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그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에리카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무성의한 태도에 있는 것 같아요. 그는 그것을 격식을 차리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라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무례에 가깝죠. 말씀대로 그에 대한 찬게즈의 응답이 훌륭하네요!
<평론가의 인생책> 임정균 평론가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함께 읽기
D-29
임정균
진공상태5
그러네요. 찬게즈가 어떠했든, 나왔을 화제라면, 거기에 잘 대응한 찬게즈가 대단한거네요.
제가 좀 좁게 생각했던것 같아요. 그런말이 나올 여지를 찬게즈가 주지 말았어야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무례한건데.. 제가 잘못 생각했던것 같아요.
바나나
저는 에리카의 방을 처음 들어서는 대목이 인상깊었어요. 기숙사 방을 전전하며 불안정하게 살았던 찬게츠가 '사람이 계속 갈아온것 같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방'을 보고 안정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찬게츠가 이런것을 동경했구나 생각했어요.
siouxsie
p34 : 사천 년 전, 인더스 강 분지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격자 모양 도로가 설치되고 지하 하수구를 자랑하는 도시에 살았어요. 그런데 미국을 침략해 식민화했던 그들의 조상들은 무식한 야만인들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 도시들은 대부분 무계획적이고 비위생적인데, 미국에는 우리나라 교육 예산보다 더 많은 기부금을 받는 대학들이 있어요. 이런 엄청난 차이를 떠올리며 나는 수치스러웠어요.
-> 임정균 님 말씀대로 찬게즈 또한, 현재의 미국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본인들의 나라가 역사적으로는 더 우월했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네요.
41p 짐은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더군요. 그리고 내가 있는 쪽을 바라봤어요. 나는 내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눈길을 돌려야 했어요. 하지만 그는 찬찬히 뚫어지게 나를 계속 바라보다가 결국 이렇게 말하더군요. "주의 깊은 친구군. 그게 어디서 오는 건지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어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거야. 내 말 믿게. 나는 아니까."
-> 이 부분을 읽고,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 "인간은 잘못된 장소에 가 있을 때 차별이 발생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턴들의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본인이 그곳에 속해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찬게즈를 더욱 민감하게 만드는 것이겠죠.
45p : 어렸을 때 부하 차단이 되던 날, 양초 하나를 잡다가 넘어뜨린 적이 있었어요. 촛농이 내 몸에 흘렀어요. 미국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는, 용해점이 너무 높고 안전하지 못한 밀초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제조업자한테 소송을 걸어 질질 끌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여기에서는 저녁에 시끄럽게 한바탕 울다가 당신이 보다시피 이상하게 길지만 다소 희미한 상처를 남기는 것으로 끝났죠.
-> 이건 찬게즈의 몸에 떨어진 촛농으로 비유했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자신들의 방식과 미국의 방식을 '찬게즈의 시점'으로 미국을 비꼰거 같아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에리카 아버지의 미국적 우월한 말투는...하하....웃을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어제 SNS에서 본 동영상이 생각나는데요.
동양인 여자와 백인 남자가 조깅을 하다 만나 쉬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그 백인 남성이 동양 여성을 보며 어쩜 이렇게 영어를 잘하느냐면 Where are you from?을 연발합니다. 여성이 난 오렌지 카운티에서 태어났고, 샌디에고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Where are you from?은 끝나지 않습니다. 뭐 뒷상황은 여성도 똑같이 Where are you from?을 연발하며 깜찍하게 복수하며 마무리짓는데....
저 또한 회사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외모는 외국분이지만, 한국어를 한국사람처럼 하시는 점원에게 절대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라고 물어보지 않습니다. 심정은 매우 복잡한데....
모두 어려운 얘기하시는데 저만 너무 가벼운 에피소드였네요^^
진공상태5
어, 말씀하신 유투브 영상 저도 예전에 본적 있어요. 피부색을 가지고 (끝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사실 저도 예전에 어린마음에? 남아공의 백인친구들에게 너는 원래 어디서 온거냐고 물은적이 있습니다 ^^;; 독일이야? 이런식으로요.. 넵, 제가.. 많이 어렸었습니다..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아요)
siouxsie
정말 알면 알수록 본인의 행동이나 말에 조심해야 해서 힘드네요...노화로 몸도 머리도 늙어가는데 말이죠 ㅎㅎㅎ 에구 허리야
진공상태5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잘 실천하는 것 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것은 연습이고 노력이고..
세상에 절대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이 갈수록 느끼게 되는 "진리" 같아요.. ^^
임정균
저도 그 유튜브를 본 기억이 나네요. 그 영상과 반대로 외국인들이 동양인의 영어 발음을 ‘전혀’ 못 알아 듣는 (척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죠. 사실 우리도 가끔 외국인들이 한국어 발음이 어설퍼도 알아듣잖아요. 가끔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나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뉴스나 미디어에 비춰지고요. 저는 그런 걸 보면 그들이 알고도 모르는 척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호디에
현재 4장까지 읽었는데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앞서 말씀하신 분들과 거의 비슷하네요.
도입부를 지나오면서 저는 이 소설이 '도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찬게즈가 다짜고짜 누군가를 미국인이라고 자신있게 특정하는 것이나 상대의 양해를 구하기도 전에 대화를 시작하고 이끌어가는 것이나 이러한 장치가 마치 저자가 독자한테 "애기 좀 합시다. 일단 내 얘기부터 듣고!"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무척 흥미롭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임정균
안녕하세요 여러분. @바나나 님, @진공상태5 님, @siouxsie 님, @호디에 님께서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5~6장을 함께 읽어볼 차례네요. 대강의 줄거리는 언더우드샘슨에 입사한 찬게즈가 필리핀 마닐라에 출장 중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해 겪게 되는 일인데요. 드디어 찬게즈의 회상이 중요한 사건에 이른 듯하네요. 몇몇 장면들이 눈에 띄었어요. 이를테면 “뉴욕이 라호르보다 더 부유한 것을 받아들이는 건 그래도 괜찮았지만, 마닐라도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힘들었어요”(60쪽)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찬게즈는 자신의 출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필리핀에 대해서는 은근히 깔보는 시선을 갖고 있죠. 줄곧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생각해온 찬게즈가 필리핀인들 사이에서 동료의 금발과 벽안을 보고서 “너는 정말로 이국적이구나”(63쪽)라는 생각을 불쑥 하게 됩니다. 이어서 필리핀인들의 눈에는 자신이 동료보다는 필리핀인에 가깝게 보일 거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이러한 깨달음은 9·11테러로 인해 입국 심사가 강화되면서 찬게즈에게 더욱 여실하게 다가옵니다. 입국심사대에서의 수치스러운 자기 증명의 과정들, 특히 “미합중국에 온 목적이 뭐냐고요?”(69쪽)라고 물어오는 검색대 직원의 물음은 ‘이곳에 살고 있다’라는 것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어떤 ‘불순한 의도’를 전제하고 있죠. 그제서야 찬게즈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금발의 동료들처럼 온전한 미국인이 될 수는 없을 거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찬게즈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대목일 거예요.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66~67쪽) 찬게즈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곧장 이렇게 해명합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67쪽)
물론 우리는 무고한 희생자를 낸 테러를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찬게즈의 말 역시도 쉽게 납득하긴 어렵습니다. 찬게즈가 뉴욕에 돌아 온 뒤 곳곳에 내걸린 성조기를 보며 느낀 것이 일종의 두려움임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 국기들은 찬게즈와 같은 무슬림에게는 애도의 의미를 초과해서 “우리는 미국이야. 세계가 지금까지 알았던 가장 강력한 문명인 미국이라고. 당신들은 우리를 무시했어. 우리의 분노를 조심해”(72~73쪽)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든 문화에 관대해 보였던 뉴욕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진 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지요. 이 대목은 이후 계속되는 미국의 극단주의자의 위협에 찬게즈가 불가피하게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들게 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찬게즈가 쌍둥이 빌딩의 붕괴를 보며 느낀 ‘상징성’입니다. 이 상징성의 의미는 후반부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어째서 찬게즈가 테러에서 ‘구체’적인 희생자의 고통과 참극을 보기보다는 ‘가시적인 미국의 패배’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했던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그건 아마도 뉴스가 마치 영화처럼 보였던 테러의 ‘스펙터클’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9·11테러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데다, 쌍둥이 빌딩이 차례로 무너지던 현장이 고스란히 미디어를 타고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던 만큼 전 세계가 경악했던 끔찍한 사건이었지요. 당시 제 기억을 잠깐 상기해 보자면, 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전 세계로 송출되었던 무자비한 폭력의 스펙터클이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새벽에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듣다가 그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 들은 끔찍한 소식 탓에 공포와 묘한 흥분 상태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음날 교실 텔레비전을 통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반 친구들과 함께 목격했을 때 지난 새벽과는 다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건 정말이지 현실감이 없어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아니 그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일었지요.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악마의 형상을 보거나, 무수한 음모론이 난무했던 것을 상기하면 그 사건을 대했던 전세계인이 테러의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현실감각을 상실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디어의 지나친 현실성은 오히려 우리의 현실감각을 상실케 하고, 구체적인 것보다는 추상적인 사고를 하기 쉽게 만들지요. 민주주의적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그랬듯 미디어는 종종 전체주의적 도구로 악용되기도 했던 것은 이런 스펙터클의 힘 때문일 겁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스펙터클의 힘을 이후 미국이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참혹했던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테러 발생 직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합니다. 이른바 ‘악의 축’을 대상으로 한 ‘테러와의 전쟁’의 시작이죠. 2003년에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무수한 토마호크 미사일이 쏟아지기도 했고, 그 장면은 고스란히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그 폭격은 당시 말로만 전해지던 미군의 최첨단 전략무기였던 스텔스기와 이지스함의 위력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가시적으로 선명히 각인시킨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때 폭격 아래에서 희생된 민간인을 생각했던 사람은 아마 극소수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 무수한 정밀 타격 미사일들은 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 살상 무기’가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에게 미국식 전쟁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정의로운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폭격의 스펙터클에 의해 오히려 많은 미국인들은 무수히 죽어간 구체적인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미국은 바로 그 스펙터클을 통해 잔혹한 복수극을 정의로운 영웅서사로 탈바꿈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일은 최근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초기에 유튜브에서는 키이우 광장에 매달린 CCTV화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기도 했지요. 그 화면을 보았던 세계인은 전쟁의 참상을 보려했던 걸까요, 러시아제 미사일의 위력을 보려 했던 걸까요.
오늘은 각자 인상 깊었던 소설 속 장면 외에도 여러분들이 9·11 테러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을 공유해보면 어떨까요. 그 밖에 여러 전쟁의 참상과 관련해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시나요. 여러분들이 경험한 스펙터클의 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진공상태5
9-11은 충격적이었지만 너무 영화같은 장면이어서 그랬는지, 번개가 번쩍하고 나서 한참 후에 천둥소리가 들리듯, 저에게는 뭔가 펑 하고 터졌는데 한참 후에 충격이 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 그리고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세월호를 능가하는 충격은 아직.. 나치든 9-11이든 후쿠시마든 아직 저에게는 세월호를 능가하지는 못하는것 같아요, 아주 개인적으로요.
진공상태5
찬게즈가 필리핀에서 느꼈던 감정들.. 그 사람의 교육수준이 어떻든 어떤 영어를 사용하든, 피부색과 인종적인 배경을 넘어서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자랄때, 제가 번역서를 꽤 읽었던 모양이에요. 주로 백인 남자들이 쓴 책들이었죠. 그래서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저는,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을 했었던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에 나가보니, 내 앞에 깔려있던 카펫은 그들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내가 아시아인이고 여성이라는 사실을 저는 몰랐던 것,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것이지요. 그냥 나도 그들(백인 남성)처럼 하나의 개인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나의 피부색과 배경때문에 나는 하나의 개인이 아닌, 항상 어딘가에 속하는 어떤 하나가 되어있었고, 그렇게 취급받을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었기때문에 초반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혹은 어떤 생각을 하고 또는 가지고 있는지) 중요치 않더라구요. 내가 아시아 사람이고 여성이라는게 참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는것을 닥쳐서야 깨닫고는 한동안 혼란스러 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호디에
뉴스 보도를 통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순간을 처음 본 당시, 저는 빌딩 안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떠올려졌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제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이 사람들 어떡해..."였어요. 한동안은 분노보다 슬픔이 컸었어요. 나중에 충격과 분노의 방향은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구요.
저는 찬게즈가 가진 '상징성'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됩니다. 이후 보복 전쟁 역시 어찌 보면 '상징성' 때문에 미국을 지지하는 측들이 민간인 학살이 불가피했던 것처럼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러한 맥락은 코비드 시국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보다 에리카와 찬게즈의 관계에 더 관심이 갑니다. 찬게즈가 연인을 잃은 에리카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두 사람을 좀더 지켜보렵니다.
책꽂이 : 최근에 출간한 켄 리우의 단편집인데요. 군 드룬 조종사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실려 있는데요.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 켄 리우의 세 번째 단편 선집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권위의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 만에 첫 동시 수상한 대표작 「종이 동물원」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켄 리우의 미출간 단편 중 엄선하여 엮은 두 번째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이다.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 번역상을 수상한 장성주 씨가 직접 엮었으며, 이번 선집에서 켄 리우는 대체역사, 실크펑크, 스팀펑크, 사이버펑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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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뉴욕도 아닌 마닐라가 라호르보다 더 발전한것을 용납할수 없어 하는 찬게즈의 마음이 뭔지 알것 같았어요. 국가의 발전에도 각자 마음속에 나름의 서열이 있지 않을까요.(저도 있어요) 5장을 통해서는 asian 이라는 정체성과 피부색을 벗어너지 못하는 찬게즈가 잘 표현된것 같아요. 줄곳 무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더 신경쓰고 있다는 증거같고, 짐은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과 찬게즈를 동일시 하지만, 그는 백인 미국인이고, 찬게즈는 파키스탄 유색인이라는 차이는 결코 넘어서기가 어렵겠죠.
바나나
911 테러 장면은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실시간 속보로 접했어요. 저는 그 안에 있을 사람에 대한 생각은 아주 나중에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어어....어어...하면서 멍해지는, 그 이후 중동에서의 전쟁뉴스도 마찬가지로, 펑펑 터지는 영상이 현실로 와닿지 않았어요. 중동지역에 대 미국 테러에 대한 공공의 적이 있고, 그에게 응징하는 것으로 방송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일들을 겪은 사람에 대한 생각은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을 읽고서야 내 일로 느껴졌더랬어요. 그 어떤 인터뷰, 기사들보다 소설이 더 잘 전달할수 있는 것도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 반갑고 좋았어요. 찬게즈와 비슷한(이렇게 유능하지 않을지언정 미국에서 미국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중동에 뿌리를 둔 유색인) 입장의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진공상태5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이 책을 통해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도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고 있으니, 얼마 후에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이야기가 찬게즈의 이야기처럼 나오는 게 아닐까 하구요.
인종적 다름은 아니지만, 탈북자에 관해서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조난자들『조난자들』은 25분 만에 비무장지대를 건너 10년 만에 통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승현 박사의 자전적 에세이이면서도 우리의 뒤틀린 현대사와 일그러진 맨 얼굴을 보여주는 슬픔의 책이다. 탈북민인 그는 스스로를 ‘조난자’로 부른다. 조난자는 항해 중에 재난을 만난 사람을 의미한다. 저자에게 탈북민은 한반도의 분단 역사라는 재앙을 맞아 난파된 자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3만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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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균
@진공상태5 님과 @호디에 님 말씀대로 세월호와 코로나도 우리에겐 강렬한 스펙터클로 다가왔던 사건이었지요. @바나나 님도 저처럼 새벽에 뉴스로 911테러를 접하셨군요 ㅜㅜ
@진공상태5 님이 언급해주신 <조난자들>은 접해보지 못한 책인데, 말씀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중간자적 존재인 탈북민 역시 찬게즈의 입장과도 비슷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네요.
@호디에 님 소개해 주신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SF 소설이군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인데 잘 갈무리 해뒀다가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5~6장의 에리카와 찬게즈의 관계도 중요한 듯해요.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내용은 후반부에 같이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듯하네요.
임정균
안녕하세요. 다들 좋은 의견들을 적어주셔서 저도 많이 배우고, 새로운 장면들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제목이 무겁기도 해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여러 말씀을 나눠주셔서 너무 든든하네요^^ 오늘은 7~8장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공유해볼까요.
찬게즈는 점점 더 “독선적인 분노에 사로잡”(85쪽)힌 미국의 분위기, 파키스탄에 남은 가족에게 구체적인 위협이 될 전쟁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면서도 언더우드샘슨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일은 더욱 승승장구 중이죠. 9·11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한 까닭일까요. 다행히(?) 찬게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미국에서의 성공에 더욱 열을 올리는 듯합니다.
여기서 제가 눈여겨본 것은 언더우드샘슨이라는 회사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찬게즈의 상사인 짐은 제조업 종사자였던 아버지가 당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던 미국의 경제구조에 둔감했다고 하며, 자신의 성공이 바로 그 변화의 시기에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요(87쪽). 이 대목은 현재 미국식 자본주의의 본질, 그리고 미국이 어떻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현대사를 잘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산업자본주의의 시대에서 금융자본주의로의 전환입니다. 막스 베버가 천민자본주의라고도 불렀던 금융자본주의가 미국의 경제체제가 된 것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일이죠. 굵직한 사건들만 언급해도, 흔히 재즈의 시대라 불리는 1920년대 미국 증권가의 호황, 1930~40년대의 대공황,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냉전, 70년대 오일쇼크, 1990년대 실리콘밸리의 성장과 2000년대 초반 IT버블,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잘 알려진 세계금융위기까지. 여러 사건들이 있지만 이 흐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미국의 화폐인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면서 미국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전세계를 장악하게 된 일일 겁니다. 언급한 모든 사건이 미국식 자본주의가 전세계에 수출되고,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이 미국 달러에 종속되는 데에 영향을 끼쳤죠. 엊그제 뉴스를 보니 현재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해서 세계 금융이 또다시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고 해요. (아악 내 주식 ㅠㅠ 주식에 물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겠죠 ㅠㅠ)
이러한 배경 하에 이 소설을 살펴보면, 소설의 제목과도 무관하지 않은 한 문장이 보입니다.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중략) 재정에 관한 사항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어요.”(89쪽)
이 장면에서 독자는 드디어 종교적 의미의 근본주의와는 다른 의미의 근본주의와 만나게 됩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언더우드샘슨의 저 사훈은 그 자체로 근본주의지요. 그리고 우리는 20세기 미국식 자본주의의 변화에서 저 근본주의의 어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언더우드샘슨은 기업의 인수합병 전, 대상 기업의 가치를 평가(estimate)하는 일을 합니다. 위 문장을 다시 살펴보죠. 그 회사의 기본 원칙이란 “근본적인 것(fundament)에 집중하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재정(fund)에 관한 사항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substance)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인데, 이 역설적인 원칙의 어의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는 제목이 주는 첫 번째 수수께끼의 해답에 접근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 회사의 업무란 기업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업무에서 ‘근본적인 것’은 재정 상태, 곧 ‘자산 가치’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기 위해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을 무시하라니.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역설적인 말이 아닐 수 없지요. 이러한 역설에 의해 적어도 이 소설 속에서만큼은 ‘근본주의’가 뜻하는 바가 종교적 근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은 명백해집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적어도 ‘진짜 본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하며, ‘근본적인 것’ 또한 따로 존재한다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이 소설이 던지는 수수께끼는 ‘진짜 본질’과 ‘근본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물음으로 바꿔볼 수 있을 거예요. 이 물음은 존재 혹은 실체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물음을 기원으로 하기도 하고, 이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수수께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긴 연대기, 즉 인간 역사의 시작과 그 종말에 관한 철학적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소설을 마저 읽은 뒤 후반부에 하도록 할게요. 오늘은 이 소설이 말하는 ‘근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는 데에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그 밖에도 주목할 만한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떤 장면들이 인상 깊었나요. 가령 지난 시간 미디어의 스펙터클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찬게즈가 직접 경험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죠. “21세기 첨단 무기를 탑재한 미국 폭격기들과, 장비도 형편없고 먹는 것도 변변치 않은 아프간 부족민들 사이의 어울리지 않는 싸움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면서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90쪽)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내 개인적인 삶과는 전혀 관련 없는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어요.”(91쪽)
혹은 파키스탄이 크리켓을 잘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지요.(이건 미국 야구의 역사와 견주어 보면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 보죠.)
늘 그랬듯 함께 이야기 나눠볼 장면들을 올려주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네요. 특히 7~8장은 @호디에 님 말씀처럼 5~6장에 이어 에리카와의 이야기가 중심 서사인데요. 그 장면들을 언급해주신다면 더 좋겠네요.
siouxsie
또 늦었지만, 7-8장입니다. 평론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하고,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몰랐던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셔서 속이 다 시원해졌습니다. 저 또한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 는 부분은 계속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읽고 넘어갔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언더우드샘슨의 기본원칙, 즉 자본주의의 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 저는 평론가님이 언급 안 하신 부분 위주로 말해 볼까 합니다.
86p 유감스럽게도 발생한 그런 드문 나쁜 사건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런 일들은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변함없이 불운한 가난뱅이들한테 일어나지, 일 년에 8만 달러를 버는 프린스턴 졸업생들한테는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 이런 생각들 때문에 조금의 부라도 가진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더 베풀 수 있는데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베풀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있는 자들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의 역발상이라고 할까요? 저도 그렇고, 한국이란 나라가 정세상 딱 저런 생각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모신 하미드의 최근 작품인 '서쪽으로'가 난민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과 관련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06p <찬게즈가 주차장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욕을 먹고 난 후의 이야기>
그는......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요! 그 남자에 관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네요. 나이도 그렇고 몸집도 그렇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당신에게 얘기하는 사건들의 세세한 것들을 많이 기억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요지잖아요. 결국 나는 당신에게 역사를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당신도 미국인이니까 이해하겠지만, 역사에서 중요한 건 세부적인 정확성이 아니라 이야기의 요점이잖아요.
-> 저의 확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이 대의 명분과 표면적 '사실'에 가려진 '세부적 진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힘 센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보여주는 홍보효과 가득한, 본인들의 살인을 합리화 하는 요점 말이죠. 진실은 저 너머로 넘어가 버리고요.
그리고 8장 마지막 부분에 비행기 안에서 기도하던 남자가 '신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찬게즈는 '신의 의지가 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 또한 '신의 의지'가 언제 알려질지 궁금합니다. ㅎㅎ
임정균
제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들을 짚어주셔서 감사해요^^
86쪽에서 짚어준 내용은 한 나라 내에서 계급차에 관한 문제인데, 이를 조금 거시적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해요. 7-8장에서 20세기의 미국이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일을 언급했었는데요. 우리나라는 지금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도달해 있다고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체질 변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금융자본에 종속된 국가입니다.
이를테면 최근 주당 근무시간에 대한 이슈가 뉴스를 뒤덮고 있는데요. 선진국이 금융업과 서비스업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경제 체제를 전환하는 동안 우리는 선진국이 포기했던 제조업을 통해 부를 이룩했지요. 여기엔 건설과 조선업같은 중공업도 포함되고요.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보니 달러에 더욱 종속되기도 하고요. 국가의 전체 산업의 근간이 제조업이 되면서 우리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많이 일하고, 일하는 것에 비해 적게 버는 국가인 것이죠.
이런 문제에서 출발한 국력의 차이가 국가간 역사/정치적인 문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듯해요. 국가 간에도 분명 개인들 간의 계급차에서 발생하는 종속관계가 발생하고요. 일제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로 인해 지난 몇 해간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국민들이 불매운동까지 벌여가면서(그 와중에는 여러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지요) 경제적 피해를 극복해가는 와중인데, 최근 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공분을 사고 있어요. 이런 굴욕적인 외교도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해요. 우리 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당장 한일관계로 인해 위기이기 때문일 텐데요. 이런 대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걸 수용하는 정부 역시 그 밑바탕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주의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 강국인 대만과 한국에 투자를 강요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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