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전쟁』 혼자 읽기

D-29
[ 루터는 농민 전쟁에 관해 쓴 첫 소논문에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귀족의 ‘속임수’와 ‘강탈’을 질책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농민은 종교와 정치를 섞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루터는 그렇게 주장했다. 농민은 복음을 따라 다른 쪽 뺨을 내밀고 목숨과 재산의 손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농민은 무모하게도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신약의 가르침과 분명히 일치하는 견해였지만 루터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는 “세속 국가는 사람들의 불평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에, 일부는 자유롭고 일부는 감옥에 있으며, 일부는 주인이고 일부는 종”이라고 주장했다. 루터는 제후들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농민 선동가들을 진압하라고 권했다. ] 〈9장 근대의 개막과 종교의 도래〉
[ 개혁가들은 경전에만 의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성경이 엉뚱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중은 스스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 곧 예수의 가르침과 당시 교회나 정치의 관행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한 모순을 보게 되었다. 재세례파가 특히 파괴적이었다. 그들은 복음을 문자 그대로 읽어 신성로마제국, 시의회, 직인 길드 같은 제도를 비난했다. 일부 네덜란드 재세례파가 1534년 독일 북서부 뮌스터를 장악한 뒤 일부다처제를 제도화하고 사적 소유를 금지하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 이번만큼은 확고하게 의견의 일치를 이루었다. — 재세례파가 다른 도시들도 쉽게 흉내낼 수 있는 정치적 위협이 되었다고 보았다. 이듬해 뮌스터의 재세례파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연합군에게 학살당했다. ] 〈9장 근대의 개막과 종교의 도래〉
[ 토머스 홉스(1588~1679) 또한 국가의 교회 통제를 평화에 필수적이라고 보았으며, 강한 군주가 교회를 장악하고 종교적 통일을 이루기를 바랐다. 그는 헌신적인 왕당파로서 잉글랜드내전 뒤 파리 망명 중에 고전 《리바이어던》(1651)을 썼다. 종교의 분열적 힘은 하느님이 질서 잡힌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혼돈의 괴물 리바이어던을 제압하듯이 효과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홉스는 그렇게 주장했다. 홉스는 종교전쟁은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교조를 놓고 벌인 의미 없는 언쟁 탓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모두가 이 의견을 공유한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의 정치 이론가 제임스 해링턴은 《오세아나 공화국》(1656)에서 이런 갈등에 일조한 경제적이고 법적인 쟁점을 논의하지만 홉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직 “창피한 교리”로 민중을 잘못 이끈 설교자들만이 “최근 벌어진 모든 해악의 원인”이다. 홉스는 그렇게 주장했다. 장로교 성직자들은 잉글랜드내전 이전에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부추긴 데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벌어진 모든 일은 그들의 죄다.” 홉스의 해법은 절대국가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 국가는 인간이 자신의 믿음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바람에 쉼 없이 전쟁의 운명으로 빠지는 경향을 누를 것이다. ] 〈9장 근대의 개막과 종교의 도래〉
[ 청교도 신학에서는 ‘원죄’가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이 고집스러운 청교도 식민지 개척자들은 정체(政體)를 생각할 때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다스릴 절대주의적 해결책 쪽으로 기울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정부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히 거짓말 도둑질 살인에 빠져들게 되며, 이런 악한 충동은 오직 강하고 권위적인 정부만이 힘으로 제어할 수 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자유를 누리지만 오직 하느님이 명령하는 것만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들은 회심하면서 자신의 경향을 따를 권리를 포기했으므로 하느님이 그들 위에 세워놓은 권력에 복종해야만 한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는 원주민을 죽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 그들은 30년전쟁 중에 잉글랜드를 떠났기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시기의 호전성이 몸에 밴 상태였으며, 성경을 매우 선택적으로 읽어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예수의 평화주의적 가르침은 무시하고, 히브리 경전 일부에 나오는 전투적 태도에 의존했다. “하느님은 탁월한 전사다.” 알렉산더 레이턴은 그렇게 설교했다. 성경은 “가장 훌륭한 전쟁 지침서다.” 존경받는 목사 존 코튼은 그들이 원주민의 영토에 대한 천부의 권리를 지녔을 뿐 아니라 그들의 땅을 차지하라는 “하느님의 특별한 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상대의 “도발이 없어도” 공격 — 정상적으로는 불법인 절차였다. — 을 할 수 있었다. 훗날 미국 정치의 특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예외주의적 사고의 표시가 이미 눈에 보이고 있었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정치적 쟁점 — 연방의 보존이냐 해체냐. — 이 무엇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당혹스럽게도 북부인이나 남부인 모두 이념의 안내자로 의지했던 성직자에게서 공통된 견해를 찾을 수 없었다. 노예제 찬성론자는 수많은 성경 텍스트를 마음대로 갖다 댔지만, 노예제 폐지론자는 노예 소유자에 대한 명백한 비난이 성경에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성경의 정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은 한 세대의 젊은 남자들을 파괴했지만, 처음에는 많은 유럽인이 이 전쟁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 현상은 오랫동안 종교가, 또 이제 세속 시대의 새로운 신앙인 민족주의가 활성화한 그 감정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1914년 8월 유럽의 도시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는데, 이것은 프랑스 혁명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실체를 갖춘 현실로 만들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환희에 젖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원했던 친구들이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빛나는 유대를 느끼며 서로 끌어안았다. 그 후 이런 행복감은 공동의 광기의 분출로 폄하되었지만,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깊이 살아본’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또 ‘근대성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도 불렀는데, 사람들이 기능에 따라 규정되고 분류되며 모든 것이 순전히 물질적인 목적에 종속되는 산업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선전포고는 삶에 의미를 주는 고상한 이타주의나 자기희생을 향한 소환장으로 보였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불길한 종교적 계시처럼 전쟁은 20세기 문명이 감추고 있던 물질적이고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현실을 드러냈다. “모든 것이 기계가 된다.” 한 병사는 그렇게 썼다. “이 전쟁은 전문화된 인간 살육 산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그런데도 많은 병사가 참호에서 경험한 심오한 공동체의 느낌을 결코 잊지 못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외로움과 파편화에 대한 분명한 고발장이다. “갑자기 사병들 간의 동지애가 우리를 감쌌고, 이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토머스 로렌스는 그렇게 회고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를 가르친 한 교수는 “모든 사회적 장벽을 넘어서는 동지애의 기쁨을 발견하고 다시는 ‘시민 생활에서 젊은 중간 계급 남자를 노동하는 녀석들과 나누는 분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그는 그런 분리를 자신의 신체 절단처럼 느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보이지 않는 적을 미워할 수도 없었고, 마침내 자신들이 몇 달 동안 포격하던 사람들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처럼 인간이자 병사인 사람들, 우리처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한 이탈리아 병사는 말했다. ]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 그러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근본주의 운동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예를 들어 16세기 이전의 기독교인은 늘 성경을 우화적으로 읽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심지어 칼뱅조차 〈창세기〉의 첫 장이 생명의 기원에 관한 사실적 설명이라고 믿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믿는 ‘광신적 인물들’을 신랄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새로운 근본주의적 전망은 성경 자체의 뻔한 모순도 전면적으로 부정할 것을 요구했다. 어떤 대안에도 폐쇄적이고 오직 자신의 맥락에서만 일관성이 있는 성경의 무오류성은, 큰 불안에서 태어난 닫힌 사고방식을 만들어냈다. ] 〈11장 근대의 폭주와 근본주의의 반격〉
[ 모든 유형의 근본주의는 현대의 전쟁과 폭력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곤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에서 발생한 충격적 학살은 종말의 시작일 뿐이며, 이 전례 없는 살육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전투임에 틀림없다. 복음주의자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현대 사회의 중앙 집권화와 세계 지배에 근접하는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우려도 있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새로운 국제연맹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로마 제국의 재생, 적그리스도의 거처를 보았다. 근본주의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세계를 곧 파괴할 사탄 세력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영성은 방어적이었으며 가톨릭 소수 집단의 불길한 영향력에 대한 편집증적 공포로 가득했다. 심지어 미국 민주주의를 “이 세상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악마적인 통치”로 묘사하기도 했다.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그리는 전쟁 유혈 학살로 가득한 ‘종말의 시간’의 으스스한 시나리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분석으로 완화할 수 없는 뿌리 깊은 고통의 증상이다. 그보다 덜 안정된 나라에서는 비슷한 불안 절망 공포가 물리적 폭력으로 분출하기 십상이다. ] 〈11장 근대의 폭주와 근본주의의 반격〉
[ 종교와 마찬가지로 ‘테러리즘’은 정의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다. 서로 경쟁하고 또 모순되는 규정이 너무 많아, 한 학자에 따르면 이 말은 이제 “용어 혼란에 싸여 있다.” 한 가지 문제는 ‘테러리즘’이 매우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고 영어에서 가장 강한 욕설 가운데 하나이며 어떤 폭력적 행동을 규정할 때 가장 비판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절망에 빠져 고백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우리 자신이 하는 행동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 말은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내포하기 때문에, 특히 대립하는 양자가 똑같은 감정을 실어 서로 똑같이 비난할 때는, 많은 것을 드러내기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 결과 근본적인 갈등의 성격을 명료하게 밝히기보다는 상대를 비난하는 데 그치게 된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테러리즘을 두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으로서 그 목적은 구체적으로 그들 또는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여 그런 협박이 아니라면 택하지 않을 행동 경로를 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시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재래식 전쟁의 몇 가지 형태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그러나 적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 테러리즘은 다른 동기 —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 가 개입해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또 본래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테러리즘의 핵심은 언제나 “권력, 그것을 얻거나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분야 연구를 개척한 한 전문가에 따르면 “모든 테러리즘 조직은 장기적인 정치적 목적이 혁명이건 민족 자결이건 현상의 보존이나 복원이건 개혁이건 영향을 끼치거나 대체하고 싶어 하는 정부와 정치권력을 놓고 싸움에 들어간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그런 관점을 지닌 다수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스스로 비합리성의 전형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종교가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저명한 예가 리처드 도킨스인데, 그는 “오직 종교적 믿음만이 다른 때에는 멀쩡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완전한 광기를 일으킬 만한 강한 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하고 과도한 단순화는 종교와 테러리즘 양쪽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의 말은 물론 근대성에 대한 세속주의적 편견의 아주 익숙한 표현이며, 여기에서는 종교를 문명화된 나라의 정치에서는 배제해야 할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힘으로 정해놓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편견에서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이 가장 핵심적 교의로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는 명령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종종 테러리즘적 잔혹 행위에 연루되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는 1980년에서 2004년 사이 전 세계의 자살 공격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자살 테러리즘은 이슬람 근본주의, 나아가서 어떤 종교와도 관계가 거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레바논에서 벌어진 자살 공격 38건에서 8건은 무슬림, 3건은 기독교도, 27건은 세속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시도했다. 하지만 모든 자살 작전에는 공통된 전략적 목표가 있다.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고국이라고 생각하는 영토로부터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세력이 철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 폭탄 공격은 기본적으로 군사 점령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가 무고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비난하고 그 피해자를 애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국가 또한 전쟁에서 그런 피해자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20세기 내내 민간인 사망자 수는 급격히 늘어나 이제는 모든 사망자의 9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정규군의 사망을 세심하고 엄숙하게 애도하고 조국을 위해 죽은 병사를 반복하여 기린다. 그러나 그들로 인한 민간인의 죽음은 거의 언급하지 않으며 그것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외침도 없다. 자살 폭탄 공격은 우리의 근본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매년 지뢰 때문에 자신의 조국에서 죽는 어린이 수천 명보다 충격적일까? 또는 드론 공격으로 인한 부수적 피해보다? 적어도 서양인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공중에서 산탄식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덜 역겨울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긴다.” 영국의 심리학자 재클린 로즈는 말한다. “왜 피해자와 함께 죽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것보다 큰 죄라고 보는지는 분명치 않다.” ]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 비행기 납치범들 자신은 물론 9·11 잔혹 행위를 종교적 행동으로 보았지만 이것은 규범적 이슬람과 거의 닮은 점이 없었다. 아타의 옷가방에서 발견된 한 문건에는 시련을 겪을 때 도움이 되는 기도와 묵상 프로그램이 요약되어 있었다. 만일 정신병이 “관계를 보지 못하는 무능력”이라면 이 문건은 매우 정신병적이다. 이슬람 영성의 주요한 명령은 타우히드(‘하나 만들기’)다. 무슬림은 자신들의 활동과 사고를 통합할 때에만 신의 통일성을 진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문건은 사명을 세분화하고, 조각으로 나누어 — ‘어젯밤’, 공항으로 가는 길, 비행기 타기 등 — 감당할 수 없는 전체는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은 낙원을 바라보고 ‘예언자’의 시대를 돌아보라는 — 사실상 현재 자신들이 저지르는 잔혹 행위를 결코 생각하지 말라는 — 이야기를 들었다. 한순간 한순간만 살면서 그들의 정신은 무시무시한 피날레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기도 자체도 귀에 거슬린다. 모든 이슬람 담론과 마찬가지로 이 기도 문건은 비스말라 — “가장 자비롭고 가장 동정심 많으신 알라의 이름으로” — 로 시작하지만 자비나 동정심이 없는 행동을 가르친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내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무슬림이 우상 숭배라고 생각할 말로 넘어간다. “알라, 나 자신, 나의 가족의 이름으로.”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 부시의 마니교적인 세계관은 그의 행정부에서 현저하게 부각된 신보수주의자들의 사고를 반영하는데, 그들은 어떤 것도 21세기 미국의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명을 막을 수 없다는, 반은 신화적인 믿음을 품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세계 지도자 자리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대상으로 삼는다. 사실 신보수주의는 ‘믿음에 기초를 둔 체계’로 묘사되어 왔다. 교조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고 믿음에서 일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속 국가의 정치가 유사 종교적 열정과 확신으로 물들게 되었다. 미국은 어디에서나 세계적인 자유 시장, ‘하나의 진정한 경제’를 장려할 임무가 있다. 이것은 종교적 메시지는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부시의 정치적 기반이며, 여전히 미국이 ‘산상 도시’라는 비전을 따르는 1억 명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에게는 종교적 메시지로서 강력하게 울려 퍼졌다.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 ‘테러와의 전쟁’에서 두 번째 충격적인 상황 전개는 많은 수의 민간인 사상자다. 첫 석 달 동안 민간인 약 3천 명이 살해당했다. 9월 11일에 뉴욕, 펜실베이니아, 워싱턴에서 죽은 수와 대체로 비슷하다. 나중에 추방당한 아프가니스탄인 수천 명이 또 난민 수용소에서 죽게 된다. 전쟁이 시간을 끌면서 사상자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났다. 2006년과 2012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16,179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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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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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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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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