적으로 여겨지는 이런 수많은 활동이 매우 신성한 것으로 경험되었다는 사실을 앞으로 보게 될 것이다. 옛 사람들은 어디에서 ‘종교’가 끝나고 ‘정치’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구분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궁극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미를 추구하는 생물이며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삶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주 쉽게 절망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불가피하게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견디기 힘들다. 자연 재해와 인간의 잔혹성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의 신체와 정신의 약한 면을 강하게 의식한다.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또 경이감을 느끼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고대 철학은 우주 질서에 매혹되었다. 천체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게 하고 바다를 그 테두리 안에 가두며 땅이 겨울의 죽음 뒤에 계속 다시 살아나게 해주는 신비한 힘에 놀랐고, 더 풍요롭고 더 지속적인 이 존재에 참여하기를 갈망했다. ]
[ 현대의 유명인 예찬조차 ‘초인간성’의 모범에 대한 숭배와 그런 모범을 흉내내고 싶은 갈망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이 그런 특별한 실재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면 본질적인 갈망이 충족된다. 그런 느낌은 우리 내부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순간적으로 우리를 우리 자신 너머로 들어올려, 우리는 보통 때보다 우리의 인간성에 더 충실하게 살고 삶의 더 깊은 흐름에 가닿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교회나 신전에서 이런 경험을 찾지 못하면 예술, 연주회, 섹스, 마약, 심지어 전쟁에서 구한다. 전쟁이 다른 황홀경의 순간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 전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환희의 경험을 촉발하는 역할을 해 왔다. ]
[ 따라서 전사는 전투에서 다른 사람들이 제의에서 찾는 초월을 경험하며, 이것은 때때로 병적인 결과를 낳는다.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치료한 정신과 의사들은 군인이 다른 사람을 죽일 때 거의 에로틱한 자기 확인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환자는 나중에 동정과 무자비라는 감정들을 구분하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일관성 있는 인간으로 기능할 수 없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
[ 경제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던 중동, 중국, 인도, 유럽의 여러 제국에서는 인구의 2퍼센트가 되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 소수의 가신 무리의 도움을 얻어 대중이 재배한 농산물을 체계적으로 강탈함으로써 귀족적 생활 방식을 지탱했다. 그러나 사회사가들은 이런 부당한 구조가 없었다면 인간은 아마 절대 생존 수준을 넘어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문명화된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킬 여유가 있는 특권 계급을 만들어냈고, 그런 예술과 과학 덕분에 진보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모든 문명이 이런 억압적 체제를 채택했다. 다른 대안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종교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는데, 종교는 국가 건설과 통치를 포함한 모든 인간 활동에 스며들어 있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 30년전쟁 뒤 유럽의 평화를 회복시키려 한 초기 근대 철학에는 사실 그 나름의 무자비한 경향이 있었다. 특히 세속적 근대성의 피해자를 다루는 문제에서 그러했는데, 피해자들은 근대성이 힘을 주고 해방을 가져오기보다는 자신을 소외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세속주의가 종교를 대체하기보다는 또 다른 종교적 열광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욕망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세속적 제도, 특히 민족 국가는 거의 즉시 ‘종교적’ 분위기를 획득했다. ]
[ 수메르는 농업이 문명의 경제적 기초 역할에서 물러나는 근대에 이르기 전까지 모든 농경 국가를 지배하게 될 구조적 폭력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 엄격한 위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인 거대한 계단형 신전 탑인 지구라트로 상징되었다. 수메르 사회 또한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가장 높은 귀족의 첨탑에서 절정에 이르는 층층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개인은 모두 자기 자리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민 대다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런 잔인한 구조가 없었다면 인간은 진보를 가능하게 해준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문명 자체가 계발되기 위해서는 유한계급이 필요했으며, 따라서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성취는 수천 년 동안 착취당한 농민의 등 위에 세워진 셈이다. 수메르인이 문자를 발명한 목적이 사회 통제였다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
[ 메소포타미아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적이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만 신성한 것과 만나려 하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신성한 공동체에서 그것을 찾았다. 근대 이전의 종교는 별도의 제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종교는 공동체의 정치적, 사회적, 가정적 구조 안에 자리를 잡고 사회에 전체적인 의미 체계를 제공했다. 종교의 목표, 언어, 의식은 이런 세속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적 관행은 사회에 기본 틀을 제공했기 때문에 사적인 영적 체험이라는 근대의 ‘종교’ 개념과 정반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일이었으며 개인적 신앙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신들의 신전은 예배 장소가 아니라 경제의 중심이었다. 잉여 농산물이 거기에 저장되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에게는 사제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다. 도시의 관료이자 시인이며 천문학자이기도 한 귀족이 도시의 예배 의식을 주관했다. 이것은 잘 어울리는 일이었던 것이 수메르인에게는 모든 활동 — 특히 정치 — 이 신성했기 때문이다. ]
[ 대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체제는 철칙처럼 보였다. 서기 15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중동,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에 농경 문명이 자리를 잡게 되며, 이 모든 곳 — 인도, 러시아, 터키, 몽골, 레반트, 중국, 그리스, 스칸디나비아 어디에서나 — 에서 수메르와 마찬가지로 귀족은 농민을 착취했다. 지배 계급의 강압이 없었다면 농민이 경제 잉여를 생산하도록 강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구 성장이 생산성 발전과 발을 맞추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귀족은 대중을 최저 생활 수준에서 살도록 강제함으로써 인구 성장을 억제하여 인간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 농민에게서 잉여를 빼앗지 않았다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근대 문명을 이끌어낸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 예술가 철학자를 뒷받침할 경제 자원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트라피스트회 수도사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이 지적하듯이 이런 체제 폭력에서 혜택을 본 우리는 모두 5천 년 동안 대다수 사람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또는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의 말을 빌려올 수도 있다. “문명의 증거는 동시에 야만의 증거이기도 하다.” ]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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