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인생책> 임정균 평론가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함께 읽기

D-29
뉴욕도 아닌 마닐라가 라호르보다 더 발전한것을 용납할수 없어 하는 찬게즈의 마음이 뭔지 알것 같았어요. 국가의 발전에도 각자 마음속에 나름의 서열이 있지 않을까요.(저도 있어요) 5장을 통해서는 asian 이라는 정체성과 피부색을 벗어너지 못하는 찬게즈가 잘 표현된것 같아요. 줄곳 무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더 신경쓰고 있다는 증거같고, 짐은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과 찬게즈를 동일시 하지만, 그는 백인 미국인이고, 찬게즈는 파키스탄 유색인이라는 차이는 결코 넘어서기가 어렵겠죠.
911 테러 장면은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실시간 속보로 접했어요. 저는 그 안에 있을 사람에 대한 생각은 아주 나중에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어....어어...하면서 멍해지는, 그 이후 중동에서의 전쟁뉴스도 마찬가지로, 펑펑 터지는 영상이 현실로 와닿지 않았어요. 중동지역에 대 미국 테러에 대한 공공의 적이 있고, 그에게 응징하는 것으로 방송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일들을 겪은 사람에 대한 생각은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을 읽고서야 내 일로 느껴졌더랬어요. 그 어떤 인터뷰, 기사들보다 소설이 더 잘 전달할수 있는 것도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 반갑고 좋았어요. 찬게즈와 비슷한(이렇게 유능하지 않을지언정 미국에서 미국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중동에 뿌리를 둔 유색인) 입장의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이 책을 통해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도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고 있으니, 얼마 후에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이야기가 찬게즈의 이야기처럼 나오는 게 아닐까 하구요. 인종적 다름은 아니지만, 탈북자에 관해서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조난자들『조난자들』은 25분 만에 비무장지대를 건너 10년 만에 통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승현 박사의 자전적 에세이이면서도 우리의 뒤틀린 현대사와 일그러진 맨 얼굴을 보여주는 슬픔의 책이다. 탈북민인 그는 스스로를 ‘조난자’로 부른다. 조난자는 항해 중에 재난을 만난 사람을 의미한다. 저자에게 탈북민은 한반도의 분단 역사라는 재앙을 맞아 난파된 자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3만 명의
@진공상태5 님과 @호디에 님 말씀대로 세월호와 코로나도 우리에겐 강렬한 스펙터클로 다가왔던 사건이었지요. @바나나 님도 저처럼 새벽에 뉴스로 911테러를 접하셨군요 ㅜㅜ @진공상태5 님이 언급해주신 <조난자들>은 접해보지 못한 책인데, 말씀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중간자적 존재인 탈북민 역시 찬게즈의 입장과도 비슷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네요. @호디에 님 소개해 주신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SF 소설이군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인데 잘 갈무리 해뒀다가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5~6장의 에리카와 찬게즈의 관계도 중요한 듯해요.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내용은 후반부에 같이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듯하네요.
안녕하세요. 다들 좋은 의견들을 적어주셔서 저도 많이 배우고, 새로운 장면들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제목이 무겁기도 해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여러 말씀을 나눠주셔서 너무 든든하네요^^ 오늘은 7~8장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공유해볼까요. 찬게즈는 점점 더 “독선적인 분노에 사로잡”(85쪽)힌 미국의 분위기, 파키스탄에 남은 가족에게 구체적인 위협이 될 전쟁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면서도 언더우드샘슨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일은 더욱 승승장구 중이죠. 9·11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한 까닭일까요. 다행히(?) 찬게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미국에서의 성공에 더욱 열을 올리는 듯합니다. 여기서 제가 눈여겨본 것은 언더우드샘슨이라는 회사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찬게즈의 상사인 짐은 제조업 종사자였던 아버지가 당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던 미국의 경제구조에 둔감했다고 하며, 자신의 성공이 바로 그 변화의 시기에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요(87쪽). 이 대목은 현재 미국식 자본주의의 본질, 그리고 미국이 어떻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현대사를 잘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산업자본주의의 시대에서 금융자본주의로의 전환입니다. 막스 베버가 천민자본주의라고도 불렀던 금융자본주의가 미국의 경제체제가 된 것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일이죠. 굵직한 사건들만 언급해도, 흔히 재즈의 시대라 불리는 1920년대 미국 증권가의 호황, 1930~40년대의 대공황,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냉전, 70년대 오일쇼크, 1990년대 실리콘밸리의 성장과 2000년대 초반 IT버블,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잘 알려진 세계금융위기까지. 여러 사건들이 있지만 이 흐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미국의 화폐인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면서 미국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전세계를 장악하게 된 일일 겁니다. 언급한 모든 사건이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세계에 수출되고,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이 미국 달러에 종속되는 데에 영향을 끼쳤죠. 엊그제 뉴스를 보니 현재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해서 세계 금융이 또다시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고 해요. (아악 내 주식 ㅠㅠ 주식에 물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겠죠 ㅠㅠ) 이러한 배경 하에 이 소설을 살펴보면, 소설의 제목과도 무관하지 않은 한 문장이 보입니다.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중략) 재정에 관한 사항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어요.”(89쪽) 이 장면에서 독자는 드디어 종교적 의미의 근본주의와는 다른 의미의 근본주의와 만나게 됩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언더우드샘슨의 저 사훈은 그 자체로 근본주의지요. 그리고 우리는 20세기 미국식 자본주의의 변화에서 저 근본주의의 어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언더우드샘슨은 기업의 인수합병 전, 대상 기업의 가치를 평가(estimate)하는 일을 합니다. 위 문장을 다시 살펴보죠. 그 회사의 기본 원칙이란 “근본적인 것(fundament)에 집중하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재정(fund)에 관한 사항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substance)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인데, 이 역설적인 원칙의 어의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는 제목이 주는 첫 번째 수수께끼의 해답에 접근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 회사의 업무란 기업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업무에서 ‘근본적인 것’은 재정 상태, 곧 ‘자산 가치’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기 위해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을 무시하라니.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역설적인 말이 아닐 수 없지요. 이러한 역설에 의해 적어도 이 소설 속에서만큼은 ‘근본주의’가 뜻하는 바가 종교적 근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은 명백해집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적어도 ‘진짜 본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하며, ‘근본적인 것’ 또한 따로 존재한다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이 소설이 던지는 수수께끼는 ‘진짜 본질’과 ‘근본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물음으로 바꿔볼 수 있을 거예요. 이 물음은 존재 혹은 실체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물음을 기원으로 하기도 하고, 이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수수께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긴 연대기, 즉 인간 역사의 시작과 그 종말에 관한 철학적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소설을 마저 읽은 뒤 후반부에 하도록 할게요. 오늘은 이 소설이 말하는 ‘근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는 데에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그 밖에도 주목할 만한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떤 장면들이 인상 깊었나요. 가령 지난 시간 미디어의 스펙터클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찬게즈가 직접 경험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죠. “21세기 첨단 무기를 탑재한 미국 폭격기들과, 장비도 형편없고 먹는 것도 변변치 않은 아프간 부족민들 사이의 어울리지 않는 싸움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면서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90쪽)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내 개인적인 삶과는 전혀 관련 없는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어요.”(91쪽) 혹은 파키스탄이 크리켓을 잘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지요.(이건 미국 야구의 역사와 견주어 보면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 보죠.) 늘 그랬듯 함께 이야기 나눠볼 장면들을 올려주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네요. 특히 7~8장은 @호디에 님 말씀처럼 5~6장에 이어 에리카와의 이야기가 중심 서사인데요. 그 장면들을 언급해주신다면 더 좋겠네요.
또 늦었지만, 7-8장입니다. 평론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하고,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몰랐던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셔서 속이 다 시원해졌습니다. 저 또한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는 부분은 계속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읽고 넘어갔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언더우드샘슨의 기본원칙, 즉 자본주의의 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 저는 평론가님이 언급 안 하신 부분 위주로 말해 볼까 합니다. 86p 유감스럽게도 발생한 그런 드문 나쁜 사건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 일들은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변함없이 불운한 가난뱅이들한테 일어나지, 일 년에 8만 달러를 버는 프린스턴 졸업생들한테는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 이런 생각들 때문에 조금의 부라도 가진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더 베풀 수 있는데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베풀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있는 자들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의 역발상이라고 할까요? 저도 그렇고, 한국이란 나라가 정세상 딱 저런 생각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모신 하미드의 최근 작품인 '서쪽으로'가 난민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과 관련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06p <찬게즈가 주차장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욕을 먹고 난 후의 이야기> 그는......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요! 그 남자에 관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네요. 나이도 그렇고 몸집도 그렇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당신에게 얘기하는 사건들의 세세한 것들을 많이 기억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요지잖아요. 결국 나는 당신에게 역사를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당신도 미국인이니까 이해하겠지만, 역사에서 중요한 건 세부적인 정확성이 아니라 이야기의 요점이잖아요. -> 저의 확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이 대의 명분과 표면적 '사실'에 가려진 '세부적 진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힘 센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보여주는 홍보효과 가득한, 본인들의 살인을 합리화 하는 요점 말이죠. 진실은 저 너머로 넘어가 버리고요. 그리고 8장 마지막 부분에 비행기 안에서 기도하던 남자가 '신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찬게즈는 '신의 의지가 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 또한 '신의 의지'가 언제 알려질지 궁금합니다. ㅎㅎ
제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들을 짚어주셔서 감사해요^^ 86쪽에서 짚어준 내용은 한 나라 내에서 계급차에 관한 문제인데, 이를 조금 거시적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해요. 7-8장에서 20세기의 미국이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일을 언급했었는데요. 우리나라는 지금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도달해 있다고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체질 변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금융자본에 종속된 국가입니다. 이를테면 최근 주당 근무시간에 대한 이슈가 뉴스를 뒤덮고 있는데요. 선진국이 금융업과 서비스업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경제 체제를 전환하는 동안 우리는 선진국이 포기했던 제조업을 통해 부를 이룩했지요. 여기엔 건설과 조선업같은 중공업도 포함되고요.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보니 달러에 더욱 종속되기도 하고요. 국가의 전체 산업의 근간이 제조업이 되면서 우리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많이 일하고, 일하는 것에 비해 적게 버는 국가인 것이죠. 이런 문제에서 출발한 국력의 차이가 국가간 역사/정치적인 문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듯해요. 국가 간에도 분명 개인들 간의 계급차에서 발생하는 종속관계가 발생하고요. 일제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로 인해 지난 몇 해간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국민들이 불매운동까지 벌여가면서(그 와중에는 여러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지요) 경제적 피해를 극복해가는 와중인데, 최근 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공분을 사고 있어요. 이런 굴욕적인 외교도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해요. 우리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당장 한일관계로 인해 위기이기 때문일 텐데요. 이런 대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걸 수용하는 정부 역시 그 밑바탕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주의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 강국인 대만과 한국에 투자를 강요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구요.
제가 너무 확대해석 한 것일 수 있지만, 크리스가 죽은 후 성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에리카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무감각해져가는 현대사회를 대변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래에 일어난 전쟁이나 지진에 관련한 보도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후원도 하지만 정작 난민 수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순도 짚어볼 수 있는데요, 찬게즈가 에리카에게 크리스와 경험했던 사랑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고, 그녀는 크리스와의 추억을 찬게즈와 공유하는 모습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경청을 하고 쓰다듬어주는 아픔의 공유와 이해에 따른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말씀처럼 에리카는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 공감이 갑니다. 호디에님이 지적하신 부분처럼 에리카는 복잡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사회나 미국적 가치관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인물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에리카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후반부에 따로 주제로 떼어서 좀더 이야길 나눠보겠습니다.
저도 이 챕터를 읽으면서 근본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이 의미하는바가 다르다는데 주목했었습니다.
맞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소설이 처음에 제기했던 어떤 수수께끼들의 답을 조금씩 내놓고 있어 더 흥미로워집니다.
사전을 한번 찾아봤어요. 근본 根本 / 본질 本質 국어 사전으로 찾아보다가, 아리까리해서 한자를 찾아봤어요. 근본은 어떤것의 기본이 되는 것이고, 본질은 그 기본적인 것의 본래의 성질을 의미하는 걸까 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근본과 본질은 다르군요. 근본은 주저하거나 흔들릴 수 있는거지만, 본질은 그냥 본질 같아요. 제가 이해한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찬게즈가 왜 주저하거나 흔들리는지, "근본"이라는 단어때문인가봐요. 찬게즈의 본질은 그냥 찬게즈 그 자신일테니, 주저하거나 흔들릴게 없는 거겠죠?
안녕하세요. 한주가 시작되고 목요일에 이르니 조금 지치기도 하네요. 그래도 월요일엔 굉장히 쌀쌀했던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고, 곳곳에서 꽃향기가 퍼지는 듯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살펴볼 부분은 9~10장입니다. 여기에는 이 소설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가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듯해요. 에리카와의 관계에 관해서도 매우 중요한 장면들이 있지만, 저는 근본주의에 관한 내용을 주로 말해보려 합니다. 임박한 전쟁 때문인지 언더우드샘슨과 같은 직종의 회사가 하향세를 띠기 시작합니다. 마닐라에서 돌아온 찬게즈는 회사의 업무량이 줄기도 했고, 고향이 걱정되어서 라호르에 오게 되죠. 찬게즈는 자신의 집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고, 그것이 실은 자신이 미국인의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라호르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염을 깎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뉴욕에 와서도 동료가 찬게즈의 수염을 지적하지요. 테러 이후 수염이 무슬림의 상징이 되어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까닭입니다. 하지만 찬게즈는 자신의 수염이 자신의 본질이 아니라 스타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수염을 자르지 않습니다. “나 같은 혈색의 남자가 기른 수염이 당신네 나라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해요. 육체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데 말이죠. 결국 스타일일 뿐이잖아요.”(117쪽) 이 소설의 화자 찬게즈는 본질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더 이야기해 줍니다. 이를테면 “전쟁이 임박하면 아이들과 노인들을 피신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경우에 떠나는 건 가장 튼튼하고 영리한 사람들이었어요.”(116쪽) 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며 요즘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게 떠올랐어요. ‘헬조선’이라는 말처럼 전반적으로 살기 어려워지고, 또 계층 이동의 가능성조차 요원해지면서 더 유행한 듯한데요. 말하자면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정의, 도덕, 법과 규율을 지키는 게 도리어 영리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여기에서 바로 전 시간에 말했던 근본주의와는 다른 또 다른 본질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철학적으로 본질이란 선험적이고 항구불변하는 무엇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무엇이 본질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때, 기하학과 같이 수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이 아니고서는 대체로 우리 인간의 경험, 인식능력이 한계와 기준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본질 자체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그 시대가 대상을 바라보는 어떤 관점들의 차이에 따라 가변성을 띠기 마련이지요.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단위, 즉 사물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관점이 수천년 전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내세웠던 삼원소설에서 현재의 양자역학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나 빛의 본질이 파동인가 입자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근대과학의 대답이 이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이 소설이 예로 든 전쟁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아이들과 노인을 먼저 피신시켜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선험적’인 마음이겠지요. 그 선험성을 인간의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 사람들 중 저 말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동양의 성리학에서도 사단칠정이라 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해 유사한 말을 합니다. 그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우리가 따로 법으로 정해놓지 않아도 응당 그리하는 일종의 ‘자연법’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영리한 사람들이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선험적인 본성을 어긴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그건 그들에게는 공동체 모두에게 이로운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걸 우선으로 하는 어떤 행동 양식이나, 신념 같은 것을 지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10장에 이르러 이러한 일부의 ‘영리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금융자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 찬게즈는 에리카와 고향 생각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칠레의 한 출판사를 평가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출장을 가게 됩니다. 출판사 대표인 후안바우티스타라는 노인은 짐과 찬게즈에게 “당신들이 책에 대해 뭘 알죠?”라고 묻고, 짐은 자신이 미디어 산업 전공자이며 지금껏 열 개가 넘는 출판사를 평가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그건 재정 문제요. 나는 책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은 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찬게즈가 “제 아버지의 숙부는 시인이셨습니다”(126쪽)라며 책을 사랑한다고 말하죠. 이후 짐은 그 출판사에 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후안바우티스타라는 노인은 오랫동안 회사의 경영을 맡아 왔으나 실소유주는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본인들이 칠레에 온 이유는 소유주가 회사를 좋은 가격에 팔고 싶어하며, 의뢰인들은 그걸 사고자 하는 사람이라고요. 노인은 오랫동안 교육 전문 출판 분야의 이익을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작가들에게 투자를 해왔습니다. 소유주와 의뢰인의 입장에선 걸림돌이지요. 그리고 짐과 찬게즈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정 상황에만 집중하는 언더우드샘슨의 근본주의는 그 회사가 어떤 분야인지, 그 분야가 미래의 발전을 위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어떤 투자를 해야하는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재정 상황, 다시 말해 그 자본의 주인의 이익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자본가가 자신의 자본을 증식하는 과정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말하자면 언더우드샘슨이 표방하는 금융자본주의는 역사, 시대 상황, 환경, 어떤 가치관, 혹은 미래 가치 같은 여타의 조건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본가의 이익, 즉 금융자본의 증대만을 본질로 삼는 냉혹한 근본주의라는 것이지요. 이제 이야기는 찬게즈라는 인물과 금융자본의 증대를 유일한 본질로 삼는 또 다른 근본주의자인 짐의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찬게즈는 칠레의 다른 것들을 보려 하고 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죠. 찬게즈는 짐에 대해 “나는 자신의 직업이라는 작은 세계의 구조에 그렇게 완전히 빠져 있는 그를 존경할 수 없었어요”(129쪽)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금융 거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현재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인적, 정치적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129쪽)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후안바우티스타와 우연찮게 만나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 나누는 다음과 같은 대화입니다. “내가 젊은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될까요?” “그럼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것이 혼란스러운가요?” “우리는 평가를 합니다. 뭘 사고 뭘 팔지, 혹은 우리가 평가를 한 후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길지를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133쪽) 그리고 노인은 ‘예니체리’라는 어린 나이에 오스만 제국의 포로가 되어 자신들의 문명을 없애기 위해 싸웠던 기독교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이야기는 찬게즈에게 마치 자기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요. 이후 찬게즈는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는 나날들이 끝났다”(135쪽)고 생각하며 언더우드샘슨을 그만 두게 됩니다. 이쯤에서 제목이 말하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누구를 가리키며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해지는 것 같네요.
평론가님이 제 머릿속에서 비빔밥처럼 섞여 정리되어 나오지 않는 개념들을 문장으로 잘 풀어 주시네요~감사합니다. ^^ 9장 111p ‘내가 라호르로 돌아왔을 때 어떻게 이곳을 미국식으로 보았던지 기억나요......수치스러웠어요. 여기가 내 고향, 내가 살던 곳이구나 싶엇어요. 저급한 냄새도 났어요.’ -> 귀국자녀나 킴투이 작가의 ‘루’에서처럼 어렸을 때 외국으로 건너가 그 나라 사람인지 부모의 나라 사람인지 모를 정체성을 가진 것이 아닌데도, 찬게즈의 자아가 이미 미국에 많이 물들어 버린 것을 상징하는 것이겠죠. 저 또한 20여년 전 소위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에서 겨우 1년여를 보내고 와서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를 약간 깔보는 정체모를 우월의식에 사로잡혔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의 제가 부끄럽네요. ㅎㅎ 그리고 115p에서 자기 나라를 버리고 봉급을 많이 주는 직장과 본인을 만나 주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 괴로워하면서도 미국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10장에선 후안바우티스타라는 노인을 만나면서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126p : “당신들이 책에 대해 뭘 알죠?” “제 전공은 미디어 산업입니다. 이십여 년이 넘게 열 개가 넘는 출판사들을 평가했고요.” “그건 재정 문제요. 나는 책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은 거요.” “제 아버지의 숙부는 시인이셨습니다. 펀자브 지방에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책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예니체리에 대한 이야기... 135p ‘내가 아는 건,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는 나날들이 끝났다는 것뿐이었어요.’ 첫 장면에서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찬게즈가 어떻게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왔을까도 궁금했고, 현재의 직업도 궁금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인가?하고 걱정도 했고요. 이미 읽었지만, 마지막 부분을 읽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뜁니다. 그리고 에리카에 대한 부분은 저도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7장 초반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 일들은 나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변함없이 불운한 가난뱅이들한테 일어나지, 일년에 8만 달러를 버는 프린스턴 졸업생들한테는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바로 위에 임정균님이 써주신 수염이야기에서, 찬게즈의 수염이 어떤 백인이 스타일리시하게 기른 수염과 사실은 다를바가 없다고 해도, 찬게즈가 과연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찬게즈가 근무하는 회사인 언더우드샘슨은 감정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자산과 부채를 놓고 사업체가 안고 있는 걸림돌이 미치는 영향과 이를 제거할 시 갖는 사업체의 가치를 평가해주죠. 소설 속에서 찬게즈의 직업이 꽤 유의미한 설정이라고 생각해요. 찬게즈 본인 역시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언더우스샘슨에 입사하기까지 그가 갖는 가치를 평가받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테니까요.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데, 이민자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클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데요, 분쟁이 발생하면 강대국의 지원은 금전적이든 정치적이든 투자 가치 계산기를 먼저 돌리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잖아요(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죠). 평론가님 말씀처럼 같은 선상에서 후안바우티스타는 찬게즈, 즉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터전을 잡은 젊은이들을 오스만 제국 당시 기독교 소년들이었지만 인질로 잡혀 이슬람 군대에서 훈련을 받은 예니체리에 에둘러 비유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언더우드샘슨이 상징하는 가치 평가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가치의 평가는 물론 등가교환이라는 경제적 원리 때문인데요. 일상 생활이나 개인 간의 관계에서 가치의 평가와 교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경제 활동에서 충분히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런 미시경제의 경우에는 보통 경제 주체가 '나'라는 개인이고, 한 인간의 경제적 판단에는 여러 편견, 지식 수준, 경제 수준, 삶의 내력, 취미, 감정 등의 영향을 보다 쉽게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 등가에서 가치의 의미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지요. 여러 가지 기회비용들이 등가교환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그런데 지적해주신 국가 간의 관계처럼 거시적인 측면에서 그런 여러 조건들은 보다 쉽게 무시되는 것 같습니다. 조국이나 애국과 같은 문제가 힘이 약한 다른 국가의 평범한 민간인이 학살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할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자본이 보다 근본적인 영향력을 행하는 것은 거시 경제의 차원이고, 그런 차원에서의 경제적 등가 교환은 종종 인간 개인을 한낱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듯해요. 노동시장에서 노동자가 취급되는 방식도 같은 문제이지요.
@진공상태5 님처럼 저도 자주 사전을 찾아본답니다. 가끔은 제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도 사전을 찾아보면 뜻밖의 의미를 알게 될 때가 있어 '앎'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곤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근본과 본질은 한자의 축자적 의미에서는 그리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본질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현상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의 의미이고, 근본은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이라고 사전은 설명하고 있어요. 근본은 대체로 fundament로 번역되고, 본질은 essence로 번역되는데요. 영어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의미입니다. 제가 앞서 본질을 substance로 병기한 것은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존재의 본질을 실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fundament는 기초, 토대의 의미에 가깝고, essence는 어떤 것의 정수의 의미이죠. substance의 축자적 의미는 말 그대로 '아래쪽이 있는 것' 정도로 오히려 fundament 더 유사한 뜻입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세 단어를 정교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는 듯해요. 문제는 이것이 어떤 신념이나 주의가 될 때 어의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던과 모더니즘입니다. 근대로 번역하는 모던(modern)은 본래 '지금 이 시기'를 의미하는 당대(contemporary)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것이 자주 쓰였던 20세기 초반을 가리키는 말라 거의 굳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철학이나 예술, 역사 등 여러 분야에서 이 모던(근대)에 대한 기준이 제각기 다릅니다. 그리고 모던이 모더니즘(modernism)이 될 때 그것은 시기와는 또 무관해지죠. 모더니즘은 주로 20세기 초반의 특정한 예술적 경향, 혹은 이를 추종하는 일 따위를 가리키니까요. 이와 마찬가지로 근본이나 본질 따위의 어의가 철학적으로 세밀하게 구분된다 하더라도 대체로 비슷한 의미이지만, 근본주의와 본질주의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근본주의 혹은 원리주의가 보통 종교적 교리를 극단적으로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면, 본질주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서 본질이 되는 것을 찾으려는 철학적, 인식론적 경향을 가리키는 듯해요. 이러한 내용과 이 소설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후에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5, 6장에서는 평론가님이 지적한 두 부분에 저도 방점을 찍었는데요. 1) 저도 찬게즈가 필리핀에서 느꼈던 감정을 우리들도 느끼지 않나 싶습니다. (TMI지만, 저도 2년 정도 필리핀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게도 찬게즈와 비슷한 감정을 사는 내내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부색이 조금 옅다는? 그리고 ‘우린’ 동남아가 아닌 동북아 사람이란(심지어 이것조차 누군가의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지만) 희한한 자만심이 있죠. 그래서 영어권이나 영어가 유창한 유럽 사람들 앞에서는 버벅거리면서 동남아시아에서는 단어 단위로 말하는 영어로 큰 소리를 치며 “쟤네들은 발음을 못 알아 듣겠어.”라며 본인의 발음이 어떤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그래서 찬게즈도 장면마다 본인의 영어에 신경쓰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영어를 잘 한다는 건 지금 사회에서 권력이 맞는 듯하고요. 물론 작가는 그런 부분을 저와 다르게 매우 우아하게 묘사합니다. 2) 9.11테러가 났을 때 찬게즈가 희생자들의 고통이 아닌 미국에 대해 통쾌하게 생각했던 점은 제 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유추해 보자면 그가 바로 그 나라에 살고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예전에 (필리핀이 아닌 다른) 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그 나라의 한 개인이 주는 고통이나 차별, 멸시를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이 그런다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감정적 오류가 발생하는 거죠. 그런 의미로, 미국인들도 뉴욕에서 발생한 피해가 아닌 미국 국기를 달고 다니는 이상한 애국심이 발동하는 것일 테고요. 물론 테러범들은 미국을 공격한 것이 맞지만요. 테러와 전쟁 관련해 민족주의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지만, 영화 ‘프란츠’에서의 한 대목을 생각하면 과연 ‘대의 명분을 가진’ 전쟁/테러와 보복이 의미있는 행동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프랑스인들은 우리 병사들을 죽이고 와인으로 축배를 들고, 우린 프랑스 병사들을 죽이고 맥주로 축배를 들지요. 우리는 서로의 아들들을 죽이고 축배를 드는 아비들이오.” 참고로, 저는 TV를 잘 보지 않는데다 뉴스에서의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싫어서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던 9.11도 세월호, 이태원 사건도 모두 안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 뿐이네요.
말씀해주신 것에 정말 공감하는 순간이 많은 것 같아요. 해외에서 뿐만이 아니더라도 한국 내에서도 외국인 이민자나 여행자,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서구의 선진국 출신인지 혹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저개발 국가 출신인지에 따라 저도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지난 이태원 참사는 비극의 스펙터클 차원에서 사실 세월호보다 더 비참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다곤 해도 충분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들이 여과없이 매스컴을 통해 비춰졌는데요. 그로인해 전국민이 또다시 큰 충격과 우울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이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일상을 초과하는 그런 리얼리티들이 오히려 너무나 손쉽게 상징적 차원에서 정치적 자원이 되어버리는 걸 우리는 또 목격한 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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