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전쟁』 혼자 읽기

D-29
[ 그런데도 많은 병사가 참호에서 경험한 심오한 공동체의 느낌을 결코 잊지 못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외로움과 파편화에 대한 분명한 고발장이다. “갑자기 사병들 간의 동지애가 우리를 감쌌고, 이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토머스 로렌스는 그렇게 회고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를 가르친 한 교수는 “모든 사회적 장벽을 넘어서는 동지애의 기쁨을 발견하고 다시는 ‘시민 생활에서 젊은 중간 계급 남자를 노동하는 녀석들과 나누는 분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그는 그런 분리를 자신의 신체 절단처럼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보이지 않는 적을 미워할 수도 없었고, 마침내 자신들이 몇 달 동안 포격하던 사람들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처럼 인간이자 병사인 사람들, 우리처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한 이탈리아 병사는 말했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그러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근본주의 운동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예를 들어 16세기 이전의 기독교인은 늘 성경을 우화적으로 읽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심지어 칼뱅조차 〈창세기〉의 첫 장이 생명의 기원에 관한 사실적 설명이라고 믿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믿는 ‘광신적 인물들’을 신랄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새로운 근본주의적 전망은 성경 자체의 뻔한 모순도 전면적으로 부정할 것을 요구했다. 어떤 대안에도 폐쇄적이고 오직 자신의 맥락에서만 일관성이 있는 성경의 무오류성은, 큰 불안에서 태어난 닫힌 사고방식을 만들어냈다. ] 〈11장 근대의 폭주와 근본주의의 반격〉
[ 모든 유형의 근본주의는 현대의 전쟁과 폭력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에서 발생한 충격적 학살은 종말의 시작일 뿐이며, 이 전례 없는 살육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전투임에 틀림없다. 복음주의자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현대 사회의 중앙 집권화와 세계 지배에 근접하는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우려도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새로운 국제연맹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로마 제국의 재생, 적그리스도의 거처를 보았다. 근본주의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세계를 곧 파괴할 사탄 세력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영성은 방어적이었으며 가톨릭 소수 집단의 불길한 영향력에 대한 편집증적 공포로 가득했다. 심지어 미국 민주주의를 “이 세상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악마적인 통치”로 묘사하기도 했다.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그리는 전쟁 유혈 학살로 가득한 ‘종말의 시간’의 으스스한 시나리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분석으로 완화할 수 없는 뿌리 깊은 고통의 증상이다. 그보다 덜 안정된 나라에서는 비슷한 불안 절망 공포가 물리적 폭력으로 분출하기 십상이다. ] 〈11장 근대의 폭주와 근본주의의 반격〉
[ 종교와 마찬가지로 ‘테러리즘’은 정의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다. 서로 경쟁하고 또 모순되는 규정이 너무 많아, 한 학자에 따르면 이 말은 이제 “용어 혼란에 싸여 있다.” 한 가지 문제는 ‘테러리즘’이 매우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고 영어에서 가장 강한 욕설 가운데 하나이며 어떤 폭력적 행동을 규정할 때 가장 비판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절망에 빠져 고백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우리 자신이 하는 행동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 말은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내포하기 때문에, 특히 대립하는 양자가 똑같은 감정을 실어 서로 똑같이 비난할 때는, 많은 것을 드러내기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 결과 근본적인 갈등의 성격을 명료하게 밝히기보다는 상대를 비난하는 데 그치게 된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테러리즘을 두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으로서 그 목적은 구체적으로 그들 또는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여 그런 협박이 아니라면 택하지 않을 행동 경로를 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시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재래식 전쟁의 몇 가지 형태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그러나 적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 테러리즘은 다른 동기 —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 가 개입해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또 본래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테러리즘의 핵심은 언제나 “권력, 그것을 얻거나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분야 연구를 개척한 한 전문가에 따르면 “모든 테러리즘 조직은 장기적인 정치적 목적이 혁명이건 민족 자결이건 현상의 보존이나 복원이건 개혁이건 영향을 끼치거나 대체하고 싶어 하는 정부와 정치권력을 놓고 싸움에 들어간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그런 관점을 지닌 다수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 비합리성의 전형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종교가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저명한 예가 리처드 도킨스인데, 그는 “오직 종교적 믿음만이 다른 때에는 멀쩡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완전한 광기를 일으킬 만한 강한 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하고 과도한 단순화는 종교와 테러리즘 양쪽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의 말은 물론 근대성에 대한 세속주의적 편견의 아주 익숙한 표현이며, 여기에서는 종교를 문명화된 나라의 정치에서는 배제해야 할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힘으로 정해놓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편견에서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이 가장 핵심적 교의로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명령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종종 테러리즘적 잔혹 행위에 연루되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는 1980년에서 2004년 사이 전 세계의 자살 공격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자살 테러리즘은 이슬람 근본주의, 나아가서 어떤 종교와도 관계가 거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레바논에서 벌어진 자살 공격 38건에서 8건은 무슬림, 3건은 기독교도, 27건은 세속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자살 작전에는 공통된 전략적 목표가 있다.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고국이라고 생각하는 영토로부터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세력이 철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 폭탄 공격은 기본적으로 군사 점령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가 무고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비난하고 그 피해자를 애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국가 또한 전쟁에서 그런 피해자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20세기 내내 민간인 사망자 수는 급격히 늘어나 이제는 모든 사망자의 9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정규군의 사망을 세심하고 엄숙하게 애도하고 조국을 위해 죽은 병사를 반복하여 기린다. 그러나 그들로 인한 민간인의 죽음은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그것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외침도 없다. 자살 폭탄 공격은 우리의 근본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매년 지뢰 때문에 자신의 조국에서 죽는 어린이 수천 명보다 충격적일까? 또는 드론 공격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보다? 적어도 서양인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공중에서 산탄식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덜 역겨울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긴다.” 영국의 심리학자 재클린 로즈는 말한다. “왜 피해자와 함께 죽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것보다 큰 죄라고 보는지는 분명치 않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비행기 납치범들 자신은 물론 9·11 잔혹 행위를 종교적 행동으로 보았지만 이것은 규범적 이슬람과 거의 닮은 점이 없었다. 아타의 옷가방에서 발견된 한 문건에는 시련을 겪을 때 도움이 되는 기도와 묵상 프로그램이 요약되어 있었다. 만일 정신병이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이라면 이 문건은 매우 정신병적이다. 이슬람 영성의 주요한 명령은 타우히드(‘하나 만들기’)다. 무슬림은 자신들의 활동과 사고를 통합할 때에만 신의 통일성을 진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문건은 사명을 세분화하고, 조각으로 나누어 — ‘어젯밤’, 공항으로 가는 길, 비행기 타기 등 — 감당할 수 없는 전체는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은 낙원을 바라보고 ‘예언자’의 시대를 돌아보라는 — 사실상 현재 자신들이 저지르는 잔혹 행위를 결코 생각하지 말라는 — 이야기를 들었다. 한순간 한순간만 살면서 그들의 정신은 무시무시한 피날레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기도 자체도 귀에 거슬린다. 모든 이슬람 담론과 마찬가지로 이 기도 문건은 비스말라 — “가장 자비롭고 가장 동정심 많으신 알라의 이름으로” — 로 시작하지만 자비나 동정심이 없는 행동을 가르친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내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무슬림이 우상 숭배라고 생각할 말로 넘어간다. “알라, 나 자신, 나의 가족의 이름으로.”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 부시의 마니교적인 세계관은 그의 행정부에서 현저하게 부각된 신보수주의자들의 사고를 반영하는데, 그들은 어떤 것도 21세기 미국의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명을 막을 수 없다는, 반은 신화적인 믿음을 품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세계 지도자 자리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대상으로 삼는다. 사실 신보수주의는 ‘믿음에 기초를 둔 체계’로 묘사되어 왔다. 교조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고 믿음에서 일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속 국가의 정치가 유사 종교적 열정과 확신으로 물들게 되었다. 미국은 어디에서나 세계적인 자유 시장, ‘하나의 진정한 경제’를 장려할 임무가 있다. 이것은 종교적 메시지는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부시의 정치적 기반이며, 여전히 미국이 ‘산상 도시’라는 비전을 따르는 1억 명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에게는 종교적 메시지로서 강력하게 울려 퍼졌다.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 ‘테러와의 전쟁’에서 두 번째 충격적인 상황 전개는 많은 수의 민간인 사상자다. 첫 석 달 동안 민간인 약 3천 명이 살해당했다. 9월 11일에 뉴욕, 펜실베이니아, 워싱턴에서 죽은 수와 대체로 비슷하다. 나중에 추방당한 아프가니스탄인 수천 명이 또 난민 수용소에서 죽게 된다. 전쟁이 시간을 끌면서 사상자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났다. 2006년과 2012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16,179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 서방은 신의 이름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테러를 늘상 또 정당하게 비난하지만 서방이 벌이는 전쟁에서 죽는 수많은 민간인의 고통과 죽음을 ‘부수적 피해’로 일축한다면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주장할 수 없다. 고대의 종교적 신화는 사람들이 국가 폭력의 딜레마와 마주하는 것을 도왔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현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딜레마를 부인하거나 우리의 마음을 냉혹하게 굳히도록 장려하는 듯하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아직 빌 클린턴의 유엔 대사를 지낼 때 한 말보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없다. 올브라이트는 나중에 그 말을 취소했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 1996년 CBS의 〈60분〉에서 레슬리 스탈은 올브라이트에게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 제재의 대가가 정당화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아이들 50만 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히로시마에서 죽은 아이들보다 많은 수다. …… 그런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 일인가?” 올브라이트는 대답했다. “나는 그것이 아주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가, 우리는 그런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가 날씨와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종교에 단일하고 변함없는 고유의 폭력적 본질이 있다는 주장은 부정확하다. 똑같은 종교적 믿음과 관행이 완전히 정반대의 행동 경로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히브리 성경에서 〈신명기〉 저자들과 사제 저자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두고 명상했지만 〈신명기〉 저자들은 적의에 차 외국 민족에게 등을 돌린 반면, 사제 저자들은 화해를 추구했다. 중국의 도가 법가 병법가는 똑같은 일군의 관념과 명상적 수양을 공유했지만 그것을 서로 완전히 다른 용도에 썼다. 성 누가와 〈요한복음〉 저자들은 모두 예수의 사랑의 메시지를 사유했지만, 누가는 사회의 주변화된 구성원에게 관심을 보였고 〈요한복음〉 저자들은 자신의 집단에 사랑을 한정했다. 이집트의 안토니우스와 시리아의 보스코이는 모두 ‘근심으로부터 자유’를 실행에 옮기려 나섰지만, 안토니우스는 평생 마음에서 분노와 증오를 비우려고 노력한 반면 시리아 수사들은 파충류 뇌의 공격적 충동에 굴복했다. 이븐 타이미야와 루미는 둘 다 몽골 공격의 피해자였지만 이슬람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수백 년 동안 이맘 후사인의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시아파에게 체제 불의에 대항하는 원칙적 항의로 정치 생활을 포기하도록 영향을 끼쳤으나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정치적 행동에 나서서 압제를 거부하는 쪽으로 영감을 주었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정치와 전쟁을 포함하여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었는데, 야심 많은 성직자들이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이 두 행동을 ‘뒤섞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이었다. 교황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투쟁한 유럽의 왕들은 ‘세속주의자’가 아니라 반신으로서 숭배를 받았다. 승리한 모든 제국은 자신에게 신성한 사명이 있다고 주장했다. 적은 악하고 미혹되었고 압제적이지만 자신은 인류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국가와 제국은 모두 힘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었기 때문에 종교는 그 폭력에 연루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서양에서 종교가 정치 생활로부터 퇴출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종교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많은 전쟁과억압과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많은가?”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세속’ 사회가 없었다. 그러나 정치 활동을 ‘성화’하려는 우리의 충동은 뿌리 깊은 것이라 프랑스 혁명가들은 가톨릭교회를 주변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하자마자 새로운 국가 종교를 만들었다. 첫 세속 공화국 미국에서 국가는 늘 종교적 분위기, 명백한 운명, 신이 허락한 사명을 품고 있었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종교적 관행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 숭배였다. 전근대 세계에서 종교는 공동체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조화롭게 함께 사는 것을 배움으로써 깨달음과 구원을 얻었다. 현자 선지자 신비주의자는 전사처럼 같은 인간에게 거리를 두는 대신, 사람들이 보통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또 그들을 책임지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세상 끝까지 자비를 확대하는 명상을 고안하고, 모든 존재의 행복을 기원하고, 동포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룩함을 숭배하도록 가르치고, 세상의 고난을 완화할 현실적인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 서양에서 세속주의는 이제 우리 정체성의 일부다. 이것은 그동안 유익했다. 특히 종교가 정부와 긴밀하게 결합하면 신앙 전통이 심하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속주의에도 그 나름의 폭력이 있었다. 혁명 프랑스는 강요 강압 유혈에 의해 세속화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전쟁에 사회 전체가 동원되었다. 또 이 세속주의는 지금도 많은 유럽인이 공유하는 종교에 대한 공격에서 추진력을 얻는 것 같았다. 미국은 그런 식으로 신앙에 낙인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종교는 번창했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 근대의 종교적 폭력은 이질적 종양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라는 현장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세계를 창조했다. 우리가 위험하게 양극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또 이전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지역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세계 시장이 충격을 받는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일 뉴욕, 런던, 마드리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전자 기술을 통해 연결되어 있어 외딴 시리아 마을이나 이라크 감옥에서 겪는 고난과 유린의 이미지가 즉각 전 세계에 비추어질 수 있다. 우리 모두 환경 재해나 핵 재난의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해 제1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특권적 범주에 넣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1세계의 정책은 광범한 격분과 좌절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으며 서양인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빈 라덴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난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 대답은 물론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 전쟁은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이 원인이라고 이야기되어 왔다. “경제적, 역사적 상황과 우리의 관계. 우리와 같은 인간들과 우리의 관계. 특히 무(無)와 우리의 관계. 죽음과 우리의 관계.”4) 우리는 오늘날 과거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이 현재의 ‘경제적, 역사적 상황’의 다루기 힘든 딜레마와 마주하도록 도와줄 이데올로기 —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 가 필요하다. 이제는 농경 제국의 억압적 불의와 싸우지 않지만 여전히 큰 불평등과 권력의 불공정한 불균형이 있다. 그러나 이제 소외된 사람들은 무력한 농민이 아니다. 오늘날 소외된 사람들은 맞서 싸울 방법을 찾았다.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의 자기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서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종교의 역사에서 십자군과 지하드만큼이나 중요한 ‘내어줌’, 이타심, 동정심을 요구한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 우리는 모두 세속적인 방식이든 종교적인 방식이든 현대 문화의 핵심에 자리 잡은 ‘무’, 공허와 씨름하고 있다. 조로아스터 이래 당대의 폭력을 다루려고 한 종교 운동은 그 공격성의 일부를 흡수해 왔다. 프로테스탄트 근본주의는 복음주의 기독교도가 제1차 세계대전의 전례 없는 학살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등장했다. 그들의 묵시록적 비전은 그저 유럽에서 발전한 ‘미래 전쟁’ 장르의 종교적 변형에 불과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은 세속주의자들도 괴롭히는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신앙의 언어를 사용해 왔다. 우리는 이런 운동의 가장 잔인하고 가장 자멸적인 일부가 부분적으로는 홀로코스트나 핵 위협에 대한 대응임을 보았다. 사다트 치하 이집트에서 슈크리 무스타파가 세운 무슬림결사 같은 집단은 현대 문화의 구조적 폭력의 왜곡된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속주의자들도 자살 공격에 의지했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 문화의 특징인 죽음의 욕망을 반영한다. ]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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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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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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