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전기화 평론가와 [멀고도 가까운] 함께 읽기

D-29
남겨주신 글을 통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책 제목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7장, 8장에서는 사람, 인생, 함께 살아감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메스를 든 신들에게 책 선물을 제물로 바쳤다. 의사들과 수간호사에게 주었던 이런 선물은 비록 사람들이 일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기는 하지만, 돈이 열정과 진심으로 일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어떤 인정의 표시였다.(7장)” -> 저 또한 ‘열정’과 ‘진심’이 ‘돈’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 공감했던 문장이었습니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해도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 노동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생각에 잠겨 봅니다. “질병이나 재난의 의아한 점 중 하나는, 그런 상태에 빠진 사람이 무언가를 희망하고 무언가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는 점이다.(7장)”, “유한함, 덧없음, 불확실성, 고통, 변화의 가능성 같은 것이 찾아와 삶을 그전과 후로 나누어 버리는 때가 있다. 수없이 들은 사실과 생각이, 생생하고 급박하고 실감 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8장)” -> 질병과 재난의 두 가지 공통점을 꼽아 보자면 대체로 갑작스럽게 닥친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유한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가장 실감하게 되는 것도 죽음인 것 같습니다. 막연히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은 다를 테니까요. 5장에서 선종의 명상에서 기초가 되는 숨을 세고 집중하는 훈련에서 불평하는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그 일시성이 분명해질 때, 숨은 지루하지 않은 것이 된다.”라는 말처럼, 일시성을 인식하는 순간 현재 나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여러 가지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잃기 전에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는 건, 자신이 겪지 않고도 깨닫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 깨닫는 순간, 깨닫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곧 변화의 시작을 의미하니까요. 그리고 절망 속 희망이 없다면 생을 이어나갈 힘을 잃게 될 것이고, 또한 변화를 꿈꾸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힘이 희망 아닐까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7장)”, “그 섬과 섬 사이에는 삶과 정신을 이어 주는 생각과 대화가 있다. 그 생각과 대화가 발생하고 효과를 미칠 때 혹은 당신이 관심을 기울일 때, 어쩌면 운이 좋을 때, 둘은 비로소 이어진다.(8장)” -> 개인이 ‘단절’을 느끼더라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저를 스쳐 지나갔고, 제가 만들어 온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책을 통해 그 이야기 속의 ‘생각과 대화’를 다시 깨닫습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현재에서부터 미래로 흘러가도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연대’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5장과 6장도 묘하게 연결이 되네요. 5장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은 변화를 의미하고, 변신의 과정(썩고 해체되는)을 거쳐야 새로움이 탄생한다는 것은 예전부터 많이 보아 왔던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절임이라는, 시간을 멈춰 버리게 만드는 개념은 처음 보는 것이라 꽤 흥미로웠습니다. p126 무언가를 보존하는 일은 그 변신 과정을 무한히 연기하는 일이다. 어쩌면 절임이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간은 무심하다. 시간 자체가 우리의 비극이며,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맞서 각자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라는 문장을 보며, ‘절임’이란 처치로 시간의 흐름을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지만, 영원히는 멈출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6장에서는 나병과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감각이 무뎌져 상처와 병을 그대로 방치하고 결국 썩어갈 수밖에 없는 몸에 빗댄 ‘정신의 나병화’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던 체 게바라의 모습과 점점 개인의 삶을 등한시하고 ‘대의명분’이란 이름 하에 고통에 무뎌져 정신적 나병에 걸린 혁명가 체 게바라 저의 경우에는, 어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뉴스를 잘 보지 않는데, 그런 뉴스를 계속 보면 어느 순간 ‘이제 좀 그만하지’라며 타인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그것만 보도하는 뉴스를 질려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몰아치는 영상들로 인해 사유와 고통이 쉽게 묻혀 버리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작가 본인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무뎌졌던 원인을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6장의 마지막에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끝이 아니라고 미끼를 던지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하네요. ^^
6장의 '감다' 7장의 '매듭' 8장의 '풀다' 7/8장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제목이 6장부터 연결되는 느낌이네요. 우리의 이야기를 감고, 매듭을 지었다 다시 풀어내는... 180p 화폐가 우리의 몸들을 따로 떨어지게 하고, 우리가 그렇게 떨어져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 같다.는 문장에서 자본주의가 우리의 나쁜 짓들을 얼마나 합리화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181p의 양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이해를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양을 적게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서 양을 많이 가진 부자의 합리화 같다는 생각만 들어 몇 번을 다시 읽었지만, 제 기준에선 합리화 외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전체 내용과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197p에서 ‘그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안 예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부분에서 혼자 빵 터졌습니다. 입원했을 때의 내 몸의 추례함도 정말 싫은데, 환자복까지....고통의 과정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속의 작은 아름다움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만일까요? 저는 (자칭)기독교인이지만, 항상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불교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8장에서의 고타마에 대한 이야기와 미얀마 승려들의 군부에 대한 저항정신도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216p에 그릇을 엎어 군부의 공양 따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 행위를 차단하는 것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일수록 큰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225p : 많은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다스리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의 외적인 원인을 근절하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만물에 공감할 것을 강조한다. 작가님이 올려주신 Anne의 작품을 보았는데, 범죄자나 범죄자를 잡기 위한 실마리를 잡을 때 벽에 사진이랑 지도랑 붙여놓고 실로 연결해 놓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작품이네요. 모나 씨의 작품은 가두시위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상징적인 그림이고요. 두 작품 다 어떤 이미지일까 했는데, 직접 보니 더 와 닿네요.
@day 님, 저도 선종의 명상에 관한 서술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는데, 7장과 8장의 내용과도 연결하여 읽어볼 수 있겠네요. 일시성을 깨닫는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지속되는 것이 없다는 데 관한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들 간의 연결, 책과의 대화, 독서와 연대를 연결해주신 부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를 day 님의 문장을 통해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siouxsie 님이 짚어주신 문제, 큰 사건을 다루는 뉴스들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한 보도에 질려버리게 될 나의 마음이 두려워 그것을 피하게 된다는 말은 제게도 오래 머무네요. 최근 읽은 김소연 시인의 글(<기대어왔던 것들에 기대어서>)에서 “애도는 많은 경우 종료되지 않은 세계이다. 사회적 죽음에 대한 애도는 더더욱 종료될 리 없는 세계이다. 영원히 현재에 있다.”는 문장을 읽었는데 애도의 완료 불가능성과 그것에 관한 끈질긴 사유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181페이지의 가난한 농부의 양을 자신의 손님에게 대접한 부자의 이야기는 저도 아리송한 부분이 있는데요, 인류학적 감수성으로 읽어야 하는 상징적 에피소드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사건이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주고받음을 상정한 큰 그물망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해집니다 ^^ 그리고 ‘예쁜 환자복’에 관해 들려주신 이야기에도 적극 공감합니다. 세심하게 읽고 포착해주셔서 저도 덕분에 그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9. 숨>에서는 이야기가 새처럼 이동하며 다른 이야기와 섞이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의미도 이동하고 모든 것이 변신한다는 서술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솔닛은 자신이 원래 익숙하던 공간과 거리를 확보한 아이슬란드에서 조금씩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네요. 그리고 <10. 비행>에 이르러서는 ‘미로’에 관한 문장들, 미로는 ‘실타래’와도, ‘책’과도 닮았다는 문장들이 흘러나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미로를 통해 인간은 ‘실제로 멀리 나아가지 않고도 대단한 여정’을 하게 되며, ‘출발했던 곳이 진짜 끝이기도 하다’는 문장은 저에게 낯설고도 설레는 감정을 가져다주었어요. 관련하여 솔닛의 문장으로 자세히 묘사되고 비평되는 엘린의 작품도 살포시 남겨둘게요, https://elinhansdottir.net/PATH 이어지는 부분에서 ‘듣는다는 것’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것이며,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284쪽)이라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오며 거듭 생각해오던 주제인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표현되고 있네요. 그리고 <12. 거울>에 이르러서는 잠시간 멈춘 듯 보였던 어머니와의 관계에 관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이 장에서 제시되는 ‘용서’에 관한 서술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부자 이야기는 저도 처음에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올랐으나 다시 읽어보면서 부자가 가난한 이웃의 양을 대접한 것으로 대접한 양에 대한 손님의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의 범위를 부자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넓힌 거라고 이해했습니다. 만약 부자가 자신의 양을 대접했다면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의 범위는 부자로 한정되었을 테니까요. 더불어 부자도 가난한 이웃의 양을 대접했기에 손님과 마찬가지로 이웃에게 ‘의무감과 미래의 답례’라는 그물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결국 가난한 이웃은 부자와 손님 모두와 연결되어 ‘양 한 마리를 잃음으로써 더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뒤에 나오는 것처럼 ‘호의’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베푸는 것을 말하기 위한 내용이지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 지인의 이야기, 작품 이야기에 동화까지 더해지며 책을 읽을수록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고, 챕터가 딱 구분되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9장> 저도 9장에서 이야기의 이동과 의미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더불어 ‘불교에서 말하는 차가움’이 ‘무관심’이 아닌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관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는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너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가 찾아올 때도 있으나 대부분 갑작스럽기보다는 서서히 쌓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언가 변화가 찾아오면 변화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는 알아차리기가 힘든 것 같아요. 폭풍 전야처럼, 태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무언가 올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만 있다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비단 영화나 소설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남들은 갑자기 무언가를 하고 바뀐 것 같으나 그 사람도 그 사람만의 발걸음에 맞춰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거기서 나는 조금씩 변해 갔다. 지난 몇 년 동안의 끔찍했던 불안은 서서히 사라지고, 내 안에 평화가 쌓여 갔다.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꿈처럼, 아주 긴 항해에서 툭툭 마주치는 풍경처럼 보였다. 그렇게 꿈같은 상태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내는 생활은 깊은 잡처럼 몸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 앞에서 나온 그런 ‘변화’나 ‘변신’의 과정에서는 이렇게 외부 세계와 차단되는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부에는 많은 소음이 존재하고, 우리 대부분은 내부의 소리를 듣는 게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가 ‘익숙하던 공간과 거리를 확보’를 통해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듯, 그렇게 함으로써 찾아오는 것들, 깨닫는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0장> “다른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차가운 섬. 그 섬의 작은 반도 끝에 있는 마을의 언덕 위 오래된 도서관에 딸린 가구도 없는 방에서, 나는 낯선 사람들과 새들과 함께 지냈다.” -> 이 문장은 10장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뭔가 눈길을 끌었는데 끝부분에도 똑같이 나오는 걸 보고 더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언젠가 아이슬란드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야를 통해 ‘빛’과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엘린의 작품인 미로에서도 나타나는 그 빛과 어둠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그 의미는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에 있다. 그것은 어둠이었고, 둘둘 감긴 길이었으며, 공간에 울리는 소리였고, 희미하게 비치는 빛이었으며, 혼란스러운 감각이었다. 몸을 부딪쳐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공간이었다.” -> 이 문장에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 또한 혼란이 찾아와도 직접 부딪치며 걷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을 듣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작품 속에 살고 있다.”, ‘동일시’, ‘감정이입’ ->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란 무엇인지, 그곳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만가만 짚어봅니다. 화자가 되는 것과 청자가 되는 것, 그 속에 온전히 속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11장>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개인의 이야기가 과연 그 사람만의 이야기인가, 그것으로 끝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답변하게 되는 챕터였습니다. “프로이켄은 전체 그림의 한쪽 모퉁이밖에 보지 못했다. 그림은 언제나 그렇게 커진다. 언제나 해야 할 이야기는 더 있고. 실 한 올이 다른 실과 얽히고, 그 실이 멈추면 다른 실이 이야기를 계속 앞으로, 지평선 너머로 끌고 간다.”, “그린란드 동부의 작은 집에서 얼어 버린 프로이켄의 숨처럼, 조금씩 당신을 조여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다지 근사하지 않은 도구나 들숨을 가지고 힘겹게 벗어나려고 애쓰게 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녹아 없어지는 썰매처럼 해체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그렇듯이, 폭풍우와 어둠 속에서 길을 알려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알 수 없고, 많은 이야기가 얽히고 얽힌 세상 속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 듣는다는 것, 서로의 이야기 안에서 산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아타구타룩의 일화를 다루는 다양한 이야기는, 이야기 속 주인공보다는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이에 관해 더 많이 말해 준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로가 되어 버린 이야기였다.” -> ‘이야기 속 주인공’보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는 이 문장을 읽으며 이야기와 각각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어떻게’라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다 보니 ‘그 자체로 하나의 미로가 되어 버린 이야기’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12장> 12장에서는 말하는 방법, 변화, 이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봤습니다. “이들이 영원불멸의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조각가 자신, 즉 돌을 통해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었다.” -> 말이나 글, 돌 등과 같은 수단을 통해 말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 방법에 대해 11장에 이어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변화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나왔던 살구를 함께 떠올렸습니다. ‘방한 토시’, ‘종이’처럼 많은 것이 ‘유지’되고 ‘오래 살아남을 것’이지만, 인간은 결국 변하고 지워집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그노미’라는 하나의 단어에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다는 내용을 보며 과연 이 모든 단어를 동일한 의미로 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용서’에 관한 서술에서는 “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다. 그건 단지 결점을 덮어주는 것과는 다르고,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이 와닿았습니다. 용서가 쉽지 않은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 그렇게 타인이 되어보며 한 이해는 ‘일종의 용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용서란 공적인 행동, 혹은 두 당사자 사이의 화해이지만, 용서가 마음속에서 벌어질 때 그 과정은 좀 더 불명확하다. 갑자기 혹은 서서히 무언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마치 어떤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그것을 넘어선 것만 같다. 그러다 그 무언가는 그것에서 벗어난 당신 스스로를 축하하려는 바로 그 순간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 여기서 타인을 용서하는 것과 자신을 용서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에게 주는 것’인 용서를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 다른 누군가’에게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주는’ 용서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것들을 고민해 보게 됩니다.
매 장의 제목 전에 있는 페이지(회색의 한 쪽짜리 글)의 내용이 이어지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다 읽고 나서 그 부분만 연결해서 읽어 보려고요. 그리고 풀다 이후에 9장 숨과 10장 비행으로 돌아오네요. 그래서 앞에서 했던 이야기(체 게바라 등)의 얘기가 다시 나왔던 것 같아요. 9장에서 충격적이었던 건 아이슬란드의 사망원인 1위가 기상 재해라는 것이었어요. 내용에서도 혹독한 겨울 날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260p 선 사상의 스승인 순류 스즈키 로시도 영혼의 수련에 관해 비슷한 말을 했다. “일단 어느 정도 수련을 하고 나면, 급격히 남다른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늘 조금씩만 나아진다. 젖을 걸 알고 소나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다르다. 안개 안에 있으면 몸이 젖어 가는 줄을 모르지만,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젖어 드는 것이다.” ->티도 안 나는 루틴 속에 사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 10장 269p 냉기는 안정된 것이고, 온기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 위의 문장을 읽고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모든 것이 고정된 극지방에서는 온기가 모든 걸 파괴?하는 것을 보고 저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277p 미로와 미궁(전 비슷한 단어의 차이를 훌륭히 설명해 주는 부분은 항상 가슴에 새겨 둡니다.) 미로는 미궁과 정반대다. 미궁은 하나의 복잡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이며, 때로는 중심도 없다. 그 안에서 헤맴은 끝이 없고 최종적인 도착지도 없다. 미궁이 대화라면, 미로는 주문이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미로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꺾이고 뒤틀린 곳에서 길을 잃게 마련이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 이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 된다. 285p 굶주리는 어린이 한 명의 입장은 쉽게 상상이 되지만 수백 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지역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큰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저 또한 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크기의 문제는 항상 체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돕자는 마음이 항상 앞서는데, 이것도 마음뿐 실제로는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과 연결해....286p 감정이입은 당신이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것을 보살피며 그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 나서는 여정이다. 눈앞에서 괴로움을 직접 목격할 때도 그 사람이 관절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최근에 집을 잃어 버렸는지를 알고 싶다면 말이 필요하다.
@day 님이 적어주신 “화자가 되는 것과 청자가 되는 것, 그 속에 온전히 속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란 문장은 12장에서 솔닛이 짚어내는 ‘신이나 성인, 보살’의 시각과 연동하여 읽혔습니다. ‘자아나 분열이 없는, 존재와 생성, 소멸의 거대한 순환’만이 있는 세계란 보통의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일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에 연루되고 나의 감정을 엮음으로써, 타인의 삶 안으로 들어섬으로써 (견고하다고 착각되곤 하는) 자아의 경계를 조금씩, 꾸준히 흐트러뜨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시그노미’에 관한 서술과도 이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솔닛은 이 단어가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 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고 말합니다. 이해와 감정이입, 그리고 용서가 따로 있지 않다는 이 말을 다시 들여다보며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용서’라는 것에 관해 나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 잠시 머뭇거리게 되더라고요. 특히 day 님이 짚어주신 나 자신에게 주는 용서라면 어떠할까, 용서의 층위를 갈라 섬세하게 따져보며 생각을 좀 더 이어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김혜진 작가의 소설 <경청>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가 다루어지는데, 다시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siouxsie 님이 짚어주신 것처럼 각 장의 뒤에 붙어있는 쪽글들은 이어집니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는 2006년 과학 기사의 제목에서부터 출발한 이 문장들(“당신은 슬픔을 먹고 지낼 수도 있다. 당신의 눈물은 달콤하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이 문장이 당신을 싣고 어딘가로 데려간다.”)이 어떻게 흘러가고 변주되는지 따라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에요. 자고 있는 새는 ‘무심하게’ 자신을 내어주고, 눈물로 배를 채운 나방은 날아갑니다. 그리고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의 이미지는 이야기를 먹고 사는 인간과 겹쳐집니다. “우리는 슬픔을 먹고 살고, 이야기를 먹고 산다. 그 이야기가 열어 주는 널찍한 공간에서 우리는 한계를 넘어 상상력을 여행한다. 이야기가 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자아의 가능성을 넓혀 보라고 재촉한다. 남동생이 종이 박스 세 개에 담아온 살구 더미, 그것도 눈물이었을까. 이 책도 눈물일까. 누가 당신의 눈물을 마시는 걸까. 누가 당신의 날개를 가지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걸까.”(371쪽) 어느덧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13. 살구>에 이르면 <1. 살구>로 돌아가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구성은 원환구조처럼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13장이 다시 1장의 꼬리를 물고 반복된다는 식으로. 그러나 이 책의 구성은 솔닛 자신이 해석한 미로에 보다 가깝지 않은가요, “미로 속 여정의 끝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리 한가운데가 아니라, 다시 입구로 나오는 것이다. 출발했던 곳이 또한 진짜 끝이기도 하다. 그것은 순례나 모험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집과 같다. 미로 안에서는 볼품없던 모퉁이나 여백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여정은 어딘가로 들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어 나오는 여정이기 때문이다.”(277쪽) 글을 읽고 쓰는 행위란 많은 경우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무언가가 되어 나오는’ 경험을 여러분도 경험해보셨나요? 오늘은 책의 문장을 많이 옮겨 적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틈’이라는 단어도 오래 붙잡고 굴려보고 싶고요. “명심하자.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허술한 배처럼 물 샐 틈이 많고, 삶의 대부분을 다른 누군가로 살아간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낯선 이로 살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적인 ‘나’는 사실주의 소설에 특히 자주 등장하는 물 샐 틈 없이 단단한 그릇 같지만, 사실 그 ‘나’는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경험하는 그 많은 틈들은 하나도 담아내지 않는다. 풀려 버린 끈, 낯선 꿈, 망각과 잘못된 기억, 다른 이들의 이야기 안에서 살았던 삶, 앞뒤가 맞지 않는 일과 일관성 없는 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장, 가까이 있는 유령 같은 것.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361-362쪽)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겨울 기운이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꽃들에 눈이 계속 팔려 발걸음이 흩어집니다, 가끔은 부러 먼 길로 돌아 걸어보려는 마음도 먹게 되고요. 이 시기를 지나며 이 책을 여러분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산책과 산문의 ‘산散’, 흩어지는 발걸음, 완고하지 않은 이음새, 그러나 그 덕에 틈 사이로 흘러들고 흘러가며 섞이는 말들, 연결되고 교차하는 이야기들,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무늬, 그런 것들이 여정에 깃들기를 바랐고, 이 책은 그렇게 함께 또 따로 걷기에 참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조금은 적적할 수 있었을 산책길을 함께 걸어주신 덕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며칠 뒤면 이 공간도 닫히지만, 그 전에 혹 남길 이야기들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꼭 챙겨 읽겠습니다. 모두 멋진 봄날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11장~마지막 프로이켄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타구타룩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런 극한 곳에서 생활해 본 적 없는 저에게는 모든 것이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여기서도 시각과 생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요.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300~301p), 현대에서 이루어지는 ‘식인’ – 신장이식을 위한 사형수의 장기기증, 결혼 지참금을 위한/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흐르는 장기 매매-에 대한 이야기도 충격적이었습니다. 301p 중남미 아이들의 복지와 심지어 그들의 목숨까지도 북반구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는 복잡한 국제금융의 교묘한 책략을 더 단순하고 충격적인 형태로 바꾸어 놓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작가의 어느 부분이 다른 사람의 피부조각이란 이야기.....302p 당신은 얼마만큼, 어떤 방법으로 식인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취하고 있는 그 타인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가.우리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서로를 취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 덕분에 즐거움을 얻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악몽을 꾼다. 앞으로 채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유를 아래처럼 얘기해야겠습니다. 303p “우리의 존재가 지닌 가장 큰 위험은 우리의 식단이 온통 영혼을 가진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아타구타룩의 끔찍한 일(가족을 먹은)을 다른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한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313p 그녀는 길을 잃고 고통을 겪었으며, 살아남았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의 감사와 존경을 받으며 기억되었다. 그것이 삶이었다. 325p 생명이 없는 것은 죽지도 않는다. 353p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어느 부분은 죽어야 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죽음이 먼저 오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의 죽음은 스스로 익숙한 자기 모습의 죽음이기 때문에. -> 연결되는 두 문장 그리고 12장에서 다시 돌아온 어머니의 치매 이야기를 보며, 어머니를 향한 미움,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조차 본인과 닮아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 부분에서는 저 또한 제가 너무나 싫어하는 엄마(아빠도)의 모습을 제가 닮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하죠. 하하 알츠하이머의 무서움을 또 알게 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337p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천천히 알려지지 않는 존재로,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기술이나 사실들을 잃어버렸음에도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기능을 잃어버린 자아의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마지막에서 작가는 삶은 지리멸렬하게 계속되므로, 이 책도 예쁘게 마무리 하지 않겠다는 내용까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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